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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는 우리의 위로와 자부였다

1988년 5월 15일 창간 후 32년 만에 1만 호 발행... '그래 한겨레'를 기대한다

등록 2020.05.19 10:00수정 2020.05.19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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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1만호. 표지를 통편집하여 그간 주요 지면을 소개하고, 안에는 독자와 주주 메시지를 싣고 있다. ⓒ 장호철

    
18일 배달된 <한겨레>는 지령 1만 호였다. 1988년 5월 15일,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모토로 창간된 지 햇수로 32년, 날짜로는 1만1692일 만에 <한겨레>가 1만 호를 독자에게 선보인 것이다. 며칠 전부터 1만 호를 예고하고 있었지만 현관 앞에 배달된 신문을 집어 드는 순간, 32년 전 창간호를 받던 순간의 기억이 등불처럼 켜졌다. 
  
창간 주주로 참여한 <한겨레>, 지령 1만 호

<한겨레>의 창간은 1970년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의 자유언론실천운동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자유언론실천운동은 정권에 굴복한 사주에 의해 기자들의 대량 해고로 치달았고, 축출된 기자들은 '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결성하여 자유언론운동과 민주화운동을 이어갔다.

해직 기자들이 해직언론인협회(1980)에 이어 조직한 민주언론운동협의회(1984)는 기관지로 <말>을 창간했고, 87년 6월항쟁 뒤 이들을 주축으로 자유 언론에 대한 민중들의 열망을 모아 창간된 매체가 <한겨레신문>이다.

<한겨레>가 '한글 전용'과 '가로쓰기' 체제로 신문 시장에 진입하기 넉 달 전인 그해 1월, 나는 학교에 사표를 던지고 <한겨레> 창간 운동에 참여하고 있던 친구를 교통사고로 잃었다. 단순히 '절친'이라는 이름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친구였는데, 내가 쌓은 한 세계가 무너지는 듯한 상실감으로 나는 그를 보냈다. 

그 전 해에 나는 당시 근무하고 있던 학교의 동료들을 대상으로 <한겨레> 창간 모금 운동을 벌여 170여만 원을 거두었다. 그때의 동료들은 아마 새 신문에 대한 기대도 기대지만 젊은 동료의 간곡한 부탁을 뿌리치지 못하고 3만 원에서 20만 원까지 힘을 보탠 게 아닌가 싶다. 

정작 모금을 주도해 놓고도 나는 당시 형편이 넉넉지 않아 5만 원밖에 내지 못했고, 1990년을 전후해 벌어진 추가 모금 역시 수입이 없던 해직 시기여서 참여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후 20여 년 동안 나는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한겨레> 주주총회에 위임장을 보내는 거로 10주를 보유한 소액주주의 의무를 다했다. 
 

<한겨레> 창간 때 주주가 받은 메달의 앞뒷면 ⓒ 장호철



2005년에 진행된 <한겨레> 제2 창간 운동에 나는 두 아이 이름으로 각각 5만 원씩 발전기금을 냈다. 이후 아이들도 소액주주로 제 이름을 올렸다. 아이들은 한겨레를 읽으며 한글을 익혔고, <한겨레21>, <씨네21>을 읽으며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학교에서 따로 실천적 민주주의를 배우지 못한 내 아이들은 결국 <한겨레>를 통하여 세상을 보고 읽는 눈을 기른 셈이다.

1970년대 긴급조치를 통해 국민의 입과 귀를 막았던 독재 권력에 맞선 <동아일보> 기자들의 자유 언론 투쟁은 비록 소수였고 권력과 자본의 철퇴 아래 쓰러졌지만, 대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았다. '한때 동아일보 보는 재미로 살았다'라고 하는 리영희 선생의 술회가 가진 울림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언론이 민중과 소통하던 시대의 '신화'로 남아 있다.

그러나 한때 언론 자유의 표상이었던 그 신문은 일찌감치 그것과 결별하고 권력·자본과 화해했다. 1980년대 이후 이들 주류 보수언론은 자신들의 역할을 <한겨레>에 내어주고 여론과 권력마저 바꿀 수 있는 언론 권력의 힘을 행사하기에만 바쁠 뿐이다. 

삶과 세계에 대한 진보적 전망 32년

국민 모금으로 힘겹게 창간했지만 <한겨레>는 기존 보수 일색의 이른바 조·중·동 등 주류 언론과는 차별성을 드러내며 개혁 진보 시민을 독자로 맞아들였다. 독자들은 무엇보다 주류언론에 몸담은 기자들과 비교할 수 없는 보수를 받으면서도 삶과 사회, 세계에 대한 진보적 전망을 잃지 않는 기자들의 시각을 신뢰했다. 

<한겨레>에 대한 독자들의 신뢰는 오늘 우리의 곡진한 삶을 딛고 선 실천적 지평과 맞닿아 있다. 이른바 양비·양시론의 보수언론과 명백히 구별되는 한겨레의 자세(stance)는 '지금 그리고 여기'의 문제를 정면으로 바라보며, 그것이 과연 옳으며 정당한가를 묻고 있다.
  
