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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제한령 이탈리아에서 하루 한 편씩 소설 쓴 작가

[서평] 이탈리아의 김동식, 작가 마누엘라 살비가 쓴 '소설 코비드 19'

등록 2020.06.01 16:53수정 2020.06.01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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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바이러스는 출판계에도 영향을 끼쳤다. 오프라인 서점은 독자의 발길이 뜸해졌고 온라인 서점은 유치원생, 초등학생의 등교 연기로 유아/어린이 분야의 책 매출이 소폭 증가했다. 더불어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나 팬데믹을 분석한 사회과학서 등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사실 출판계의 화제는 엉뚱한 작품에서 비롯했다. 무려 39년 전 딘 쿤츠가 쓴 <어둠의 눈>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예측했다는 것이다. 이 소설에는 중국 우한 외곽의 DNA 재조합연구소에서 개발한 '우한-400 바이러스'가 국가의 거대한 음모의 수단으로 등장한다.


물론 소설의 내용과 현재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전파 양상이 정확히 일치하진 않는다. 단지 '우한'이라는 지명을 39년 전에 예측했다는 이유로 <어둠의 눈>도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처럼 바이러스는 소설가들에게 훌륭한 창작 소재가 되나 보다.  
 

<소설 코비드 19> 표지 ⓒ 가갸날

 
최근 출간한 <소설 코비드 19>는 제목처럼 본격적으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다뤘다. 이탈리아의 작가 마누엘라 살비가 쓴 이 책은 28편의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지난 3월 15일부터 4월 11일까지 하루에 한 편씩 썼단다. 작가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미증유의 코로나 바이러스와 그로 인한 오랜 봉쇄조치로 고통을 겪은 이탈리아 작가로서 코로나의 피해를 슬기롭게 극복한 한국에 깊은 연대를 느낍니다. 이 소설집에 실린 이야기들이 지금 우리 모두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치유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소설 코비드 19>는 우리나라에서 세계 최초로 펴낸 '종이책'이다. 그도 그럴 것이 코로나19 바이러스로 모든 것이 봉쇄된 이탈리아에서 책을 인쇄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대신 마누엘라 살비는 7편씩 'week 1, 2, 3, 4'로 묶어 아마존에 전자책으로 송고했다(드라마틱한 창작의 스토리다!).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정명섭 작가는 마누엘라 살비를 김동식 작가에 비유했다. 

"작가 마누엘라 살비는 이탈리아의 김동식이다. 짧은 이야기지만 독자의 눈길을 끄는 자석 같은 매력이 있다."


'오늘의 유머' 게시판에 하루가 멀다고 작품을 올렸던 김동식 작가의 작업 속도와 그에 못지않게 글도 재미있다고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소설 코비드 19>는 '0번 환자'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한다. 지금으로부터 18년 후의 미래.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전 세계 30억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주인공 레베카는 18세로 코비드, 즉 코로나19 바이러스 보균자다. 그녀는 자신을 잉태한 어머니로부터 수직 감염됐다. 물론 어머니는 죽었다.

코비드의 삶은 고단하다. 생활 구역은 정해져 있고 이동마저 제한적이다. 18번째 생일을 맞은 레베카는 어머니가 남긴 편지를 읽고 오빠의 존재를 알게 된다. 어렵게 사촌에게 연락해 오빠의 행방을 묻지만 돌아오는 건 냉소적인 저주의 말뿐이다. 

"걔가 우리 부모님을 감염시켜 돌아가시게 만들었다. 그래서 내가 쫓아냈지. 어디로 갔는지는 모르겠다. 이제 전화를 끊어야 한다. 두 번 다시는 내게 전화하지 마라. 알았냐?"

결국 '0번 환자'는 레베카의 아버지였고 가족 간 전파로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우리나라도 코로나19 바이러스 발생 초기에 가족 간 감염으로 부모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사례가 있었다. 이처럼 <소설 코비드 19>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투영한다. 

'0번 환자' 외에도 대부분의 작품이 마치 르포르타주같이 바이러스가 창궐한 현실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본다. 하지만 다큐멘터리적인 요소만 있는 건 아니다. 미스터리와 판타지를 가미해 포스트 코로나19 시대를 조망한다. 

이제 세계는 코로나19 바이러스 전과 후로 나뉜다. 모든 산업 분야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미국과 중국의 분쟁이 새로운 냉전 시대를 불러오고 있다. 인종 간 혐오와 차별도 심각한 문제다. 냉전과 혐오를 부추기는 자들은 마누엘라 살비의 말을 경청하길 바란다.

"저는 스토리텔링의 힘을 믿습니다. 스토리텔링은 우리가 지금의 경험을 최대한 활용해 개인적인 성장을 도모할 수 있게 해줄 것입니다. 저의 소설이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더불어 다양한 인간 군상의 행동에 대한 이해를 증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소설 코비드 19

마누엘라 살비 (지은이), 최수진, 이명하 (옮긴이),
가갸날, 2020


#코비드19 #코로나 #바이러스 #마누엘라살비 #가갸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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