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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을 겁내지 않아도 될 시간'은 오지 않았다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전직 대통령으로 본 성급한 사면이 위험한 이유

등록 2020.05.25 08:23수정 2020.05.25 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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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희상 국회의장이 21일 오전 국회 사랑채에서 열린 퇴임 기자간담회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 ⓒ 권우성

 
문희상 국회의장이 전직 대통령 사면론을 제기했다. 21일 퇴임 기자회견에서 문 의장은 "시종일관 적폐청산 얘기만 하면 정치보복의 연장이라고 얘기하는 세력이 점점 늘어나게 된다"고 말한 뒤 "과감하게 통합의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상당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며 "타이밍을 놓치면 놓칠수록 의미가 없게 된다"고 그는 주장했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상당한 고민을 사면에 대한 의도로 해석해도 되나'라는 질문에 그는 "사면을 겁내지 않아도 될 시간이 됐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사면은) 대통령 고유 권한이어서 그 판단은 대통령이 해야 한다"며 유보적 태도를 취했다.

이 같은 이명박·박근혜 사면론은 지나치게 때이른 것이 아닐 수 없다. 문희상은 적폐청산이 아니라 통합으로 전환할 시점이 왔다고 주장했지만, 지금이 과연 그런 시점인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적폐청산을 마무리하고 통합으로 전환하려면, 적폐청산이 상당부분 마무리돼야 한다. 이명박·박근혜 적폐로부터 대한민국이 자유로워진 뒤라야 한다. 더불어민주당의 4·15 총선 압승을 적폐청산의 완성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사회 곳곳에 산적한 적폐들을 무거운 심정으로 살펴본다면, 지금이 사면을 할 때인지 적폐청산을 강화할 때인지 저절로 분명해질 것이다.

전두환으로 본 성급한 사면이 위험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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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노태우 석방 기사 ⓒ 5.18 기념재단


문희상의 발언은 시기상조인 동시에 위험하다. 때이른 사면이 얼마나 큰 화근이 될 수 있는가는 1997년 전두환 사면의 후과(後果)로도 잘 증명된다.

그해 4월 17일 대법원에서 확정된 무기징역형만 상당 부분 집행됐어도, 전두환이 죄인이며 5·18 학살이 범죄라는 점이 훨씬 명확해졌을 것이다. 하지만 1년도 안 된 12월 22일 섣불리 사면·복권이 이루어지면서 그런 것들이 상당히 모호해지고 말았다.

5·18이 일어난 지 40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진상규명 작업이 힘겹게 전개되고 있다. 학살의 진상을 알리는 일도 아직은 계속 진행돼야 한다. 이는 전두환의 유산이 덜 청산됐음을 뜻하고, 1997년 사면이 좋지 않은 결과를 낳았음을 의미한다. 극우주의자 지만원씨와 일부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전두환과 5·18 학살을 비호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1997년 12월 22일 전두환은 교도소 출소 소감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여러분은 들어가지 마시오"라는 농담을 던지며 여유를 부렸다. 이는 교도소 생활이 그에게 큰 교훈을 주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또 그가 치매에 걸렸다고 해놓고 골프장에 가서 샷을 날리고, 5·18 학살 현장인 광주까지 가서 "이거 왜 이래?"라며 인상을 쓸 수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법적으로 용서받은 사람이다. 이미 용서받은 자신을 비판하는 이 사회가 그에게는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다. 성급한 사면이 그의 죄의식을 무디게 만든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전두환 사면은 그 자신과 지지자들을 이처럼 파렴치한 사람들로 만들었다.

대한민국에는 국민들에게 봉사하고 떠난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죄 짓고 떠난 대통령들이 훨씬 더 많다. 그런데도 국민들의 심판을 제대로 받은 대통령은 하나도 없다.

