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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흑인사망' 시위, 트럼프의 비난과 트뤼도의 성찰

인종차별 사건을 대하는 미국 대통령과 캐나다 총리의 차이, 그리고 우리의 나아갈 바

등록 2020.06.01 13:58수정 2021.07.12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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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쉴 수가 없어요. 살려주세요."

한 남성이 길바닥에 엎드려 목이 졸린 채 힘겹게 애원한다. <오마이뉴스>에서도 보도된 바와 같이, 5월 25일 미국 미니애폴리스에서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흑인 남성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약 9분간 무릎으로 조지 플로이드의 목을 내리눌렀고, 반응이 없어진 후에도 2분 53초간 무릎을 떼지 않았다. 주위에는 이에 가담한 세 명의 경찰이 더 있었다.

조지 플로이드는 한 상점에서 20불 짜리 지폐를 사용하려 했으나 위조지폐임을 알아차린 직원이 이를 신고해 체포됐다. 경찰은 그가 저항했다고 했지만, 근처 CCTV를 살펴본 결과 그 말은 거짓이었다. 시시비비는 가리면 될 일이었다. 사람이 죽을 일은 아니었다.

행인이 촬영한 영상에는 아스팔트 바닥에 목이 짓눌린 채 죽어가는 조지 플로이드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끔찍했다. 2014년에도 판박이 같은 사건이 있었다. 에릭 가너 역시 조지 플로이드와 마찬가지로 무기를 지니고 있지 않았고 흑인이었다. "숨을 못 쉬겠어요." 이 말을 열한 번이나 되풀이했지만 백인 경찰은 내리 누른 목을 풀어주지 않았다. 흑인에 대한 미국 경찰의 과잉진압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위대를 '폭력배'라 지칭한 트럼프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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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틀랜타 CNN 본사 앞 '흑인 사망' 항의 시위대 5월 29일(현지시간)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의 CNN 본사 앞에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의 가혹 행위로 숨진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가 벌어진 가운데 한 시위 참가자가 'CNN' 로고 조형물 위에 올라가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고 쓰인 깃발을 흔들고 있다. ⓒ 애틀랜타 AP=연합뉴스


분노한 시민들이 며칠 째 여러 도시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평화적으로 시작됐지만 어느 순간 폭발한 울분은 폭력시위로 변해버렸다. 경찰차와 빌딩에 불을 지르고 고속도로를 점거했다. 차를 부수고 성조기를 태웠다. 분노는 매장을 파손하고 약탈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경찰은 폭동진압복을 입고 최루탄과 고무탄(폭동 진압용 총알)까지 장착한 채 시위에 대응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 사건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을까? 물론 유감을 나타내고 연방수사국(FBI)에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다. 그렇지만 과격한 시위가 계속되자 트럼프 대통령은 강한 불만을 표하기 시작했다. 다음은 그가 트위터에 올린 내용들이다.

"이런 일이 위대한 미국의 도시 미네아폴리스에서 일어나는 것을 방관할 수는 없다… 약하기 그지없는 급진 좌파 시장 제이콥 프레이가 마음을 다잡고 도시를 통제하든가, 그렇지 않을 경우 주 방위군을 보내 사태를 바로잡을 것이다." – 5월 29일


"이 폭력배들(THUGS)은 조지 플로이드를 향한 추모에 먹칠을 하고 있고, 나는 그런 일을 그냥 두진 않을 것이다. 팀 월츠 주지사에게 군대가 항상 그의 편에서 힘을 더할 것이라고 말했다. 어떠한 난관도 다 통제할 수 있겠지만, 약탈이 시작된다면 총격도 시작될 것이다." – 5월 29일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대를 주저없이 '폭력배들(THUGS, 대명사를 써 강조했다)'이라 칭하며, "약탈이 시작된다면 총격도 시작될 것(When the looting starts, the shooting starts)"이라는 위협성 발언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에는 이, 폭력에는 폭력으로 맞서겠다는 것인가. 그토록 오랜 세월 계속된 인종차별에 대한 흑인들의 분노가 체벌로 어린아이 윽박지르듯 하면 가라앉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한 발 더 나아가, 백악관 앞에서 시위를 벌인 이들이 '조직된 그룹'이라며 "전문적으로 관리되는 소위 '시위자'들은 조지 플로이드의 추모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그들은 단지 문제를 일으키기 위해 백악관에 온 것 뿐이다"라고, 트위터를 통해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자신을 겨냥한 음모가 있음을 함축하는 말일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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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DC 항의시위 연설 미국 워싱턴DC 하워드대학 앞에서 5월 31일(현지시간) 조지 플로이드 사망사건에 항의하는 의미로 열린 시위에서 주최 측이 연설하고 있다. ⓒ 연합뉴스


트뤼도 캐나다 총리 "인종 차별에 한마음으로 연대해야"

한편, 이 사건에 대한 캐나다 연방총리의 전혀 다른 반응이 인상적이다. 캐나다 TV 채널 <글로벌 뉴스(Global News)>와 <CTV 뉴스>에 따르면, 지난 5월 29일 트뤼도 총리는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시위에 우려를 표하며 인종차별을 규탄했다.

