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뿐인 승리, 전리품은 엉뚱한 곳에서

[주장] 윤미향 의원과 이용수 여성인권운동가의 기자회견을 보며

등록 2020.06.01 10:31수정 2020.06.02 10:30
0
원고료로 응원
모 단체에서 2번의 독서모임을 만들어 이끈 적이 있었다. 결과는 참혹한 실패였다.처음엔 (내 입장에서 보면) 쫓겨나듯 쫓겨난 것 같고 두 번째는 어떻게 끝을 맺었는지 기억이 가물거린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리더를 할 만한 재목이 안 되는 사람이 리더를 했던 것이 가장 큰 패착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모임을 이끄는 동안 사람들에게 책을 읽게 했고 글을 쓰고 단체에서 느낄 수 있는 소속감이나 어떤 위로를 받게 했으니 그 과정을 본다면 꼭 실패였다고 할 수만은 없을 듯하다.

리더를 할 만한 사람이 아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수평적 리더십이 아니라 수직적 리더십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모임을 만들 때 그리고 그것을 진행시키면서 참 많은 공을 들였다. 시간은 물론이고 돈과 에너지. 돌아보면 어디서 그런 열정이 솟았는지 모르겠다.

나중에서야 그것이 나의 인정의 욕구였다는 것도 알겠더라. 그럴듯한 독서모임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내 존재를 더욱 크게 만들어준다는 생각은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깨달았다. 그뿐 아니라 사람보다는 일, 독서모임 안에 있는 사람과의 관계보다는 독서모임이라는 모임을 더 멋지게 키우는 것에 방점이 찍혔다는 것도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회비를 받았으니(물론 이 회비를 내가 쓴 것은 없다) 그 회원들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했고 민주적으로 운영해야 했음에도 어떤 일을 결정함에 있어 내 독단으로 했다.그것이 발단이 되어 내부 저항자가 생겼다.

나의 그런 모습이 카페의 글로 올라왔다. 그 때 느낀 외로움, 분노, 배신감, 여러 감정이 밀려왔다. 시간이 흘러서야 내가 부족했고 상대의 행위도 꼭 이해 못할 것도 아님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단체를 만든다. 그 사람이 그 모임의 주체가 되어서 이끈다. 혼자 책 읽고 글쓰기 힘들었는데 누군가가 수고로이 앞장 서 모임을 만들고 그 일을 같이 해준다는 것은 참 고마운 일이다. 그래서 처음엔 주체와 객체의 관계가 자연스럽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주체와 객체의 구분이 점점 사라져간다. 모임 안에서 서로의 공헌도가 비슷해져 간다. 이때 쯤이면 처음 모임을 만들었던 사람도 자신이 더 이상 주체가 아니고 회원들도 더 이상 객체가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같이 의견을 교환하고 민주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내가 이 모임을 만들었으니 내가 단독으로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화근이 되어 결국 나는 그 모임을 나왔다. 
 
a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이용수 할머니(92)가 25일 오후 인터불고 대구호텔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미향 더불어시민당 국회의원 비례대표 당선인을 비판했다. ⓒ 조정훈

  
a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인이 29일 오후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활동 당시 회계 부정 등 각종 의혹과 관련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용수 할머니와 윤미향 의원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돈 문제인 것 같다. 그것은 검찰이 조사 중이니 결과를 보면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과는 상관없이 윤미향 의원의 30년간의 노력과 수고는 인정받아야 한다. 또한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통하여 터져 나온 불만들도 노욕으로 치부해서도 안 된다. 그 분의 서운함에는 일을 하는 과정에서 본인도 주체인데 객체로만 머물렀던 것에 대한 불만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것이 개인의 욕망이라 해도 욕할 수는 없다. 인간의 자연스런 감정이다.

성폭력, 노숙자, 위안부 피해자 등 시민단체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들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이고 배움도 짧다. 반면 시민단체를 운영하는 분들은 고학력에 엘리트이신 분들이 많다. 본의 아니게 그 분들이 주체로 서고 도움을 받은 분들은 객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두 분, 윤미향 의원의 기자회견과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봐도 그런 모습이 확연히 보인다. 윤미향 의원의 조리 있고 논리적인 말에 비해(다르게 평가할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용수 여성인권운동자의 말씀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잘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런 현실 때문에 일을 추진함에 있어서 피해자분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기보다는 시민단체 분들의 생각이 더 강하게 반영되었을 수도 있다.

어느 쪽으로 판결 나든 상처뿐인 승리다. 싸움은 치열했는데 그 전리품은 엉뚱한 곳에서 챙기고 있다. 보수언론이나 일본.

속히 진실이 밝혀져 이 싸움이 끝나고 이번 기회로 시민단체나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진일보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이용수 #윤미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3. 3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4. 4 시속 370km, 한국형 고속철도... '전국 2시간 생활권' 곧 온다
  5. 5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