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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코로나192523화

병원 탈출하는 코로나 확진자들... 6월부터 시작된 슬픈 뉴노멀

[코로나 시대의 멕시코] 누적 확진자 10만, 사망자 1만이라지만... 아무도 믿지 않는 숫자

등록 2020.06.04 13:07수정 2020.06.05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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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태평양 유명 휴양도시 아카풀코의 공동묘지. 5월 23일 시정부는 300기의 구덩이를 추가로 확보할 것을 결정했다. 멕시코는 문화적으로 사후 화장에 대한 인식이 매우 부정적이기 때문에 각 지방 정부들은 코로나바이러스 확진 이후 사망한 경우라도 매장을 허용한다. ⓒ Cortesia Ayuntamiento 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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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풀코의 공동묘지에서 코로나19로 숨진 사람들의 매장을 준비하고 있다. ⓒ Cortesia Ayuntamiento de

 
"페스트를 조심해!"

2020년 2월 28일, 멕시코에서 코로나바이러스 첫 확진자가 발생한 다음 날 아침 길에서 만난 어느 촌로의 당부였다.

이미 아시아와 유럽에서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와 사망자들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는 소식이 연일 보도되었지만, 도무지 현실성이 없는 뉴스 정도로 치부되었다. 2020년, 가까운 과거로부터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은 이 시기에, 사람이 죽어 나가는 전염병이라니... '페스트'를 조심하라던, 세상 일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어느 촌로가 아니더라도 대부분 멕시코 사람들에게 코로나바이러스의 등장은 생경했다.

전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이미 한 달 전인 1월 말, 바로 위 미국에서도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가 발생했고 한 달 사이 확진자는 수천 명을 향해 가고 있었다. 이미 멕시코에서도 '비정형 폐렴'으로 진행되는 환자들이 두드러지게 증가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아시아인에 관대하고 우호적인 멕시코에서조차 종종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와 차별 소식이 들려왔다. 유럽 국가들이나 미국에 비해서는 그나마 미미한 편이었지만, 2월 한 달 동안 멕시코에 사는 아시아인들의 마음은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바이러스 전파자라는 혐오의 대상이 되어버린 중국인들은 2월 중순부터 멕시코시티 다운타운에 형성된 거대 상권에서 철시하기 시작했다. 중국인 중에서 첫 번째 확진자가 나오면 그들 상가가 약탈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2월 27일 발생한 첫 확진자는 이탈리아계 멕시코인이었고, 멕시코 내 한국인을 포함한 모든 아시아인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난세의 영웅, 보건부 차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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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부 차관 우고 로페스 가텔 라미레스(Hugo Lopez-Gatell Ramirez)의 4월 28일자 대국민 브리핑. 뒤에 서 있는 사람이 대통령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Andres Manuel Lopez Obrador)다. ⓒ Referente


2월 28일 보건당국의 브리핑 데스크가 꾸려졌다. 보건부 차관 우고 로페스 가텔 라미레스가 대국민 보고를 담당했다.


의사 출신인 그의 보고 방식은 매우 간결했고 충분히 정돈되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보고를 통해 안도하기 시작했다. 그의 보고로 인한 팬 층이 생겨날 정도였으니, 난세의 영웅이라 할 만했다. 이 시대를 위해 준비된 사람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매일 밤 멕시코 사람들은 보건부 차관의 대국민 보고를 기다렸고, 주요 지상파 방송들은 이를 위해 기존 프로그램들의 방송 시간을 재편성해야 했다.

이때만 해도 상황은 '오히려' 희망적이었다. 보건부 차관은 매일 밤 국민에게 상황을 보고하면서 멕시코의 대(對) 코로나바이러스 플랜을 거듭 강조했다. 계획의 골자는 총 3단계로 나뉘었다. 이미 확진자가 발생한 이상 멕시코는 1단계에 들어섰고, 지역감염자가 발생하는 3월 중 2단계로 돌입할 것이며, 4월 말부터 5월까지는 3단계에 들어설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거기에 5월 8일 정도면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 증가 추세가 정점에 닿을 것이고, 이후 감소하기 시작해 6월 25일 정도면 상황 종료에 이를 것이라는 시나리오가 더해졌다.