전두환뿐 아니라 그 전임자들도 마찬가지다. 이승만은 대한민국임시정부 대통령 때는 탄핵을 당하고 대한민국정부 대통령 때는 하와이로 도주했지만, 제대로 된 심판과 처벌을 받은 적은 없다. 박정희는 부하의 총에 맞는 바람에 국민의 심판을 받을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제대로 된 처벌 못한 결과가 불러온 나비효과

오늘날 전광훈과 한국기독교총연합(한기총)이 멀쩡한 광화문광장을 이승만광장으로 바꿔 부르고, 촛불혁명을 모독하며 이승만을 찬양할 수 있는 것은 '이승만은 죄인'이라는 법적 평가가 내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 평가가 내려져 '이승만 찬양'이 '죄인 찬양'으로 인식됐다면, 그들이 백주대낮에 광화문광장에서 국민들을 상대로 그런 선전전을 전개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벌어지기 전만 해도, 우리공화당은 토요일마다 서울역에서 이승만과 더불어 박정희·박근혜 부녀에게 경례하는 의식을 거행했다. 그들이 서울역에서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나가는 행인들이 자신들의 행동을 그리 나쁘게 바라보지 않을 거란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박정희가 명확한 법적 처벌을 받았고 또 박정희가 죄인이라는 공감대가 확고히 형성돼 있다면, 우리공화당이 그런 일을 벌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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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 '비선실세' 최순실, 그리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연루된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내려진 2019년 8월 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우리공화당 당원들이 선고 결과에 환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은 그 개인에 대한 사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가 만든 과오와 그를 지지하는 세력에 대한 사면을 뜻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직 대통령의 범죄를 명확히 처리하지 않으면, 그가 만든 과오와 그의 지지세력이 대한민국을 두고두고 괴롭힐 수밖에 없게 된다.

그 점은 대한민국 역사에서 이미 두 번이나 증명됐다. 이승만은 1925년 3월 23일 임시정부에서 탄핵을 당했지만, 그것으로 그냥 끝이었다. 감옥에 간 것도 아니고 활동의 제약을 받은 것도 아니다.

그 경험은 그와 그의 세력이 대통령직을 가볍게 생각하는 원인이 됐을 수 있다. 그 경험을 무겁게 받아들였다면 1948년에 이승만 주위로 지지자들이 몰리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고, 1960년에 이승만 정권이 붕괴하는 일도 아예 생기지 않았을지 모른다.

박근혜에게도 성급한 사면이 내려진다면, 이 역시 비슷한 오점을 남길 수 있다. 박정희가 법적 심판을 받지 않고 비극적 최후를 맞는 바람에, 박정희 지지 세력은 박정희 동정론을 유포하며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만들 수 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박근혜마저 제대로 처벌을 받지 않는다면, 그들은 대한민국을 마음대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승만이 두 번이나 처벌을 피한 것이 지금까지 화근이 되고 있듯이, 박정희에 이어 박근혜마저 피해간다면 이 역시 두고두고 불씨가 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자신은 물론이고 그 지지 세력의 죄의식도 둔감해질 수밖에 없다. 꺼져가는 유신체제의 불씨를 도로 살려주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사면이 겁나는 시간

문희상의 전직 대통령 사면론은 그런 의미에서 성급하고 위험하다. 적폐청산의 길이 아직도 멀고 험한 상황에서 통합을 명분으로 '적폐청산의 청산'을 운운하는 것은 사려 깊지 못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희상은 한·일 과거사 문제와 관련해서도 비슷한 입장을 취했다. 지난 2019년 11월 5일 와세다대학 특강에서 한·일 국민과 기업의 성금으로 강제징용 피해보상금을 마련하자고 제안했다. 대법원에서 전범기업의 손해배상책임을 선고한 상태에서, 그가 민간 성금으로 강제징용 문제를 봉합하자는 제안을 내놓은 것이다.

그는 화해를 명분으로 강제징용 민간성금 대체론을 제기했고, 또 통합을 명분으로 대통령 사면론을 제기했다. 통합과 화해라는 비슷한 명분이 저변에 깔려 있었다.

그가 어떤 생각으로 대통령 사면론을 운운했든, 이명박·박근헤 사면론은 성급한 동시에 위험하다. 그는 '사면을 겁내지 않아도 될 시간이 왔다'고 말했지만, 아직도 대한민국은 이명박·박근혜의 흔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아직은 '사면이 겁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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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 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 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신라왕실의 비밀,왕의 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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