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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원격 의료,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의료민영화 아닌 공공의료 강화와 균형발전... 포스트 코로나 시대 대비해야

등록 2020.06.11 11:05수정 2020.06.11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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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의료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기다립니다. [편집자말]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맞이해 원격의료 담론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원격의료는 10여 년 전부터 묵혀 있던 이슈였지만, 코로나19로 다시 시작되었다. 지난 2월 24일부터 5월 10일까지 코로나19로 병원 출입이 어려운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 환자를 위해 26만 건의 전화 진료가 이뤄졌고 오진 '제로'라는 성과를 얻었다. 이와 더불어 문 대통령은 4월 14일 "의사-환자 비대면 의료서비스 육성하겠다"고 천명하면서 원격의료에 대한 논란에 불을 붙였다.

이에 대해 진보적 시민단체와 의사협회 양쪽이 함께 집중포화를 퍼붓고 있다. 시민단체는 원격의료가 개인정보 누출과 함께 의료민영화로 가는 술책이며 재벌기업 제품을 팔아주려는 친재벌, 거칠게 말하면 기승전'삼성'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의사협회는 1차의료기관인 소규모 의원들 문 닫게 하는 정책이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이에 정부는 원격의료를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못 부르듯 '비대면'이란 단어로 대체하고 있다.

정말 우려할 점만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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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격의료 추진 중단과 공공의료 강화 촉구 기자회견이 1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에서 코로나19 사회경제위기 대응 시민사회대책위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그런데 필자는 원격의료는 곧 의료민영화 또는 동네 의원 전멸이라는 고정관념이 아니라, 거꾸로 공공의료를 강화하고 4차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발상의 전환이 가능하다고 본다.

먼저 시민단체가 우려하는 의료민영화를 보자. 최근 여론조사에 의하면 우리 건강보험제도에 대한 신뢰도가 87.7%로 매우 높다. 그리고 이번 코로나19로 가장 망가지고 있는 나라는 의료민영화의 천국 미국이다. 이런 미국을 온 국민이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데 의료민영화 시도는 가당치도 않다. 만일의 하나, 정권이 바뀌어 시도한다고 해도 제2의 촛불이 광화문에 가득 찰 것이다.

개인정보 누출 우려도 마찬가지다. 공공의료 모범 국가 핀란드는 1950년부터 수집한 국민 의료기록을 2007년에 디지털화 하여 칸타 서비스(Kanta Service)란 제도를 도입해 개인과 의료전문가에게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작년에는 '국민의료·사회보장 데이터 2차 활용법'을 통과시켜서 핀란드 내 민간기업과 연구소가 연구목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전면 공개했다.


칸타 서비스 홈페이지를 보면 의료복지 향상을 위한 서비스라고 명시하고 있다. 누구나 휴대폰에서 마이 칸타 (My Kanta)라는 앱으로 본인의 의료정보를 열람할 수 있지만 개인정보 누출은 전무하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핸드폰에서 은행거래 하듯이 보안이 철저하다.

개인 프라이버시를 최우선으로 하고 의료복지가 뛰어난 나라 프랑스도 2018년부터 원격의료를 합법화했고 20개 관련 서비스가 진행 중이다. 3만 명의 의료진이 참여하는 한 업체는 작년 6만 건의 원격진료를 했는데 이번 코로나19로 지난 4월 한 달만 89만 건으로 폭증했다. 일본도 1997년 도서와 산간벽지에 한해 허가했다가 2017년에 전국으로 확대했다. 의료보험이 적용되어 개인 부담은 10~30%이다. 중국은 원격의료를 상대적으로 취약한 의료시스템의 보완 수단으로 정부 차원에서 적극 지원하고 있는데 시장규모가 1조3천억 원을 넘었고 핑안굿닥터라는 1위 기업은 3억 명 회원에 매일 65만 명이 상담하고 있다.

원격의료로 인한 의료비 추가 부담에 대한 걱정도 마찬가지다. 일본 후생성은 고혈압을 대상으로 대면의료와 원격의료의 비용을 비교했는데 원격의료가 대면의료 비용의 22.1%에 불과하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미국은 원격의료로 33% 비용을 줄였고, 응급환자 경우 10% 수준이라는 데이터도 있다. 헝가리도 대면의료에 비해 15% 수준이라는 보고가 있다. 우리는 한 해 외래환자 진료비가 23조 원 규모(2016)로 연평균 6.2%씩 증가해 국가재정에 부담이 큰데 원격의료가 해결 방편의 하나가 될 수 있다.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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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비대면 진료가 공공의료를 강화하고 4차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이라는 발상의 전환이 가능하다고 본다. ⓒ unsplash

  
공공의료의 핵심은 과잉진료를 줄이고 모든 국민에게 양질의 적정 의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과거의 공공의료가 민간이 기피하는 의료서비스를 취약계층 대상으로 보완하는 의미였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질병 예방과 건강관리를 위해 과잉진료를 줄이고 적정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수행하는 것이다.

특히 낙후된 지방 공공의료 강화가 시급하다. 수도권은 의료 접근성이 뛰어나지만, 지방은 그렇지 않다. 의료진 부족 등으로 적절한 의료서비스를 받지 못해 발생하는 '치료가능 사망률'도 수도권에 비해 높다.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의 차원에서 보더라도 의료는 교육, 산업과 함께 갖춰야 할 핵심 인프라이다. 은퇴 후 노년을 공기 좋은 시골에서 보내고 싶어도 병원, 마트가 없어 갈 수 없다는 푸념을 귀 흘려들을 일이 아니다.

여기에 보태어 의사협회에서 걱정하듯 원격의료가 전국 의료기관 중 95%를 차지하는 1차 의료기관, 작은 병원들이 문 닫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수익성을 올릴 수 있게 설계가 가능하다.

해법은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목적지향적인 법 제도다. 원격의료를 단계적으로 실시하되 한시적으로, 예를 들어 초기 5년간 1차 의료기관인 의원과 지방 공공의료기관에 한하고, 대기업과 대형병원 자회사의 시장진입을 제한하여 4차산업 스타트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법 제도를 만드는 것이다. 또한 초진은 무조건 대면진료로 하고 진료 과목도 당뇨 등 이미 안정성과 유효성이 검증된 몇 개만 시작하며 기술발전과 의학적 검증에 따라 확대하는 내용도 포함해야 한다.

요약하면 포스트 코로나와 고령화 시대에 대비해 원격진료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탈피해 발상의 전환을 하자는 것이다. 공공의료의 기본인 국민 전체의 질병을 예방하고, 과잉진료를 없애 양질의 적정진료로 국가 의료비를 절감하며, 1·2·3차 의료기관의 상생 생태계를 조성하고, 스타트업 중심의 4차산업 육성과 일자리 창출을 하기 위한 목적 지향적 원격의료 법이 이번 21대 국회에서 입법되고 시행되길 바란다.

끝으로 정부도 명확한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시도했던 창조경제 이름의 의료민영화 그리고 규제개혁으로 포장된 재벌 위주 정책이 아닌, 공공의료 강화와 균형발전이라는 목적을 분명히 해 시민사회의 우려를 불식해야 한다. 과거의 잘못된 시범 사업도 과감하고 투명하게 정리해야 한다. 새 시대에 맞는 공공의료 강화 그리고 국가경쟁력 제고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정교하며 구체적인 원격 의료 정책으로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대비하길 바란다.
#원격의료 #포스트코로나 #공공의료 #4차산업 #스타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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