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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코로나192505화

'코로나19' 예방의 이면: 친환경의 역설

등록 2020.06.01 11:20수정 2020.06.0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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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회용 위생장갑과 마스크 ⓒ Klaus Hausmann, Pixabay

 
자취를 하거나 개학 연기·재택 근무 등의 요인으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난 사람들은 집 안을 둘러보며 사뭇 이전과는 다른 풍경을 체감할 수 있다. 요 근래 부쩍 집에 쓰레기가 많이 생긴다는 것이다. 특히 플라스틱이나 비닐류의 포장재는 눈에 띄게 증가했다.

코로나(Covid-19) 사태는 일회용품 사용의 재확산을 일으켰다. 5월 5일 무관중으로 개막한 프로야구 KBO리그를 보면 선수 이외에 그라운드 내 직원들이 모두 위생 장갑을 착용하고 있다. KBO 코로나19 대응 통합 매뉴얼에서 볼보이/걸, 배트보이/걸, 그리고 비디오 판독 요원 및 선수단 동행 프런트 등에게 경기 중 마스크와 위생 장갑(라텍스 또는 니트릴) 착용을 업무 방침으로 지시했기 때문이다. 고객을 직접 응대하는 일부 ICT업계 대리점에서도 직원들의 위생 장갑 착용은 필수 사항이다.

4월 15일에 치러진 21대 국회의원 총선에서는 투표 전 소독제로 손을 소독하고, 위생 장갑을 착용하여야 했다. 이 위생 장갑들은 모두 일회용으로, 선거 후엔 폐기함에 버려진다. 10-11일 이틀간의 사전투표일을 고려하면 선거 기간 버려진 일회용 위생 장갑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총 투표자가 29,126,396명이므로 적어도 거의 6천만 장의 비닐장갑이 폐기된 것이다. 원래 비닐장갑은 약품 처리 후 녹여서 재활용하지만, 이번에는 바이러스가 묻어 있을 가능성을 대비하여 모두 소각되었다.

과소비되는 일회용품은 배달 문화에도 스며들었다. 일부 배달 음식점에서는 일반 그릇에 음식을 담아서 배달하고, 일정 시간 이후에 그릇을 수거해가는 방식을 지켜왔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이후 용기를 통한 전염병 확산을 우려하여 일회용기에 음식을 제공하고 있다. 5월 6일 통계청이 보도한 온라인쇼핑동향조사에 따르면 3월 온라인 음식서비스 거래액은 전년 동월 대비 약 80% 증가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 실행으로 사람들이 외출을 자제하면서 집에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는 경우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는 배달 음식으로 인한 일회용품 쓰레기 배출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쓰는 마스크 역시 재사용이 지양되는 일회용품이다. 더군다나 5월 26일부터 대중교통 및 택시 이용 시 마스크 착용이 의무화되었다. 27일부터는 국내·국제선 항공기로 확대 적용되면서 일회용 마스크 폐기량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측된다. 이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서 지시한 '교통 분야 방역 강화 방안'에 따른 것이다.
 
시대 역행의 서막


코로나19 사태가 완화되어 초·중·고교 개학이 확실시되는 시점에서도 일회용품 사용 감소를 기대하긴 어렵다. 이미 상당수 사람들의 마음속에 일회용품은 위생적이고 편리하다는 관념이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일회용품 사용이 위생을 관리하는 확실한 방법임은 명백하다. 현재 다수의 학교에서 급식실에 플라스틱 가림막을 설치하였다. 음식 섭취 중에는 마스크 미착용이 불가피하므로 이로 인한 비말 감염을 방지하고자 하는 대책이다. 학생들의 안전을 보장해야 하는 학교에서 내린 이러한 조치가, 반환경적이기 때문에 부당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코로나가 일회용품 사용에 면죄부를 주는 양태를 보인다면 곤란하다.
  
