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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읽는 책의 목적을 그들이 판단했다"

'국가보안법 7조부터 폐지운동 시민연대' 기자회견에서 나온 말말말

등록 2020.05.29 18:32수정 2020.05.29 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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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보안법 7조부터 폐지연대 시민연대' 기자회견 지난 21일 오전 11시 헌법재판소 앞에 국보법 피해자들 및 관련자들이 모여 연대의 뜻을 밝혔다. 앞으로 매주 월요일 오후 12시에는 국보법 7조 위헌판결 촉구 1인 시위가 이어질 예정이다. ⓒ 이향림



지난 21일 헌법재판소 앞에 꽤 많은 사람이 모였다. '국가보안법(국보법) 7조부터 폐지운동 시민연대'를 결성한다고 알리는 기자회견이었다. 국보법 피해자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하동엽 전교조 인천지부 지부장은 "이 자리에는 국보법 피해자들이 많을 것이다. 저도 피해자였다. 재일유학생 간첩단 사건 서준식 선생님이 무기징역 받았다가 20년 살고 나왔는데 그분과 3년 동안 국보법과 사회안전법 폐지운동을 했다. 표현은 우리의 머리에서 나온다. 내 생각을 국가가 통제하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국보법으로 올해 파면당한 인천지부 4명의 조합원과 전교조 인천지부는 피해 당사자로서 7조부터 폐지운동을 끝까지 싸워나가겠다"고 외쳤다.   

박미자, 김명숙, 백준수, 최선정 등 4명은 지난 2012년 1월에 국가보안법 7조에 의해 검찰에 기소되었다. 이들은 2심에서 '이적단체 구성'은 무죄, '이적표현물 소지 혐의'는 유죄로 징역 1년과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상고를 하였지만, 결국 2020년 1월 9일 대법원은 상고를 기각하며 2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4명은 교단을 떠나게 되었다.
 
국가보안법 제7조 (찬양·고무 등)
①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③ 제1항의 행위를 목적으로 하는 단체를 구성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④ 제3항에 규정된 단체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질서의 혼란을 조성할 우려가 있는 사항에 관하여 허위사실을 날조하거나 유포한 자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

⑤ 제1항·제3항 또는 제4항의 행위를 할 목적으로 문서·도화 기타의 표현물을 제작·수입·복사·소지·운반·반포·판매 또는 취득한 자는 그 각항에 정한 형에 처한다.

 
'국가보안법 7조부터 폐지운동 시민연대' 집행위원을 맡게 된 박미자 전 교사에게 '새시대교육운동이 어떤 단체였으며 어떤 이적물을 소지하였다가 피해를 보게 되었는지'를 물어보았다. 그는 올해 제4회 '한경희 통일평화상' 수상자이기도 했는데, 이 상은 간첩조작사건으로 억울하게 누명을 썼던 고 한경희 여사를 기리고 명예회복을 위해 지난 2016년 제정됐다.


박미자 집행위원은 "'새시대교육운동'은 단체도 아니었고, (전교조) 노조 내에서 선거운동을 하는 모임일 뿐이었다. (이적표현물이라고 하는 것들은) 북한에서는 명절을 어떻게 보내는지 알려주는 '민족의 세시풍속 이야기' 등의 책이었다. 당연히 남쪽에서 발간된 책들도 포함되어있다. 한때는 '태백산맥' 소설도 이적표현물이었다. 박세길의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도 공안 쪽에서 금서목록이다"라고 답했다.

검찰에서 이적표현물로 명시한 책 리스트가 있는지 궁금했다. 이에 대해 박미자 집행위원은 "리스트에 포함되지 않아도 판사나 검사 누가 판결하냐에 따라 유무죄가 달라진다. 정해진 기준이 없다"며 답답해했다. "저희 집에 있는 책이 수 천권이다. 북한을 이롭게 하려고 읽겠나. 탐구하려고 읽는 거지. 이적(利敵)의 목적이 아니라고 해도 (내가 책 읽는) 목적을 그들이 판단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최근 5월에도 1991년에 가수 백자씨가 만든 민중가요 '혁명동지가'를 불렀다고 3명이 유죄를 받았다. 그 중에 한 명은 파주시 의원인데 파면되지 않았나"하며 황당한 일은 이것뿐만이 아니라는 듯 설명을 덧붙였다. 

혁명동지가는 백자씨가 1991년 대학교 2학년때 만든 곡이다. 당시 힘들어하는 친구들에게 격려하는 차원에서 독립군들처럼 우리도 힘내서 살아가자는 마음으로 만들었다며 노래 가사에 대한 의미를 해명하는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기도 하였다.  

복직됐지만... 종북교사 낙인은 그대로
 

1981년 ‘이적표현물 학습과 반국가단체 찬양 및 고무죄’로 부산지역 학생들과 회사원 등 19명을 구속한 뒤 감금하고, 고문해 조작한 '부림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이 사건을 계기로 인권 변호사의 길로 들어섰다. 부산지법은 33년이 지난 2014년 2월, 재심을 청구한 5명에게 무죄 판결을 했다. 영화 < 변호인 >속 한 장면. ⓒ 위더스필름

 
31년 만에 재심을 청구한 강성호 교사(청주외고)도 자리했다. 그는 1989년 5월 24일 교사로서 첫 발령을 받은 제천 제원고등학교(현 제천디지털전자고등학교)에서 수업을 진행하다 강제 연행돼 수감되었고, 국보법으로 1990년 대법원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받았다. 당시 학교장이 '북침설 교육' 혐의로 고발한 것이다. 1999년 9월 해직 후 10년 4개월 만에 복직됐지만 종북교사 낙인은 그대로였다.

