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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재난지원금 사용하며 알게 된 부모 마음

잔액은 팍 줄었지만 아이들 책상 사주니, 보고만 있어도 참 좋네

등록 2020.05.21 17:18수정 2020.05.21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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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재난지원금 포스터 나라에서 지원하는 긴급재난지원금 ⓒ 조영지

        
긴급재난지원금이 들어왔다. 고양시에 사는 우리는 100만 원을 받았다. 적지 않은 돈이라 남편과 나는 이 돈으로 뭘 할지 고민했다. 남편은 고장 난 차 네비게이션을 사겠다고 했고 나는 남는 돈으로 평소 가격 때문에 망설이고 있던 청소용품을 사겠다고 했다. 평소 갖고 싶었던 물건들을 사게 될 기대감에 들 떠 있었는데, 불쑥 초2 딸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나 책상 사줘. 우리 반에 책상 없는 애는 나밖에 없을 걸?"

남편과 나는 서로 당황스러운 눈빛을 주고받았다.

"그래, 이참에 우리 딸이랑 아들 책상도 사주자."

남편은 호기롭게 아이들에게 말했다. 평소 주방 식탁에서 공부를 해오던 아들과 딸이 동시에 온라인 수업을 하게 되면서 개인 책상의 필요성을 느낀 것이다. 남편은 바로 재난 지원금이 사용되는 업체를 찾아 메모 했다.

그리고 드디어 두 아이의 책상과 의자를 사러 나섰다. 남편은 아이들의 책상과 의자 가격에 뜨악했지만, 인체 공학적 기술을 접목해 아이들이 편하게 공부할 수 있다는 말에 두 말 하지 않고 카드를 내밀었다.

그리고 현재 남은 잔액은 18만 원 남짓. 남편이 원하던 네비게이션도 내가 갖고픈 청소용품도 살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우리 부부 중 누구 하나 아쉬워 하는 표정이 없었다.
 

아이들 책상과 의자를 사고 남은 재난 지원금 잔액 핸드폰 알림으로 확인된 재난지원금 잔액 ⓒ 조영지

 
아이들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니 우리의 물욕도 어느새 스르르 사라진 모양이었다. 이런 우리의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자신의 책상을 어디에 배치할지 의논하며 깔깔댔다. 그 모습을 흐뭇하게 보고 있자니 부모님이 생각났다.

자신의 옷 한 벌 사는 것에는 그렇게나 아까워하면서 내가 여행을 떠나겠다고 했을 때, 서울로 가고 싶다고 했을 때, 물질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부모님. 늘 본인보다 자식을 먼저 챙기던 부모님.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한편으론 답답하다고 생각했던 그 시절의 부모님 모습이 오늘의 내 모습과 닮아 있었다.

아무리 새로운 시대니, 어쩌니 해도 부모가 자식 생각하는 마음은 시대의 흐름과는 무관한 모양이다. 지금도 여전히 친정에 가면 엄마는 더 못 챙겨 주셔서 안달이다. 어른이 된 건 익숙했으나 부모가 됐다는 건 늘 어색하고 이상한 기분이었는데... 이날 아이들을 보는 나를 보니 이젠 정말 빼도 박도 못하는 부모의 길에 들어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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