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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려야 얻는다, 기도마저 그렇다

[예비신자의 교리수업 이야기] 코로나 시대에 올리는 기도의 참 의미

등록 2020.05.17 12:08수정 2020.05.17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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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0일 오전 9시, 실로 오랜만에 주일미사가 열렸다. 무려 11주 만이었다. 코로나19의 위력은 종교박해의 칼바람이나 전쟁의 포화보다 셌다. 나라 전체가 멈췄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미증유의 사태였다. 사람들은 공포에 질렸다. 그나마 이쯤해서 미사가 재개된 건 천만다행이었다. 물론 결코 안심할 단계는 아니었다. 

오랜만에 재회한 신자들은 크게 반가워할 여유도 없었다. 손도 마주 잡지 못했다. 저마다 마스크를 한껏 치켜 쓰고 눈인사로만 안부를 나눴다. 성전 안에서도 내외하는 사람들처럼 서로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그건 마치 재난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불과 이틀 전, 젊은 확진자가 서울의 클럽을 누비고 다녔다는 소식이 전해진 탓인지 성전 내 공기는 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비장감마저 도는 듯했다.

굳은 표정의 신부님께서 제단에 오르시며 미사는 시작됐다. 신부님께선 미리 준비해 오신 말씀만 하시겠다고 작정하신 듯했다. 평소 즐겨하시던 농담은 하나도 없었다. 성가는 일체 생략했다. 성가대조차 없었다. 오르간 반주에 맞춰 노래했던 영광송이나 주님의 기도 등도 그냥 낭송으로 대체했다. 미사는 정해진 순서대로만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평소보다 훨씬 일찍 끝났다.
 

아무런 노력도 희생도 없이 입으로만 하는 기도를 하느님이 들어주실 리 만무하다. 기도는 그렇게 어렵고도 힘든 거였다. ⓒ Pixabay

 
미사 후 예비신자들의 교리수업도 다시 문을 열었다. 이건 미사보다 먼저 중단됐었다. 총 12주가 밀렸다. 4월12일 부활절에 예정되었던 세례성사도 기약 없이 미뤄졌었다. 컸던 기대만큼 실망도 컸다. 하지만 어쩔 도리는 없었다. 다행인 것은 이번 미사재개를 계기로 우리의 세례성사일을 5월 31일로 '일단 예정'해 놓았다는 사실이었다. '일단 예정'이었다. 이후 사태가 어찌 될지는 아무도 몰라서다. 그걸 공지하시는 선생님의 말씀에도 확신은 없어 보였다.

그날 교리수업의 주제는 기도였다. 교제는 기도의 의미를 이렇게 일러주고 있었다.

"우리의 기도는 하느님께 우리가 필요한 것을 일방적으로 청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일치하려는 사랑의 대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듣고 실천하는 가운데 기도를 준비하고, 하느님의 뜻에 협력하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합니다(한국천주교 예비신자 교리서, p173)."

이 대목을 몇 번이고 되뇌어 읽었다. 그동안 내가 갖고 있던 막연한 편견을 시원하게 깨주는 이야기여서 였다. 나는 기도를 기도자의 일방적인 바람의 표현이라 생각했다. '부자 되게 해 달라', '취직 시켜 달라'는 식으로 현실에서는 이루어지기 어려운 소원들을 막무가내로 신에게 갈구하는 게 기도의 전부인 줄 알았다.

천주교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구원의 은총과 영원한 생명, 평화의 안식 따위를 내게 내려 주십사하는 대목이 거의 모든 기도문에 들어 있어서 였다. 그걸 기복신앙적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교리서의 그 말씀은 내 생각이 얼마나 편중되고 왜곡되어 있었던 것인지를 통렬하게 깨닫게 해 주었다. 기도가 하느님과 나와의 대화라는 거다. 내 어리석은 생각처럼 기도자의 일방적인 청원이 아니라는 거다. 대화는 양방향 소통이다. 화자와 청자 간의 교감이며 상호작용이다. 둘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다. 누구 하나가 다 가질 수는 없다. 버려야 얻는 법이다. 그러니 기도로 소원의 성취를 바라면 내가 가진 무언가를 내 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기도마저 그렇다는 거다.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을 얻으려면 네 것 중 하나를 버려야

주님의 기도문은 그걸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 중간에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를 용서하시고'라는 구절이다. 그건 내가 먼저 누군가를 진정으로 용서해야 하느님도 나를 용서해 주실 것이라는 뜻이다. 하느님은 원수마저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그러라고 하셨다. 내게 상처를 주고 시련을 안긴 자를 용서하고 나아가 사랑하라는 거다. 그래야 내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거다.

