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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지금] 코로나19 시대의 슬픈 졸업식

드라이브 스루에 손 키스까지... 눈물 삼키고 최악 노동시장으로 향하는 청년들

등록 2020.05.28 17:47수정 2020.05.28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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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한 고등학교 앞 잔디밭에 서 있는 졸업생 사진들 미국은 요즘 졸업 시즌이다. 고등학교와 대학교의 졸업식은 현재 코로나19 때문에 온라인으로 치러지고 있다. 올해 졸업생들은 최악의 고용시장으로 나가는 상황이기도 하다. ⓒ 최인호


아침에 잠시 밖에 나갔다가 흥미로운 것을 보았다. 우리 동네에 있는 고등학교 앞에 수많은 얼굴 사진들이 서 있었다. 학교 앞 약간 비탈진 잔디밭에 꽂혀 있는 사진들은 올해 졸업생들의 얼굴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달라질 졸업식을 예고하는 것이다.

학교는 졸업생들의 얼굴 사진을 제법 크게 찍어서 전시해 놓았다. 그러나 학생들은 학교에서 졸업식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온라인으로 졸업식을 하고 우편으로 졸업장을 받게 될 것이다. 오랜 시간 정들었던 친구들과 선생님들과 학교 건물들을 직접 만나지 못하고 졸업하게 되는 것이다.

이 마을에서 자란 아이들은 유치원부터 12학년까지 길게는 13년 동안 함께 동고동락한 친구들이다. 그런데 그 마지막 졸업 순간에 함께 하지 못하게 됐다. 고등학교 4년간 보았던 선생님들과 친구들, 그들과 교실에서 사진 한 번 못 찍게 됐다.

달라진 졸업식 풍경

요즘 미국의 학교는 졸업 시즌이다.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올해는 전례 없는 우울한 졸업식들이 연출되고 있다. 예전 같으면 학교 캠퍼스에서 성대한 졸업식이 벌어지고 졸업생들은 서로 축하하며 껴안고 사진도 찍으면서 떠들썩하겠지만, 이번에는 아무도 오지 않는 캠퍼스에서 졸업식이 치러진다.

학교 강당 스크린에 사진과 동영상을 띄워 온라인 졸업식을 하는 곳이 많다. 졸업생이 학교로 온다 해도 차에서 내리지 못하고 교사들이 길가에 서서 축하 인사를 하는 것을 보면서 캠퍼스만 빙 돌아보고 가야 한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지난 16일 올해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을 위해 동영상을 제작하여 유튜브에 올렸다. 코로나19로 미국인 8만 7천 명이 목숨을 잃었던 시점이었다. 동영상에는 이 음울한 시기에 졸업생들이 용기를 잃지 말고 앞길을 헤쳐가기를 바라는 전 대통령의 바람이 담겨 있다.
 

7분이 약간 넘는 길이의 이 동영상은 많은 학교의 온라인 졸업식에서 상영되고 있다. 어떤 대학 총장은 졸업식에서 자기 혼자 서 있는 강당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런 졸업식을 나도 처음 하는 것이라 매우 어색하지만, 이런 위기 속에서도 여러분이 훌륭하게 학업을 마치고 졸업하게 되어 뿌듯하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부디 여러분의 앞길에 행운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어떤 고등학교 교장은 캠퍼스 잔디밭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은 부디 최대한 집안에서 안전하게 계시기 바랍니다. 꼭 정부에서 권하는 안전사항을 준수하십시오. 하지만 여러분의 꿈과 이상은 집안에 가둬두지 말고, 최대한 멀리까지 보내시기 바랍니다. 진심으로 졸업을 축하하고 모두 안전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앞길에 신의 가호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학생들 각자 동영상과 사진 올리고... '드라이브 스루' 졸업 행사도

졸업식을 준비하기 위해, 캠퍼스에서 학생과 선생님이 홀로 촬영한 비디오들을 모아 졸업 비디오를 제작한 학교가 많다. 어떤 졸업식 비디오에는 장엄한 음악이 나오는 가운데 수백 명이나 되는 졸업생들의 사진이 한 명씩 차례로 나오기도 한다. 선생님들은 캠퍼스에서 또는 자기 집에서 제자들의 졸업을 축하하고 앞날을 격려한다.

일부 학교는 가상공간에서 졸업식을 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학생들에게 드라이브 스루 (Drive-through) 행사를 선사하기도 했다. 학생들이 자동차를 타고 긴 행렬로 차례차례 지나가면서 학교와 선생님들에게 인사하는 것이다. 각자 차 안에서 환호하고 경적을 울리기도 하고 손을 흔들면서 작별의 키스를 보내기도 한다. 일부 학생들은 긴 차량 행렬로 학교 캠퍼스와 마을에서 퍼레이드를 하기도 한다.