물론, 이 기간 동안 비필수적 경제활동의 제한이 필요하고 자발적 자택대피도 있을 수 있다고 언급되기는 했다. 하지만 대부분 멕시코 시민들은 이미 유럽과 미국이 코로나바이러스 앞에서 어떻게 무너지고 있는지 충분히 학습했기에, 오히려 정부의 이러한 조치에 안도했다. 게다가 2009년 당시 '돼지 독감' 또는 '신종 플루'라 불린 'AH1N1' 전염병의 진원지로서 이미 어떤 매뉴얼을 갖췄을 것이란 기대도 반영되었다.

분기점 : 4월 21일 숫자 145

3월 20일 이후, 모든 교육 기관의 활동이 중지되었다. 일주일 혹은 보름간의 방학이 있는 4월 초 부활절 기간을 적극 활용하자는 취지였다. 예년대로라면 연중 인구 이동이 가장 많았을 시기지만 정부는 자택 대피를 적극 권장했고 일부 지방정부는 주 간 경계를 봉쇄했다.

그럼에도, 두 자릿수로 유지되던 하루 사망자 수는 100명을 넘어섰다. 아이러니하게도 145명을 기록한 4월 21일의 사망자 통계 수치는 상당수 멕시코 사람들에게 두려움 또는 심적 부담으로 다가왔다. 왜냐하면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24시간 사망자 수가 같은 시간 발생한 피살자 건수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멕시코인들은 오랫동안 마약-폭력 조직 간 갈등을 겪었고, 하루에도 100명을 넘어서는 높은 피살률 탓에 죽음에 동반되는 숫자에 상대적으로 무딘 편이다. 그런 멕시코 사람들도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사망 건수가 살해 건수를 넘어서자 심리적 마지노선에 부담을 느끼기 시작했다. 4월 중순 확진자가 1000명을 넘어서자 4월 21일로 예정됐던 교육기관들의 개학은 무기한 연기됐다.

여기에다 멕시코 보건 당국은 충격적인 발표를 한다. 그간 발표된 코로나19 확진자 숫자는 '공식' 통계일 뿐, 멕시코의 여러 사정을 감안한다면 공식 확진자 수에 최소 8.8배를 곱해 추정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계산대로라면 당장 확진자 수는 1만명을 넘어서는 상황이었다. 코로나19 발생 초기 진단 키트는 태부족이었고 결과적으로 호흡 장애를 보이는 환자들만 검사가 이루어졌다. 때문에 공식 확진자 수에 8.8배를 곱하라는 건 충분히 타당한 계산으로 보였다.

실제 멕시코의 코로나19 검사 건수와 비중은 라틴아메리카 국가 중에서도 가장 낮을 뿐더러 OECD 회원국 중에서도 가장 낮다. OECD 회원국의 경우, 인구 1000명 당 평균 검사 건수가 23건인데 비해 멕시코는 겨우 0.4건에 그쳤다. 

다소 희망적이었던 3월과 '어떻게든 참으면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4월이 가고 5월로 접어들자 멕시코 전반에는 묘한 기대감이 감돌았다. 보건 당국의 시나리오대로라면(!), 5월 8일경이면 확진자 증가 추세가 정점을 찍고 곧 하향할 예정이었으니까. 더불어 5월 18일부터는 그간 제한되었던 일부 경제활동도 재개될 것이고, 6월 1일에는 대부분 활동들이 '정상화'될 계획이었다.

