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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불처럼 번지는 시위, 트럼프의 대처법, 오바마의 대처법

오바마, 기고글 통해 시위대에 가이드라인 제시 "둘 중 한가지가 아니라 둘 모두를 해야"

등록 2020.06.03 11:33수정 2021.07.12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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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도 '경찰의 흑인 폭력' 항의 시위 열려 2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경찰의 흑인에 대한 폭력에 반대하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미국에서 경찰의 흑인에 대한 폭력에 항의하는 시위가 거세지는 가운데 이날 프랑스에서도 과거 경찰에 연행돼 숨진 흑인 청년 사건에 경찰의 책임을 묻는 시위가 벌어졌다. ⓒ 파리 AP=연합뉴스


백인 경찰에 의해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촉발된 시위가 일주일 넘게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시위대를 '폭도들(THUGS)'이라 칭하며 '약탈에는 총격으로 맞서겠다'는 위협성 발언도 서슴지 않았던 트럼프 대통령은 6월 1일 월요일, 각 주와 시의 리더들에게 보다 강력한 대응을 요구했다.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시위 중 일어나는 폭력과 약탈을 적극 진압하지 않을 경우 연방군대를 배치하겠다'고 했다. 주지사들과의 전화회담에서는 점점 커지는 인종적 불안 앞에 그들이 너무 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질책하면서, 통제불능의 시위대에게 더욱 공격적으로 맞설 것을 촉구했다. 맞불작전을 가속화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안티파(ANTIFA, anti-fascist 파시즘에 반대하는 사람의 줄임말)'를 전국적인 시위의 배후로 지목하면서 그들을 테러 조직으로 지정하겠다고 나섰다. 앞서 그는 백악관 앞에서 시위하는 이들을 향해 조지 플로이드의 추모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조직된 그룹이고 단지 문제를 일으키기 위해 온 것 뿐이라며 음모론을 제기한 바 있다.

조지 플로이드는 알았을까? 자신의 죽음이 트럼프에게 무엇일지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안티파는 이념과 전략을 공유하는 '활동가들의 운동'일 뿐 법에 의해 처벌 받을 수 있는, 뚜렷한 구조를 지닌 조직이 아니다. 더구나 미국 법률은 테러리스트의 지정을 자국 그룹이 아닌 외국 단체에 적용하고 있다.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는 그는 그럼에도 계속해서 이번 시위에 배후가 있음을, 그 배후는 (미국인들의 즉각적인 반발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단어인) '테러리스트'와도 같은 존재임을 주장한다.

11월 대선을 앞두고 자신을 겨냥한 음모가 벌어지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대놓고 '11월 3일'을 강조하면서 5개월 남은 대선을 고대하자고 자신의 지지자들을 독려하기도 한다. 백인 경찰의 무릎에 목이 짓눌리던 그때, 조지 플로이드는 자신의 죽음이 '대선을 고대하는 것'과 연관될 줄 알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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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사망' 시위사태 속 이틀째 종교시설 찾은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부인 멜라니아 여사와 함께 2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인근의 천주교 시설인 세인트 존 폴(성 요한 바오로) 2세 국립성지 방문 중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흑인 사망사건'에서 촉발된 인종차별 항의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번진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대통령의 교회'로 불리는 백악관 인근 세인트존스 교회에 이어 이날 이틀 연속 종교시설을 방문했다. ⓒ 워싱턴 AP=연합뉴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맞붙게 될 조 바이든(Joe Biden, 전 부통령이자 민주당 대선 후보)의 참모들이 체포된 시위자들의 수감을 막기 위해 보석금 지불 단체에 기부했다는 보도를 들어 다음과 같이 비판하기도 했다. "조 바이든 측 사람들은 매우 급진적인 좌파여서 무정부주의자들을 감옥에서 꺼내고 나아가 그보다 더한 일도 하려 하고 있다."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한 진영논리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대선 승리를 위해 이용하기 적당한 '호재'로 여겨지는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 명백한 인종차별 사건으로 촉발된 시위임에도 대통령인 그는 '사회 부조리, 부당함, 탄압, 연대'와 같은 단어를 입에 올리지 않는다. 오히려 '배후, 테러리스트, 급진 좌파, 무정부주의자'와 같은 단어들을 내세워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그는 끊임없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시위의 배후에 대해, 자신을 겨냥한 음모에 대해. 의심하는 척 한다고 보는 편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지지자들을 결집하기 위해, 상대 후보에게 흠집을 내기 위해. 조지 플로이드의 억울한 죽음, 가족들의 애통함, 그러한 죽음이 전혀 생소하지 않은 흑인들의 분노, 오래도록 침잠해있다가 계기가 생기자 마른 장작에 불 붙듯 타오르고 있는 시위의 본질, 그런 것들은 그의 관심 밖인 듯하다.

