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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노동권' 이런 얘기 못 해... 우리 요양보호사 '물티슈' 같다"

[해고·돌봄 0순위, 재난 속 여성노동자 ⑧]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돌봄 노동'

등록 2020.05.26 18:15수정 2020.05.26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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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발생한 코로나19로 인해 한국사회는 유례없는 재난을 마주했다. 일상의 회복을 향한 갖가지 노력과 정부대책이 세워졌으나, 여성노동이 저평가 되고 있던 사회에서 재난을 마주한 여성노동자는 해고 1순위에 처하고, 정당한 가치 인정 없이 가정과 사회에서 요구되는 돌봄노동을 모두 떠안고 있는 상황이다.

2020년 제4회 '임금차별타파의 날'을 맞아 한국여성노동자회와 전국여성노동조합은 여성노동자들의 현실과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은 채 재난위기 대책이 논의 되고 있는 것에 문제제기 한다. 코로나19를 마주한 여성노동자들이 일터와 삶터에서 어떻게 살아나가고 있는지 <해고·돌봄 0순위, 재난 속 여성노동자>기획을 세워 총 13개의 글을 오마이뉴스에 기고해 여성의 현장 상황을 알리고자 한다.[편집자말]
[이전 기사: 강제로 쉬거나, 수도꼭지도 못 만져... 가정관리사의 고충]

평상시 같으면 매일 아침 종종걸음을 하며 장기요양 이용자 가정을 방문해 어르신 돌봄 서비스를 해야 할 시간에 요양보호사 김순희(가명)씨는 일자리를 찾아다니고 있다. 인천에서 만난 김순희씨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면 늦은 나이까지 일을 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재가센터에서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3월 초에 일자리를 잃고 말았다. 이용자 가족이 코로나19 감염위험으로부터 이용자를 보호하기 위해 당분간 가족 돌봄을 하기로 결정했다며 오지 말라고 했다.

요즘 이용자 가족들은 대부분 코로나19로 인해 외부인이 집에 오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순희씨는 그동안 아이들도 학교를 가지 않고 있으니 1~2주간 휴직을 하면서 기다리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재가요양센터 담당자에게 이용자 가족의 요구와 잠시 휴직의사를 밝혔더니 그러면 아예 나오지 말라고 했다. 그날부터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건강보험공단에서 요양보호를 받을 수 있는 신규 급여판정을 중지하면서 요양보호사로 일을 찾기란 더욱 어렵게 되었다. 이러한 사정은 돌봄노동자의 상담 사례에서도 나타나듯이 김순희씨만 겪는 일은 아니다.

보호받지 못하는 요앙보호사들

"이용자가 오지 말라고 하면 그날부터 무급휴가를 쓰거나 무급휴직을 해야 해요. 당연히 임금은 못 받죠. 언제 다시 일을 시작 할지 몰라 불안하죠."
"2월에 대구를 방문해서 2주간 자가 격리 했는데 연차로 대체하라고 했어요. 검사비도 개인부담으로 했고요. 다행히 음성 판정이 나왔어요."
"69세로 요양센터에서 2년 동안 일을 했는데 코로나19로 어르신이 줄어 원장이 어렵다고 부탁해서 권고사직을 받아들었어요. 실업급여를 받을 줄 알았는데 못 받는데요. 65세 이후에 취업을 해서 실업급여 대상이 아니라고 해요."

 

요양보호사 김순희(가명)씨가 노인 돌봄노동을 하고있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요양보호사들은 코로나19 위기에서 이렇게 일자리에서 쫓겨날 뿐 아니라 설사 운 좋게 계속 일을 한다고 해도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하며 일하고 있다. 재가 방문 시 잠재적 감염자인 양 이용자 눈치를 봐야하며, 마스크와 장갑을 끼고 최대한 접촉을 피해가며 일한다. 더군다나 감염예방 물품 등은 센터에서 지급해주지 않고 알아서 구해야 하는 형편이다. 

시설에 근무하는 경우 퇴근 후에도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모든 일과를 적어 시설에 보고해야만 했다. 어르신이 감염되지 않게 체온계, 마스크를 요양보호사가 직접 구입해서 사전예방을 해야 한다고 제공기관에서 압력을 넣은 사례도 많다. 정부나 제공기관의 감염예방에 대한 제도적 지원 없이 모든 책임을 요양보호사에게 떠넘기면서 심리적으로 큰 부담이 됐다.

인천시에서 요양보호사 한 명당 1개씩 마스크 8천~9천개를 지원한다고 했다. 대상은 요양시설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였다. 이동이 많아 감염위험이 상대적으로 높은 재가 요양보호사 4만2천여명은 제외되었다. 요양보호사들이 담당부서를 방문해 재가센터 요양보호사들에게도 마스크가 지원되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요구하면서 추가 지원을 하겠다는 답변을 얻어내어 겨우 지급이 되었다.


