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 정착은 불가능할까

[리뷰] 정욱식 지음 '한반도의 길, 왜 비핵지대인가?'를 읽고

등록 2020.06.09 09:16수정 2020.06.09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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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가 처한 지정학적 입지는 논외로 하자. 식민지 피지배를 거쳐, 분단과 전쟁, 정전상태에서 분단고착화와 끊임없이 이어져온 대립과 갈등도 논외로 두자. 북한이 어떤 이유에서 중국, 러시아와 멀어졌는지, 북한이 어떻게 미국의 주적으로 부상하게 되었는지도 뒤로 미뤄두자.

바라보는 시각은 다르겠지만, 이는 우리민족 의사와는 무관했다. 강대국의 일방적인 강요와 그 반작용으로 파생되었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불행하고 불가피한 역사였다. 물론 이런 명제들을 논의의 뒤로 미뤄두는 게 절대적일 수 없다는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다. 현재 우리는 앞선 역사가 닦아 놓은 길 위에 무람하게 서 있기 때문이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화로, 남북은 급격한 화해 분위기로 접어들었다. 2018년 꿈 같이 아름다운 봄날, 두 정상은 판문점 남측에서 만났다. 이 만남으로 북미정상회담 일정이 결정되었다. 회담이 임박한 5월 24일, 트럼프의 일방적인 회담 취소 발표가 있었다. 남북 두 정상은 이틀 후 전격적으로 판문점 북측에서 다시 만난다. 

이 만남으로, 북미정상회담이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성사되었다. 한반도는 꿈같이 황홀한 봄날을 지나고 있었다. 아니 그렇다고 모두가 착각하고 있었다. 달콤한 향기에 취해 있었다. 가을엔 평양과 백두산을 오가는 남북정상회담이 이어졌고, 이는 2차 북미정상회담으로 연결되었다.
   
하지만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북미정상회담은 처절한 것이었다. 서로의 입장 차이만 확인하며, 되돌리기 어려운 상황으로 빠져 들었다. 정치적으로 이득을 취한 미국의 뒤통수치기였다. 그러나 트럼프의 기행은 계속된다. 작년 6월 30일 판문점 번개가 그것이다.

김정은과 친밀한 관계라고 말한다. 하지만 북한은 무지막지한 경제제재와 봉쇄에 갇혀 있다. 2019년 두차례 만남은, 북한으로선 굴욕에 가까운 것이었다. 북은 체제위협과 생존위협에 동시에 직면하는 급박한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비핵지대는 '국제조약 등에 따라 핵무기의 제조·저장·실험·배치 및 행사 따위가 금지된 지대'를 말한다. 이미 일반화 되어, 세계 여러 지역에서 채택하고 있기도 하다.

북한은 오래전에 '한반도 비핵지대'를 요구했다. 그들로선 생존 문제였다. 하지만 미국이 이를 거부했다. 미국이 자기들 이익을 저울질한 결과였다. 북은 힘 대 힘이라는 전략을 취할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렸다. 바로 핵 보유였다.


봉쇄에 가까운 경제제재는 각오한 일이었다. '자력갱생'이라는 실현가능성 낮은 전략을 취했다. 미국은 이런 여건을 활용, 북을 깡패 혹은 테러집단으로 몰아부쳤다. 부시의 '악의 축' 발언은, 미국의 이런 조급함과 중국을 견제하려는 전략이 하나의 슬로건으로 나타난 단면에 불과했다.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핵을 앞세워, '힘의 균형자론'을 만든 나라는 미국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마찬가지다. 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그들의 두려움과 조급함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장고하며 긴 바둑을 두는 중국 전술에, 조급한 미국의 두려움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미국의 '동아시아 회귀전략'은, 그들이 갖고 있는 조급한 마음을 드러내는 또 다른 현재이다.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에겐 '방관자적 대변인'에 불과하다. 자기들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 아닌, 북한으로 인해 생기는 갈등을 가급적 회피하려 한다. 북한으로 인해, 미국과 적대적인 관계로 내몰리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봉쇄하려는, 미국의 전술전략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최근에 들어서는 특히 중국이 주 타깃이 되어 있다. 기회주의적인 행태를 보이는 일본을 논하는 것은, 어떤 측면에서는 무의미해 보인다. 미국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행동이, 한반도를 둘러싼 나라들이 취하는 자세의 전부이다. 아직은 미국이 전 세계 패권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변하겠지만 말이다.

