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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 고용보험 개정안, 왜 당사자들은 반대할까

[인터뷰] 오경미 문예노련 사무국장 "혜택 아닌 근로자로 존중받길 원해"

20.05.15 11:13최종업데이트20.05.15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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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노동연대가 지난 12일 함께 모여 국회 앞에서 고용노동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문화예술노동연대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문화예술인들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을 특례로 포함하는 고용노동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지난 10여 년간 '문화예술인 고용보험 적용' 문제는 문화예술인들에게 하나의 숙원 사업이었기에, 당연이 좋은 소식이 될 거라 여긴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은 개정안에 문제가 많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문화예술노동연대(아래 문예노련)는 12일 성명서를 통해 환노위를 통과한 고용노동법 개정안을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함께 고용보험 적용대상이 돼야 하는 특수고용직 노동자들은 아예 제외됐고, 노동자 개념을 확대하는 개정이 아닌 문화예술인 관련 특례조항을 따로 만들어 보장하려 한다는 이유였다. 문화예술인을 노동자로 인정하는 게 아니라 다소의 혜택만 주고 마는 복지 관점으로 접근한 게 아니냐는 의혹 또한 덧붙였다.

'특별대우'의 함정

"법안 자체만 놓고 보면 문화예술인들이 환영할 수 있는 내용이다."

지난 14일 서울 모처에서 만난 문예노련 오경미 사무국장이 말했다. 마침 오 사무국장은 당일 오전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과 면담을 통해 그간의 우려를 전하고, 일부 설명을 듣는 시간을 가졌다고 했다. 

"특별대우를 원하지 않았다. 2011년 최고은 작가가 사망한 이후 제정된 예술인복지법 때도 그 얘길 들었는데 지금도 이미 일부 사람들은 문화예술인만 챙기는 거 아니냐고 비난한다. '예술 활동하는데 돈 못 벌지? 가난하니까 돈 줄게' 이런 시선을 원하는 게 아니다. 다른 근로자와 마찬가지로 업으로 인정받아야 한다는 거다. 이걸 계속 복지적 관점으로 보면서 떡 하나 던지듯 (정책이) 가고 있다. 특수고용직 노동자들과 함께 우리가 노동자로 인정받는 게 아니라 우리만 따로 특례조항으로 빠진 것도 그런 우려에서 반대하는 것이다."

문화예술인 입장에선 황당할 수 있는 일이 있었다. 2017년 이미 특수고용직, 문화예술인들을 포함한 안을 고용노동보험위원회에서 의결했고, 이를 토대로 2018년 11월 더불어민주당 한정애 의원이 고용노동법 개정안을 발의했음에도 이후 여타 논의가 없다가 보다 후퇴한 형식의 안이 갑자기 통과된 것이기 때문. 한정애 의원 법안에는 근로자 정의조항을 수정해 근로자의 범위를 넓혀 특수고용직과 문화예술인도 고용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자는 취지가 반영돼 있었다.

"야당이 반대해서 그렇게 됐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라며 오 사무국장은 "(고용노동부)장관께선 지금 고용노동법 체계에서 곧바로 문화예술인을 적용시키기 어려워 특례조항을 마련한 것이라 설명하셨다"라고 오전 면담 내용부터 밝혔다.

"그래서 제가 여쭸다. 특수고용직도 특례조항 방식으로 하실 건지 말이다. 그건 두고 봐야 한다더라. 계약관계로 임금을 받는 사람들만 보호할 게 아닌 노동을 제공해 소득을 얻는 모든 사람을 노동자로 간주해서 사회안전망을 넓혀야 한다는 게 우리 주장이었다. 근데 우리가 특례로 빠지는 첫 사례가 되면 더 많은 특례가 만들어질 수도 있잖나. 고용노동법 전체의 방향은 그대로인데 무수한 예외 조항만 생길까 봐 강하게 얘기하자는 취지였다.

문화예술인은 오래전부터 연습 기간이나 작업준비 기간은 일하는 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행사 당일만 인정받는 초초단기 계약 형태로 돈을 받아왔다. 그런데 점점 더 많은 일자리가 초단기 계약 형태로 흐르고 있다. 이런 흐름에서 지금의 고용노동법 체계로는 근로자들을 제대로 포괄하지 못할 것인데 그땐 어떡하실 건지 물었다. 장기적으로 체계를 바꿔나가겠다고 하시더라. 아주 중요한 얘기라고 본다."


