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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헌법 만든 궁정동 안가에서

[[김삼웅의 인물열전] 박정희를 쏘다, 김재규장군 평전 / 36회] 악명 놓은 유신체제가 붕괴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등록 2020.05.29 17:00수정 2020.05.2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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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전중앙정보부장의 박정희암살 현장검증 장면 ⓒ 나무위키

 
김재규는 결단했다.

더 이상 거사를 미루지 않았다. 운명의 날 10월 26일, 이날은 박 대통령이 충남 서산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에 이어 중앙정보부 소관인 대북송신소 건물 준공식이 열리기로 돼있었다. 중정부장도 당연히 참석해야 하는 자리였으나 차지철 실장의 방해로 참석하지 못하였다.

그래저래 울분이 가시지 않고 있는데, 오후 4시경 차지철의 전화가 왔다. 오늘 저녁 6시 궁정동에서 '대행사'가 열리니, 김 부장도 참석하라는 것이다. 마치 아랫 사람에게 지시하듯 말투였다. '대행사'는 대통령과 비서실장ㆍ경호실장ㆍ정보부장 등이 '술 시중'을 드는 젊은 여성들과 함께, '소행사'는 앞의 3인만이 식사하는 행사를 일컫는다. 사흘에 한 번 꼴로 대ㆍ소행사가 번갈아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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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10월 26일 삽교호 방조제 준공식에 참석한 박정희 전 대통령. 1979년 10월 26일 삽교호 방조제 준공식에 참석한 박정희 전 대통령. ⓒ 박대통령인터넷기념관

 
중정부장의 관저가 있고 중정이 관리하는 청와대 인근의 궁정동 안가는 유신헌법을 만들 때 한태연ㆍ갈봉근 교수와 김기춘 검사 등이 비밀리에 모여 작업했던 곳이고, 소행사와 대행사가 자주 열리는, 유신세력에게는 유서 깊은 이곳에서, 10ㆍ26 대행사가 열리기로, 차지철로부터 '대행사'에 참석하라는 전화를 받은 김재규는 이날을 거사일로 작심하고,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과 김정섭 중앙정보부 2차장을 별도로 식사를 하자면서 불렀다. 그리고 박흥주ㆍ박선호 등 측근들에게 암시했다.

만찬장인 6평 가량의 온돌방에는 직사각형 식탁이 놓여졌다. 식탁 밑은 50㎝ 정도 패어 있어 방바닥에 앉아서도 발을 아래로 내려 뻗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식탁에는 이미 부침ㆍ송이구이ㆍ생채ㆍ편육 등이 조촐하게 차려져 있었고 선(SUN) 담배 두 갑과 양주 시바스 리갈 2병이 준비되었다.

박대통령이 먼저 십장생도 8폭 병풍 앞 등받이 의자에 앉자 맞은 편에 김실장과 김부장이 박대통령 쪽에서 볼 때 좌우로 앉았고 차실장은 김부장의 왼쪽 모서리 측에 다소 비껴 자리를 잡았다.(주석 12)


술판이 시작되고 신민당 문제가 화제로 올랐다. 차지철이 중앙정보부의 무능으로 야당과 학생들이 날뛴다고 말하자 박정희가 "정보부가 좀 무서워야지, 비행조서만 쥐고 있으면 뭘 해. 부장이 저래서 정보부가 약하다는 소리를 듣지"라고 차지철의 발언을 감싸면서 김재규를 질책하였다. 김계원 실장이 화제를 돌리려고 애를 쓸 때 여자 2명이 들어왔다.

박대통령은 오른쪽에 앉은 신양(당시 한양대 연극영화과 3년)을 바라보며 "예쁘게 생겼군. 이름이 뭐지, 나이는?"이라고 묻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등 노여움을 푸는 모습이었다. 이어 다시 왼쪽에 앉은 가수 심양에게 "본(本)이 어디지?"라고 묻고는 "며칠 전 작고한 총무처장관(심의환 씨ㆍ22일 사망)과 본이 같군." 하고 말했다. '그때 그 사람'이란 히트곡으로 인기절정에 있던 심양은 그전에도 대연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고 이날도 박대통령이 대령시키라고 특별히 지시할 정도였다.

기분이 다소 좋아진 박대통령은 계속 술잔을 비웠고 빈 술잔을 주로 김실장에게 주었다. 김부장과 차실장은 형식적으로 술잔을 홀짝거리고 있을 뿐이었다.(주석 13)


김재규는 곧바로 50여m 떨어진 본관 자신의 집무실로 갔다. 2층 식당에서 식사중인 정승화 참모총장과 김정섭 중정 제2차장보에게 들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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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궁정동 총격사건과 관련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그의 부하들이 군사법정에 섰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궁정동 총격사건과 관련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그의 부하들이 군사법정에 섰다. ⓒ 보도사진연감

 
"조금만  기다려 달라. 각하께서 갑자기 만찬에 참석하라 해서 조금 늦어지겠다. 곧 올 테니 먼저 식사하고 있어라"고 말한 뒤 옆방인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낮에 꺼내두었던 웰터 권총을 집어들었다. 다시 한 번 점검했다. 서독제 7연발 권총은 여전히 '이상 무'를 알려주고 있었다. 바지 오른쪽 라이터 주머니에 권총을 꽂았다. 김재규는 평소 라이터 주머니를 개조해 권총을 집어넣을 수 있도록 해 두고 있었다.

집무실을 나서자 대기실에 있던 박흥주가 뒤를 따랐다. 건물 뒤켠을 돌아오다 박선호를 만났다. "둘 다 이리 모여." 김재규는 충직스런 두 부하를 불러세웠다.

"시국이 몹시 위태하다. 나라가 잘못되면 우리 모두 죽는다. 오늘 내가 해치우겠으니 방에서 총소리가 나면 너희들은 경호원을 처치해야 한다. 불응하면 사살해도 좋다. 각오는 되어 있겠지."

김재규는 놀라는 부하에게 권총이 든 호주머니를 툭 쳐 보인 뒤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여기 참모총장과 제2차장보도 와 있어."(주석 14)


김재규는 차지철과 박정희를 차례로 쏘았고, 총소리를 신호로 박흥주와 박선호가 달려드는 경호원 3명에게 발사했다. 이렇게 하여 박정희는 중정부장이 쏜 두 발의 웰터 권총탄에 맞아 숨지고, 악명 놓은 유신체제가 붕괴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주석
12> 정병진, 앞의 책, 35~36쪽.
13> 앞의 책, 37쪽.
14> 앞의 책, 43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박정희를 쏘다, 김재규장군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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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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