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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태수 정의당 혁신위원. ⓒ 조정훈
"총선 끝나고 '심상정밖에 안됐다, 큰일이다' 하는데... 이걸 사후 평가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정치적 효능감을 발휘할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핵심 지지층도 만들어진다고 본다."
100일. 지난 24일 출범한 정의당 혁신위원회에 주어진 시간이다. 발표된 15인의 혁신위원 명단 중 장태수 위원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당시 대구시당 기획국장으로 시작해 대구 서구 구의원만 3선을 지낸 '정의당 대구 붙박이'였기 때문이다.
청년과 여성을 중심으로 혁신위 구성부터 쇄신을 강조한 만큼, 장 위원의 역할이 궁금했다. 그는 26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혁신위원들의 보좌진이 되고 싶다"라고 말했다. "혁신위원들의 문제의식과 의지를 토대로 실현 가능한 프로그램을 짜는 과정에서 경험을 나누고 싶다"는 것.
'심상정 대표 중심 1인체제'에 대한 개선이나, '민주당 2중대' 프레임 극복 등 혁신위를 둘러싼 주요 과제에 대한 답은 일맥상통했다. "정의당이 왜 필요한가"라는 시민들의 대답에 '정치적 효능감'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 "정의당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요구를 드러내기 위해선, 보편적 담론보다 노동과 기후, 여성과 청년 문제 등 정의당이 더 과감한 전환을 제시할 수 있는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고 진단했다.
선거개혁 좌초와 '조국 사태' 당시 당내 불거진 논란, 이슈 주도권 상실 등 정의당이 지난 총선 기간 지나온 씁쓸한 장면들에 대해선 특정 개인에 대한 책임보다 앞으로 반면교사할 수 있는 요소를 찾는 게 먼저라고 강조했다.
리더십의 변화를 언급할 때는 메시지가 조금 더 강해졌다. 장 위원은 "(당은) 다툼 자체를 두려워 해왔다, 정답을 정해놓고 '갑시다' 하는 과거의 리더십이 아니라 각자의 욕망을 부딪치게 하고 이를 조정·합의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아래는 장 위원과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이다.
"선거법을 바꾸는 것만이 유일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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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4월 26일, 심상정 정개특위 위원장과 김종민 민주당 간사와 위원 등이 국회 본청 정개특위 회의장에 입장하려하자 자유한국당 장재원, 정진석 의원을 비롯한 의원들이 막아서고 있는 모습. ⓒ 이희훈
- 정의당 소속으로 오랜 기간 풀뿌리 정치를 해왔다. 진보정당이 지역에서 뿌리내릴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지역에 뿌리내린다는 것은 정치적 신뢰를 주고 있다는 말이다. 정치하는 사람 입장에선 한없이 투자해야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신뢰는 짧은 시간 한두 번의 사건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닌 것 같다. 같은 공간에서 고민을 해결하고,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고민을 나누는 게 중요하다."
- '이 정당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답을 줘야 한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정당의 효능감. 시민들은 정의당이 문제제기 집단에서 문제해결 집단이 돼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문제제기를 잘하는 것도 정당 입장에선 중요한 일이다. 시민의 삶 속에서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를 잘 찾는 게 '정의당이 왜 필요한가'에 대한 대답의 시작이다. 해결 능력이 당장 없더라도, 다른 사회적 힘들이 이 문제를 들여다보도록 안내해서 해결되는 환경을 갖추도록 하는 것, 대구에서도 그걸 주로 고민했다."
- 4.15 총선 이후 당에 가장 필요한 변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당을 당답게 만드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정의당은 민주당 안에서 작은 방을 차지하는 정치그룹이 아니라 독립된 정당의 형태로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왜 그런 활동을 하는지를 시민들에게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 무엇을 하려고 하고, 누굴 대변하려고 하는가. 그게 단순하고 명쾌해야 하는데 지금은 조금 모호하고 헷갈린다. 이를 분명하게 전달하지 못한 것 같다."
- 정책·전략 부재도 혁신 과제 중 하나다.
"'누굴 대변하느냐'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작업 중 하나가 정책이다. 정책은 좋은 말들의 집합이 아니라 좋은 실천의 집합이다. 정의당은 지금 좋은 말을 정책으로 내놓고는 있지만, 행위로 연결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와 지방의회간 활동조차 유기적이지 못하다.
