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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자수를 놓으며 깨달은 것들

수를 놓는다는 건 마음을 내어주는 일... 덕분에 또 다른 세상과 만나다

등록 2020.05.27 16:15수정 2020.05.27 1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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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 조용히 혼자 노는 걸 즐겨 한다. 뜨개질하는 것도 좋아하고, 음악 듣고 사색하고 보내는 조용한 시간이 참 좋다. 그런 나에겐 오랜 세월을 차(茶) 공부를 같이하고 한길을 걸어가며 미래를 꿈꾸었던 친구가 있다. 나보다 훨씬 적은 나이지만 더 어른스럽다.

우리는 같은 지역에서 처음부터 함께 차 생활을 했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 문화원을 개원했다. 다도 교육한 내용을 토대로 한 번 씩 행사를 열기도 했는데, 그 친구가 어느 날, "형님, 야생화 자수 수놓기 한번 해보세요" 하고 권했다.

실은 행사할 때면 차(茶) 외에도 전시해야 할 품목들이 필요했다. 야생화 자수 또한 그 중에 한 부분이다. 사람마다 한 분야씩 나누어 특기에 따라 일을 나누고 자기 몫의 일을 해야 했었다. 내가 맡은 분야는 야생화 자수놓는 일이다. 행사장을 예쁘게 장식하도록 수를 준비하기 위해서, 그러한 동기로 야생화 자수 수놓기를 시작했다.

지금부터 십여년 전, 그때는 주변에 자수를 배울 만한 곳도 없었고, 인터넷으로 어렵게 정보를 찾고 혼자서 자료 준비하고, 연습을 해야 했다. 인터넷 사이트를 찾아 마음에 드는 자수가 있나 찾아보며 컴퓨터와 노는 시간이 많아졌다.

어느 날 자수가 내 마음에 쏙 드는 곳을 발견하게 됐다. 자연 속에 야생화가 피어 있고 집 풍경이 너무 예쁜 곳이었다. 자수와 소품들이 잘 어우러진 집안은 정감이 있으면서 운치가 있었다. 꼭 한번 가보고 싶은 생각이 마음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언제 가 볼 기회가 있으려나 막연히 기다리고만 있었다.

자수의 세계를 만나다

셋째 딸이 분당에 살고 있을 때다. 막내 딸은 직장에 다니면서 셋째 딸과 같이 살고 있었다. 군산에서 잠깐 딸네 집에 올라 갔었다. 마침 막내 딸이 쉬는 일요일이었다. "엄마, 어디 가고 싶으셔?" 하고 막내 딸이 물어봤다.

"으응, 실은 나 가보고 싶은 곳이 있는데…"

그 곳은 이천에 있는 '보OO 하우스'였다. 인터넷에서 주소를 찾아 방문해도 되는지 전화로 허락받고서야 막내 딸과 출발을 했다. 가고 싶던 곳을 찾아가니 마음이 설레면서 궁금하기도 했다. 음악 틀어 놓고 창밖을 바라보는 풍경도 상쾌했다.

그렇게 한 시간이 넘게 달려 도착해보니 그곳은 생활 도자기를 팔고 자수 수강도 하는 곳이었다. 내가 사진으로 본 그 집은 주인이 살고 있는 가정집이었고, 찾아간 곳은 가게였다.

작품에서 느꼈던 만큼 단아하고 친절한 모습으로 반겨주는 사장님은 친근한 인상이셨다. 예쁜 그릇들, 멋진 인테리어, 수놓은 작품과 판매하는 옷이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다 모여 있었다. 기분이 마냥 들뜨고 흥분까지 됐다. 한쪽에서는 옷을 만들고, 만든 옷에 수를 놓았다. 너무 예뻐 나도 꼭 만들어 입고 싶어 천을 구입하고 자수 도안도 구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잔뜩 생겼다.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기분도 상승하고 행복하다. 할 일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 듯 마음이 바빠진다. 수놓아 입을 치마 생각에 한껏 기분도 좋아졌다. 지금 생각하면 별일도 아닌데 행복하고 들뜨고 마냥 신났었다. 사람은 저마다 좋아하는 자기만의 세계에서 삶을 즐기고 추구하며 살아간다.

