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가해자에게 걸맞은 이름은 '성실' '평범'이 아니다

그들은 가해자일 뿐... 언론은 국민의 감정과 괴리된 보도 하지 말아야

등록 2020.05.14 12:40수정 2020.05.14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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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착취 영상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텔레그램 대화방 'n번방'의 최초 개설자인 대화명 '갓갓' 문형욱(24)이 검거되고 신상이 공개되었다. 마지막까지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던 악의 주범이 검거되자 언론은 앞다투어 그의 과거와 평소 행실 등을 기사로 옮겼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내성적이고 평범한 건축학도', '성실한 학생'과 같은 표현을 썼다는 점이다.

그뿐만 아니라 앞서 검거된 조주빈(25)은 '봉사 청년', '성실한 학보사 기자'로, 조주빈의 범행을 도왔던 사회복무요원 강아무개(24)씨는 '성실하고 똑똑한 성격'과 같은 표현으로 묘사된 바 있다.

미성년자를 포함해 수많은 여성의 삶을 난도질한 이들에게 긍정적 평가를 덧붙이며 마치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식의 서사를 펼쳐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n번방'의 실체는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안겼다. 게다가 그 가해자들이 평균나이 21.3세의 젊은 청년들이라는 것이 알려지자 주변에 있는 친구, 이웃도 믿을 수 없다는 공포감이 커졌다.

과거의 성범죄 사건과는 달리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워낙 많은 인원이 연루되었고 익명성이 보장되어 누구든 가해자일 수 있다는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언론은 가해자들의 평범한 특성을 부각해 보도하면서 국민들의 불안감을 '클릭'으로 연결하려 하고 있다. 문제는 그런 식의 보도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냐 하는 점이다. 가해자가 평범하고 내성적이고 성실할수록 사건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충격에 휩싸이고 그만이지만 피해자들의 공포와 상처는 더욱 깊어진다.

게다가 가해자들에게 부여한 긍정적 서사 때문에 'n번방' 사건이 평범한 청년들의 일탈 정도로 여겨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있다. 실제로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인 손정우(24)가 미국으로 송환될 처지에 놓이자 그의 부친은 "우리 애가 살인, 강간했냐"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디지털 성범죄의 잔혹성에 전 세계가 분노하고 있음에도 여전히 그것이 강간이나 살인보다는 덜하다는 인식을 가진 사람도 있는 것이다. 문제는 언론이 이렇게 잘못된 인식을 조작하거나 조장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평범하고 내성적인 청년이었다는 식의 서사는 단기적으로 피해자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을 넘어 장기적으로는 또 다른 디지털 성범죄를 야기하고 그것에 대한 안일한 인식을 조장할 수 있다.  
대중은 'n번방' 가해자의 평소 행실이나 과거의 평가에 대해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과거에 성실하고 똑똑했던 것은 지금의 범죄 사실과 아무런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국민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은 검거된 가해자의 신상 정보, 그리고 숨겨져 있는 수많은 회원의 정보이다. 이를 위해서 언론은 그들에게 서사를 부여해서 평범한 시민처럼 둔갑시키는 게 아니라 그들의 범죄 사실을 낱낱이 밝혀 시민으로부터 배제해야 한다.

언론이 'n번방'을 다루는 방식이 곧 미래의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인식이라는 점을 명확히 인식하고 더는 국민의 감정과 괴리된 보도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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