'한반도의 길, 왜 비핵지대인가?' 책 표지. ⓒ 출판회사 유리창

 
<한반도의 길, 왜 비핵지대인가?> 저자 정욱식은 '한반도 비핵지대'라는 테제를 제시했다. '비핵화'를 완결시키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이라 한다. 형태는 조약(Treaty)이 아닌, 협정(Agreement)을 말한다. 역시 미국 내부문제 때문이다. '비핵화' 개념부터 재규정하자고 한다. 북미회담 결렬은 여기서 부터 말미암았다고 주장한다.
   
북한의 태도변화를 주문한다. 70년간 미국과 대립한 역사와 지속성 문제를 뛰어넘어, 공존공영의 길을 찾는 획기적인 변화를 주문한다. '미국이 납득(?)할 만한 이익'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남한은 현재 한미일 체제를 더 이상 확대시키지 않는 선에서, 중국을 자극하지 않는 전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광해군 중립외교가 떠오른다. 군비증강을 단계적으로 체감시켜 나갈 것을 주문한다.

저자의 주장 모두에 동의한다. 비핵지대, 아니 분단 상황의 극복과 평화정착은 그만큼 어렵다. 첨예한 이해관계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단계적이니, 포괄적이니, 동시적이니 하는 하위개념들이, 다 이해관계에 종속되어 있어 보인다.

비핵지대는 외줄타기를 방불케하나, 전혀 해결 방안이 없어 보이진 않는다. 한반도를 둘러싼 모두의 이익과 안전 그리고 지속가능성에 대한 동의가 선제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과연 미국이?"라는 물음이 생긴다. 이런 시각을 거둬들이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사자인 북한에게 가장 절절하고 시급한 물음일 것이다.

결국 미국이다. 미국 내부의 복잡한 역학관계와 갈등, 전략적인 속내가 문제시 된다. 군수산업과 한반도 분단으로 기득권을 지키려는 관리들, 주한미군을 통해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려는 그들 내부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이해관계는, 마치 영화 <대부>에서 알파치노가 파놓은 함정과 쳐놓은 덫을 연상시킨다. 끝이 없어 보이는 함정과 덫은 동시다발적으로, 그리고 보다 점진적으로 증대되어 요구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핵폭탄처럼 터트려질 개연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미국의 주문은 결국, 남북이 모두 '반 중국화의 길'로 나서기를 바라는 선에서 매듭지어질 공산이 매우 높아 보인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이 납득할 만한 이익'을 저자는 물론, 우리가 너무 가벼이 취급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책을 읽는 내내 강하게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비핵지대'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나라에게 이익이 될 개연성이 높은 방안이라고 생각된다. 비핵지대를 선포하자는 저자의 주장은 그래서 시의적절하다. 이제 비핵지대를 '시민운동'으로 승화시킬 차례가 되었다고 본다. 이 책이 그런 시민운동의 맹아가 되어 주었으면 한다.

사대(事大)와 사소(事小)를 다시금 생각한다. 강한 힘과 약한 힘이 공존 공영하던 과거 원리를 되새겨본다. 서로의 힘을 인정하고, 쌍방이 같이 공존 공영하는 질서를 찾아가는 지혜. 사대와 사소를 찾아내는 지혜가, 지금 한반도에서 최고의 덕목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최초의 틈을 찾아가는 약속이 '한반도 비핵지대'가 되길 희망해 본다.
덧붙이는 글 제 블로그(https://blog.naver.com/shrenrhw/221987119143)에 게제한 내용을 각색하였음.

한반도의 길, 왜 비핵지대인가?

정욱식 (지은이),
유리창, 2020


#한반도 비핵지대 #평화정착과 통일 #한반도 주변국가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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