"다양한 배경을 지닌 많은 캐나다인들이 충격과 공포 속에 미국의 소식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흑인차별, 인종차별은 현실입니다. 미국에서만이 아니라 캐나다에서도 그렇습니다."

15년을 살며 느낀 캐나다는 인종차별이 만연한 미국과는 다르다. 다문화사회를 건강하게 유지하려면 민족과 인종간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전제가 사회 기저에 깔려있다. 매년 '전통의 날'과 같이 서로의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행사들을 개최하고, 학생들은 각 가정에서 어떤 명절을 기념하는지 발표하는 등의 교육을 통해 차이를 알아간다. 얼굴색의 다름이 차별의 근거가 될 수 없음을 아주 어릴 때부터 배운다. 한 학교 안의 하얀 아이, 노란 아이, 검은 아이, 갈색 아이, 히잡 쓴 아이, 터번 쓴 아이, 각양각색의 아이들이 친구가 된다.

대도시에 살았더라면 인종차별을 좀더 느꼈을 수도 있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바이러스가 중국에서 비롯됐단 이유로 중국인을 향한 혐오가 번져 정부와 보건당국이 수차례 염려와 경고의 메시지를 내보낸 적이 있다. 마스크를 쓴 아시아인이 공격 당하는 일도 있었다. 대부분 대도시에서 일어난 일들이었다. 이번 미국 경찰 사건 후 행해진 오타와시 흑인들의 인터뷰를 보니 그들이 체감하는 인종차별은 꽤 심한 듯하다. 하지만 15년 동안 주변에서 크게 인종차별을 겪었다는 사람은 없었던 걸 보면 심각하게 널리 만연해있는 현상은 아닌 것 같다.

그럼에도 사회 일각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인종차별 문제에 대해 트뤼도 총리는 눈감지 않고 나아갈 바를 분명히 했다. "당신 나라는 어떻습니까?" 누가 물은 것도 아니지만, 캐나다에서도 인종차별 문제가 현실임을 스스로 인정했다.

"우리는 한 공동체로서 결속해 차별에 저항해야 합니다. 서로를 존중하는 것 뿐 아니라, 이 나라 시스템에 있어 우리도 해야 할 일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모든 캐나다인들이 흑인 차별이나 아시아인 차별 혹은 그 어떤 인종 차별에 대해서도 한마음으로 연대할 것을 촉구하는 바입니다."

2015년 총선에서 '원주민과의 화해 정책'을 약속했던 저스틴 트뤼도였다. 총리가 된 그는 약속에 따라 캐나다 성립 초기 자행됐던 '원주민 아동 강제동화 정책'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어둡고 부끄러운 역사임을 인정했다. 눈물을 참지 못하고 손수건으로 연신 코를 훔치며 원주민들을 향해 거듭 "죄송하다, 정말 죄송하다"고 말하던 총리의 모습을 기억한다. 150여 년 전 정부에 의해 억울하게 사형 당한 원주민 지도자 6명에 대해서도 무죄를 선언해 혐의를 벗겨주었다. 끝내 이루어지진 못했지만, 교황에게도 과거 원주민 아동을 강제 수용한 기숙학교를 가톨릭 교회가 운영한 데 대해 공식 사과하기를 요청한 바 있다.

그러한 저스틴 트뤼도 총리이기에 인종차별 문제를 둘러싼 그의 발언에 신뢰가 간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가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 시스템 개선에 박차를 가하리라는 기대도 하게 된다. 시위자들의 역사적 아픔을 근본적으로 이해하려 노력하기보다는 그들을 쉽게 '폭력배'로 분류하고, 약탈에는 총격으로 맞서겠다 위협하는 미국 대통령과는 확실히 차별돼 보인다.

어릴적 선생님은 우리가 '단일민족'임을 자랑스럽게 가르쳤었지만, 한국도 이제는 사실상 다문화사회로 진입했다. '다문화 이주민 센터' 등을 통해 외국인 거주자들의 적응을 돕기 위한 노력도 많아지고, 다문화 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이해도 높아지고 있다. <다문화 고부열전> <비정상회담> 등 외국인들이 등장하는 TV 프로그램은 날로 늘어간다. 하지만 "사장님, 나빠요!"로 대변되는 이주 노동자들에 대한 열악한 처우, 이민자들을 향한 배타와 혐오는 여전히 사회문제로 대두되곤 한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강 건너 불구경 하듯' 미국 백인 경찰의 비인도적 행위를 손가락질 하고 흑인 남성이 불쌍하다며 '쯧쯧' 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될 일이다. 외국인 거주자 250만 시대라는 요즘,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지 플로이드 #미국 경찰 #흑인차별 #인종차별 #항의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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