평소에 너무 오고 싶었고 좋아하는 곳이란 말을 하니 웃고만 계신다. 궁금한 부분에 대해 물어보고, 수를 배우고 싶어도 집에서 너무 먼 곳이라 방법을 찾을 수 없다고 말을 하니 제일 많이 사용하는 자수기법과 도안을 챙겨 주셨다. 어쩌면 처음 만난 사람에게 쉽지 않은 호의를 베풀어 주었는지 지금 생각해보아도 너무 고맙고 감사한 분이다. 자수에 필요한 천과 몇 가지 물건들을 구입했다. 얼마나 흐뭇하던지 평소에 밀려온 숙제를 말끔히 해낸 기분이었다.

막내 딸이 있어 감사하다. 내가 해결 못하는 부분을 살뜰히 채워주어 고맙고 고맙다. 늦둥이 딸을 낳고 고생했던 날들을 보상이라도 해주듯 딸은 내게 살갑게 많은 걸 채워준다. 참 세상사는 돌고 돌아 서로가 빚을 지고 갚고 사나 보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나, 결국 사랑의 힘으로 살아내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가족이란 둥지에서 나로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그날 이후 자수 놓기에 매진하고 점점 실력이 향상되면서 수놓기가 즐거워졌다. 차 생활에 필요한 소품과 집에 놓이는 소품들도 만들고, 딸들이 원하면 작은 것들도 만들어줬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선물해 주는 기쁨은 내 삶에 또 다른 즐거움과 활력을 찾아줬다. 목표가 있으니 꾸준히 노력하는 동기가 되었다. 시간만 나면 수를 놓고, 수 놓는 생활이 일상이 됐다. 고생해서 작품이 나올 때 느끼는 기분도 남달랐다.

야생화를 수 놓으며 배우는 것들
 

야생화 자수 전시회 야생화 자수 전시회 2016년 ⓒ 이숙자

 
자수 전시회가 열리면 사람들이 구경하면서 예쁘다고 칭찬해줬다. 기분도 좋아지고 성취감도 느낄 수 있어 더 노력을 했던 것 같다. 가끔씩 자수 놓기 봉사도 했다. 성당에서, 또는 지인들에게, 다도 회원들에게도. 어느 날부터 내 이름은 자수 선생님이 되었다. 십 년이 넘는 시간을 늘 투자하고 노력한 결과였다. 전문가 수준은 아니지만 내가 보기엔 만족했다.

새롭게 도전하고 노력하다 보니 또 다른 세상과 만나게 된 것이다. 잠시 잠깐 내 인생의 시간에서 수를 놓으며 다른 세상 속에서 살아 보았다. 우리가 사는 삶의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 내게 주어진 나만의 삶에 길이가 있다. 나는 곰곰이 내 삶에 방향을 찾아서 사유하고 내 의지대로 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
 

야생화 자수 전시회 ⓒ 이숙자

 
야생화 자수는 주로 야생화 꽃을 수 놓는다. 수를 놓으며 꽃과도 만났다. 산책을 하거나 길을 걷다가도 꽃을 보면 유심히 꽃모양을 살핀다. 잎모양까지도. 계절마다 피는 꽃, 어떤 모양이 가장 예쁜 모습일까? 꽃을 관찰하고 대화를 하면 마음 안에 꽃처럼 예쁜 생각들이 몽실몽실 피어 난다. 각종 꽃의 색감, 꽃말 등 알아야 할 것들이 많다. 한 분야의 세계를 들어가 보면 그 세상만큼 보이는 것이 있고 신비롭다.
 

야생화 자수 전시회 ⓒ 이숙자

 
수를 놓으며 하고싶은 걸 맘껏 누렸다. 입고 싶은 옷에 수도 놓고, 지인들에게 선물도 했다. 사는 것은 나이와 부합을 한다. 지금은 쉼을 하고 싶었다. 직업으로 전문가가 되지 않으려면 멈추는 시간도 필요하지 않을까. 어느 날 갑자기 생각이 나면 다시 놓을 수 있고, 내 것으로 내 안에 남아 있는데 어려울 것 뭐 있겠나 싶었다.

수를 놓는다는 것은 마음을 내어 주는 일이다. 어쩌면 사랑이기도 하다. 나의 도전 열정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자수, 그것은 내 인생에 한 부분, 한 페이지로 남는다. 수를 놓고 도전한 시간은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었고 다른 새로운 인연과도 만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도전이 가져다주는 풍요와 행복은 나의 선택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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