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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듯이 5.18 기억하고 싶었어요" 청년들의 색다른 기록

[인터뷰] 음식과 음악으로 만나는 5.18... "광주 기억하는 건 우리 세대의 몫"

등록 2020.05.17 20:02수정 2020.05.17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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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기록원에서 황석영 작가가 기록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중심으로 준비된 5.18민주화운동 40주년 특별전시 '넘어넘어 : 진실을 말하는 용기' ⓒ 이희훈

 
오감으로 5.18민주화운동(아래 5.18)을 기록한 청년들이 있다.

방식도 다양하다. 누군가는 음식으로 풀어냈고, 누군가는 음악으로 5.18을 기록했다. 이들이 기록한 5.18은 비통하지도, 비장하지도 않았다. 재해석된 80년 5월의 광주는 보다 밝았고, 보다 부드러웠다. 이전까지의 기성세대 문법과는 분명 차이가 있었다. 

<오마이뉴스>는 14일과 15일에 걸쳐 해당 프로젝트를 진행한 두 팀과 전화 인터뷰를 진행했다. 맛깔나는 음식에 5.18을 접목시킨 <오월식탁> 영상 제작자 김소진(26), 이하영(26)씨(이하 장동콜렉티브 팀). 광주를 대표하는 노래를 오르골에 담아내고 하나의 상징물로 만든 박은현(30)씨다. 

5.18 40주년을 맞아 서울기록원이 18일부터 공개하는 '넘어넘어 : 진실을 말하는 용기' 특별전에서도 이들의 작품이 전시된다. <오마이뉴스>는 두 팀에게 '일견 생소할 수 있는 40년 전 역사를 기록하려는 이유'를 물었다.

[장동콜렉티브 '오월식탁'] "밥 먹듯이 기억할 수 있는 광주의 오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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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콜렉티브 팀이 제작한 '오월식탁' 영상이다. 당시 5.18 현장을 겪은 할머님들과 함께 음식을 만들고, 이야기를 공유하는 콘텐츠다. 이들의 영상은 오는 18일 서울기록원 전시회에서 일부 전시 및 상영된다. ⓒ 강연주

 
"계기요? 소진이(팀원)가 가끔 할머니께서 해주신 음식을 갖다주거든요. 근데 너무 맛있는 거예요. 그래서 소진이 할머니께 요리를 배울까 하다가 광주에서 다양한 할머니를 뵙고 레시피를 기록한 요리책을 만들고 싶다는 얘길 했어요. 그렇게 여러 할머님들을 뵙고 요리법과 이야기를 듣는데 모두 하나의 공통점으로 묶였어요. 80년 5월의 이야기였죠."

달궈진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른다. 데친 두릅을 계란 물에 묻혀서 그 위에 올린다. 여기서 한 가지 팁은 소고기를 길게 썰어 두릅과 함께 부치는 것이다. 얼핏 산적 모양을 닮았다. 장동콜렉티브가 지난해 4월 '오월 식탁' 영상에서 선보였던 서숙자 할머니의 '두릅전' 레시피다. 

장동콜렉티브 영상은 이렇다. 광주 할머님들의 음식 레시피를 듣고, 함께 만든다. 음식을 준비하고 함께 먹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할머니의 일화가 꺼내어진다. 영상 속 서숙자 할머니도 그랬다. 서 할머니는 완성된 두릅전을 앞에 놓고서 그해 5.18의 기억을 어제 일처럼 생생히 풀어놓았다. 장동콜렉티브는 서 할머니 영상을 기억에 남는 영상으로 꼽았다.


"서숙자 할머니께서 말씀해주셨던 일화 중에 당시 시장 재료를 구했던 일화가 인상적이었어요. 워낙 급박했던 상황이었던 만큼, 장 하시는 분이 보자기를 홀딱 펴서 갑자기 저 거리에서 장사를 하신다 해요. 그러면 어머니들이 가서 장을 번갯불마냥 후딱 보시고 돌아오시는 거죠.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그렇게라도 시장 재료를 봐야 했던 거예요. 5.18 당시에도 가족들의 삼시세끼를 챙겨주셨던 건 어머니들 몫이었던 거죠. 부각되지 않았던 어머니들의 노력이 느껴졌달까요? 5.18 속에서 시민들 각자가 지켜온 일상이 크게 와 닿았어요."

장동콜렉티브는 작년에 8편의 오월식탁 영상을 제작했다. 올해에는 신작 두 편이 소개된다. 편수가 늘어난다는 것은, 5.18을 겪으신 할머님들의 개별적인 사연들도 켜켜이 쌓여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동콜렉티브는 "광주의 모든 할머니들을 뵙는 그날까지 계속 아카이빙 작업을 하고 싶다"고 했다. 또, 할머님들의 레시피를 바탕으로 요리책을 내거나 도시락을 만들면서 이 작업을 발전시키고 싶다고 전했다. 레시피와 함께 5.18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은 물론이다. 

도전의 시작도, 앞으로의 목표도 '5.18을 기록하는 것'이라고 했다. 두 청년은 왜 단 한 번도 겪지 않았던 40년 전의 역사를 기록하려는 것일까?