강성호 교사는 "어느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악법이다. 피해 당사자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제 온 삶을 통해서 우리의 대한민국 헌법 정신이 현실에서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하겠다"고 외쳤다. 

군사정권 시절, 국민의 편에 섰던 종교계를 탄압할 때 국보법 만큼 좋은 도구는 없었다. 사회를 맡은 조원호 통일의 길 공동대표는 "막걸리 보안법으로 독재정권에 대해 말만해도 구속되던 시절, 투쟁을 통해서 없앴다고는 하지만 이제는 좀 다른 고비에 와 있다"고 말한 후 조헌정 향린교회 목사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조헌정 목사는 "영화 <1987>에 등장했듯이 향린교회는 6월항쟁 당시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 발기인 대회를 열었던 곳이다. 과거 고 홍근수 전 향린교회 담임목사님이 KBS TV토론에 나가 '막시스트도 휴머니스트다. 대한민국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면 북한에 대한 서적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사상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고 말해 1991년에 국보법 위반으로 구속되어 1년 반 옥살이를 했다"면서 "그때부터 향린교회는 30년 동안 (교회) 외벽에다 국보법 철폐 큰 현수막을 걸어놨다. 국가보안기관이라는 곳에서 향린교회를 무너뜨리고, 나도 국보법으로 걸기 위해 별의별 공작을 많이 벌였다. 그 얘기를 하자면 한이 없다. 종교인의 삶을 옥죄이는 악법을 (폐지하는 그날까지) 끝까지 함께 싸우자"고 말했다. 
 

1987년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중심으로 만든 실화 바탕 영화 < 1987 >. 영화 속 향림교회는 명동성당 인근에 있는 '향린교회'를 나타낸다. 6월항쟁에서 중요한 거점 중 하나였던 이곳에서 1987년 5월 27일, 민주항쟁을 지휘한 '호헌철폐및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국본)의 발기인 대회가 경찰 감시를 뚫고 열렸다. ⓒ ?CJ엔터테인먼트

 
'간첩조작사건 전문' 장경욱 변호사도 자리에 함께했다. 

"국보법은 민주주의, 법치주의 기본권을 억압하고, 기본적인 여론 형성을 할 수 있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가장 암적인 존재다.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다. 그러나 '소지'나 '동조'에 대해 전향적인(진보적인) 판결이 촛불항쟁 전에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헌법재판소에서 (위헌판결이)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7조부터 폐지'가 촉매제가 되어서 앞으로의 국보법 폐지에 새로운 흐름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하면서 '국가보안법 7조부터 폐지 운동'을 하는 여러분께 경의를 표하는 바이다"

장경욱 변호사는 2013년,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으로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의 변론을 맡았다. 이 사건을 주요 소재로 만든 영화가 바로 <자백>이다. 국가기관이 한 사람을 죄를 씌우기 위해 조작 날조도 서슴지 않았던 사실들에 경악했던 기억이 난다. 국가 보안을 위해 만들었다는 국가보안법. 국보법의 수많은 피해자들과 무죄로 나온 재심들을 보면서 이쯤 되면 국민억압법으로 바꿔 불러야 하는 건 아닌가.

국보법의 생명력은 왜 이렇게 질긴 것인가

위헌 심판대에 8번째 오른 국보법 7조는 판사들마저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2017년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던 수원지법 김도요 판사는 국보법 7조 1항과 5항에 대해 제청 결정문에서 '이 사건 법률조항은 죄형법정주의, 명확성의 원칙,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돼 표현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 우리 헌법에 따른 표현의 자유 보호가 보편적인 인권을 보호하려는 국제법이 요구하는 정도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깊이 성찰해 봐야 한다'고 판시하기도 했다.

국가보안법위반사건 접수 및 처리현황 1997년 기소 686명에서 꾸준히 감소 추세를 보이며 2006년에는 34명까지 떨어졌다가 2013년 197명으로 급증. 다시 감소 추세를 보이며 2019년 기준 기소된 사람은 15명이다. ⓒ e-나라지표


국보법은 일제강점기 때 만든 치안유지법을 계승하여 만들었다. 이승만 정권은 1948년 10월 19일 '여순항쟁'이 일어나자 국보법 제정을 가속화 하였다. 그 시절 아버지와 큰아버지 포함 8명의 가족을 잃은 유가족인 이자훈(여순항쟁서울유족회) 회장도 기자회견 이후 간담회에서 "국보법은 합법적으로 국가 폭력을 허용하는 법"이라며 "내 나이가 거의 80세인데 이렇게 후배들이 함께 투쟁해줘서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이념논쟁으로 정치권과 검찰에서 서로 눈치를 보는 사이 국보법 피해자들은 여전히 생겨나고, 과거 피해자들의 재심에서는 무죄가 나오고 있다. '국가보안법 7조부터 폐지운동 시민연대'는 시대에 맞는 문화 및 예술적 활동으로 확산하여 수많은 시민과 함께 할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이번 기회에 70여 년간 끊지 못했던 이 악순환의 고리를 촛불혁명을 이뤄낸 시민들의 손으로 첫 스타트를 끊어낼 수 있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매주 월요일 낮 12시, 헌번재판소 앞에서는 '7조부터 폐지' 1인 시위가 있을 예정이다. 누구나 참여 가능하다.
#박미자 #장경욱 #국가보안법 #국가보안법 7조 #헌법재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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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세계사가 나의 삶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일임을 깨닫고 몸으로 시대를 느끼고, 기억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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