폭로... "연방정부가 사망자 숫자를 숨기고 있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로 흘러갔다. 정점을 찍을 것이라던 5월 8일 이후 확진자와 사망자 수는 더욱 큰 폭으로, 맹렬하게 증가하기 시작했다. 하루 확진자 숫자가 4천~5천명에 이르렀고, 사망자도 500명을 넘어 치명률은 11%에 달했다. 안타깝게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의료진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사망자 중 20% 이상이 의료진이었다. 이 또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기대 대신 두려움과 불만을 품기 시작했고, 일부 주정부는 연방정부가 내놓는 확진자 숫자에 의심을 내비쳤다. 급기야 멕시코 수도 멕시코시티 시장이 연방정부의 사망자 통계 수치를 전면적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결국 멕시코시티 시장은 하루 동안 멕시코시티 전역 병원들에 은밀히 직원들을 파견했다. 그리고 각 병원에서 취합해 온 사망자 수의 합이 연방정부가 당일 발표한 멕시코시티 사망자 수보다 300여 명이 더 많다고 폭로했다. 멕시코시티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주 정부도 연방 정부가 발표한 해당 주의 사망자가 해당 주의 도시 한 곳에서 발생한 사망자 수보다 적은 경우를 지적하며 반박했다.

그 와중에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가 '멕시코 연방정부가 사망자 숫자를 숨기고 있다'라는 제목의 글을 기사화하면서 멕시코 보건 당국의 사망자 수 축소는 기정 사실이 되어버렸다. 결국, 멕시코 보건 당국은 '공식' 사망자 숫자에 4~5배를 곱해야 현실적인 사망자 추정치가 나올 것이라고 발표하기에 이른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증상이 명백함에도 죽기 직전까지 검사 기회를 얻지 못해 사망자 통계에 들지 못하는 경우와, 여러 사정에 의해 누락되거나 혹은 숨겨진 사망자가 있을 수밖에 없으니 알아서 추정하라는 것이었다. 3월 초 보건부 차관 팬클럽까지 등장하며 무한신뢰를 보냈던 멕시코 보건당국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도 이때였다. 보건부 차관은 난세의 영웅에서 '공식' 거짓말쟁이가 되어 버렸다.

5월 말 멕시코의 방송사들은 6월 1일을 향해 카운트 다운을 시작한다. 보건당국은 6월 1일부터 '뉴노멀(New Normal)'의 시대로 들어간다는 청사진이 있었다. 물론, 코로나 이전의 시대로 완전히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만, 공식적으로는 자택 대피령이 종료되고 필수 산업부터 순차적으로 정상궤도로 복귀한다는 계획이었다.

5월 말 멕시코의 '공식' 확진자 수는 9만여 명, '공식' 사망자 수는 1만 명이었다.

6월 1일, 어쨌든 시작된 뉴노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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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태평양 유명 휴양도시 아카풀코의 공동묘지. 코로나19 희생자들을 묻을 묘지를 파고 있다. ⓒ Cortesia Ayuntamiento de

 
하루에 3천 명 이상의 확진자가 발생하는 와중에도 연방정부와 보건당국은 당초 계획대로 진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미 10주 이상 자택에 대피하면서 경제활동을 자제하던 시민들의 압력을 더 이상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다만, 연방 차원의 규제는 모두 풀 것이나 각 주 정부가 자체적으로 판단해 선택적으로 적용하라는 명령을 내리면서 연방정부는 슬쩍 한 발 빼는 양상을 보인다. 이렇게 되면서 6월 1일부터 각 주의 지방정부들이 부담을 떠안는 형국이 되어버렸다.

불행히도 모든 주에 빨간 불이 켜진 상황이니, 주지사들도 코로나바이러스와의 전쟁 최전선에서 총알받이 소총수가 되어 떠밀리는 기분이 든 모양이다. 당장 주지사들은 연합해 연방정부를 상대로 모든 결정을 다시 내려줄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렇게 연방정부와 지방정부가 맞서며 어떤 결정도 내려지지 못한 채, 6월 1일을 향한 카운트 다운만 유일하게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6월 1일, 월요일, 그렇게 멕시코는 매우 조심스럽게 '뉴노멀'의 시대를 시작했다. 일부 주에서는 6월 15일까지 기한을 연기했지만, 수도 멕시코시티를 비롯한 많은 주들이 자택대피령을 종료하고 그간 제한됐던 경제활동들을 재개했다. 가장 먼저 필수 산업으로 분류되는 건설업, 맥주산업, 자동차산업이 재개됐다. 여전히 '건강한 거리두기(Sana Distancia)'를 해야 하고 마스크를 써야 하지만, 거리는 다시 사람과 차로 북적였다. 출퇴근 시간 이들을 실어 나르는 버스와 지하철은 만원 사례를 면치 못했다.

