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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운동하면 생기는 일들

[인터뷰] <여자가 운동을 한다는데> 저자 이은경이 말하는 여자의 몸, 여자의 운동

등록 2020.06.14 17:51수정 2020.06.14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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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구한 스포츠의 역사 속 주인공은 언제나 남성이었다.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중의 하나인 축구와 야구 역시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비단 이것은 프로 스포츠뿐만 아니라 생활 체육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85년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답한 여성의 비율은 89.4%였다. 하지만 이제는 시절이 변했다. 성별에 상관없이 모두가 자신이 좋아하는 운동을 할 수 있고, 남성과 똑같이 성적만 좋으면 부와 인기를 누리는 여성 프로 스포츠 선수도 많이 등장했다. 아니, 모두가 그렇게 '믿는' 시대가 왔다고 하는 것이 더 적확할지 모르겠다.

<여자가 운동을 한다는데>의 저자인 이은경 기자는 책을 통해 이런 현실을 적나라하게 꼬집었다. 그런 한편 다양한 층위의 운동하는 여성들, 스포츠정책과학원의 박사, 몸에 관한 팟캐스트 기획자 등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래서 이 책은 여성과 운동에 대한 인문학, 사회학적 접근인 동시에 이 땅의 여성들에게 본격 운동을 권하는 도서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이은경은 주장하지 않고, 그저 보여주는데 그래서 이은경의 설득은 묵직하다.

지난 8일 개포동의 한 카페에서 <여자가 운동을 한다는데>의 저자 이은경을 만났다.

운동 잘해도 여자 선수들에게 따라붙는 '외모 품평'들
 

여자농구선수들 ⓒ 이은경

- 자기소개를 하자면?
"1999년 스포츠 신문사에 입사해서 기자로 14년 정도를 일했다. 그 이후에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1년 정도 스포츠 기사 편집을 하기도 했고, 잡지사에서도 일했다. 지금은 온라인 스포츠 매체에서 일하고 있다. 따지고 보면 플랫폼만 바꿔가면서 스포츠 콘텐츠 관련 일을 한 지 20년이 넘은 셈이다."

- 스포츠 전문 기자의 직업 환경은 어떤가?
"스포츠 기자라는 것이 남들 일할 때 놀고, 남들 놀 때 일하는 직업이다. 보통 경기가 저녁에 있고, 빅 매치는 주로 빨간 날에 있고. 어릴 때는 그런 걸 즐기기도 했었다. 그러다 2011년에 결혼해서, 2012년에 아이를 낳았는데 이 직업이 아이 키우면서 하기 적합한 환경은 아니다. 그래도 나름 하다 보니 정을 붙이게 되었고, 그러다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 이번에 출간한 책 <여자가 운동을 한다는데>는 제목도 그렇지만 기획 자체가 독특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
"20년간 스포츠 현장을 취재하면서 살았다. 제일 잘나가는 스포츠 스타들을 가까이에서 접했고,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는 현장을 직접 봤고, 그들을 인터뷰하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실제로 운동을 아주아주 못한다. 내가 1977년생인데, 이 세대의 여성들은 운동에 대해 제대로 배우거나, 운동과 친하게 자랐던 세대는 아니다. 나이 마흔이 지나 뒤돌아보니 그게 뭔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물론 스포츠의 세계는 엘리트 스포츠가 가장 빛나는 분야인 건 사실이지만 그것도 일부일 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다른 세계를 줄곧 바라보면서 살았으면서도, 정작 스스로 운동이란 걸 해야겠다는 것은 시도조차 못 했던 거지. 그런 고민이 이 책을 기획하게 된 시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책을 통해서 혹시 나와 비슷한 또래가 보게 된다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는 걸 얘기 해주고 싶고, 더 젊은 세대라면 빨리 운동과 친해지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쓰게 되었다.

