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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좌천이 내게 미친 영향

[나의 아버지, 나의 아들 ⑩] 과거를 돌이켜보니... 우선 아들의 마음을 읽었어야 했다

등록 2020.06.03 18:41수정 2020.06.04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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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26일, 방송계의 비인간적인 제작 환경에 문제를 제기하며 스스로 생을 달리한 고 이한빛 PD를 향한 엄마의 이야기입니다. 한빛에 대한 그리움과 한빛이 주고자 했던 메시지를 기억하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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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좌천은 나로 하여금 거짓말을 하게 만들었다. ⓒ pxhere

 
중학교 1학년 9월(1971년). 아버지의 갑작스런 발령으로 중학교에 입학한 지 한 학기 만에 전학을 갔다. 경기 북부 포천에서 경기 남부 안성으로 끝에서 끝으로 멀리 갔다. 게다가 아버지가 근무할 면소재지 국민학교는 전기가 안 들어오는 곳이었다. 포천 읍내는 십여 년 전에 이미 전기가 들어왔기에 호롱불을 켜야 한다는 것이 상상이 안됐다.

이사 날 새벽부터 많은 선생님들과 마을사람들이 우리집에 오셨다. 하긴 그 당시 이사라는 자체가 큰 사건이긴 했다. 나도 태어나서 우리 마을에서 이사 가는 집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더욱이 포천은 우리 조상이 5대째 살아온 고향이었고 아버지는 공부하러 서울로 나갔을 때 빼고는 이곳에서만 살았다고 했다.

'좌천'... 전기가 안 들어오는 곳으로 가다

짐을 실은 트럭이 부릉부릉하는 사이로 "좌천당한거지. 그러게 왜 운동장을 빌려 주셨어" 하며 안타까워하는 말들을 속삭이듯 했다. 처음 들은 '좌천'이란 말이 무슨 뜻인지 중1 아이는 알 수 없었지만 뭔가 아버지가 억울하게 쫒겨 간다는 느낌은 들었다. 나중에 교사가 되어 징계성 인사이동으로 '행정내신'이란 게 있다는 것을 알았다. 80년대 관리자 중에도 교사가 이의를 제기하고 심기를 건드리면 행정내신 시킬 수 있다는 협박성 발언을 은근히 하는 이도 있었다.

국민학교 교장이었던 아버지는 70년대 당시 야당 대통령 후보에게 후보 연설을 위한 운동장 사용을 허락했는데 그것 때문에 좌천되었다는 것이었다. 밉보여서 고향과 가장 먼 거리, 전기도 안 들어오는 오지로 발령낸 것이다. 어린 마음에도 청와대에서 어떻게 이런 세세한 것까지 다 아는지 이상했다. 아님 교사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원해주는 교육청에서 이런 조치를 한 걸까? 그렇다면 야당 후보에게 운동장 빌려준 것과 아이들 가르치는 일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그것이 왜 밉보일 일인지 이해가 안 됐다.

아버지와 엄마는 심란하셨지만 우리 형제자매들은 이사가 신기했고 생전 처음으로 고속버스라는 것을 탄다는 것에 마음이 둥둥 떴다. 안성에 도착해서 짐정리를 하는데 TV가 박스도 풀지 않은 채 선반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 그때서야 진짜 전기가 안 들어오는 곳에서 살게 될 것을 실감했다.

나중에 안성 읍내에 사는 친구들이 놀러왔다가 왜 TV를 박스 안에 넣었냐고 해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모른다. 식은땀이 흘렀다. "TV는 바보상자라고 아버지가 보지 못하게 해서"하고 거짓대답을 하고는 혹시 호롱불이 나와 있나 잽싸게 살폈다. 그리고는 허겁지겁 친구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탄로날까봐 쩔쩔맸던 공포의 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서인가 교사가 되어 학생들이 거짓말한다는 것을 알게 될 때도 내가 먼저 불안해했다. 겁을 냈던 어린 내가 떠오르기도 했다. 또 교직원회의에서 '벌떡교사'가 되어야 할 때나 학내문제로 이견을 낼 때도 좌천이란 말이 먼저 떠올라 가슴이 떨렸다. 위축되기도 했다. 소심한 게 정말 싫은데 이미 온몸이 그때를 기억하고 있었다.

