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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놔두면 떨어질 집값, 정부가 또 부추기나

[집값 잡기, 또 거꾸로? ①] 용산정비창 등 서울 재개발 사업에 막대한 특혜

등록 2020.05.18 08:35수정 2020.05.18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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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호 국토교통부 1차관이 지난 6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수도권 주택공급 기반 강화 방안' 발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6일 정부 세종청사 2브리핑실, 박선호 국토교통부 차관이 "건강한 모습으로 뵙게 돼 반갑다"며 오랜만에 직접 브리핑을 주재했다. 이날 박 차관이 발표한 대책은 '수도권 주택 공급기반 강화방안'. 서울 지역에 공공 재개발과 용산 정비창 부지 개발 등을 통해 향후 3년간 주택 7만호를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주목할 지점은 재개발 규제를 완화해 '공공 재개발'을 활성화한다는 방안이다. 국토부는 조합갈등과 사업성 부족 등으로 사업 속도가 더딘 재개발 사업에는 공공이 참여해 신속한 사업 추진을 돕겠다고 밝혔다. 조합원들이 군침을 흘릴 만한 파격적인 혜택도 제시했다.

조합원 분담금까지 공공이 대납... 사익 보전에 국가 예산 투입?

우선 조합원 분담금을 공공이 보장한다는 것. 일반적으로 재개발 재건축 등 정비사업의 경우 공사대금을 분양 수익과 조합원 분담금으로 채운다. 분양수익이 낮거나 사업이 지체돼 비용이 추가 발생하면, 조합원이 내야 할 분담금은 그만큼 높아진다.

분양 수익이 낮고 조합원 분담금이 큰 정비사업장의 경우, 사업 진척이 더딜 수밖에 없다. 사업을 진행하더라도 조합원이 내야 할 분담금이 추가로 발생하는 위험성도 있다. 그런데 조합원 분담금을 공공이 보장해준다면, 사업 리스크가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다.

정비사업을 진행하고 조합원 분담금이 올라가더라도 이는 LH와 SH 등 공공이 부담한다. 조합원들의 개인적 사익을 보전해주기 위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예산을 쓰겠다는 발상이다.

아울러 국토부는 주택공급활성화지구로 지정된 곳은 용도지역을 상향해주기로 했다. 용도지역을 상향하면 그만큼 고밀 개발이 가능해지고, 조합원들의 수익도 극대화된다. 더불어 재개발을 할 때 공원과 도로 등 조합이 공공에 기부 채납해야 할 비중도 완화해준다. 조합원들의 이주비도 저금리로 지원해준다. 이 정도면 사업성 낮은 재개발 지역에 '투기판'을 깔아주는 격이다.


코로나 사태로 암울해 하던 부동산업계는 이번 대책을 호재로 여기는 분위기다. 언론 보도로 보면, 부동산업계 분위기는 벌써부터 들썩이고 있다. 6일 대책 발표 이후 부동산 이슈를 다루는 언론사들의 기사는 대체로 이렇다.

- 용산 정비창 부지 개발 소식에 경매시장도 들썩 / 헤럴드경제
- 미니신도시 기대감에 용산 '들썩'… 2년 전 '박원순發 폭등' 재현? / TV조선
- 세운상가 일대·성북1·2구역, 공공재개발 뛰어들 듯 / 한겨레


부동산업계 한 관계자는 "대책 발표 이후 가로주택정비사업을 중심으로 투자 문의가 많다"며 "재개발 사업의 경우 사업이 가시화된다면 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일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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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 서부이촌동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내건 시세 안내. ⓒ 연합뉴스

 
공공재개발로 분양가상한제 면제, 비싼 주택만 공급

공공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공급되는 주택들이 저렴한 것도 아니다. 공공 재개발 아파트의 경우,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받지 않는다. 소규모 주택정비사업 역시 분양가상한제 제외 범위를 확대했다. 기존에는 공공성 요건을 충족하는 1만 제곱미터 이상 사업이었지만, 공공이 참여하고 공공임대를 10% 이상 공급하는 모든 사업이 상한제 적용을 받지 않는다. 즉, 아파트 가격을 맘 놓고 높게 책정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이렇게 되면 아파트 가격은 조합원들의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지점까지 높아질 수 있다. 집값 안정화를 목적으로 공공 지원을 받아 공급하는 아파트에 가격 상한선을 두지 않는다는 것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이 아파트들이 비싼 가격에 공급되면 또다시 집값 상승세로 이어질 수 있다. 분양 아파트 가격이 높아지면 그 주변 아파트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는 효과가 있다는 것은 국토부가 직접 분석, 발표한 내용이다.

정부는 개발 촉진을 통해 임대주택 공급량을 늘리겠다고 했지만 여기에도 눈속임이 있다. 실제로 주택공급활성화지구로 지정된 지역은 조합원 물량을 제외한 주택의 50% 이상을 임대 주택으로 공급하도록 돼있다.

임대주택이 어떤 형태인지 살펴봐야 한다. 국토부는 발표 자료에서 '조합원 물량을 제외한 50% 이상을 공적임대로' 공급한다고 명시했다. 여기서 지칭하는 공적임대주택은 크게 두 가지 유형이 있다. '공공 임대주택'과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이다. 공공임대주택의 공급 주체는 '공공'이지만,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의 공급 주체는 '민간'이다.

임대주택도 시세와 비슷한 주택이 30%, 공공임대는 20%에 불과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은 박근혜 정부 시절 만들어진 뉴스테이(New Stay)가 변형된 형태다.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은 임대료가 싸지 않다. 임대료는 주변 시세의 최대 95% 수준까지 책정할 수 있다. 시세와 별반 차이 없는 수준까지 임대료를 받을 수 있으니, 재개발 사업자가 충분히 수익을 남겨먹을 수 있는 구조다.

임대주택 비중을 50%로 설정했으나, 정작 임대료가 저렴해 서민들이 입주 가능한 공공임대주택 비중은 20%밖에 되지 않는다. 나머지 30%는 임대료가 비싼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으로 조합(사업자)이 이윤을 추구할 길을 열어준 셈이다. 국토부는 이를 교묘하게 '공적임대'라는 모호한 용어로 포장해 마치 사업 공공성을 확보한 마냥 홍보하고 있다.

이번 5.6 공급 대책은 '값비싼 주택을 대거 공급하는 대책'으로 요약할 수 있다. 부동산업자들이 떠들어대던 주장들을 상당부분 정부가 수용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송기균 송기균경제연구소장은 "정부가 분양가를 규제하지 않고 민간에 혜택을 주는 것은 집값 안정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김헌동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본부장도 "이번 대책은 정부가 부동산업계를 전폭 지원할 테니 마음껏 사업을 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라며 "가만히 있으면 집값이 떨어지는 국면에서 집값을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또 다시 개발업자 밀어주기에 나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최환석 하나은행 부동산투자자문센터 팀장은 "정부가 주택 7만호 공급을 한다고 했는데, 전체적인 시장 가격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큰 물량은 아니다"라며 "공급으로 아파트 가격을 잡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고 지적했다.
#부동산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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