덧붙여 이 책은 절대 여러분 운동 너무 좋아요! 무조건 해야 해요! 이렇게 주장하는 건 아니다. 다만 여성들이 운동에 관해 가지고 있는 심리적인 문턱 같은 걸 낮추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여자가 운동을 한다는데> 표지이미지 ⓒ 클

- 책은 총 2부로 구성되었는데, 1부의 주요 내용은 엘리트 스포츠와 생활 체육에서 여성들이 처한 현실에 관한 것이다. 예전엔 몰라도 이제는 여자 스포츠 선수들도 남자 선수와 비슷한 대우를 받고, 성적만 좋으면 똑같이 부와 인기를 누릴 수 있는 시대가 된 것 아닌가?
"이게 보는 각도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다. 나 같은 경우는 엘리트 스포츠 위주로 오래 취재를 했기 때문에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보수적인 편이다. 이를테면 퍼포먼스 측면에서 여자 선수가 남자 선수들에 비해서 객관적인 수치가 모자라는 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자 선수들이 돈을 적게 받는 건 관중 동원력이나 상품성에서 떨어지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한다. 어떤 선수의 상품성이 100인데 이 선수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세상이 억지로 50으로 찍어 누른다? 그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철저히 자본주의의 원리로 돌아가는 프로 스포츠의 세계에선 더더욱.

다만 여자 선수들에 대한 기본적인 시선에 대한 문제와 차별이 있는 것도 엄연한 현실이다. 남자 선수는 잘하기만 하면 외모와 상관없이 그냥 잘하는 선수다. 반면 여자 선수는 실력이라는 기준 이외의 부차적인 시선이 너무 많다. 그러니까 못하면 못한다, 잘하면 잘한다, 이런 평가에서 끝나지 않고 외모에 대한 품평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책 중간에 인터뷰하다가 들은 이야기인데, 여자 골프 선수들이 성형수술도 많이 하고 경기장에 나올 때 풀 메이크업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처음엔 그게 뭐 어때? 운동도 잘하는 선수들이 잘 꾸미고 나오면 더 멋있는 거 아냐? 하고 가볍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본인이 좋아서 꾸미는 것도 있지만 구조적인 억압도 분명히 있다는 거다.

여자 선수들이 꾸미지 않으면 자기 관리를 못하는 선수라는 시선이 팽배하다. 물론 전부는 아니겠지만 남자 선수들에 비해 그런 시선이 훨씬 많다. 월등한 실력을 가진 선수가 관리를 하지 않으면 살 좀 빼지, 성형 좀 하지 이런 얘기를 듣는다는 거다. 사람들은 그런 꾸밈이나 성형을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다고 얘기하지만 과연 이것을 강요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까?"

- 기자 입장에서도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을 것 같은데?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민망한 측면이 있다. 나도 스포츠 기자로서 그런 콘텐츠를 생산하는 사람 중에 하나이기 때문에. 또 이런 것도 있다. 예를 들어 미남 스포츠 스타 어쩌고 하면서 남자 선수들의 미모를 칭송하는 기사를 쓰면 100% 욕이다. 기자라는 게 고작 기사로 자기 소원 풀이나 한다는 말도 있고... 기레기라는 말은 뭐 수도 없이 들어서...(웃음) 그런데 미녀 스타 어쩌고 하는 기사를 쓰면 반만 기자 욕이다. 나머지 반은 감사합니다, 혹은 오늘은 얘로 정했다는 이런 댓글이 차지한다.

그런 댓들이 쭉쭉 달리면 조회 수가 올라간다. 기자 입장에선 그게 곧 성과다. 그러니 회사에선 이런 기사를 쓰라고 압박하고, 기자는 별로 쓰고 싶지 않고... 그런 딜레마가 있지. 어쨌든 스포츠 섹션에 댓글 다는 사람들은 절대적으로 남자고, 그것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격한 댓글도 많이 달린다. 얘기 나눠보면 이런 것들 때문에 선수들도 굉장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한다. 물론 기자도 마찬가지고."