EU 국가들은 2021년부터 일부 플라스틱으로 제작한 일회용품 사용을 규제한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며 2022년부터는 마트의 쓰레기 봉투와 배달 음식점에서 일회용 숟가락·젓가락을 제공하는 것도 금지할 예정이다. 플라스틱은 그간 환경오염의 주범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규제는 정부와 국민의 입장에서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플라스틱이 소비자에게 위생상 필수적이고 안전한 소재로 여겨지고 있다. 전 세계를 경제적으로 혼란스럽게 한 코로나 사태가 침체 위기를 겪을 뻔한 플라스틱 산업에는 오히려 기회로 다가온 것이다.

미국 플라스틱산업협회(PLASTics)의 CEO인 토니 라도체프스키(Tony Radoszewski)는 3월 20일 미 정부에 '플라스틱 제품을 재난 시 필수품으로 포함할 것'을 요청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일회용 플라스틱이 안전하고 의료용 장비와 식료품 보호 등에 필수적으로 사용된다는 점을 언급하며 '우리는 일회용 플라스틱 덕분에 더 오래, 건강하게 산다'는 입장을 밝혔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이 유행했던 당시를 떠올려 보게 된다. 전염병 확산 후 사람들의 향상된 위생 관념은 일반 컵 대신 일회용 종이컵의 사용으로 이어졌다. 현재까지도 종이컵은 매우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니 코로나 종식 이후 일회용품의 부활은 예상 못 할 일도 아니다. 특히나 정부가 일회용품 사용 규제 완화를 계속 유지한다면 다시금 감당하지 못할 일회용품 대란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타협점

국가가 최우으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자국민의 안전이라면 환경 문제 역시 소홀히 다뤄서는 안 된다. 위생과 친환경이 대립하는 구조라면 분명 문제가 있다.

예기치 못한 전염병의 습격을 겪고 있는 사회에서 일회용품이 필수적으로 소비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이는 임시방편일 뿐 장기적인 해결책이 되어서는 안 된다. 플라스틱 업계가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일회용 플라스틱 대량생산을 합리화하려는 것에 대해서는 정부와 소비자의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

정부는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메르스 때와는 확연히 다른 대처 능력을 보여줬다. 메르스 발병 당시 진단 키트를 보유했음에도 긴급사용제도가 마련되지 않아 대처 수준이 미흡했으나, 코로나 사태에는 이 점을 보완하여 신속한 대처가 가능했다.

그러나 일회용품 사용 문제에 대해서는 여유를 보이지 못했다. 이번 국회의원 총선 당시에도 일회용 비닐장갑 폐기량을 우려해 환경단체에서는 생분해성 비닐장갑을 우선적으로 사용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준비 기간이나 비용 등의 측면에서 한계가 있었겠지만 이러한 반발을 예상하고 미리 대비하지 못했다는 점은 아쉽다. 이번에는 일회용품 사용 문제를 보완할 매뉴얼을 마련할 차례이다.
 
위기를 기회로 


현 상황은 일회용품만이 위생적이라는 인식을 뛰어넘어 위생용품을 친환경적으로 사용·제작할 기회가 될 수 있다. 신소재 화학 분야의 활약을 기대해볼 만하다. 위생이 철저하게 중시되는 일회용 의료 기기나 일회성으로 포장재의 높은 단가가 부담되는 음료수병 등의 경우 다회용 소재로 대체할 수 없다면 자연분해 가능한 플라스틱 소재로 대체하는 방안도 고려해야 한다.

반가운 소식은 최근 네덜란드의 차세대 재생 가능 화학기술업체 아반티움(Avantium)에서 식물성 설탕을 추출하여 화학구조를 변형시킨 플라스틱을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석유로 만든 플라스틱이 완전히 분해되기까지 50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리는 반면에 이 친환경 플라스틱은 수년 안에 자연분해가 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빠른 시일 내에 이러한 친환경적 소재의 시장을 성장시키기 위한 움직임을 보여줘야 할 때이다.
#코로나 #일회용품 #플라스틱 #친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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