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광주의 이야기와 남은 우리들의 이야기

소설 '소년이 온다'와 '그럼 무얼 부르지'

등록 2020.05.20 17:07수정 2020.05.20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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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5·18 민주화운동이 40주년 되는 해다. 1980년 오월의 광주 이야기는 그간 다큐멘터리로 영화로 많이 다루어졌는데, 소설 중에도 광주 이야기를 다룬 것들이 있다. 꼭 읽어보면 좋을 소설로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와 박솔뫼 작가의 <그럼 무얼 부르지>를 소개하고 싶다.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
 

한강 지음 '소년이 온다' 책 표지 ⓒ 창비


<소년이 온다>는 1980년 광주에서 있었던 참혹했던 열흘간 시위 현장에 섰던 사람들, 다치거나 죽은 사람들을 도와주고 수습하던 사람들, 계엄군이 쳐들어 올 것을 알면서 끝까지 도청에 남았던 사람들의 시선으로 그려냈다. 그곳에서 군인들이 드러냈던 잔혹함은 한강 작가 특유의 차분한 문체로 묘사된다.


"비가 올 것 같아. 너는 소리 내어 중얼거린다. ...(중략)... 너는 눈을 가늘게 뜨고 도청 앞 은행나무들을 지켜본다"로 시작하는 소설은, 시위의 현장에서 친구 정대를 잃어 버리고, 정대를 찾아 시체들을 모아놓은 상무관까지 왔다가 그 곳에 남아 일을 돕게 되는 중학생 '동호'의 이야기에서 출발한다.

작가가 동호를 '너'로 지칭하는 바람에, 읽는 우리들 각자는 도리없이 '동호'가 되어 동호의 눈으로 그곳의 일들을 경험해 내고 만다. 동호를 따라 중얼거리고, 도청 앞 나무들을 그려본다. 나란히 누워있는 수없이 많이 시신들과 그 위로 보이는 저마다 조금씩 다른 상처들과 총상들, 시간이 감에 따라 죽어버린 살점들의 색이 변하고 물러지는 광경을 동호와 함께 보고, 그 냄새를 같이 맡게 된다. 그러다가는 동호가 묻는 질문도 우리의 것이 된다.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중략)...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곁에 선 은숙 누나의 대답이 우리의 귓가를 스친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중략)...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오늘 밤 계엄군이 쳐들어 온다는 사실을 알고, 남겠다는 사람들, 너는 집으로 돌아가라는 말들이 오간다. 동호는, 아니, 우리는 묻는다.

"오늘 남는 사람들은 정말 다 죽어요? ...(중략)... 죽을 거 같으면, 도청을 비우고 다 같이 피해버리면 되잖아요. 왜 누군 가고 누군 남아요."

왜 다 같이 피하지 못했을까. 왜 그러지 않았을까. 다 같이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남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쓰러져 가던 그날, 동호도 죽었다.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중략)...
내 모든 따뜻한 피를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

흔히 한강 작가를 '예민한 감수성'이라고 표현을 한다. 그 말은, 작가 자신의 감수성이 섬세하고 예민할 뿐 아니라 그걸 읽는 이들에게 온전히 전염시킬 수 있는 능력까지도 표현하는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에는 살아남은 사람의 이야기도 있다. 다친 시민군들을 살리기 위해 헌혈을 하고, 동호가 일을 돕던 상무관에서 함께 일을 하고, 도청에서의 마지막 밤에도 함께 하다가 마지막에 몸을 피했던 은숙 누나의 이야기.

이번에는 작가가 '그녀'로 지칭해 이야기를 풀어가는데, 마치 우리가 온전히 제3자로서 은숙의 이야기를 보고 그날 밤 살아남았던 사람들에게 남은 생을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생각해보게 하려는 듯하다.

"처음부터 살아남으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동호야. ...(중략)...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

살아남은 것이 상처가 된 사람의 이야기. 그들이 살아있는 한은 그날의 광주와 그들의 눈에 담긴 쓰러져 갔던 사람들은 여전히 그들 안에 살아있는 이야기다. 그러니, 그들의 삶 자체가 그 넋들을 위한 추모제일지도 모르겠다.