41만명 중 95%가 여성... '위기'시 가장 먼저 내쫓긴다

요양보호사들이 코로나19 위기에서 가장 먼저 직접 피해를 입게 된 것은 그만큼 불안정한 노동환경임을 보여준다. 요양보호사 자격취득자는 160만 명이 넘고, 시설이나 재가에서 일하는 요양보호사는 41만 명이 넘는다. 요양보호사 95%는 여성이이며, 대부분 가정에서 생계를 책임을 지고 있다. 그러나 요양보호사 일자리는 결코 좋은 일자리라고 할 수 없다. 4대보험과 퇴직금을 지급하지 않기 위해 월 59.5시간, 11개월을 계약하는 사례도 많다. 임금은 대부분 최저임금 수준으로 월 60시간 일을 하면 60만 원 정도 받는데 재가서비스 이동시간은 근무 시간에서 제외된다. 이용자가 사망하거나 시설입소, 어르신 변심 등으로 서비스가 중단되면 바로 일자리가 없어진다.

요양시설은 24시간 CCTV 감시를 받고, 야간근무 시간 중에는 휴게시간이 포함되어 있지만 그 시간 동안에도 어르신이 있는 공간에 같이 있기 때문에 잠시도 편히 쉴 수 없이 긴장상태로 대기하며 어르신을 돌봐야한다. 잠시라도 제대로 쉴 수가 없는 조건으로 그야말로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이다. 또한 문제발생시 요양보호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 5인 미만의 소규모 시설의 경우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해 노동자로서의 권리를 제대로 보호 받지 못하고 있다. 장기요양보험제도는 올해 12년째로 돌봄서비스의 공공성을 강조하며 만들어진 제도이지만 일하는 요양보호사는 언제나 고용 불안에 떨며 일하고 위기상황 시 최우선으로 일자리에서 내쫓기고 있다.

요양보호사 김순희씨가 체념하듯 한마디를 툭 던졌다.

"우리 요양보호사는 물티슈 같죠. 필요할 때 갖다 쓰고 필요 없으면 무심하게 버리는.... 인권이니 노동권이니 이런 얘기는 어디서도 못해요. 그러니 스스로 자존감이 낮죠. 그런 대우를 받으니 서로 경쟁하고 감시하고..."

그리고 목소리를 낮추어 덧붙인다.

"이용자 사유(사망, 시설입소, 이사, 단순변심 등)로 일이 중단될 경우 대기수당이나 휴업수당이 있어야 해요. 요양보호사 개인의 책임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사회서비스의 공공성 강화와 서비스 품질을 위해 돌봄서비스 종사자를 직접 고용하고 있는 사회서비스원을 시범사업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제대로 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지금보다 나은 요양보호사 근로조건 기준이 마련될 것 같아요"

낮은 목소리에 담긴 절실한 요구였다. 2008년 7월 시작한 노인요양장기보험 도입은 돌봄의 공공성을 확대한 제도다. 그러나 시작부터 이용자 중심의 사업으로 민간 진출을 중심으로 설계되면서 치열한 시장경쟁에 내몰렸다. 이 과정에서 직접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보호사는 경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되었다.

지속가능한 돌봄노동을 위해

요양보호사는 요양급여 노동력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이용자와 대면하면서 감정·정서를 포함한 관계․사회적 노동까지 제공하고 있지만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끊임없는 인권침해, 건강까지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등 요양보호사는 이중삼중의 고충에 시달리고 있다.
       

한 요양보호사가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를 돌보고 있다. ⓒ 한국여성노동자회

       
돌봄은 재생산활동으로 사회회복을 위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코로나19 위기와 같은 재앙으로 요양서비스가 필요한 어르신들에게 돌봄노동이 중단된다면 사회구성원으로서 일상생활 유지를 어렵게 하고 건강과 안전을 위협받게 된다.

돌봄노동이 지속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돌보노동에 대한 사회적 보상과 안정적 지위가 보장되어야 한다. 제도화된 지 12년인 노인장기요양은 여전히 저비용 인력과 서비스 질로 연결되어 있다. 요양보호사는 분명 돌봄노동의 전문직이다. 요양보호사들이 권리와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근로환경 개선뿐만 아니라 위기상황 발생 시 돌봄노동자가 최우선으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돌봄의 공공성 확보를 위해 재설계되어야 한다.

'돌봄서비스 질은 요양보호사의 처우에서부터 시작 된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 [상담] 코로나19 관련 여성 노동상담 : 여성노동자회 평등의전화 tel.1670-1611(전국공통) / 전국여성노동조합 상담전화 tel. 1644-1884(전국공통)
* [참여] '코로나19가 여성의 임금노동과 가족 내 돌봄노동에 미친 영향' 설문조사 :
https://bit.ly/2020womenworker
 
#코로나19와 여성노동자 #요양보호사 #돌봄노동 #돌봄서비스 #임금차별타파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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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을 통해 행복하고 건강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운동을 하는 여성노동운동 단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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