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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먹고 노는 사람이 아니다"... 코로나19 위기 속 전업주부

[해고·돌봄 0순위, 재난 속 여성노동자 ⑥] 돌봄시간 늘어나고, 우울감은 커져

등록 2020.05.22 18:22수정 2020.05.26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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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발생한 코로나19로 인해 한국사회는 유례없는 재난을 마주했다. 일상의 회복을 향한 갖가지 노력과 정부대책이 세워졌으나, 여성노동이 저평가 되고 있던 사회에서 재난을 마주한 여성노동자는 해고 1순위에 처하고, 정당한 가치 인정 없이 가정과 사회에서 요구되는 돌봄노동을 모두 떠안고 있는 상황이다.

2020년 제4회 '임금차별타파의 날'을 맞아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동조합은 여성노동자들의 현실과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채 재난위기 대책이 논의 되고 있는 것에 문제제기 한다. 코로나19를 마주한 여성노동자들이 일터와 삶터에서 어떻게 살아나가고 있는지 <해고·돌봄 0순위, 재난 속 여성노동자>기획을 세워 총 13개의 글을 오마이뉴스에 기고해 여성의 현장 상황을 알리고자 한다.[편집자말]
[이전 기사: '멀티 플레이어' 돌봄전담사는 왜 정규직이 아니란 말인가?]

코로나19로 인해 노동자, 자영업자 할 것 없이 탄식이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지금, 모두의 관심에서 소외된 채 코로나19 위기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바로 전업주부들이다.

통계청은 2014년 '가계 생산 위성계정 개발 결과(무급 가사노동 가치 평가)'를 통해 무급 가사노동의 시급 환산가치를 1만 569원으로 그 경제적 가치를 발표했는데 당시 최저시급이 5210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현재는 더 높아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늘어난 노동 시간

최근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주부들의 가사노동 시간은 더 늘어났다. 광주여성노동자회는 4월 마지막 주 7일간 「코로나19로 인한 여러분의 삶, 얼마나 변화 되었습니까?」 라는 주제로 20명의 전업주부에게 현 상황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이를 통해 코로나19가 전업주부의 생활 전반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광주의 경우, 2월 27일 기준 관내 4741곳의 학원 가운데 46.2%인 2192곳이, 전남은 3378곳의 학원 가운데 56.87%인 1921곳이 휴원 했다. 학교 돌봄 교실에는 아이들이 정원을 초과해 마스크를 씌워도 불안감을 떨칠 수 없어 전업주부들은 아이들을 보내지 않고 가정에서 돌보는 편을 택하고 있다.

"학교가 개학을 미루고 ebs 방송이나 숙제 등으로 수업을 대체해 버려서 하루 종일 아이들과 씨름해야 한다. 한창 활동 많을 시기에 집에 있어야 하는 아이들도 답답하겠지만 아이들이 집에 있으니 청소를 해도 끝이 없더라"라고 전업주부들은 말한다. 더군다나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들이 생겨나면서 "배우자가 집에 있으니 삼시 세 끼 밥을 챙겨줘야 하고 이것저것 살림에 대해 잔소리를 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아이들도 모자라 배우자까지 케어를 해야 하니 손이 많이 가더라"하는 게 이들의 현실이다.
 

삶에서 필수적인 가사, 돌봄노동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으로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 코로나19라는 재난상황과 맞물렸다. 아무일도 안하는 사람으로 취급받지만 사회적 돌봄체계가 무너지자 이를 전업주부의 가사,돌봄 노동시간이 급격히 증가했다. (사진무관) ⓒ 픽사베이

 
전업주부의 가사노동은 끝이 없다. 하루 종일 쓸고 닦아도 티도 나지 않으며, 가사노동은 가족 부양을 위해 꼭 필요한 일임에도 노동으로 인정조차 받지 못한다. 전업주부는 '집에서 노는 사람', '아무 일도 안 하는 사람'으로 취급받지만 여성에게 집은 노동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평생 직장이며, 보수도 없고, 상시 대기해야 하는 업무의 연속이다. 더구나 코로나19이후 그들의 돌봄이 대부분 하루 7-8시간 더 늘어났다는 설문의 결과는 주목할 만하다.


폄하당하는 노동... '고립감'도 느껴

6세, 9세 두 아이와 하루를 같이 한다는 A씨는 이렇게 말한다.

