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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부에게 산책이란 무엇인가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편과 함께 길을 걸으며 묵묵히 오늘을 살아간다

등록 2020.06.03 09:43수정 2020.06.03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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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거의 끝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태원 클럽발, 쿠팡발 감염 이후로 신규 확진자 수가 다시 늘어나고 있어 걱정이다. 방역 지침을 철저히 준수해야 한다는 재난알림문자가 하루에도 수없이 날라온다. 마스크는 이제 외출 필수품이 된 지 오래다.  

군산에 사는 남편과 나는 밀폐된 공간을 피해 인근 은파호수공원에서 산책을 한다. 날마다 똑같은 일상의 반복이다. 아침을 먹고 차를 마시고 난 뒤 산책을 한다. 도돌이표처럼 오늘이 어제 같고, 어제가 오늘 같은 세월을 살아가고 있다.

산책은 외부의 풍경뿐 아니라 내부의 풍경, 즉 마음을 들여다 보는 일이다.

산책은 보행을 통해 이루어진다. 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며 하얗게 부서지는 햇살과 바람의 결을 음미하다 보면 평소보다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시간을 천천히 흘려보내면 내 안과 밖에서 일어나는 것을 두루 살필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그러면 어느새 내면의 소용돌이도 잦아든다. 사람은 기운이 아니라 기분으로 살아가는 존재다. 기운이 나지 않을 땐 억지로 기운을 내기보다 스스로 기분을 챙기면서 마음과 몸을 추스르는 게 현명하다." - 이기주 <인문학 산책> 중에서
     
산책은 오늘을 살아가는 묵묵한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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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파호수공원 ⓒ 군산시 제공

 
산책하는 일상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6월이 찾아왔다. 계절은 절기마다 느낌이 다르다. 봄이 시작되며 흐드러지게 핀 벚꽃을 보면 축제 같은 느낌이 들고, 봄이 무르익을 때 쯤 새파란 연두색의 잎이 피어오르면 가슴이 두근거리며 생명의 환희가 온몸에 감돈다. 산책길에 피어있는 야생화와 들꽃을 보면 내가 살아 있음이 축복 같고 반갑다. 날마다 자연 속에서 산책을 하면서 느끼는 나의 삶은 소멸이 아닌 생성 그 자체다.
     
길을 걷다가 힘이 들면 남편과 물가의 벤치에 앉아 대화를 나눈다. 집에서는 나누지 못하는 속내가 오간다. 모두 어려운 때 어떻게 세상을 살아내야 할 것인가. 많은 생각을 한다. 곁에서 일어나는 많은 상황들을 생각하면 아프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자기만의 삶에 무게가 있다. 묵묵히 자기 길을 걸어 가야만 하지 않을까...

나이가 들고 주변과 소통이 적어지면서 외로움이 많아지는 것은 어쩌면 사람의 정해진 순리인 듯하다. 남편의 희끗희끗한 흰머리에서 세월의 흔적을 본다. 말수가 적은 남편은 때로 외로움을 더 짙게 느끼는 것 같다. 그 애잔한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 더 시리다.

어느날 낮에 잠깐 누워 낮잠을 자는 남편의 숨소리조차도 마음을 시큰거리게 한다. 때로는 섭섭했다가도, 그런 모습을 보면 쉬이 풀린다.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이 부부란 이름으로 삶의 결을 단단하게 만든다.

매일 산책은 숙제처럼 느껴진다. 하루의 숙제를 해내야만 마음이 가볍다. 누가 대신 살아주지 않을 삶이기에 내가 치열하게 살아내야 한다. 우리는 도무지 끝나지 않는 코로나라는 전염병의 굴레에서 전전긍긍 살고 있다. 언제나 끝이 날까, 아니면 이제 우리 곁에 숨어서 언제라도 같이 살아가려 하는 건가. 자꾸만 의문이 생긴다.

살아갈 날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조차 모르는 나이의 삶이지만 그 지독한 허탈과 무력감 속에서도 그래도 우리 부부는 삶을 이어갈 것이다.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이 켜켜히 쌓이고 쌓여 우리의 삶이 되고 인생이 되니까.

그렇기에 날마다 산책을 이어갈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산책은 우리 삶의 일부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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