또 다른 이유는 사람이다. 정의당의 주요 집행 과정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과연 시민들의 시대정신과 닮아 있나 살펴봐야 한다. 당 내에서는 논란이 있지만 (저는) 여성과 청년에 더 주목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인적쇄신 또한 정의당이 당답게 질서를 갖추는 데 꼭 필요한 요소라 생각한다. 인적시스템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대대적 쇄신이 필요한 상황이다."
- 이번 총선 결과를 어떻게 평가하나.
"정의당 단독 총선 결과를 살피는 것보다 지금 정치판이 어떻게 변했는지 봐야 한다. 시민들은 미래통합당에게 대안을 발견하지 못하면서 촛불시민혁명 이후 민주당 정부에 강한 신뢰를 보내며, 이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거대여당을 탄생시켰다. 그런 변화가 정의당의 성적표를 더 초라하게 만들었다. 원내에선 정의당의 정치적 존재감이 어느 국회 때보다 축소돼 버렸다.
하지만 훌륭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낙제점은 아니다. 10%가량(비례 투표 9.67%)의 시민들은 어쨌든 정의당에 지지의사를 보내줬다. 구체적인 선거 환경이 만들어지기 전 우리의 기대가 높았기 때문에, 당원들이 상실감을 상대적으로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었다."
- 선거법이 개정됐지만 위성정당의 출현 등으로 정의당의 21대 국회 입지가 더 크게 줄어들었다.
"지역구 의석수 문제는 자기 의지를 갖고 선거제도 개혁에 접근하지 않은 민주당의 태도를 크게 탓해야 한다. 정의당에 대한 아쉬움이라고 한다면... 사실 현장에서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선거법 개정이 정치 질서의 변화를 넘어 더 나은 시민들의 삶을 만들 계기가 된다고 했지만, 사실 당이 이 점을 시민과 충분히 나누지 못한 것 같다. (시민 대부분은) 선거하는 사람들끼리의 문제, 게임규칙 정도로만 생각했다.
미래통합당이 '선거법 개정은 곧 정의당을 위한 것'이라는 프레임을 씌울 때 일정 정도 먹힌 것, 또 미래한국당이라는 위장정당에 대한 지지가 모인 것도 결국 이러한 인식의 바탕에 따른 것 아닌가. 선거법을 바꾸는 것만이 정의당의 유일무이한 전략이었다. 사후적으로나마, 돌아봐야 할 지점이 있다."
- 당시 과정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인가?
"두 거대 정당을 움직일 수단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의식을 풀어내는 데 한계가 있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묻는 방식이 될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 정치행위를 하기 전에 반면교사를 해야 하는 과정이었다. 또한 선거기간 정무적 리더십 공백이 발생했다. 텔레그램 n번방 사태 대응 외엔 이슈도 주도하지 못했다."
- 지역구 전략도 사실상 부재했는데.
"당원들이 지역구 없이 어떻게 집권하느냐 질문을 많이 한다. 그러나 당이 선거법 개정에 '올인' 했고, 그 핵심은 비례의석의 정의로운 분배였다. 그런데 선거 마치고 '심상정밖에 안됐다, 큰일이다' 하는데 이걸 사후적으로 평가하는 게 맞나 싶다.
현실적으로 지역구 당선을 정의당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설정할 수 있을까? 이상으로써의 논의가 아니라, 정치적 효능감을 발휘할 수 있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핵심 지지층도 만들어진다. '저 당이 저 목표를 달성하는 데 힘을 모아줘야 해' 하는. '지역구 10명 당선 다 시키겠다, 도와달라' 하면 어느 지역에서 먹힐까. 공감을 일으킬 수 있을까."
- 이른바 '조국 사태' 당시 당 지도부의 불분명한 입장에 대한 자성론도 나온다.
"당원 사이에서도 어떤 과제를 우리가 자임하고 있는가에 대한 합의가 없는 거다. 정의당의 역사성과 관련된 것이지만, 사실 두려워서 회피한 것이다. 나눠졌다가 통합하고, 다시 나눠지고... 그 사이 세력 간 다툼이 드러나고. 이후엔 다툼 자체를 두려워해왔다.