오바마의 호소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내기 원한다면"

들끓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어 거리로 뛰쳐나온 시위대를 향해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은 '잿밥에 눈이 어두운' 현직 대통령이 아닌,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였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6월 1일 온라인 플랫폼 '미디엄'에 기고한 글을 통해 "어떻게 하면 이 운동이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내는 전환점이 되도록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을 전달했다.

그는 먼저 "전국에 걸친 시위 물결은 경찰관행과 사법제도 시스템을 개혁하는 데 있어 수십 년간 실패를 거듭해온 데 대한 정당한 좌절감을 드러내고 있"다며 시위를 하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평화적이고 용기 있으며 책임감 있고 고무적"이라고 했다.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투표와 정치참여의 중요성'이다. 특히, 기본 토대가 되는 사법제도와 경찰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는 '지역 차원'에서의 정치참여, 즉 주와 지방선거 참여를 촉구했다.

"진정한 변화를 이끌어내기 원한다면 시위와 정치 중 한 가지를 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둘 모두를 해야 합니다. 결집해서 의식을 높여야 합니다. 체계를 정비하고, 개혁을 향해 행동할 후보자 선출을 위해 표를 던져야 합니다. 그것이 핵심입니다."

"사법제도와 경찰 개혁에 대한 우리의 요구가 더 구체적일수록, 선출된 임원들이 시위의 원인에 대해 립서비스만 한 뒤 시위가 끝나면 평소대로 돌아가버리는 행동을 하기란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시위 중 발발하고 있는 폭력에 대해서는 "변명하거나 합리화하지 말고 참여하지도 말라"고 당부한 그는 다음과 같은 말로 글을 맺었다.

"우리의 정당한 분노를 평화적이고 지속적이며 효과적인 행동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면, 미국 역사에 있어 진정한 터닝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기고문은 본인 자신이 흑인으로서 겪어왔을 차별에 대한 분노, 같은 사건이 되풀이될 때마다 시위만으로는 바뀌는 게 없었던 부조리한 경찰과 형사체계에 대한 좌절감, 오랜 세월 공고히 세워져온 인종차별의 거대한 벽을 짧은 임기 안에 허물 수는 없었던 안타까움, 이런 것들이 뒤섞인 절절한 심정으로 쓴 글이었으리라.

주지하다시피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흑인이 숨진 사건은 이번만이 아니다. 이는 단지 해당 경찰의 일탈로 벌어진, 그래서 몇몇 관련자들을 처벌하고 무력으로 시위를 진압한 뒤 넘어가면 될 일이 아니다. 과거에 종종 그러했듯, 시위가 억울함을 토해내고 부당함을 외치는 데에서 끝나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거듭 강조한 바와 같이 시위는 투표로, 지속적인 정치참여로 반드시 이어져야 한다. 개혁을 수행할 수 있는 지도자가 선출되어 미국 사회의 고질적인 인종차별 문제 해결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진정한 터닝포인트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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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현지 시간) 미국 콜로라도 주도 덴버에서 폴 파젠 덴버 경찰서장이 백인 경찰의 가혹 행위에 의한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대와 팔짱을 끼고 있다. ⓒ AFP=연합뉴스


이제 시위는 미국을 넘어 캐나다와 유럽으로까지 번졌다. 프랑스 파리에서는 여러 민족으로 구성된 수천 명의 군중이 '흑인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경찰은 어디에나 있지만 정의는 어디에도 없다(Police Everywhere, Justice Nowhere)' 등의 사인을 들고 행진을 벌였다. 호주 시드니에서도 역시 조지 플로이드의 마지막 말인 '숨을 쉴 수가 없어요(I Can't Breath)'를 연호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이런 시위들은 미국 시위대와의 연대를 뜻함과 동시에, 자국에서도 벌어진 바 있는 유사 사건이 재발되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도 담고 있다. 바이러스의 확산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 SNS를 통한 온라인 시위도 활발히 퍼져나가고 있다.

시위대에는 흑인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유색인종을 비롯해 백인들도 상당수 섞여있다. 경찰복을 입었지만 진압팀이 아닌 시위대의 편에 서서 시위하는 이들을 포옹하고, 함께 기도하고, 무릎을 꿇어 추모의 뜻을 표하는 등 그들과 연대하는 경찰관들의 모습도 보도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6월 2일 화요일 #BlackLivesMatter #BlackoutTuesday(음악계에서 화요일 하루동안 음반 작업을 중지하겠다며 생겨난 운동으로, 추모와 재발방지 촉구의 의미를 담고 있다.) 같은 해시태그를 달아 세계적인 온라인 시위에 동참한 이들이 있다.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며 분노와 비통함으로 시위하고 있는 이들이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들은 혼자가 아니다. '진정한 터닝포인트'를 향한 전세계인들의 염원이 지구 곳곳을 달구고 있다.
#조지 플로이드 #미국 흑인 시위 #인종차별 #트럼프 #버락 오바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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