 

고 최고은 작가의 영화 <격정 소나타>의 한 장면. 생활고에 시달리다 안타깝게 사망한 이후 지지부진하던 예술인복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 최고은


물론 문예노련 내부에도 여러 목소리가 있었다. 게임개발자연대, 공연예술인노조, 무용인희망연대 오롯, 전국보조출연자노동조합,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전국예술강사노동조합,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등 12개 이익 단체가 가입돼 있는데 성명서 발표 당일에도 3시간 넘게 격론을 벌였다고 한다. 당장 생계가 시급한 집단이 있으니 받아들이고 단계적으로 주장하자는 의견부터 자칫 문화예술인만 챙긴다며 고립될 수도 있다는 의견 등이었다.

오 사무국장은 "근로자의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방식이 특례조항으로 인해 좌절된 것이니 그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힐 필요는 있었다"며 치열한 내부 설득의 과정이 있었음을 고백했다.

"우리나라의 근로자 보호 시스템은 임금 노동자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예술인이나 특수고용직 등 전통적 개념에서 근로자로 인식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 시스템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임금 노동자 중심의 시스템을 변화시키거나 넓혀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지. 아니면 일부 해외 사례처럼 근로자를 임금 노동자에 한정하더라도, 예술인, 가사 노동자, 특수직 노동자도 임금 노동자와 같은 혜택을 받게 했다면 우리가 이처럼 주장하진 않았겠지.

예술인 특례조항, 특수고용직 특례조항 등 계속 특례로 가다 보면 각각 마다 제도와 정책이 마구 양산될 수밖에 없다. 그 우려에서 특례조항 거절 입장문을 발표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말씀하신 전 국민 고용보험 제도 시행을 위해서도 고용보험 체계 자체를 개정해나가는 게 맞다고 본다." 

     
"고용노동법, 큰 틀에서 개정하는 게 맞다"

지난한 싸움이었기에 치밀하고 분명한 목표 설정이 중요했다. 오 사무국장은 "2008년 예술인복지법을 당시 여당과 야당이 만지작거릴 때부터 산업재해 보장보험, 고용보험이 같이 포함돼 있었는데 '최고은법'(예술인복지법) 발의 때까지 계류하다 결국 당시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가 반대해 고용보험이 빠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기준이라면 투쟁의 시간이 12년을 넘긴 것이다. 

"최고은법이 나오자마자 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방향을 복지로 갈 게 아니라 예술도 노동인 만큼 그 권리를 찾아야 한다는 거였다. 예술인 내부에서도 치열한 토론이 있었지. 노동으로 인식할 것인가 아닌가에 대해 교육하고 의견을 나눠왔다. 그러다 2017년 지금의 문화예술노동연대가 탄생한 것이다. 목표 자체를 (근로자 개념 확장을 통한) 고용보험 도입으로 잡고 활동 중이다." 

이변이 없는 한 환노위를 통과한 이번 고용노동법 개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에서 통과될 가능성이 크다. 오 사무국장은 "핵심 사항을 대통령령으로 넘기고 있기에 이 개정안의 시행령이 어떻게 작성되느냐가 정말 중요하다"며 "그에 대해 우리도 의견을 내겠지만 (그보다 본질적으로) 문화예술인과 특수고용직분들의 노동자성을 어떻게 인정받도록 할 수 있는지 더욱 고민하며 노력하겠다"라고 각오를 밝혔다. 

"큰 틀에선 특수고용직과 같이 가야 한다"
 

문화예술노동연대가 출범한 2017년 당시 모습. ⓒ 문화예술노동연대


한편 이번 법안 통과에 대한 한정애 의원의 생각도 들을 수 있었다. 한 의원은 <오마이뉴스>에 "근로자 범위 확대가 예술인까지밖에 안 된 셈인데 당연히 아쉽다. 21대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진행하겠다"라며 "특수고용직 포함은 과거 고용노동보험위원회에서 의결했으나 경영계 반대가 있었다. 암묵적으로라도 경영계가 그렇게 나오지 않았다면 야당도 반대하진 않았을 텐데 결국 합의를 얻지 못했다. 그쪽 의견을 어느 정도 들어보면 21대엔 (특수고용직 또한 고용보험 적용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고 답했다.

특례조항 신설과 고용노동법 개정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두는지 묻자 한 의원은 "특수고용직까지 포괄하려면 고용노동법 전체를 손보는 게 맞다"며 "(문화예술인도 다시 고용노동법 안으로 놓는 게 좋을지 여부는) 실무적으로 파악하면 될 것 같다. 큰 틀에선 특고와 같이 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화예술인 국회 더불어민주당 고용노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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