운동하기 위해 여성들이 넘어야 할 문턱
 

하로인즈 ⓒ 이은경

- 생활 체육적인 측면에서도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문제들이 있을까?
"기본적으로 남성에 비해 여성들이 넘어야 할 문턱이 훨씬 높다고 본다. 물론 요즘 시대에 여성이라서 운동을 할 수 없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운동을 시작할 때 남성들보다 훨씬 더 굳게 마음먹어야 하는 요소들이 많다. 예를 들어 책에 실린 사회인 여자 야구팀 히로인즈의 인터뷰를 보면 야구 연습하는 걸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구경하면서 구속이 그게 뭐냐고 비아냥거린다든지, 이유 없이 욕하면서 집에서 밥이나 하라는 얘기를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고, 심지어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처음엔 그들도 '멘붕' 와서 관중석 올라가려고 하고, 누구는 말리고 그랬다. 이렇게 단지 여성이란 이유로 넘어야 하는 시선의 문턱이 있다. 물론 남자들은 그런 게 전혀 없냐고 하면 또 그건 아니다. 실제 사례 중에서 요가 클래스에 등록했는데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둔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 정도나 횟수가 여성들에게 훨씬 심하고 잦다는 거지."
   
- 이 책의 2부에서는 각자의 위치에서 운동을 하고 있는 다양한 여성들을 취재했다. 체육교사부터 국가대표 선수, 70대 동호회인, 팟캐스트 기획자까지 굉장히 다양한 직업과 연령대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겼는데, 어떤 원칙으로 인터뷰이를 선정하게 되었나?
"지금까지 출간된, 여성들의 운동에 관한 책들을 보면 작가가 싱글이거나, 아이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육아와 살림에 묶여 발버둥치는 여성이 운동에 관한 책을 쓴 경우는 별로 없더라는 거지. 개인적인 생각인데 운동이란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다. 재능도 재능이지만 물리적인 시간, 혹은 돈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이게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없어도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노오력'을 하면 된다고 하지만 회사 다니는 사람들 대부분은 그렇게 못하지 않나?

그래서 상대적으로 시간적 여유가 많은 싱글 여성들은 적게 넣고, 대신 학생들부터 70대 할머니까지 다양한 층위의 목소리를 담으려고 했다. 그렇게 실제로 일을, 공부를, 살림을, 육아를 해야만 하는 사람들의 사례를 통해 운동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에 대한 부분도 다루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 개인적으로 축구하는 여고생들과 사회인 여자 야구팀 히로인즈 선수들의 이야기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남자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축구와 야구를 한다는 것도 그렇지만, 여고생 축구선수는 자신들이 축구하는 것을 남학생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히로인즈 선수들은 관중석에서 모르는 아저씨들이 야유하거나, 야구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는 그 차이가 인상 깊었다. 세대의 문제인가 싶기도 했고. 두 팀에 관한 얘기를 좀 구체적으로 해준다면?
"세대도 분명히 있겠지. 덧붙여 학생들은 교류하는 집단 내에서 한다는 특성도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잘 알고, 친하게 지내는 사이끼리 굳이 여자가 왜 축구 하냐며 손가락질하는 일은 없겠지. 물론 그걸 보고 자란 남학생들은 나중에 사회인 여자 야구 선수를 보고 손가락질하면서 야구는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고 말하는 아저씨가 될 가능성은 적을 거라고 본다. (웃음)

어쨌든 이번 책을 위해서 선생님들도 인터뷰하고, 여고생들도 만나보니 엘리트 스포츠는 모르겠지만 생활 체육의 측면에서는 확실히 성별 장벽이 많이 무너졌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 식으로 세상이 변했다는 것은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다만 여기서도 나름의 문제는 있다고 생각했던 게 같은 교내 동아리여도 남자 축구팀이 운동장을 쓰고, 여자 축구팀은 농구 코트에서 연습한다든지 하는 일상에서 벌어지는 소소한 차별은 여전히 존재한다. 성적 자체는 여자 팀이 훨씬 좋은데도 말이다.