박솔뫼 작가의 소설 <그럼 무얼 부르지>
 

박솔뫼 지음 '그럼 무얼 부르지' ⓒ 자음과모음(이룸)

 
한강의 소설이 광주의 그날에 대한 세밀화라면, 박솔뫼 작가의 소설 <그럼 무얼 부르지>는 광주의 그날 이후에 태어난 세대가 그날을 바라볼 때면 얽혀 밀려오는 어지러운 마음을 그린 크로키 같다.

소설은, 샌프란시스코를 여행하던 '내'가 우연히 인근에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학생들의 모임에 들르게 되었던 이야기로 시작한다. 나는 그곳에서 그날의 발표를 맡은 '해나'라는 사람이 May, 18th, 5.18을 이야기하는 것을 듣게 되는데, 해나의 설명을 듣으면서 나는 놀라게 된다.

그런 모임에서, 내가 태어난 광주의 이야기를 할 줄 몰랐기도 했지만, 그곳에서 듣는 이 이야기는 "마치 아일랜드의 피의 일요일이라거나 칠레의 피노체트가 저지른 일과 억압받았던 그곳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명백하고 비교적 의문의 여지가 없는 일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해나는 내게 일종의 충격이다. "누군가 광주가 어디 있지? 하고 물었을때 광주의 위치를 정확히" 짚을 수 있는 사람이었고, massacre, 학살이라고 그날의 광주가 설명된 자료를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이었다. 반면에, 30년 전에 광주에서 태어나 살아온 나는 "그런 명확한 세계"에 살고 있지 않았다.

"마치 아주 복잡한 지도를 보고 있는 것처럼 거기는 어디지? 하고 들여다보아야만 했는데 그렇다고 무언가가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들여다보는 사람이었으므로 당사자는 아니며 또한 명확한 세계의 시민도 아니었다. 내 앞에는 장막이 있고 나는 장막을 걷을 수 없으므로."

해나와 비슷한 사람을, 나는 그 이후, 교토를 여행하던 중에 만난다. 우연히 어느 바에서 만난 은발의 남자는 내가 태어난 도시 광주를 알고 있다고 했다. 

"거기 어딘지 알아."
"정말?"
"내 친구는 '코슈 시티'라는 노래도 만들었어. 이렇게 쓰는 거지?"

내가 어떤 노래냐고 물었을 때, 그는 군인들이 이 도시로 와 사람들을 많이 죽인 것에 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나는 또 묻는다.

"어떻게 다 알아요?"
"뭐를?"
"광주에서 사람들이 죽은 거요. 거기에 사람들이 있었던 거요."
"다 알지."

명료한 세계. 다만, 나는 그곳에 없었다. 왜지? 묻게 된다.

이 소설은 80년대 이후 광주의 그날 이후에 태어난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말 있었는데, 정말 있었나, 묻게 되는 이야기. 아일랜드의 피의 일요일이나 칠레의 피노체트가 저지른 일은 왜 명료하고, 그날의 광주는 그렇지 못했나. 왜 그 일은 <슈피겔>의 사진들, <타임즈>의 이야기, <뉴스위크>의 기사 속에서만 명료한가.

내가 3년 후, 해나를 다시 만나 함께 광주를 걷던 날은 '그 노래'가 서울에 있는 광장에서 부를 수 없게 된 때였다. 

"왜인지 납득이 가지 않는 이유로 부를 수 없게 되었고 그 때문에 노래를 부르고 싶은 사람들을 구차하게 만들었다. 왜 부르면 안 되나? 부르게 하라 이런 질문과 발언의 과정을 거치게 했으므로 결론적으로 모멸감을 느끼게 했다."

책을 덮고 생각해 본다. 그럼 우리는 무얼 부르나? 명료한 세계에서 밀려나 장막 너머로 우리의 이야기를 알게 된 세대에게 누군가 어떤 노래를 불러서는 안 된다고 했었다. 그래서 우리는 생각해봐야 했다. 왜 부르지 못하게 하지? 그럼 무얼 부르지? 그래도 계속 불러야 하나? 아니면 다른 무엇을 부르지?

소년이 온다 (특별한정판, 양장)

한강 (지은이),
창비, 2020


그럼 무얼 부르지

박솔뫼 (지은이),
자음과모음(이룸), 2014


#5·18 민주화운동 #소년이 온다 #한강 #그럼 무얼 부르지 #박솔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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