말은 쉬울지 몰라도 그 실천은 결코 그렇지 않다. 평범한 사람들에겐 불가능에 가깝다. 당한 피해만큼 보복을 하지 않는 것만도 큰일이다. 웬만한 수련과 정진으로는 어림도 없다. 그런데 하느님은 그걸 선행조건으로 제시하신 거다. 오른쪽 뺨을 맞으면 왼쪽 뺨마저 내놓을 수 있어야 내 소원을 이루어주신다는 거다. 그러니 아무런 노력도 희생도 없이 입으로만 하는 기도를 하느님이 들어주실 리 만무하다. 기도는 그렇게 어렵고도 힘든 거였다.

그동안 인간들은 자신들의 성취에 한껏 고무되어 있었다. 특히 과학기술의 놀라운 발전에 도취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하잘 것 없는 바이러스 하나 어쩌지 못하는 수준에 불과했다.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현명한 사람들은 이번 코로나 사태가 인간의 교만에 대한 경고라는 사실을 대번에 알아챘다. 간절한 기도가 이어졌다. 하지만 하느님은 쉽게 들어주지 않고 계신다.

교리서에는 이에 대한 해답도 나와 있었다.

"기도는 하느님께 무엇을 청하기에 앞 서 하느님의 뜻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위와 같은 책, p171)."

하느님께서 인류에게 바라는 것은 더욱 처절한 자기반성과 성찰일 터다. 한다고는 하지만 우린 아직 당신께서 원하신 단계까지는 오르지 못했다고 판단하신 듯싶다. 게다가 우리 주위엔 여전히 방종을 일삼고, 천방지축 오만한 무리들이 차고 넘치는 지경이다. 하느님의 뜻이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기에는 참 많이 멀어 보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코로나 사태가 우리에게 상처만 준 게 아니라 소중한 교훈도 함께 전해 줬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무엇에든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것은 그중 가장 큰 선물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역설적으로 가족과, 사람, 그들과의 관계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었다.

회사나 학교처럼 평소엔 어떻게든 벗어나고만 싶었던 공간이 실은 얼마나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영화감상이나 여행 같은 소소한 일상도 우리 삶에서 참 큰 몫을 해주고 있었다는 걸 새삼 알게 해 주었다. 무엇보다 변함없이 아침에 눈을 뜨고 무탈하게 하루를 지낸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를 절감하게 해 주었다.

하느님은 바람보다 감사의 기도를 더 좋아하신다고 한다. 교리 선생님께서 그러셨다. 나그네와 호랑이의 우화를 그 근거(?)로 드셨다. 산중에서 마주친 둘이 각각 기도를 드렸는데, 하느님께선 호랑이의 감사기도를 들어주셨다는 우스갯소리 말이다. 생각해 보니 그도 그럴 법했다. 감사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겸양을 아는 사람이다. 양식과 양심이 있는 사람이다. 이기적이고 교만하고 방자한 사람들은 절대 그걸 모른다. 하느님은 그걸 높이 보신다는 말인 게다.

새로운 변수가 터지면서 코로나 사태는 다시 긴장 국면으로 흐르고 있다. 하지만 이 환난도 분명 지나갈 것이다. 물론 모두의 적극적인 노력과 협조가 뒷받침 돼야 한다. 간절한 기도도 필요하다. 그렇게 언젠가 이 위기가 막을 내리면 우리 사는 세상은 훨씬 더 좋아져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확 달라져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한층 더 성숙하고 의젓하게 변해 있을 거다. 서로를 위해 배려하고 인내하는 사람들이 넘쳐날 것을 확신한다. 무엇보다 평범하고 작은 것들에 감사해 할 줄 아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따뜻한 사회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정말 그리 되길 기도해 본다. 간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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