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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검이 못푼 '이재용 숙제' 해온 검찰, 오늘 첫 숙제 검사

[세 가지 결정적 장면] 10시 30분부터 이재용 등 영장실질심사

등록 2020.06.08 07:04수정 2020.06.08 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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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뇌물사건, 삼성물산 합병, 삼성바이오 회계부정 모두 가리키는 '이재용 승계작업'... 검찰은 차근차근 명분을 쌓고, 증거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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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삼성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의혹을 수사하는 검찰이 4일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사진은 4일 서울 서초구 삼성 서초사옥 모습. 2020.6.4 ⓒ 연합뉴스


지난해 봄, 국정농단 특별검사팀 관계자는 검찰의 삼성바이오로직스 수사를 지켜보며 "우리는 사실 수사기간이 70일밖에 안 돼 (삼성바이오까지 살펴볼) 여유가 없었다"며 아쉬워했다. 그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복잡하게 얽힌 삼성바이오 회계문제를 두고도 이렇게 말했다.

"(삼성이) 그렇게까지 무리한 이유가 뭐겠냐. 승계작업 말고 다른 이유는 없다."

특검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그래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줬다며 법정에 세웠다. 하지만 진짜 큰 그림, 삼성의 경영권 불법승계를 파헤치기엔 시간이 부족했다. 3년 후, 검찰은 특검이 못 채운 빈칸을 하나하나 메워왔다. 이 가운데 중요한 장면들을 소개한다.

[2017년 11월 14일 서울고법] 수상쩍은 국민연금... "박근혜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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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형표, 박근혜 탄핵심판 증인 출석 보건복지부 장관 시절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 국민연금공단이 찬성 결정하도록 부당한 압력을 가한 혐의로 구속된 문형표 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이 2017년 2월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12차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하고 있다. ⓒ 유성호


'이재용 경영권 승계작업'의 중심에는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있다. 승계작업은 이재용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 강화, 즉 삼성전자 장악을 뜻한다. 2015년 5월 26일 이사회가 1(제일모직) 대 0.35(삼성물산) 비율로 결의한 합병이 그랬다. 제일모직 지분만 가진 이재용 부회장은 통합 삼성물산 주주가 되면 기존보다 삼성전자 지배력을 높일 수 있었다.

하지만 기업 규모 등을 볼 때 제일모직을 더 높이 평가한 합병비율이 이상하다는 말들이 나왔다. 특검은 당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이 두 회사 주요 주주인 국민연금에 압력을 행사한 결과 합병이 성사됐다며 이들을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특검 주장을 받아들였다. 다만 '문형표와 홍완선은 왜 합병 찬성을 강요했나'를 판단하진 않았다.

2017년 11월 14일 항소심 재판부는 그 이유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시'로 봤다. 이 판결문에 박 전 대통령이 어떤 까닭에서 합병 찬성 지시를 했는지까지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특검과 검찰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이재용 부회장 뇌물사건에서 줄곧 국민연금의 합병 찬성을 '부정한 청탁'이라 주장해왔다. 문 전 장관의 항소심은 이 주장이 타당하다고 본 셈이다. 이 사건은 현재 대법원의 최종 결론을 기다리고 있다.

[2018년 11월 14일 증선위] "삼성바이오 회계는 잘못됐다"
 

2018년 11월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김용범 증권선물위원장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심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 금융위원회


삼성물산 합병의 '후속작업'도 의혹 대상이었다. 특검은 이 가운데 신규 순환출자고리 해소를 위한 주식처분 문제를 삼성 뇌물 사건을 수사하며 밝혀냈다. 그리고 2018년 11월 14일,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는 또 다른 의혹, 삼성바이오의 2015년 회계를 검찰에 고발하기로 의결한다.


삼성바이오는 미국 바이오젠사와 합작해 세운 삼성바이오에피스를 2012~2014년까지는 '단독지배'로 회계처리를 하다가 2015년 갑자기 '공동지배'로 바꿨다. 이때 기존에 공시하지 않았던 부채를 밝히면서도, 회계처리 기준을 변경한 결과 에피스의 몸값은 4조 5천억 원 더 늘어났다. 증선위는 이 부분을 '잘못된 회계'라고 판단했다. 딱 거기까지였다.

