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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수 할머니 기자회견, 이렇게 생각하면 어떨까요

[정의연 사태, 난 이렇게 본다] 할머니 입장에서 생각해보니... 위안부 피해자 운동, 다양한 생각이 필요하다

등록 2020.05.26 12:09수정 2020.05.26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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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기억연대와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둘러싸고 많은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이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생산적 논의의 장을 열고자 합니다. 다양한 글을 기다립니다. 이번 글은 역사가 심용환씨의 글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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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92)가 25일 오후 인터불고 대구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국회의원 비례대표 당선인을 비판했다. ⓒ 조정훈

 
뭔가 너무 오해가 오해를 낳고, 보수 언론은 새로운 정치적 아젠다로 활용하려고 하고, 소위 민주진보진영 역시 진보의 논리로 해석을 하려는 거 같아서요. 또한 기자님들이 잘 모르는 부분도 있을 것 같아서 간단히 정리해드립니다.

정신대는 1944년 정신대 근로령에 의해 동원된 이들을 말합니다. 정신대 근로령으로 동원된 이들 중에는 상당수가 노무 동원인 경우가 많습니다. 즉, 우리가 통상 생각하는 성노예가 아닌 경우가 많다는 말입니다.

위안부는 1932년 상하이 일본 해군의 기록에서 처음 등장하지만, 본격적으로 동원된 것은 1938년 중일전쟁과 국가총동원령 이후부터로 보고 있습니다. 군대의 사기, 강간 방지, 성욕 처리 등을 위해 군부대 혹은 군부대의 주요 이동 경로에 위안소를 설치했고, 성병을 방지하기 위해 식민지 여성(조선, 타이완 심지어 일본인도 있었음)들을 강제 동원했습니다. 이용수 할머니가 정신대와 위안부를 다르다고 이야기하시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사실 이 문제는 이미 오래 전에 제기되었고 자연스럽게 정신대라는 표현을 사용하지는 않았는데 왜 정대협이 오랫동안 그 명칭을 버리지 않았는지에 관해서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용수 할머니께서 의식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위안부 문제가 초기에 '정신대'로 알려지면서 노부부(할머니가 정신대를 다녀오셨는데 이를 위안부로 알고 부부 갈등이 격화)가 이혼을 하는 등 여러 문제가 발생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또한 정신대라는 용어가 초기에 널리 쓰이면서 동원 기간이 짧게 묘사되는 등 여러 오해와 혼란이 있었던 것 역시 사실입니다.

사실 정대협이 성노예 표현을 반대하는 운동을 벌인 적도 있습니다. 2012년 7월 13일 외교부가 'comfort woman'(위안부)이라는 번역어를 악용하는 사례가 있기 때문에 'sex slave'(성노예)를 사용하는 것을 검토한다고 하자 이를 정대협이 막았었죠.

하지만 2016년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재단'이 설립되면서부터 성노예라는 말을 쓰고 위안부라는 말은 잘 쓰지 않게 됐습니다. 오히려 '위안부'라는 표현을 사용하면 공격을 받기도 했습니다. '일본군 위안부'라는 용어가 역사성을 담지하는 표현이기 때문에 역사학자들이 선호하고, 할머니들이 성노예라는 표현을 싫어하는 문제도 있었는데 운동이 되면서 생긴 감정적 어려움 같습니다.

단일성에 가려진 다양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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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가 25일 오후 대구 수성구 만촌동 인터불고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2020.5.25 ⓒ 연합뉴스

 
'끌려다녔다', '이용당했다' 식의 표현에 관해서는 매우 조심스러운데 '한일 학생들의 왕래와 교류'를 계속 강조하시는 것으로 보아서는 그간의 운동 방식의 한계를 절감하시는 거 같습니다.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는 1990년대 초반에 합의를 본 적이 있습니다. 1995년 7월 19일 일본 외무성이 관할하는 정부의 외곽단체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이 출범해 한국·대만·필리핀 3개 지역에서 피해자 285명에게 기금을 지급했습니다. 당시 학생이었던 저조차 이 해결 방식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주체적으로 판단했다기보다는 이 합의를 두고 운동가들 혹은 운동에 동조하는 역사학자들이 모두 부정적으로 이야기를 했으니까요. '일본의 사죄와 반성 문구에 여러 한계가 많다. 국가의 정식 배상 형식이 아니다. 돈으로 봉합하는 형태였다' 등등 많은 비판이 뒤따랐습니다.

사실 이 문제가 가장 골치 아픈 부분이고 이용수 할머니가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한 부분입니다. 일본의 보수 일색의 정치 문화, 역사에 대한 무관심. 이 두 가지 강고한 틀거리 앞에서 수요집회를 비롯해서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일본을 비판만 하는 것은 오히려 일본 극우파에게 빌미를 주며 오히려 역사적인 교류, 상호 이해에 대한 심각한 방해물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지적하신 거 같아요.

그런데 이 부분으로 오면 얘기가 붕 떠버립니다. 수요집회를 중심으로 한 위안부 운동이 대중화하면서 너무나 강고한 틀거리가 만들어졌죠. 사실관계를 꼼꼼히 따져보고 대안을 도출해보기보다는, 함께 모여서 집회를 열고 일본을 규탄하는 방식이 일상화되었고 할머니들이 그때 겪었던 그 고통에 대해 같이 아파하는 과정만 무한 반복이 되는 형태가 되버리고 말았으니까요.

앞서 언급했듯이 정대협은 2016년 '정의기억연대'라는 이름으로 단체명을 바꾸었습니다. 이 변화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또한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한일 간의 민족문제처럼 이야기되지만 관계자의 상당수, 전문가 대부분은 여성 인권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민족 문제와 여성인권 문제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더구나 여성인권 문제라면 이 문제를 어떤 방식으로 소화하고 발전시켜나가야 할까요? 이 부분에 대해 국민적 공감대가 존재는 했을까 하는 답답함이 밀려옵니다.

한국에 일본군 위안부 연구자가 많지 않고, 극우파가 아닌 한국을 도와온 일본인 학자나 운동가들에 대한 이해도 크지 않습니다. 또 일본이 대외 문제에 대해 어떤 형태로 보상을 하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는가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 점이 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도 그간 정대협과 나눔의 집이 주도하는 운동의 단일한 형식 가운데 가려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라도 이런 점들을 인식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저부터도 좀 더 상세하게 사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은 역사학자 심용환씨의 개인 SNS에도 게재돼 있습니다.
https://www.facebook.com/100001390680109/posts/3104983906224602/?d=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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