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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살, 이사 갈 집도 안 보고 귀농한 사연

[지리산활동백과] 남원시 산내면서 게스트하우스와 공방, 책방하는 조회은씨를 만나다

등록 2020.06.16 16:09수정 2020.06.16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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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는 지리산권 지역에 필요한 작은 변화를 이끌어내는 사람들과 공익활동을 지원하고 있는 민간 지원단체로, 아름다운재단과 사회적협동조합 지리산이음이 함께 운영하고 있습니다. 개소 3년차를 맞아 지리산권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 모임, 공간, 네트워크를 소개하는 글을 싣습니다.[기자말]

지난 5월에 오픈한 책방 '찬장과 책장'에서 만난 작은나무(조회은) ⓒ 임현택


잔비가 내렸다 그쳤다 하며 조금 서늘한 봄날이다. 조금이라도 비가 내리면 굽이 굽이 산내 가는 길이 더 긴장되는 것 같다. 아니, 산내에는 늘 새로운 사람, 새로운 만남이 있으니 긴장되는 걸까? 지난 5월 중순경 작은나무를 만났다. 작은나무는 조회은씨가 교육을 하거나 남들을 만날 때 쓰는 이름이다.

"어서오세요. 저 고사리 조금 더 삶아야 해서, 더 미룰 수가 없어서, 마저 좀 삶을게요."


마당의 아기자기한 텃밭, 그 사이로 난 작은 길, 그리고 고사리 삶는 아궁이의 따뜻한 기운들이 차분하고 여유롭게 느껴졌다. 아궁이 앞에 발을 놓고 작은나무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긴장도 모두 녹았다.

이 아늑한 곳 '감꽃홍시(5월감꽃 10월홍시)'는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에 자리한 게스트하우스다. 여기서 주인장 작은나무는 직조공방 '목화로부터'와 책방 '찬장과책장'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이 곳은 작은나무만의 아지트같기도 하고, 또 지리산을 찾아온 누구라도 따뜻하게 품어줄 나그네들의 쉼터 같기도 했다. 굳이 말하자면 '시골형 복합생활문화공간'인 셈이다. 한 공간에서 N가지 일이 벌어지지만 그의 욕심은커녕 야무진 손길만이 느껴졌다. 복잡하긴 커녕 조화롭고 자연스러웠다. 

"29살에 남원으로 귀촌했어요. 대학생 때 동아리에서 생태환경잡지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만났는데 너무 좋았어요. 그 때부터 어렴풋이 시골에 내려가야겠다고 생각은 했었어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시민단체에서 일을 했었어요. 시민단체 일도 재미있고 좋았지만, 일을 시작할 때부터 4년만 일하고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했었고 4년 뒤 진짜로 내려왔죠.

전국귀농운동본부에서 열린 귀농학교를 다녔어요. 농사일을 가르쳐주는 건 아니고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한다, 아이 교육도 힘들다, 돈도 많이 못 벌거다, 사고싶은 것도 잘 못 살거다 그런 이야기들을 들었는데, 그게 좋았어요. 대체의학, 대안교육 그런 것들이 모두 포함된 교육을 들었던 거예요."    



여행이면 몰라도 살 곳을 결정하는 일이 그리 쉽지 않았을텐데, 귀촌지로 남원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바다보다는 산이 좋아서 지리산과 오대산을 놓고 고민해봤어요. 오대산은 뭘 먹고 살아야 할지 모르겠고, 돌이 별로 없고 덜 험한 지리산이 좋기도 했어요. 남원을 잘 알지는 못했지만 인연이 있었어요. 실상사, 만복사지에도 온 적이 있었고요. 구례에 아는 사람이 있으니 '너무 외로우면 거기로 놀러 가지 뭐' 하는 마음이 있었죠."

오대산은 먹고 살기 어려울 것 같은데, 지리산에서는 될 것 같다고 생각한 이유는 뭘까. 하고 싶은 것도, 하고 있는 일도 많은 사람이지만 작은나무가 생각하고 결정해나가는 방식들은 꽤 단순했다.

"지리산 생명연대를 알고 있었거든요. 시민단체가 있다는 안도감이 있었어요. 원래 귀농인도 있는 곳이고요. 마침 제가 내려올 때 '사단법인 숲길'이라는 단체가 생기고, 사람을 뽑고 있었어요. 그래서 직장을 구해놓고 내려온 거죠. '숲길'에서 집도 구해줬어요. 그 집은 보지도 않고 1톤 트럭에 짐을 싸서 내려왔어요. '못 살 곳을 구해주진 않았겠지' 하고요. 주변 언니들이 집 구하는 거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비단길 밟고 내려왔다고 했어요."