"5.18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세대의 몫이고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역사는 계속해서 기억해야 하는 거니까요. 저희는 5.18의 숭고한 이미지를 알리고 싶어요. 공동체를 지키고 타인을 돌보던 당시 시민들의 모습. 그 속에서 피어난 연민과 타인에 대한 배려들을요. 이건 지금까지도 유효한 가치라고 생각해요. 5.18을 지금 우리의 상황과 연결지어 볼 수 있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고 생각해요."

['광주의 오월' 오르골] 일상 속에서 광주의 오월을 공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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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현씨가 프로젝트를 통해 제작한 '광주의 오월' 오르골이다. 오르골의 태엽을 감으면 여덟마디 정도의 '님을 위한 행진곡'이 흘러나온다. 오르골 상자 주변으로는 5.18민주화운동의 상징물을 조립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사진 박은현씨 제공) ⓒ 박은현

 
"광주에서 유년시절과 학창시절 전부를 거쳤어요. 그런데 학교에서 광주와 관련한 수업을 들을 때마다 아쉬운 점이 있었어요. 이게 지금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를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그게 없는 거죠. 왜 우리가 이걸 기억해야 하는지에 대한 맥락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광주 사람 박은현씨(31). 그가 유년시절에 느낀 5.18은 묵직한 이미지였다. 어린 학생에게 80년 광주의 참상은 가슴을 누를만큼 슬프기도 했고, 때론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는 이 부분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일상에서 부드럽게 광주의 오월을 기억하는 방법'을 생각했다고 한다. '광주의 오월' 오르골 제작의 시작이다. 

"2015년 퇴사를 하고 새 영감을 얻고 싶어서 프랑스 파리로 여행을 갔어요. 거기서 지인들에게 의미있는 선물을 주고 싶어서 오르골 파는 곳으로 갔죠. 그곳에서 파는 오르골은 음악도, 겉 상자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었어요. 이때 오르골에 그 지역의 느낌과 특색을 충분히 담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한국에 돌아온 뒤 광주를 주제로 작업을 시작했어요. 제가 유년시절부터 느껴왔던 생각했던 문제의식을 넣었어요. '친근하게, 부드러운 방식으로 5.18을 전달하자'는 것이었죠."

오르골의 태엽을 감으면 여덟마디 정도의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흘러나온다. 오르골 상자 주변으로는 5.18민주화운동의 상징물을 조립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최후의 격전지인 옛 전남도청, 마지막까지 도청을 지킨 윤상원 열사, 시민들의 마음이 모인 도청 앞 분수대, 5.18 당시 용기 있는 행동을 보여준 택시 기사들, '임을 위한 행진곡' 악보, 그리고 오월 정신과 맞닿아 있는 2017년 촛불집회를 뜻하는 촛불 등 6개의 상징물을 직접 끼울 수 있도록 해놨다. 모든 곳에 박씨의 '계획'이 담겼다.

"제가 가장 중점을 두고 싶었던 건, 5.18을 우리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이었어요. 일상 속에서 계속 접하다보면 역사도 자연스럽게 기억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오르골 디자인을 구성할 때 한 손에 잡히는 크기로 잡았어요. 만일 직장인이라면 회사 책상 옆에 놓는다든지, 학생이라면 공부하는 책상 위에 둔다든지. 일하다가, 공부하다가 지칠 때 한 번 틀어볼 수 있는 형태로 만들고 싶었어요. 자연스러운 일상 속에서, 눈에 보이는 지점에서 5.18과 마주하게 하자는 취지였어요."

음악은 개인의 감정과 취향에 따라 해석의 범위도 광범위하다. 그렇다면 박씨는 자신의 오르골을 접한 사람들이 어떤 것을 느끼길 바랄까? 

"5.18에 대한 관심의 촉매제가 된다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 제 오르골을 보고 단순히 귀엽다는 감정에서, 혹은 오르골에 나오는 노래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해 5.18을 한 번이라도 찾아본다면, 그 자체로도 제 오르골의 존재 이유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미래세대에게 5.18 40주년이란?]

인터뷰 말미에 두 미래세대 팀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다. 답변은 같았다. 

- 광주를 기록하는 청년들에게 5.18 40주년은 어떤 의미인가요?
장동콜렉티브 : "글쎄요. 작년이든 올해든 5월 18일은 매해 돌아오는 것이고, 매순간 기억해야 하는 것이니까요. 그리고 아직도 찾아뵙지 못한 광주 어머님들이 많이 계셔서 (웃음) 올해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있진 않아요. 그래도 올해에는 이전보다 저희에게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셨어요. 저희의 취지와 활동을 말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앞으로도 광주의 모든 할머님들을 뵙는 그날까지 계속 아카이빙 작업을 하고 싶어요."

박은현 : "사실 저도 이게 다른 때보다 더 특별하거나 그렇진 않아요. 광주는 지역 특성상 5.18에 대해 늘상 인식하고 있는 곳이고, 매해 5월마다 그것에 관련한 행사나 기념식이 있어 왔으니까요. 다만 지금의 5월이 이전과 다르게 느껴지는 건 있어요. 제가 오르골 제작 활동을 2015년에 시작했어요. 박근혜 정권 때였는데, 이 활동을 하면서 불안함을 느끼기도 했고, 제작하는 과정에서 전전긍긍해 하기도 했거든요. 그때는 '임을 위한 행진곡' 조차 부르지 못했으니까요. 진보정권 들어오면서 이런 분위기가 달라졌다는 걸 느껴요." 
 
#5.18민주화운동 #광주 #청년 #서울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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