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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김재규를 사형에 처한다"

[[김삼웅의 인물열전] 박정희를 쏘다, 김재규장군 평전 / 43회] 방청석의 가족들은 고개를 숙인 채 눈물과 탄식을 쏟아냈다

등록 2020.06.05 17:52수정 2020.06.05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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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궁정동 총격사건과 관련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그의 부하들이 군사법정에 섰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궁정동 총격사건과 관련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그의 부하들이 군사법정에 섰다. ⓒ 보도사진연감

 
최후진술이 끝나고 구형공판에 이어 12월 20일 오전 11시 제1심 선고공판이 열렸다. 재판을 시작한 지 16일 만이다. 변호인단이 선고공판을 미뤄보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허사였다.

군권을 장악한 전두환 신군부는 정권탈취를 최종 목표로 김재규 등을 하루 빨리 처형한다는 시나리오를 갖고 있었고, 군사재판부는 그들의 하수인 노릇에 충실했다.

김영선 재판장이 목소리를 깔고 "79보군형공 제88호 내란목적 살인 등 사건에 대하여 판결을 선고한다. 피고인 김재규를 사형에 처한다."라고 사형을 선고했다. 검찰이 구형한 그대로였다.

재판장은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국내외적으로 국가가 위기에 처한 시점에서 국가 원수를 시해한 것은 명백한 대역 행위로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에 내란 행위에 가담한 전 피고인들에게 극형을 선고한다."

재판부가 피고인들에게 극형을 선고하면서 내세운 '양형 이유'는 법관으로서는 기본도 갖추지 못한 용어를 쓰고 있었다. 우리나라 형법에는 '대역죄'나 '시해'라는 법률 용어가 없다. 그에 해당하는 '외환죄'나 '내란죄' 혹은 '살인죄'라는 용어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대역죄', '시해' 따위의 왕조시대 용어까지 동원한 것은, 10ㆍ26 거사의 반역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였을 것이다. '반국가 대역행위' 운운은 검찰의 논고에서 이미 씌여졌다. 따라서 유신체제와 이를 창도한 박정희의 반민주성을 역설적으로 입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979년 12월 20일 김재규는 사형 선고를 받았다. ⓒ 동아일보

 
재판장이 김재규를 비롯 피의자들에게 사형을 선고할 때 이를 지켜 본 안동일 변호사의 기록이다.


이미 극형을 예측한 듯 체념한 자세로 피할 수 없는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던 피고인들은 일순 표정이 굳어졌다. 초췌한 얼굴에는 경련이 일었으나, 방청석의 가족들은 막연한 기대마저 무너지자 고개를 숙인 채 눈물과 탄식을 쏟아냈다.

귀에다 손바닥을 대고 재판장의 판결을 경청하던 김재규는 사형이 선고되는 순간에도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로 재판장을 응시했다. 여전히 수염이 덥수룩한 채 병색이 짙은 검은 얼굴에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흰색 한복에 검은 고무신과 털양말도 그대로였고, 두 손을 무릎에 얹은 자세도 구형 공판 때와 변함이 없었다. 이따금 마른기침을 했고, 길게 자란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카메라 기자를 위하여 가끔 얼굴을 돌려주기도 했다. (주석 1)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 한겨레 21

 
김재규는 거사 직후 전두환이 보낸 헌병들에게 체포되어 보안사령부 서빙고분실로 끌려가 초주검에 가까운 고문을 당하였다. 그리고 특별감방에 수감되어 수사를 받다가 세간에서 "남한산성'으로 불리는 남한산성 서쪽에 자리 잡은 육군교도소로 옮겨 재판을 받았다. 민간 신분인데도 육군교도소에 수감한 것이다.

그는 또렷한 정신으로 최후진술을 하고 사형선고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를 보이고 있었지만, 육신은 보안사의 서빙고분실에서 당한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되고 있었다.

서빙고에서 얼마나 '골병'들게 상처를 받았는지 온 몸이 피하 출혈로 시뻘겋게 되었고, 뇌출혈이 발생하는 등 사형집행 전에 이미 '산 송장'이 되어 있었다. 김재규 부장을 면회 갔던 6촌 여동생 김차분 씨는 김 부장의 손을 잡아 보았는데 그의 손바닥은 "검은 잉크로 온통 문신을 새긴 듯 새까맣고 군화 바닥처럼 딱딱하여 사람의 손바닥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김차분 씨가 김재규 부장에게 "손바닥이 왜 이러느냐?"고 물었더니, 김 부장은 "고문을 받아서 이렇게 되었다"고 답했다. 김차분 씨는 고개를 들고 천장을 쳐다보니 천장에는 두 사람이 앉아 있었고 녹음기 같은 것이 돌아가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주석 2)


주석
1> 안동일, 앞의 책, 309쪽.
2> 오성현, 앞의 책, 196쪽.

 
덧붙이는 글 <[김삼웅의 인물열전] 박정희를 쏘다, 김재규장군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김재규 #김재규장군평전 #김차분 #안동일변호사 #김재규사형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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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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