'좋아하는 사람'과 살고 싶어 도시로 떠났지만

도시에 살다가 시골에 내려와서 힘든 점은 없었냐고 했더니 흰 우유를 사기 힘들었던 기억 하나를 꼽는다. 그것 말곤 서울까지 바로 가는 버스가 있고 인터넷과 택배도 있어서 버틸만 했다고.

버스나 인터넷, 택배가 아니라 시원시원 낙천적이고 너그러운 작은나무의 성격이 낯선 시골 마을에서 버티고 적응할 수 있게 해 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덤덤히 시골에 잘 적응하고 있던 작은나무가 도시로 돌아간 때도 있었다. 남원으로 온 지 7년째 되던 때다. 

"적응을 못해서 도시로 간 건 아니었어요. 단체에서 일을 하다보니까 제가 시골에 왔는데도 9 to 6로 살고 있는 거예요. 어느 정도 마을에 정착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는지 직장을 그만둬도 괜찮을 것 같았어요. 빨래를 뽀짝뽀짝 말리고 싶은데, 해지고 들어와서 빨래 걷는 삶이 싫었어요. 그냥 그때 마음이 그랬어요. 그래서 단체 일은 그만뒀어요.

그리고 그때 같이 살던 언니가 이사를 가서, 연세를 벌어볼까 하고 민박을 운영했었어요.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게스트하우스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요. 그리고 그 게스트하우스 손님으로 온 사람과 만나 결혼을 했죠. 결혼은 같이 살고 싶어서 하는 거니까 '나가서 살아보지 뭐' 싶어서 남편을 따라 나가서 살다 왔어요. 좋아하는 사람과 살고 싶어서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싶어서 떠났다니, 도시에서 남원으로 떠나왔던 이야기만큼이나 기쁘게 들린다. 무엇보다 시골이 지겹고 힘들어서 떠난 것이 아니라고 하니 다행스러웠다. 작은나무는 도시에 나가 너다섯해 정도 살다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다시 남원에 내려왔다. 아예 다른 곳으로 갈까 고민도 했었지만 다시 귀촌한 곳은 남원이었다.

"내가 너무 잘 아는 공간으로 오면 남편은 그곳에서 주변인이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서 제3의 귀촌지도 많이 찾아보고 다녀봤어요. 그러다 어느 날 실상사 작은학교 아래에 집이 나왔다고 해서 봤는데 너무 마음에 든 거예요. 그래서 하루 만에 이사 오기로 결정했어요."

도시로 나가기 전,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살던 집은 이제 온전하게 직장이 되었다. 작은나무가 생활하던 본채를 직조공방으로 꾸몄다. 4명이 묵을 수 있던 별채 가족실은 책방으로 변신했다. 한땀 한땀 정성스레 직접 만든 직장인 셈이다.

"요즘은 너무 좋아요. 직조를 가르치는 게 좋아서 공방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집에 실과 베틀이 가득했었는데, 이제는 집이 아닌 나만의 작업 공간이 생긴거죠. 그리고 저는 어릴 때 엄마가 용돈을 주면 헌책방에 갔어요. 책을 좋아했고,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좋아보여서 막연하게 책방을 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산내에 책방카페 '토닥'이 생기기도 했지만, '동네 책방이 많으면 좋지 뭐' 하고 시작했어요. 걱정은 많지만, 일단 시작했어요."

"예쁜 외할머니집 같은 서민한옥을 만들고 싶어요"

'해보지 뭐', '살아보지 뭐' 작은나무의 무심한 듯한 말투 속에 용기와 힘이 느껴졌다. 실을 엮듯 정성스럽게 엮어 온 남원에서의 삶과 공간들, 진심으로 그 공간들을 애정하며 신나게 사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머무는 자리에는 뭔가 재미난 일들이 끊이지 않고 일어날 것만 같다. 감꽃홍시 게스트하우스나 책방, 공방이 어떤 의미를 갖는 공간이길 바라냐는 질문에 작은나무는 아궁이방에서 하루종일 책을 읽다가 간 특별한 손님을 떠올리며 반짝반짝한 눈으로 자신의 바람을 이야기했다.

