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나라를 흔든, 세계 지도자들의 질병

[서평] 로날트 D. 게르슈테의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등록 2020.05.19 08:02수정 2020.05.19 09:23
0
원고료로 응원
최근 북한의 김정은 사망설이 남한을 강타한 적 있었다. 여기저기서 김정은의 용태가 위중하다는 말이 쏟아져 나왔고, 급기야 사망설까지 돌았다. 미래통합당과 미래한국당의 태영호, 지성호 당선자까지 이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자 김정은 사망설은 걷잡을 수 없게 퍼졌다. 북한 체제가 흔들리고 한반도 정세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김정은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냈다. 지성호 당선자는 더 지켜보자는 입장을 제시했으나 청와대는 태영호, 지성호 당선자의 주장이 무책임하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태영호 당선자는 결국 이에 대해 사과했다.


김정은 사망 해프닝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은 고위 지도자나 정치인의 죽음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가진다. 한 사람의 질병이나 건강이 단순한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안위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질병이바꾼세계의역사 ⓒ 로날트D.게르슈테

 

질병과 지도자의 관계에 착안하여 쓰여진 책이 있다. 바로 로날트 D. 게르슈테의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최고 권력자들과 질병 간의 보이지 않는 전투를 밝혔다.

저자는 의학과 사학을 공부한 경력을 가진 사람이다. 그는 역사적 사안에 대해 언론에 기고해 온 작가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이 가진 독특한 경력을 활용, 과거 발생했지만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던 질병의 종류를 추측하거나 역사적 사건에 끼친 질병의 영향을 탐구한다.

저자는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드로스 대왕부터 소련의 공산당 인사들까지, 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적 인물들이 겪었던 질병에 대해 탐구한다. 저자는 유명한 정치가나 지도자의 질병이 다양한 방법을 통해 국가의 의사결정 체계에 영향을 준다고 본다.

대표적인 예로 소개되는 인사가 바로 영국의 총리였던 앤서니 이든이다. 그는 기품이 넘치는 귀족 출신으로, 전형적인 영국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고 한다. 상류층 집안에서 엘리트로 살아온 그는 최연소 외무장관을 지낸 후 총리에 선출되었다. 누가 봐도 부러워할 탄탄대로를 밟아온 셈이다.


이든이 승승장구하던 시기, 이집트의 나세르 대통령은 수에즈 운하의 국영화를 시도했다. 수에즈 운하와 긴밀한 이해관계를 맺고 있던 영국은 이를 영국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프랑스, 이스라엘과 협의해 이집트를 위협했다. 대영제국의 위세를 지키기 위해 공격적인 방법도 불사할 기세였다.

그런데 이든 총리는 당시 처참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끔찍한 담낭 수술 때문이었다. 그는 참모를 만나는 만큼이나 의사를 자주 만나야 했고, 너무 고통스러워서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을 정도였다. 이든 총리는 약물과 각성제를 자주 사용해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고 한다.
 
나세르가 운하를 국영화한 지 몇 주 지나지 않은 시점에 이든은 일기에 다음과 같이 썼다. "고통스러운 밤이었고 지금도 매우 좋지 않은 상태다. 새벽에 통증 때문에 눈을 떴고, 결국 페티딘을 삼켜야 했다. (중략) 10월 5일, '중재' 계획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그 중대한 수간에 이든은 고열로 쓰러졌다. - 305p.
 
수에즈 사태는 미국이 영국을 압박하면서 영국의 실패로 끝이 났다. 저자는 각성제의 과다 투여는 신경 질환을 자극한다고 보면서, 이든 정도의 경험 많은 정치가가 내린 오판에는 그의 건강 상태가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정치인들의 건강이 체제의 쇠락에 영향을 끼친 경우도 있다. 냉전시기 소련의 지도자 브레즈네프는 말년에 심장과 신경계, 백혈병 질환으로 신음하다 세상을 떠났다. 기이한 점은 브레즈네프만큼이나 건강이 불안했던 이들이 뒤를 이었다는 것이다.

브레즈네프의 후임자 유리 안드로포프는 당뇨와 고혈압 질환을 가지고 있는 노인이었다. 브레즈네프가 죽고 채 2년도 되지 않아 안드로포프도 사망했다. 안드로포프의 후임자 콘스탄틴 체르넨코는 폐기종 때문에 호흡조차 힘든 노인이었고, 역시 약 1년여 만에 사망했다.

저자는 국가 권력이 한 명에게 집중된 나라에서는, 그 한 명에게 건강상의 문제가 발생하면 효율적 통치 체계가 무너지기 때문에, 소련 최고 지도자들의 쇠락은 체제 내부에 존재하는 약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고 본다. 결국 소련은 노쇠한 수장들이 국가를 통치할 경우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뼈저리게 체험하고 말았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체르넨코는 취임 단 13개월만인 1985년 3월 10일, 전임자를 뒤따라 세상과 안녕을 고했다. 당시 미국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은 자신의 절망적 감정을 유감없이 드러냈다. "이렇게 계속 지도자가 죽어나가는데 소련과 대체 무슨 일을 같이 할 수 있겠는가?" - 348P.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건강에 대해 숨긴 수많은 지도자들을 소개한다. 미국의 대통령 케네디, 프랑스의 대통령 퐁피두, 소련의 지도자들 모두 건강 상태에 대해 쉬쉬했다. 책을 닫으면서 저자는 건강을 자랑하는 지도자들에게 교만하지 말 것을 권한다.

지도자의 건강은 오늘날의 코로나 시대에도 중대한 이슈다. 미국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대변인이 코로나 확진자로 밝혀지면서 관료들이 격리에 들어간 일이 있었다.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는 코로나 감염으로 한때 위험한 지경에 이르렀다. 저자의 말대로, 겸손한 태도가 필요한 때다.

질병이 바꾼 세계의 역사 - 인류를 위협한 전염병과 최고 권력자들의 질병에 대한 기록

로날트 D. 게르슈테 (지은이), 강희진 (옮긴이),
미래의창, 2020


#질병 #정치 #건강 #생명 #지도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전화해주실 일 있으신경우에 쪽지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52세 조기퇴직, 파란만장 도전 끝에 정착한 직업
  2. 2 "대통령이 이상하다" '조선일보' 불만 폭발
  3. 3 한국 반도체 주저 앉히려는 미국, 윤 대통령 정신 차려라
  4. 4 "부모님은 조국혁신당 찍는다는데..." 90년대생 스윙보터들의 고민
  5. 5 최은순 '잔고위조' 공범은 말했다 "김건희는 멘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