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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코로나192524화

오랜만에 가게 온 손님의 선물... 눈물이 핑 돌았다

울산의 작은 맥줏집에서 느낀 따뜻한 연대... 나도 누군가의 사회안전망이 되고 싶다

등록 2020.06.04 14:47수정 2020.06.04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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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밤, 호프거리가 텅텅 비었다. ⓒ 전태원

 
혼자서 스몰비어(소규모 맥줏집)를 운영하는 5년차 자영업자다. 4인석 테이블 5개로 이루어진 아늑한 공간에서 울산 명물인 라면 수프 쫀드기 튀김과 생맥주를 판매한다. 자영업을 하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일어난다. 5년 동안 맥줏집을 운영하면서 이제 꽤 단단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이러스의 습격은 정말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코로나19 발병 이후 점점 거리에 사람이 줄더니, '불금'이라는 금요일 저녁에도 거리가 텅텅 비었다. 지난 2월 22일 울산에서 첫 확진자가 나오고 나서 한 테이블도 받지 못하는 날이 이어지자 멍하니 뉴스만 틀어놓게 됐다. 평소 축구 보러 오시는 손님들이 많아서 매일 유럽 챔피언스리그를 틀어놨었는데, 바이러스의 여파로 리그가 중지돼 재방송만 쓸쓸히 볼 뿐이었다.


계속 손 놓고 있다가는 가게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나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점포 방침을 세웠다. 모든 손님들에게 마스크를 끼고 들어오게 하고, 매장 내 소독도 구석구석 했다. 테이블 간 간격도 띄워서 밀집도를 낮췄다. 손님들이 조금이나마 안심하고 맥줏집에 올 수 있도록 방역 현황에 대한 자그마한 포스터도 만들어서 붙였다.

코로나19 감염이 한창이던 3~4월에 오시는 손님 중에는 일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공사현장 작업복을 입고 퇴근길에 들리신 분들, 방역업체에서 일하시는 분들, 출장 오신 분들과 이런저런 걱정들을 나눴었다. 이때, 맥주 추천을 해달라고 요청하시면 가장 달달한 청포도 과일 맥주를 권해드렸다. 잠깐이라도 기분 좋아지는 당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였기 때문이다.
 

달달한 과일맥주 4형제 ⓒ 전태원

   
3~4월에 매출이 전년 동일 기간 대비 60% 떨어졌다. 가게 운영은 비상체제로 돌입했다. 가게 운영에는 월세와 전기요금을 비롯한 고정 지출이 꽤 들어간다. 매출 하락이 장기간 지속되면 생계가 위험할 수도 있었다. 불안감에 소상공인 지원 사업을 찾기 시작했다.

'울산시 코로나19 피해 점포 소상공인 지원 사업'에 지원했지만, 매출 감소액이 기준치(최소 60% 이상)에 못 미치는 40%로 나와서 아깝게 지원자격이 안 됐다. 그렇다고 소상공인 코로나 대출을 받기에는 이자가 마음에 걸려 조금 더 버텨보기로 했다.

그렇게 월세를 내는 날이 찾아왔다. 건물주는 내가 내는 월세가 꼭 필요한 분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연락드려봤지만, 날짜만 미뤄줄 수 있다는 답을 받았다. 우리 가게를 비롯한 맥줏집이 모여 있는 호프 거리에 착한 건물주에 대한 감사를 표하는 현수막이 걸렸을 때 씁쓸했다. 왜냐하면, 내가 호프 거리에서 대화를 나눠본 사장님 중에 착한 건물주를 만난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5월 황금연휴가 다가오면서 잔뜩 위축돼 있던 거리가 조금씩 활력이 도는 게 느껴졌다. 사회적 거리두기에서 생활 속 거리두기로 바뀌면서 단골들도 다시 찾아오기 시작했다. 찾아와준 것만으로도 고마운데, 한 커플은 귀한 마스크를 내게 줬다. "사장님, 문 닫으시면 안 돼요"라는 따뜻한 말에 눈물이 핑 돌았다.


매주 찾아오시던 40대 부부 손님은 내가 민망하지 않게 팁을 주시려고 노력하시면서 현금으로 계산해 주셨다. 손님들과 서로 안부를 물으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뿐만 아니라 코로나19 안내 포스터를 무료로 만들어주시는 분도, 재고가 많이 남은 자영업자들의 가게를 무료로 홍보해 주시는 분들도 있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사회안전망이라는 개념에 '서로 돌봐주고 위로하는 행동'도 포함된다는 것을 느꼈다. 이렇게 많이 받았으니, 부지런히 일해서 나도 다른 사람의 사회안전망이 되어줘야겠다고 결심했다. 힘들 때일수록 주변 사람들의 작은 손길과 온정 어린 한 마디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코로나19 #자영업자 #스몰비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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