하지만 자동차 밖으로 나와 껴안고 축하하고 인사하는 접촉은 할 수 없다. 차 안에서만 웃고 손을 흔들며 우정과 사랑의 손 키스를 보낼 뿐이다. 그래도 졸업하는 학생들은 모두 환하게 웃고 있다. 자동차 퍼레이드를 하는 학생들에게 주민들도 손을 흔들고 손뼉을 치며 축하하기도 한다. 모두 코로나19가 안겨준 슬프고도 아름다운 풍경이다.

미국의 대학들은 현재 졸업식뿐만 아니라 2020~2021학년 신입생 환영식도 하고 있다. 대학 신입생들도 마찬가지로 학교에는 가보지도 못하고 온라인으로 신입생 환영식에 참여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희망에 부푼 대학 캠퍼스 생활을 기대했을 텐데, 가상공간에서 새 학교를 마주한다. 신입생들은 오는 9월에는 학교 캠퍼스와 강의실과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을까? 과연 교수와 학생들이 모여 앉는 것이 가능할까? 모든 것은 아직 불투명하고 불안하다.

V자든 U자든 L자든 I자든... 이들에겐 최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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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도 공원 나온 미국 샌프란시스코 시민들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의 한 공원에서 3일(현지시간) 코로나19 사태 속 휴식을 취하는 시민들 옆으로 마스크를 쓴 남성이 지나고 있다. ⓒ 샌프란시스코 AP=연합뉴스


올해 졸업생들의 취직 전망은 참으로 난감하다. 잔뜩 위축된 경제 상황에서 신규 일자리가 바짝 말라붙었다. 하필 이럴 때 졸업하는 젊은이들은 난데없는 봉변을 당한 것과 같다.

미국에서는 올해 졸업생을 'Class of COVID-19'라고 한다. 이들은 처음으로 대학 수강 시간을 강제로 줄이는 피해를 보았고, 미처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온라인 수업을 했으며, 전통적인 졸업식도 못 한 채, 결국 최악의 상황에서 노동시장에 참여하게 됐다. 여러 대학의 학생들은 봄 학기에 정당한 수업을 받지 못한 것을 항의하면서 등록금 반환을 위한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이번 여름 미국의 고등학교 졸업자는 370만 명, 전문학교 졸업자는 100만 명, 4년제 대학 졸업자는 200만 명에 이른다. 600만 명이 넘는 이 졸업생 가운데 상급학교로 진학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절반 정도는 취업 시장에 뛰어들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이 생애 첫 직장을 구하려는 계획은 대위기에 빠졌다. 현재 미국의 실업률은 14.7%에 이르렀다. 1930년대 대공황보다 훨씬 큰 실업 사태다. 전염병에 의한 일시적 위기일 수도 있다고 하지만 당장 고용률은 곤두박질치는 상황이다. 이미 지난 한 달 반 동안 4천만 명이나 되는 실업자가 노동시장에서 떨려 나와서 재취업을 기다리고 있다.

일부 경제 전문가들은 처음에는 경제가 V자로 반등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경제가 재빨리 회복할 것이라는 말이었다. 그러나 상황이 계속 악화하자 이제는 아무도 그런 주장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경기침체가 더 오래가다가 반등하는 U자 반등설이 나오더니, 다시 L자 전망도 나온다. 경기침체가 한참 지속한다는 말이다.

2008년 대공황 설을 주장했던, '닥터 둠(Dr. Doom)'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연말까지는 대공황이 닥쳐서 I자 모양으로 경기가 뚝 떨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렇게 비관적인 경제학자들은 이미 실직된 사람 중 40% 정도가 다시는 재취업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경제 회복이 V자로 되든, U자로 되든, 나이키 마크로 되든, 아예 폭삭 가라앉든, 어떤 경우에도 당장 취업 시장에 나오는 졸업생들의 앞은 캄캄해졌다. 이들은 당장 이미 실업자가 된 4천만 명과 취업경쟁을 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이들은 자신이 취직하려던 회사들이 파산선고를 하거나 수백 수천 명씩 해고한다는 뉴스를 들으면서 점점 깊은 시름에 잠기고 있다.

이번 사태와 같이 경제 공황기에 취업자들이 겪는 경제적 내상은 길게는 10~15년씩 지속할 수 있다. 이 불행은 이 세대의 경제력뿐 아니라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이는 1980년대 불황에 시달린 세대가 중년기에 사망할 확률이 다른 세대에 비해 높았다는 조사 자료에 근거하고 있다. 주로 심장병, 폐암, 약물 중독 등에 의한 질병과 사고에서 그런 결과가 나왔다. 경제적 스트레스가 신체에 미치는 결과가 그렇게 한 세대에 장기적인 내상을 입힌다는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도 올겨울 졸업하는 학생들이 벌써 걱정된다. 지난 겨울 졸업한 학생들은 취업은커녕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해 취업 조사도 못 하고 있다가 이제서야 겨우 약간 취업 열기를 띠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어쩌면 최악의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나는 올겨울에 본격화할 수도 있다는 대공황 설을 참으로 믿고 싶지 않을 따름이다.
#코로나19 #졸업식 #고용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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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해턴 옆에서 조용히 사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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