동시에 6월 1일 이날 하루 2771명의 확진자와 237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로써 멕시코의 누적 확진자는 10만 명에 근접했고 총 사망자는 1만 명을 넘었다. 정부가 제안한 '비공식' 계산법에 의하면, 약 90만 명의 누적 확진자와 4만~5만 명 정도의 사망자가 나오는 셈이다. 앞서 5월 29일 보건당국은 사망자 수가 최소 3만, 최대 13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새로운 추정치를 내놓기도 했다. 

누적 확진자 10만 명, 사망자 1만 명이라는 '뉴노멀' 시대의 첫날 마주하는 이 숫자들은 참을 수 없이 가볍게 느껴진다. 비록 추정치라지만, 언제 그 숫자에 이를까 싶어 코로나 시대의 종말이 그저 암담하고 요원할 뿐이다.

연일 각 주의 지방 정부들은 공동묘지에 임시로 수백 기의 구덩이들을 파고 있고, 사후 화장 절차를 받지 못해 며칠씩 기다려야 한다. 또 보건당국의 의료 서비스를 믿지 못하는 확진자의 가족들이 병원으로 몰려가 환자들을 탈출시키는 일들이 속출했다. 제대로 된 보호 장구를 갖추지 못한 채 투입된 의료진은 최전선에서 쓰러지고 있다. 이미 의료진 9천여 명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그 중 120명이 사망했다.

결국 멕시코 각 의과대학교들은 전국의 병원에서 실습 중이던 학생들에게 철수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젊은 학생들의 목숨을 잃게 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 나온 결정이었다. 동료를 잃은 의료진들은 연일 도로를 점거하고 정부를 상대로 보호장구 지급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마스크 한 장 못 사는 하루 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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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13일 멕시코 공공지역 병원 보건요원들이 코로나19 보호장비 부족과 멕시코시티 센터 직원 사망과 감염에 항의하고 있다. ⓒ EPA=연합뉴스

 
뉴노멀 시대의 첫날, 사람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제대로 된 마스크는 여전히 구하기 어렵다. 하루 일당이 마스크 한 장 가격에 이르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멕시코시티 시장은 어떤 형태로든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 했고, 남성은 콧수염과 턱수염을 제거할 것을, 여성은 장신구 착용을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바이러스의 온상이 될 수 있다는 이유였다.

이 와중에 멕시코시티 경찰들은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다운타운의 주요 도로를 점거하고 대통령궁 앞에서 집단 시위를 벌였다. 1일부터 뉴노멀 시대를 맞아 지방 순회를 시작한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대국민 메시지를 발표했다. "진정 우리가 묻어버려야 할 '페스트'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라 부정부패"라고. 왜, 한낱 촌로가 아닌 대통령마저 자꾸만 페스트를 언급하는 걸까.

다만, 이 시절 멕시코인들이 할 수 있는 간절한 기도가 있다면, 1940년대 아프리카 알제리 북서부 도시 오랑에서 발생했다는, 소설 속 '페스트의 시대'가 그들이 살아가는 지금 이곳에서 '코로나의 시대'로 재현되지 않기만을 바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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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15일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의 지하철 메트로 콜렉티브 시스템 이용자들이 사회적 거리 두기 없이 역을 이용하고 있다. 이후 4월 17일 멕시코시티 당국은 세계에서 가장 붐비는 곳 중 한 곳인 멕시코시티 지하철에서 마스카와 스카프 착용을 의무화하겠다고 발표했다. ⓒ EPA=연합뉴스

 
#멕시코 #코로나19 #뉴노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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