"서민한옥에 계속 변화를 주면서 푸근한 느낌을 유지하고 싶어요. 예쁜 외할머니집 같은 느낌이요. 사람들이 부담없이 오래 묵기도 하고, 자기 공간으로 느끼고 좋아해주면 좋겠어요. 동네사람들도 혼자 있고 싶을 때 짱박힐 수 있는 그런 공간이면 좋겠어요."

사실 이게 다가 아니다. 작은나무는 함께 해오던 생태/자연 공부모임 '자연놀이터 그래'에서 올해 대표를 맡았다. 그리고 지리산작은변화지원센터의 작은조사 지원으로 산내 인근의 수공예 작업자들을 만나고 기록하는 자리도 준비하고 있다. 버겁지는 않겠냐고, 어렵지는 않겠냐고 했더니 차근차근 계획을 소개해주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자연놀이터 그래는 자연에서 어른들도 잘 놀아보자는 취지로 모임을 꾸린건데, 주로 숲에 놀러다니는 모임이었어요. 꽃이 피고 열매 달리는 걸 보고 감탄하고, 그런 걸 즐기는 사람들이 모였어요. 회원은 스무 명이 조금 넘고요. 숲 관찰 뿐만 아니라 수달의 흔적을 조사하기도 했었어요. 올해는 물 속이 궁금해서 조사해보려고 해요. 지원을 받아서 조사도구도 구입했고 교육도 받을 예정이에요."

"(산내 인근 수공예 작업자 작은조사는) 동네에 꽤 수공예 작업자가 많은데 제가 궁금하기도 했고, 이 사람들이 서로 모른다면 서로의 존재를 알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구상하게 된 거예요. 어떤 분께서 목기 교육을 받고 싶었는데 가까운 곳에 작업자가 있는 줄 모르고 진주까지 가서 배우셨다는 걸 알게 된 후에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서로 만나는 자리가 있었으면 좋겠고, 이들이 어떻게 이런 작업을 하게 되었는지 듣고 싶더라고요. 수공예 작업자들끼리 네트워크가 있으면 가격책정이나 사업자등록 같이 낯설게 느끼는 일에 서로 도움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최근(4~5월) 작은나무의 생활패턴을 들여다보면 이랬다. 월수금 오전에는 요가를, 주 2회 정도는 고사리를 끊어 말린다. 화요일에는 자연놀이터 그래의 동네알기 산책 모임이 있다. 금요일에는 실상사 작은학교에서 직조수업을 한다. 그리고 한 달의 절반은 책방을 열어볼 생각으로 12시부터 5시까지 책방을 열고 틈틈이 책 고르는 작업도 하고 있다.

'다품종 소량생산'처럼 여러 가지 일을 조금조금씩 하는 것이 더 재미있고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작은나무다. 그래서 작은나무의 지리산살이는 그만의 알록달록 예쁜 무늬로 짜 놓은 직조같다. 예쁜 것을 보았을 때 설레는 마음, 작은나무가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런 마음이 들었다.

"요거 조금 저거 조금 이렇게 제가 살고 있는 방식이 마음에 들어요. 시간과 에너지를 직조공방에 20, 책방에 20, 게스트하우스에 20, 그리고 나머지는 좀 남겨두는 제가 좋아요. 이렇게 사는 게 잘 맞는 것 같아요."

작은나무는 직조하는 귀여운 할머니로 늙고싶다고 했다. 직조는 앞으로도 쭉 할테고, 할머니는 다 귀여우니까, 그 꿈이 이뤄지려면 작은나무는 지금처럼만 오래 살기만 하면 될 것 같다. 우리가 도울 방법은 함께 작은 변화들을 만들며 이런 삶과 공간이 잘 유지되도록 돕는 이웃이 되는 것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말이 있잖아요. 관심 갖고 경청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공감해가는 태도가 작은 변화를 만드는 것 같아요."

작은나무의 말처럼 지금 무언가 자세히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많은 일들이 가슴 속에서 몽글몽글 일어나는 만남이었다.

글쓴이 정푸른

내 이름도 별명도 살고 싶은 모습도 '푸른'. 나는 따뜻하거나 뜨거운 사람. 어린이의 벗 되어 살고 싶다. 어린이 해방을 꿈꾸며 산청에 살고 있다.

글 | 정푸른
사진 | 임현택
인터뷰 | 누리
덧붙이는 글 이 인터뷰는 지리산 작은변화지원센터 홈페이지와 아름다운재단 블로그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인터뷰 #지리산권 #지역활동가 #남원 #동네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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