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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김군에게 쓴 한빛의 글에서 찾는 희망

"오.늘.이라 힘주어 적었다"

등록 2020.05.27 15:05수정 2020.05.27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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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6일, 방송계의 비인간적인 제작 환경에 문제를 제기하며 스스로 생을 달리한 고 이한빛 PD를 향한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한빛에 대한 그리움과 한빛이 주고자 했던 메시지를 기억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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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오후, 지하철 2호선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수리하다 사망한 김아무개씨(19)의 소지품. 컵라면과 나무젓가락, 작업 공구 등이 들어있다. ⓒ 유가족 제공

 
5월 28일은 구의역 스크린도어 참사 4주기다. 안전 수칙에 따라 스크린도어 작업은 2인 1조로 진행되는 게 원칙이었지만 19세 김군은 홀로 작업하다 변을 당했다. 열악한 작업환경과 관리 소홀로 이미 예견된 산업재해였다. 컵라면과 검은 색 탄가루가 묻어 얼룩덜룩해진 수첩 등이 발견된 김군 가방이 지금도 기억 속에 남아 가슴이 울컥한다.

'우리는 왜 날마다 명복을 비는가?' '오늘도 7명이 퇴근하지 못했다'란 슬픈 문장을 요즘은 너무도 쉽게 접한다. 이 단순한 한 줄 문장 아래 얼마나 많은 유가족들이 숨을 쉬고 있어도 죽어있는 삶을 살고 있을까? 동료들은 얼마나 희망 없는 세상에 분노하며 불안하고 암울하게 그래도 혹시나 하면서 하루하루를 버티어 내고 있을까?

김군의 죽음이 왜 구조적인 문제를 담고 있는지 아들 한빛에게 처음 들었다. 뉴스에서 처음 접했을 때 부끄럽지만 나는 매일 발생하는 사건의 하나려니 했다. 작업하다가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사고려니 했다. 단지 김군이 청년인 게 안타까웠다. 그리고 취업이 어렵다고 하는데 힘들게 들어간 직장에서 뜻도 못 피운 것을 안쓰러워했다.

그땐 당연히 남의 집 슬픈 얘기였다. 그런데 한빛이 김군의 죽음을 얘기하면서 '비정규직'과 '산업안전장치'에 대해 말했다. 같은 시대에 살고 있고 엄마는 특히 교사니까 이런 것은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노동교육'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 아이들의 대부분이 모두 노동자가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대학 졸업 후 줄곧 학교에서만 있었기에 회사시스템이나 사회의 변화에 큰 영향을 받지 않았던 것 같다. 솔직히 비정규직, 계약직이란 말도 낯설었다. 안전의식도 그랬다. 학교 곳곳에 위험요소가 내재되어 있었음에도 "하지 마라" "가지 마라"란 말만 반복하고 위험한 곳을 폐쇄시켰지 개선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세월호 이후에나 피부로 느끼고 학교안전망에 대해 깊이 신경 쓰게 되었으니까. 그만큼 내 일이 아니라고 무관심했을지도 모른다.

나는 한빛이가 참 바른 생각을 갖고 있는 젊은이라고 생각했고 기특했다. 그러나 올해도 여전히 씁쓸하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전 국민 안전대책에도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만 마스크를 지급하고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들은 외면당하는 일이 있었다는 기사를 보았다. 오늘도 비정규직은 기계부품처럼 일하다가 하루에 대여섯명 이상은 일터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세상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한빛이 구의역에 가서 김군을 생각하며 페붘에 썼던 글을 읽었다.(2016.5.31.) 한빛이 살아있었을 때 쓴 글이다. '살아있었을 때'라는 과거완료가 가슴을 친다.

일찍 퇴근했기에 시간이 생겼다. 그래서 구의역에 갔다.
막차가 올 때까지 자릴 지키려 했다. 하지만 그리 오래 머물지 못하고 현장을 떠났다. 슬픔인지 분노인지 아니면 짜증인지 모를, 복잡한 감정이 솟구쳐 머리가 아팠기에. 역사를 빠져나왔다.
구조와 시스템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 죽음이란 비참함. 생을 향한 노동이 오히려 생의 불 씨를 일찍, 아니 찰나에 꺼뜨리는 허망함. 이윤이니 효율이니 헛된 수사들은 반복적으로 실제의 일상을 쉬이 짓밟는다. 끔찍한 비극의 행렬에 비록 희망을 노래하는 이가 없을지라 도 염치와 반성은 존재할 것이란 기대도 같이 스러진다.
망하지 않아 망하지 못한 세상이다. 아니 망하지 못해 망하지 않는 세상이 맞을런가.
어느 게 정답인지 모르겠다. 둘 중 무엇이든, 답답한 동어반복으로 밖에 설명될 수 없는 현실이 다시금 한 삶을 부러뜨렸다.
얼굴조차 모르는 그이에게 오늘도 수고했다는 짧은 편지를 포스트잇에 남기고 왔다.
'오늘'이라 쓰지 않으면 내가 무너질 것 같기에 오.늘.이라 힘주어 적었다.


읽으면서 나는 엉엉 울었다. 내 아들 한빛은 아름다운 청년이었구나. 얼마나 고민이 많았을까? 하루가 무너질 만큼 힘들었구나. 그런데 나는 한빛의 마음을 한 번도 물어보지 못했다. 읽으려고도 안 했다. 잘 살고 있으려니. 성실하니 잘 극복해가려니 했다.



구의역 김군 얘기 하면서 한빛은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 엄마가 괜한 걱정을 할까 불편했을 것이다. 그런 착한 한빛이었기에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혼자만 잘 살 수는 없었을 것이다.

결국 나는 한빛의 짐을 조금도 나누지 못했다. 마음을 포개주지 못하고 기댈 언덕도 되어 주지 못한 엄마였다. 너무나 미안해서 이제야 가슴이 아프도록 악을 쓰며 울었다.

김군과 이후 김용균 같은 안타까운 죽음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4년간 수많은 정치인이 약속하고 공약을 내세웠지만 여전히 우리 노동자들은 매일 퇴근하지 못하고 죽고 있다. '오늘도 7명이 퇴근하지 못했다'에 달린 댓글이 가슴을 쳤다. "우리 남편도 2년이 다 가는데 아직 퇴근을 못하고 있어요"

참여사회(2020년 5월호/참여연대 발행) 표지에 쓰인 Cover story를 얼핏 봤는데 가슴이 쿵 했다. 나에겐 어려운 '의료영리화'에 관한 글이었는데 한빛 글이 포개지며 딱 내 마음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경제적 이익'이라는 단어를 가치중립적 의미로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세계적 위기 앞에서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 외면'(원문은 '의료의 영리화')은 더 이상 중립이 아닌 '악'을 의미합니다. 더 가치중립적으로 말씀드리면 모든 생명에는 가격이 없습니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해주지 못하는 법과 제도는 아무 의미가 없다. 그래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꼭 필요하다'고 한빛은 말하고 싶을 것이다.

한빛아, 엄마가 대신 외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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