정답을 정해놓고 '갑시다' 하는 과거의 리더십이 아니라, 지금은 각각의 욕망을 부딪치게 하고, 이게 당 밖으로 넘지 않도록 조정하면서 합의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정의당엔 어떤 리더십이 작동하고 있었나, 생각하면 비판적이다. 거기엔 저도 포함된다."
"혁신위의 목적은 리모델링 아닌 불 붙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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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의당 장혜영 비례후보 당선인. 사진은 4월 16일 오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1대 총선 선대위 해단식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 권우성
- 정의당은 20대 국회 내내 '민주당 2중대'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정미 대표는 동의할 수 없다고 하고 심상정 대표도 미래통합당의 정치 프레임라고 하지만, 제가 만난 적잖은 분들이 그런 생각을 한다. 누가 만들었든 간에 말이다. 그럼 거기서 시작해야 한다. 거짓 선동도 먹히는 이유가 있다. 그걸 찾아내서 하나씩 없애는 게 필요하다."
- '심상정 1인 대표체제'에 대한 여러 평가가 상존한다. 정의당의 향후 지도체제는 어떤 방향을 지향해야 할까.
"정의당을 두고 '심상정당'이라는 말,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렇게 기대왔다. 심 대표에게 책임을 묻고 말고가 아니라, 왜 특정인에게 그렇게 의존해왔는가 돌아봐야한다. 심 대표 1인체제를 넘어서려면, 심상정과 같은 정치적 권위를 가진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잘 안 보인다. 인적쇄신을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집단지도체제로 바꾸자는 의견도 있다. 혁신위에서 이 과제를 다룰 텐데, 지도체제는 이게 옳다 아니다 교과서적으로 판단할 문제는 아니다. 우리 형편에 더 맞는 걸 선택하면 된다. 개인적으로 심 대표 같은 정치적 권위가 당내에 없다면, 1인 체제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리더십을 중층·다층으로 형성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다만 혁신 과제 중 하나이므로 제가 결론 내릴 이야기는 아니다."
- 당 쇄신에서 집단지도체제가 성공한 사례가 없다는 우려도 있다.
"민주노동당 시절 최고위원회 제도를 운영했지만, 잘했다는 평가를 못 받았다. 그 경험에 근거한 주장인 것 같은데, 그 경험치를 넘어서는 게 혁신이다. 그때와 다른 점은 민주노동당 당시에는 강한 정파가 있었다. 정파간 대립이 심했다. 지금도 정의당에는 정치적 견해를 교류하는 집단들이 있지만, 강력하게 대립하고 있진 않다. 사실 지도체제 구성에 대한 걱정은 극단적 대결을 가져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다만 이전 경험과는 다르게 형성될 수 있는 환경이라는 걸 생각해줬으면 한다."
- 혁신위에서 본인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청년세대가 가진 문제의식과 혁신 의지를 실현 가능한 프로그램으로 만드는 데 저의 경험이 쓰일 수 있도록 뒷받침 하고 싶다. 강하게 의견을 내는 것 보다는... 혁신위의 보좌진 같은 역할을 하고 싶다."
- 정의당의 차기 의제는 무엇이 돼야 할까.
"노동, 청년, 여성, 기후... 여러 의제가 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 내정자조차 기본소득을 검토하는 단계다. 보편적 수준의 담론은 다른 정당도 많이 이야기 하고 있다. 특정 계층과 집단에 더 주목해야 하지 않을까. 대표적인 게 노동이다. 민주당이 많이 노력하고 있지만, 여당으로서의 한계도 드러날 것이다. 기후변화 또한 더 과감한 전환을 제시하고 눈에 보이는 계획표를 통해 시민을 설득해야 한다. 여성과 청년 문제도 마찬가지다."
- 혁신위가 어떤 결론을 내리길 바라나.
"활동기간이 100일 정도 된다. 걱정과 우려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혁신위는 혁신의 결과를 매듭짓는 게 아니다. 혁신위의 고민이 당원의 고민이 되고, 바로 이어 시작되는 당직선거에서 불이 붙고, 이를 실제 정치 행위로 드러내고. 이러한 혁신의 에너지가 계속 작동하도록 희망을 만드는 게 목표다. 리모델링한 정당을 내놓는 게 목적이 아니다. 혁신위원끼리 파이팅이 필요한 때라고 본다. 당에 에너지가 되려면, 서로가 서로에게 강한 힘이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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