"여자는 임신과 결혼을 하면 직장생활이 힘들어지고 아이를 여자가 더 많이 돌봐야 하는 현실에 좌절해요. 임신과 육아 때문에 일을 그만뒀지만 아이를 돌봐 줄 사람만 있다면 언제라도 일하러 나가고 싶죠. 우리집 남자는 집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사회생활의 스트레스가 다르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요. 집에서 노는 사람이 스트레스 받을 게 뭐 있냐든가, 애는 알아서 잘 노는구만 뭐 그렇게 하는 게 많다고 힘들다고 징징대냐고까지 하더라구요. 요즘 같아서는 애 볼 바에 밖에 나가서 일을 하고 말지 하는 말이 목까지 차오르는 걸 알까 몰라요."

40대 주부 B씨는 남편이 가사를 습관적으로 폄하한다며 "집안일은 아무리 해도 티가 안 나는데 하루라도 안 하면 티가 확 나잖아요. 남편이 퇴근하고 들어오면 '집 좀 치우지' 하는데 치우니까 이 정도라는 걸 몰라요. 코로나19가 사그라들면 아이들과 좋은 거 보고 좋은 데도 가고 싶어요" 라고 말한다.

또 다른 전업주부인 C씨는 우울감과 답답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평소에는 아이들이 어린이집 가면 주위 사람들과 차 한 잔 마시는 게 그나마 나를 위한 시간이었는데 코로나로 인해 요즘은 그 시간마저도 없어요. 하루 종일 24시간 애들 뒤치다꺼리에 밥해야지, 청소해야지, 빨래해야지. 일이 몇 배로 많아져서 어쩔 땐 집에 묶여있는 지박령 같고, 안 그래도 사람을 만나는 일도 적은데 갇혀있고 고립된 느낌이에요."
 

이들의 고충은 이게 끝이 아니다. 가족들이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식비며, 생활비며 지출이 늘어났지만 무급휴직, 단축근무, 상권쇠락 등의 여파로 가정의 수입은 줄어든다는 답변들도 많았다. 임신 혹은 출산, 돌봄만 아니면 밖에 나가서 경제활동을 하고 싶다고 그들은 답했다. 지출은 평균 40만원 정도 증가했는데 수입은 평균 70만원 줄었기 때문에 실상 소득보다 지출이 더 많아 가계 경제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게 그 이유였다.

여성들이 원하는 것은 '질 낮은 일자리' 아냐
 

2020 제4회 임금차별타파의 날 피켓사진. 해고, 돌봄 0순위라는 상황에 처한 여성노동자들에게 질낮은 일자리와 독박가사/돌봄노동이 전가되어선 안된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시간제 일자리라도 하고 싶은데 코로나19로 인해 구직하는 게 쉽지 않아요. 육아휴직이 여의치 않아서 일을 그만두면서 경력이 단절됐고, 일과 돌봄을 병행할 수 있는 시간대 일자리를 찾는 것도 어렵고요."

설문에 참여한 전원이 경제활동을 하고 싶다고 답했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건 낮은 임금, 불안정한 고용, 15시간 미만의 경우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시간제 일자리가 아니다. 안정적이고 질 높은 전일제 일자리를 원하지만, 육아와 가사 등 돌봄 노동을 여성에게만 책임지게 하는 현실에서 생계비마저 벌어야 하는 여성에게 시간제 일자리는 '생계비' 해결을 위해 강요된 질 낮은 일자리일 뿐이다.

이런 고충 때문인지 우리나라 여성은 우울증과 화병, 소진 증후군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많다. 항상 내 힘에 벅찰 정도로 많은 일을 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혼란스럽다. 자신의 존재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정신적 패배감과 극도의 우울을 경험한다. 하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돈을 얼마나 버느냐'로 사람을 평가하고 전업주부가 경제활동의 주체가 아니라는 이유로 철저히 배제하고 관심을 두지 않는다.

주부들의 가사·돌봄에 대한 노동은 제대로 평가받아 경제영역에 포함되어야 한다.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확산으로 교육시설이나 보육시설이 임시 폐쇄될 경우 부모들의 유급휴가를 보장해야 한다. 가사·돌봄은 당연히 여성의 몫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개선해야 하고 이것이 국가와 사회의 책임임을 명시하고 법안 마련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 [상담] 코로나19 관련 여성 노동상담 : 여성노동자회 평등의전화 tel.1670-1611(전국공통) / 전국여성노동조합 상담전화 tel. 1644-1884(전국공통)
* [참여] '코로나19가 여성의 임금노동과 가족 내 돌봄노동에 미친 영향' 설문조사 : https://bit.ly/2020womenworker

 
#코로나19와 여성노동자 #전업주부 #가사노동 #돌봄노동 #임금차별타파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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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을 통해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운동을 하는 여성노동운동 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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