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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산 지 355일... 삼성 시위자 김용희 "죽음 각오하고 버틴다"

[텔레그램 인터뷰] "내 요구사항은 세 가지"... 23일부터 단식중

등록 2020.05.29 07:08수정 2020.05.29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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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삼성항공에 입사한 김용희씨는 1990년 6월 삼성그룹 경남지역 노동조합 설립추진본부장을 맡는다. 그해 7월 각목 테러를 당하고 12월에는 과장과 부장한테 15일간 납치당해 노조를 포기하라며 폭행·공갈·협박·회유를 받는다.

그래도 노조를 포기하지 않자 이듬해 3월 28일 노조 총회가 처음 열리던 날 사복 경찰관 두 명에게 체포되고 당일 오후 삼성에서 해고된다. 해고사유는 성희롱. 피해여성은 나중에 삼성의 압력으로 마지못해 거짓 자백했다는 내용을 공증한다.

[관련기사] 
'삼성 10억' 마다하고 곡기 끊은 남자 "극악무도한 일 겪었다"(http://omn.kr/1jzlc)

김용희씨가 삼성에서 해고된 지 3개월 후인 1991년 6월 고향에 있는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 아버지는 싸움을 만류한다. 그는 나중에 알았다. 삼성 직원들이 자기 몰래 아버지를 방문해 아들이 삼성을 상대로 시위를 계속하면 '아들의 안전을 책임질 수 없다'고 말하고 갔다는 것을.

삼성 직원들이 김씨의 아버지를 방문하기 한 달 전인 5월 한진중공업 노조위원장 박창수(1958~1991)가 의문사했다(아래 주1). 박창수는 당시 대우조선 노조 시위에 참여했다가 구속돼 수감된 후 안기부 수사관들에게 여러 번 고문당했다. 그는 5월 4일 의문의 상처를 입고 병원에 입원했다가 끝내 깨어나지 못하고 이틀 후인 5월 6일 사망했다.
  
박창수 노조위원장의 의문사를 본 김용희씨의 부친은 아들의 생사를 걱정한다. 그래서 아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삼성을 상대로 한 싸움을 하지 말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아들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다. 아버지는 "삼성과 싸우지 말라"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사라진다. 김씨는 6개월간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실종된 아버지는 지금까지도 찾지 못했다. 김용희씨는 결국 삼성 때문에 부친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94년 그는 삼성과 합의한 뒤 삼성종합건설로 복직해 러시아 스몰렌스키 지부에서 근무한다. 그러나 러시아에서도 삼성은 끈질기게 노조 포기 각서에 서명하라고 요구한다. 그가 거절하자 삼성은 김씨를 간첩 혐의로 고발한다. 그는 러시아에 잠시 구금됐으나 곧 혐의없음으로 풀려난다.

1995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삼성에서 또다시 해고된다. 이후 지금까지 부당해고에 항의해 26년간 복직투쟁을 하고 있다.

김용희씨는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약 1년 동안(5월 29일 현재 355일째) 강남역 사거리 20m 철탑 위에서 삼성을 상대로 농성을 하고 있다. 더구나 지난 23일부터는 단식을 시작했다. 이에 대해 영국의 BBC는 지난 25일 '하늘에 살고 있는 한국의 삼성시위자'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김용희, 그는 왜 공룡기업 삼성을 상대로 자신의 인생과 목숨을 걸었을까? 단식 중인 김용희씨와 지난 25일 텔레그램으로 인터뷰 했다.

김용희씨와 나눈 텔레그램 대화
 

철탑농성 중인 김용희씨 ⓒ 김용희


- 지난 1982년부터 1995년까지 13년 동안 삼성이란 대기업에 근무하면서 느낀 문제의식이 있었을 것 같은데?
"입사 후 얼마 다니지 않아 삼성에 들어온 걸 후회했다. 뜻밖에도 국제적 기업이라는 삼성에는 군사문화가 깊게 자리 잡고 있었다. 분기별 고과평가에 의한 성과급제가 이루어지다 보니 함께 일하는 동료끼리도 서로 협조해 팀워크를 이루기보다는 서로 쓰러뜨려야 하는 경쟁 구조였다. 또한 고과평가가 합리적이지 못하다 보니 그저 상관들한테 굴욕적이고 비굴한 방법으로라도 매달리는 구조였다."
  
- 1년 가까이 20m 철탑에서 삼성에 대항해 시위하고 있는데 이렇게 버티고 있는 힘은 어디에서 왔나? 삼성이 어떤 조처를 하면 고공농성을 풀겠는가?
"1년 가까이 버티고 있는 것은 특별한 힘이 있어서가 아니라 해고통지도 없이 쫓겨나 억울하고 분하기 때문이다. 지금 소원이 있다면 다리 쭉 뻗고 자고 싶다. 소화기능이나 혈액순환 계통에 문제가 있어서 약으로 버티고 있다. 정상적인 일상 생활을 해나갈지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삼성에서 진정성 있는 사과, 명예복직, 해고기간의 임금을 해결해주지 않는 한 살아서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한 비결은 어디에 있다고 보나.
"입법·행정·사법·언론까지 돈으로 매수하고 장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자본권력이 국가권력 위에 군림한 형국이다. 대한민국을 삼성공화국이라고 하지 않나."