한빛의 거짓말

한빛이가 초등학교 4학년이었을 때이다. 퇴근길에 무심히 초등학교 운동장을 들여다봤는데 저 앞 스탠드에 한빛이 있었다. 미술학원에 갈 시간이었는데 혼자서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아이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한참 후 집에 들어온 한빛에게 미술학원 갔다 오냐고 물으니 한빛은 태연하게 "네" 하며 스케치북과 물감을 들어 보여주었다. 나는 추궁할 준비가 되어 있었고 이미 발끈하고 있었다. 감정이 섞인 채 몰아치듯 묻자 한빛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빛의 깊은 눈이 슬퍼지는 순간 나 역시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성을 찾은 것이다.

얼른 심호흡을 하고 "왜 그랬니?" 하니 "미술학원 다니기 싫어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래. 그럼 그만 다니자." 수강료가 남아있는지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억지로까지 보내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다녀봤자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짓말에 대해서는 호되게 야단쳤던 것 같다. 먼저 마음을 읽어줬어야 했는데. 거짓말에 대한 어린 시절 내 기억에서 그렇게 도망치고 싶었건만, 온 몸이 기억하고 있는 게 싫어서 그렇게 몸서리쳤건만 나는 어린 한빛에게 똑같이 씌우고 있었다.

어려도 한빛은 이유가 있었을 것이고 할 말이 있었을 것이다. 미술학원에 왜 가기 싫었는지? 왜 엄마를 속였는지? 거짓말을 하니 어땠는지? 등등 한빛의 마음이 어떤지 물어봤어야 했다. 그런데 나는 혼자 결정했다. "그래.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돼"하고 대단히 쿨한 엄마처럼 했지만 아니다. 이러는 게 아니었다. "한빛아, 네 생각은 어떤데?"하고 먼저 물었어야 했다. 막연한 대답이 나오더라도, 내가 원하는 답이 아니더라도 물었어야 했다.

한빛이 어리다고 나는 내 잣대로 판단하고 충고했다. 중학생이었던 나도 거짓말하고 얼마나 허둥대고 떨렸던가? 공포스럽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한빛한테 집중하지 않았고 온 체중을 실어 한빛을 보지 않았다. 가증스럽게도 나는 아주 도덕적이고 훌륭한 엄마인 양 코스프레했다.

어린이집 다닐 때부터 현장체험학습 김밥은 항상 내가 쌌다. 그래야 하는 줄 알았다. 아침 새벽에 일어나 김밥을 만들고 출근했다. 나중에 대부분의 엄마들은 아파트 옆 상가에서 김밥을 산다는 것을 알았다. 그 시간에 문을 여냐고 하니 전날 예약한다며 이런 질문을 하는 나를 이상한 나라에서 온 앨리스 보듯 했다.

난 몰랐다. 아, 동동거리며 김밥 싸면서 입으로는 한빛을 얼마나 채근했던가? "빨리 세수해. 소파에 있는 옷 입어. 냉장고에서 음료수도 챙겨" 계속 지시했고 한빛을 볶았다. 그 시간에 현장체험학습 장소에 대해 얘기하며 가방을 같이 쌀 걸. 지금 너 마음은 어때하고 따듯하게 물어볼 걸.

아버지가 나에게 왜 전학을 갔는지? 얘기해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그러면 나도 거짓말에 대한 내 불안을 얘기하고 좌천에 대해 물어봤을지도 모른다. 호롱불 아래 라디오를 벗 삼아 살았던 그 시절이 결코 불행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도 한빛에게 우선 마음을 읽어줘야 했다. 한빛에게 미안한 게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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