히로인즈에 관해서 얘기를 좀 하자면 인터뷰이였던 정민지 감독이 굉장히 열정적으로 야구를 하고 있는데, 그런 만큼 현실적으로 와 닿았던 이야기를 많이 해줬다. 야구가 팀 운동이지 않나? 그런데 여성들이 팀 운동을 해볼 기회가 별로 없으니 그 속에서 부딪히는 것들에 대해서 적응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는 거다. 싸워서 나가고, 그러다 팀 깨지고 이런 일이 굉장히 흔하다고 했다.

그러니까 여성들이 모여서 운동하는 세계라고 해서 마냥 다정하고, 그저 아름답기만 한 게 아니다. 사실 여고생 축구 선수들은 교내 동아리이기 때문에 위계질서가 굉장히 엄격하다. 3학년이 얘기하면 2학년, 1학년 친구들이 다 듣고. 그런데 사회인 야구는 그런 분위기가 아닌 거지. 운동 못해도 나이가 많으면 입김이 센 경우도 있고, 그건 것들에 누구는 불만을 가지기도 한다. 이런 문제들이 쌓여 갈등이 생기는데, 이런 게 예전엔 겪어보지 못했던 종류의 문제이기 때문에 더 어색해한다. 하지만 결국 다시 풀고, 으쌰 으쌰 하면서 대회를 준비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배우고 성장해가면서 하나의 팀이 되어가는 걸 보는 것이 흥미로웠다.

비하인드 스토리를 하나 얘기하자면, 이 야구팀 두 번째 인터뷰하는 날이 리그에서 탈락하던 날이었다. 갔는데 울고 막 난리인 거다. 아... 하필 날을 잡아도 이런 날...(웃음) 그렇게 아쉬워하다가 밥이 오니까 다들 눈물을 닦으면서 짜장면을 먹는데....(웃음) 참고로 히로인즈는 그다음 해에 리그에서 우승했다. 히로인즈에 관한 생생한 얘기는 책을 참고해주세요.(웃음)"    

- 취재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운동은 곧 몸이다"라는 말이라고 했다. 여전히 운동은 곧 몸이라고 생각하는지?
"당연히 상당 부분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운동은 몸'이라는 말에는 '운동으로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아름다운 몸을 만든다'는 의미도 물론 포함된다. 다만 우리가 운동을 통해 몸을 움직이는 그 자체에 어떤 재미를 느끼고, 내 몸이 이렇게도 되는구나, 알고 보니 내 몸이 이런 쓸모, 이런 힘, 이런 능력이 있었구나, 하는 걸 알 수 있게 된다는 것이 더 중요한 의미가 아닐까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마디.
"개인적으로 김민경씨가 나오는 유튜브인 '오늘부터 운동뚱'을 좋아하는데, 이 코너의 재미 요소는 김민경씨가 그동안 부끄럽다 생각했던 자신의 몸이 사실은 굉장한 능력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닫고 놀라는 과정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김민경씨도 마흔이 되기 전까지 자신이 그런 능력이 있는지 모르고 살았던 것 아닌가. 운동을 하지 않았다면 영원히 몰랐을 수도 있고. 물론 그런 능력이 없어도 괜찮다. 운동이란 그렇게 대단한 거 아니다. 물론 메시나 김연경처럼 되는 건 대단한 거지만 그것만이 운동은 아니다.

정상 체중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몸에 대해 '비루하다', '창피하다', '뚱뚱하다' 같은 자기비하적인 생각을 하는 여성들을 많이 봤다. 그것 때문에 운동을 시작하지만, 또 그것 때문에 운동을 포기하기도 한다.

운동을 통해 이룰 수 있는 진짜 성취는 결국 자신의 몸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몸에 대한 몰랐던 점을 발견하고, 그러면서 내 몸을 사랑하게 되는 과정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그런 점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여자가운동을한다는데 #여자운동 #이은경 #여자의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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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중심으로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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