- 1995년 한국으로 돌아와 또다시 해고됐다. 그 후 어떻게 살아왔나?
"해고통지도 없이 쫓겨나 부모님 재산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면서 8년 동안 해고자 복직 투쟁을 했다. 한때 신용불량자가 되었는데 해고자 복직투쟁을 병행하면서 택시운전과 보험설계사 등 여러 일을 닥치는 대로 해 3년 전에 빚을 다 갚고 신용회복이 되었다."
 
- 거의 1년간 철탑에서 살고 있다. 고통이 클텐데. 

"1년 전 철탑에 오를 때 3가지 조건을 삼성에 요구했다. 첫째 진정성 있는 사과, 둘째 명예복직, 셋째 해고기간 임금 배상. 세 요구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죽어서 내려오리라 각오하고 올라왔다. 아직도 요구조건이 전혀 충족되지 않았다. 그저 죽음을 각오하고 버티는 것이다."

- 국민 다수가 노동자지만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무관심한 것 같다.
"대다수 국민은 삼성이 경영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면 대한민국 경제가 심각하게 타격받을 거라 여긴다. 그래서 삼성 피해자들이 집회나 시위를 하면 대체로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렇다 보니 삼성이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는다. 통제받지 않는 무노조 경영 80년(1938년 창업 기점) 역사는 범죄의 온상이었다. 뇌물로 국정을 농단하고 경영 승계를 위해 무리한 합병과 회계분식을 해 급기야 국민의 노후자금에까지 수천억 원의 손실을 끼쳤다. 삼성은 지금이라도 국민과 삼성의 직접 피해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잘못한 점을 밝히고 철저하게 반성하며 하루 속히 문제해결에 나서야 한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최근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삼성 피해자들은 여전히 길거리 노숙투쟁을 하고 있다.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철탑 고공농성이 여전히 방치되고 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 당신과 여러 차례 상호 합의하고도 삼성은 합의문 작성을 계속 미루고 있다는데. 
"피해자를 두 번 죽이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렇다. 삼성의 그런 무성의한 태도는 기만이고 쇼에 불과하다."

- 지난 1982~95년까지 삼성에 근무했을 당시 가장 큰 문제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무노조 경영이다. 노동3권은 헌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그것은 노동자에겐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최소한의 법이다. 그런데도 삼성에서는 노조설립조차 할 수 없다. 삼성이 몰라서 해결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삼성은 오히려 '우리를 건드릴 자 있느냐' 하고 자문자답하고 있을 것이다. 삼성 창업주 이병철 때부터 자본권력에 취해 자정능력을 상실했다."
 
- 문재인 정부가 어떤 조치를 해야 한다고 보나.
"문재인 대통령은 인권 변호사였다. 단순한 인권변호사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 그는 나의 1차 부당해고에 행정소송을 맡은 변호사였다. 그런데도 그는 해고무효 확인소송에 결정적인 입증자료(공증서)를 재판부에 제출하지 않았고(아래 주2) 단 한 번도 내게 재판에 출석해 달라고 통지나 요청도 하지 않았다. 내가 재판에 패소하고 당일 전화로 통보만 받았다. 그래서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청와대 앞에서 119일 노숙단식투쟁을 했었다. 그런데 청와대 민정실에서 딱 한번 나와서 조사하고 끝이었다.

후보자 시절 광화문광장에서 그를 만나 약 3분간 얘기를 했다. 변호사시절 신의성실의 원칙을 저버린 문재인 후보자에게 당신의 변호사 시절 소송 건에 대해 소상하게 얘기하고 그때 소송에 패소해 지금까지 복직투쟁하고 있노라고 설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삼성과 부끄러운 거래를 한 게 없다면 범죄자 이재용을 멀리하고 모든 법적권한을 사용해서라도 삼성이 문제 해결에 나서도록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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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필자가 몸담았던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박창수 사건을 조사했다. 하지만 지난 2004년 진상규명불능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의문사위는 박창수 의문사 사건에 "안기부 요원의 개입사실은 드러났으나 국가정보원이 관련 자료요청에 협조하지 않아 진상규명불능으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당시 박창수의 사인이 고문치사인지 아니면 안기부 직원에 의한 타살인지는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고 있다.

주2)
김용희씨의 해고과정에는 기가 막힌 일이 있다. 여사원 성추행으로 징계해고를 당한 그는 회사를 상대로 해고무효확인소송을 벌였다. 성폭행을 당했다는 피해자는 "그런 사실이 없다"는 진술서를 작성해주었다. 그래서 김용희씨는 법원의 판단을 기대했으나 항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받았다. 피해자의 진술서는 법원에 증거로 제출되지 않았다. 당시 소송대리를 맡은 변호사는 현직 대한민국 대통령 문재인이었다. 문재인 변호사는 왜 피해자가 자필로 직접 쓴 공증확인서를 재판부에 제출하지 않았을까? 재판결과를 판가름할 결정적 증거를 소송담당 변호사가 내지 않았다는 건 단순한 실수라고 할 수 없는 문제다.  

법원은 '원고는 원고에 대한 해고원인이 된 위 성추행 사건이 피고 회사에 의해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나 이를 인정할 만한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문재인 변호사의 사무장은 김용희씨에게 술을 사주면서 사과하고 공증서를 그에게 돌려줬다고 한다. 대법원에 상고하고 공증서를 제출하면 100% 승소할 수 있으니 '직접하라'고 했다. 

- <프레시안> '소득 3만불 시대, 강남역 철탑엔 해고노동자가 있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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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국민권익위윈회 청렴포럼위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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