<한겨레>는 지난 32년 동안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와 통일의 가치를 성찰하고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을 지키는 정론 직필로 일관해 왔다. <한겨레> 편집국은 '1989년 서경원 평화민주당 의원 방북 관련 취재'로 언론사상 최초로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의 압수수색을 받았다. 2008년 1월에는 '삼성 비자금 관련 특검'의 수사 속보를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고, 이로 인해 삼성의 '광고 통제'라는 언론 탄압에 직면하기도 했다.   

<한겨레>는 이미 권력화한 자본의 도전 앞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극우 보수언론만이 아니라, 주류언론을 능가하는 매체로 등장한 인터넷 언론과도 경쟁하여야 하는 그는 고단하기 그지없다. 때로 <한겨레>가 표방하는 '공정'이 진보 독자들의 날 선 비판의 표적이 될 때도 나는 그것을 <한겨레>가 제도권의 진보언론으로서 지켜야 하는 책임과 태도라고 이해하곤 했다. 

<한겨레>가 취하는 이념적 스탠스에 대한 시비나 비판이 갖는 사회적·정치적 함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제호만 다를 뿐 똑같은 정치적 입장의 수사적 차별만으로 존재해 온 보수 일간지의 반대편에 <한겨레>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 존재 의미는 특별하다. 반통일적 냉전 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확대재생산 하는 보수언론이 있는 한, 그들이 여론을 독과점하고 있는 한, 그가 선 자리의 의미는 도드라져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회의 마이너리티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그것들의 현재적 의미를 끊임없이 되묻는 <한겨레>의 궁극적 지향점은 우리 사회의 진보진영에서 추구하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한겨레>가 가진 여러 한계에도 그에 대한 애정을 거둘 수 없는 이유는 전적으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때때로 불거지는 <한겨레>에 대한 진보진영이나 독자들의 지적과 비판은 대체로 옳다. 비판은 대체로 <한겨레>가 자신의 등록상표로 내세워온 진보성을 잃어버렸다거나, 지면의 차별성을 찾을 수 없다거나, 일정한 우편향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 등이다. 

이에 대해서 '매체 환경의 변화'나 무한경쟁의 시장에서의 생존의 문제, 후발 신문으로서의 <한겨레>의 한계 따위를 내세우는 정상참작론 같은 온정주의적 시각으로 그를 변호하는 것도 그리 온당해 보이지는 않는다. 
  
여러 비판에도 <한겨레>는 오랫동안 비 구독자를 포함한 대중, 전문가 집단으로부터 가장 공정한 신문으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최근 이러한 평가가 흔들리고 있음은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래 여당 지지층의 외면이 <한겨레>를 비롯한 진보 성향 일간지에 이르고 있는 점도 간과할 일이 아니다. 
 

<한겨레> 1면들. 왼쪽부터 창간호(1989.5.15.) 2007년 10월 30일 자, 2018년 4월 28일 자 1면. ⓒ 한겨레

  
종이신문의 불안한 미래에도 <한겨레> 목표는 '매일'

종이 신문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는 세상에서 그 갈 길을 고민하는 <한겨레>를 지켜보는 독자의 마음도 편하지만은 않다. 스마트폰에서 뉴스를 읽고 사회를 진단하는 세상에서 굳이 종이 신문 읽기를 이야기하는 것은 일종의 시대 지체 같아 보이기도 하니 말이다. 

매일 <한겨레>가 배달되지만, 그걸 읽기보다 스마트폰으로 뉴스 보기가 일상이 된 시대다. 굳이 종이 신문을 계속 구독해야 하느냐는 아내의 항변에 침묵하면서도 나는 새벽이면 현관문을 열고 <한겨레>를 집어 들인다.

종이 신문의 미래가 아무리 비관적이라고 한들, 한때 지역에서 <한겨레>를 받을 수 없어 이웃 시군에서 우편으로 배달되는 하루 늦은 신문을 허겁지겁 읽던 시절의 갈증을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겨레> 1만 호는 "1만일의 역사를 쓴 <한겨레>의 목표는 2만일이 아닌 '매일'"이라고 쓰고 있다. 또 "'그나마 한겨레'보다 '그래 한겨레'라는 칭찬을 들을 수 있도록 겸손한 언론이 되어 '오직 진실'을 쓰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한겨레>를 우리 사회의 건강하고 올바른 의제와 여론의 선도자로 견인해야 할 역할과 책임은 그 구성원뿐 아니라 모든 독자에게 부여된 책무일지 모른다. 오늘도 나는 현관문을 열고 <한겨레>1만1호를 집어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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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 기사 포함, 모두 1천여 편의 글을 썼다. 2019년 5월, 블로그 '이 풍진 세상에'에 연재한 '친일문학 이야기'를 단행본 <부역자들, 친일문인의 민낯>(인문서원)으로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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