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비를 떼이다

[나의 전단지 알바노동기] 전단지 알바 5년 차의 이야기 1-4

등록 2020.06.08 09:16수정 2020.06.08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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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전단지를 부착하는 장소는 아파트에서 길가의 전봇대로 늘어났다. 이제 내가 출근을 하면 담당자는 지도를 보며 '아파트로 가는 길마다 전봇대가 보이면 전부 다 붙이라'고 말했고, 나는 더 늘어난 노동량과 갈수록 더워지는 날씨를 견뎌야 했다.

어느 날부터 담당자는 내게 아파트가 아닌 주택가를 돌아다니며 전단지를 부착하는 일을 시키기 시작했다. 나는 일 중간중간 어느 정도 녹인 얼음물을 마시며 빌라 주차장이나 주택 담벼락에 기대 앉았다.

주택가를 돌아다니며 전단지를 부착하는 것은 아파트 단지를 돌며 전단지를 부착하는 것보다 몇 배는 더 힘든 노동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하지만 주민들에게 들킬까봐 노심초사하며 비상구 계단에 앉아 있는 것보다는 마음 편하게 쉴 수 있었기에 그만큼 자주 휴식을 취할 수 있어 그 점만은 좋았다.

돈을 떼이다

일을 끝낸 후 나의 유일한 낙은 집 근처에 있는 서점에 앉아 책을 읽는 것이었다. 새로 나온 신간소설이나 그 외 여러 가지 책을 읽다 보면 밤 9시쯤이 됐고 그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가 늦은 저녁을 먹었다. 그날도 밤 9시가 되어 집에 가던 길이었는데 골목길에서 느닷없이 튀어나온 차 사이드미러에 왼손을 치이고 말았다.

병원에 가본 결과, 의사는 그저 인대가 조금 늘어났을 뿐이라며 2주 정도면 나을 거라 말했고 나는 그 말만 믿고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교통사고가 나 손을 다쳐 2주 동안 일을 못하겠다고 전했다. 담당자는 내 이야기를 듣고 그럼 2주 뒤에 보자고 했고 일은 그렇게 잘 해결되나 싶었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의사가 말한 2주가 지나도 내 손은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매일매일 손에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져 저절로 으악 소리가 나올 지경이었고, 의사는 그저 회복이 더딜 뿐이라며 시큰둥한 반응만 보였다. 하. 지금 생각해도 그 의사가 얼마나 얄미운지 모르겠다. 나는 그때 이러다 손을 영영 못 쓰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했는데 말이다.


그렇게 교통사고가 나고 3주인가 되었을 무렵, 나는 의사가 말한 2주가 지나도 손이 낫지 않았으니 일을 그만둬야 할 것 같다고 요가학원을 찾아가 이야기했다. 요가학원에서는 30회를 채우지 못했으니 돈을 주지 못할 것 같다 이야기했고 나는 여태 일한 돈은 주셔야 할 것 아니냐고 따졌으나 돌아온 답은 "그럼 신고하세요"였다. 정말 무슨 배짱이었던 건지 내가 그 요가학원 담당자와 팀장 등에게 묻고 싶지만 물을 방법이 없으니 뭐.

답변을 들은 나는 당시 노동자연대에서 활동하고 있던 아는 형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아, 오해하지 마시라. 나는 남성이 아니다. 그저 운동권 후배가 운동권 선배에게 붙이는 호칭으로서의 형을 쓸 뿐이다. 형은 내 이야기를 듣더니 그쪽 전화번호를 알려줄 수 있냐고 묻고는 정말 학원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요가학원이죠?"로 시작해서 "아, 저는 노동자연대의 이병무라고 합니다"로 끝나던 목소리가 지금도 기억난다.

형의 전화를 받은 담당자의 반응이 어땠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그래서 어쩌라고?'였을지도. 그러니 노동자연대라는 생소할 테지만 이름만으로도 노동자들의 조직으로 보이는 곳에서 활동하는 사람의 전화를 받고도 돈을 주겠다는 말은 없었겠지. 애초에 근로기준법 어기는 놈들이 그런 거 무서워할 리가 없잖아?

결국, 그날 화가 나서 술을 잔뜩 마신 나는 담당자의 신상을 페이스북에 올리는 실수를 저질렀고, 그걸 본 담당자에게 글을 내리라고 연락이 오더니 그 뒤에 내리지 않으면 고소하겠다는 말과 함께 돈을 줄 테니 일단 만나자는 연락까지 왔다.

약속한 날, 약속한 시간에 가니 담당자와 팀장, 원장 등 셋이 앉아서 왜 이런 글을 올렸느냐 화를 내더니 글을 내리지 않으면 돈을 주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게 한 시간여 이야기를 했을까. 그쪽에서 내 계좌로 내가 그동안 일한 돈을 입금했고 나는 그 자리에서 글을 내리고 죄송하다는 사과를 했다.

결과적으로 그 일은 어쩌면 내가 이긴 거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황당한 건 당당하게 법을 어기고 임금을 떼먹은 인간들이 자기들 신상 알려지는 건 무서워했느냐는 말이다. 뭔가 좀 황당하지 않나? 누군가에게 무슨 짓을 한다는 것은 그에 걸맞은 결과를 가져온다는 뜻이기도 한데 말이다.

물론, 내 행동이 결과야 어쨌든 전략적으로 옳지 않을 수도 있었다. 정말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할 수도 있었으니까. 그러나 그때의 나는 그런 것을 생각하기에는 아직 미숙했던 것이 사실이었으니 이제 와 그때의 행동이 전략적으로 옳았다 옳지 않았다를 이야기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본다. 

그러니 이번 이야기는 그저 내가 돈을 떼일 뻔했던 이야기로 남겨두기로 하고, 그때 도움을 줬던 병무 형에게는 정말 감사한다는 말을 전한다.

"형, 그때 감사했습니다. 좋은 동생은 아닐 텐데 그때 도와주려 하셔서, 그리고 여러 방면으로 챙겨주셔서 감사해요. 나중에라도 돈 많이 벌게 되면 탈모약 좋은 걸로 사드릴게요."

[나의 전단지 알바노동기]
1-1. "알바비 45만원, 30회 이상 일해야 줍니다" http://omn.kr/1no5d
1-2. 아파트 꼭대기층부터 1층까지... 욕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http://omn.kr/1nopj
1-3. 경비아저씨와 전단지 알바, 쫓고 쫓기는 추격전 http://omn.kr/1nr9u
#노동 #전단지알바 #알바노동 #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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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지 몰라 답답한 1인입니다. 가장 인간적인 인간이고 싶습니다만 그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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