이후 삼성바이오 회계문제가 삼성물산 합병 '뒷수습'이라는 정황이 하나 둘 드러났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문건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합병 전 제일모직을 높게, 삼성물산을 낮게 셈하려고 고심했다. '에피스 고평가→삼성바이오 고평가로 삼성바이오 지분을 소유한 제일모직 가치를 높인다'도 그렇게 짜낸 방안 중 하나였다. 박 의원은 이렇게 만들어진 합병비율을 끝까지 정당화하기 위해 그룹 차원에서 삼성바이오 회계장부를 건드렸다고 주장했다. 검찰도 같은 의심을 품고 수사를 진행해왔다.

삼성이 증선위 의결 자체를 두고 취소소송을 제기한 만큼, 증선위 결론만으로 '삼성바이오 2015년 회계는 조작'이 되진 않는다. 검찰은 검찰대로 이 일이 범죄라고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증선위 고발을 계기로 검찰은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할 기회를 잡았다. 삼성바이오가 빼돌린 증거까지 추가로 확보하며 '이재용 승계작업'의 빈칸들을 채워나갔다.

[2019년 8월 29일 대법원] '승계작업' 최종 확인... 그렇다면 합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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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8월 29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연루된 '국정농단' 사건 상고심이 열리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그사이 '피고인 이재용'의 뇌물사건 대법원 선고날짜가 잡혔다. "이 사건의 본질은 정경유착"이라던 1심과 달리 항소심은 '이재용은 어쩔 수 없이 뇌물을 줬다'며 집행유예를 선고했고, 범행동기인 경영권 승계작업의 존재마저 부정했다.

하지만 2019년 8월 2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 다수 의견은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권 승계라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줬다는 것이었다. 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경영권 승계작업의 일환으로 이뤄졌다고 했다. 그렇다면 합병은 정말 공정하게 이뤄졌을까? 대법원 판결은 이 질문을 '합리적 의심'으로 볼 수 있는 기틀이 됐다.

민사소송이긴 하지만, 2016년 5월 서울고법이 삼성물산 합병 당시 주가를 의심한 판결도 검찰에겐 또 다른 힌트다. 재판부는 옛 삼성물산 주주 일성신약 등이 주식매수가격이 너무 낮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합병 자체로 인해 이해관계가 있는 측에 유리하거나 불리한 거래 행위 등이 존재한다고 추정할 수 있다"고 했다. 삼성물산 주가를 일부러 낮춘 정황이 엿보인다는 뜻이다. 검찰은 삼성물산이 신규 사업 수주 등 호재를 감춰 주가 하락을 유도했을 가능성도 의심하고 있다.

다만 일성신약은 합병 자체가 무효라고 제기한 소송 1심에서 졌다. 2017년 10월 19일 선고 후 곧바로 항소했지만 서울고법은 아직까지 기일도 잡지 않았다. 주식매수가격소송의 경우 삼성물산 쪽 상고로 현재 대법원에서 4년 가까이 심리 중이다.

[2020년 6월 8일 서울중앙지법] 검찰 대 이재용, 진검승부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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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뇌물공여 혐의 피의자로 특검 출석 2017년 1월 12일 처음으로 국정농단 특별검사팀 사무실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실상 이때부터 문제된 경영권 승계 의혹의 최종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으로 2020년 6월 그는 다시 한 번 피의자가 됐다. ⓒ 공동취재사진


지난 4일 이재용 부회장 영장청구 소식이 들리자 변호인단은 '검찰이 해도 해도 너무한다'며 반발했다. 이들은 "이 사건 수사는 1년 8개월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50여 차례 압수수색, 110여 명에 대한 430여 회 소환 조사 등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강도 높게 진행돼왔다"고 비판했다. 또 삼성물산 합병이나 삼성바이오 회계 모두 정당했고, 이 부회장 쪽은 도저히 혐의를 수긍할 수 없다고 했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국정농단에서 출발한 수사가 이제서야 완성됐다는 목소리도 높다. 삼성바이오 회계부정 의혹을 제기하고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문제를 꾸준히 지적해온 참여연대는 5월 14일 논평에서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뇌물사건, 삼성물산 합병, 삼성바이오 회계 부정 세 가지는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라는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됐다"고 강조했다.

남은 것은 법원의 판단뿐이다. 검찰과 이재용 부회장은 1차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에서 진검승부를 벌인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원정숙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오늘(8일) 오전 10시 반부터 이재용 부회장과 함께 영장이 청구된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부회장), 김종중 전 미래전략실 전략팀장(사장)의 구속 여부를 심리할 예정이다.
#이재용 #검찰 #국정농단 #삼성 불법승계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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