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전쟁의 비극에서 무엇을 배울까' 묻는다면

[책소개] 박만순의 <골령골의 기억 전쟁>,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피해자와 가족 이야기

등록 2020.06.12 15:13수정 2020.06.12 15:13
0
원고료로 응원
 

박만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충북역사문화연대 대표)가 발로 쓴 '골령골 기억 전쟁'(출판사 고두미) ⓒ 심규상

    
한국전쟁 70년. '전쟁의 비극에서 무엇을 배울까'라는 질문에 가장 생생하게 답하는 책이 나왔다. 박만순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충북역사문화연대 대표)가 발로 쓴 <골령골의 기억전쟁>(출판사 고두미)이다.

한국전쟁이 남긴 가장 아픈 상흔 중 하나는 민간인 학살이다. 수십만 명의 민간인이 끌려가 살해됐다. 구천을 떠도는 희생자들은 땅속에서 묻는다. 왜 죽였냐고, 여기가 어디냐고. 희생자의 유가족들도 묻는다. 누가 죽였냐고, 몇 명을 죽였냐고.

'골령골'은 1950년 대전형무소에 수감돼 있다 끌려가 죽은 사람들의 묻힌 골짜기다. 대전지명지(대전시사편찬위원회, 1994)에는 "골령골은 '본래 '곤룡재'였지만 지역민들은 6·25당시 양민(良民)들을 이곳에서 대량 학살해 죽은 사람의 뼈가 산처럼 쌓여 골령(骨嶺, 뼈 골짜기)의 예언적 지명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민간인 학살로 한 마을의 지명까지 바뀐 것이다.

'골령골의 기억전쟁'은 골령골의 민간인학살에 대한 기억을 감추고 지우려는 사람들을 겨냥했다. 골령골에서 살해된 피해자 유족들의 기억과 삶의 여정을 복원했는데 저자 박만순은 1년여 동안 전국 각지를 누비며 유가족 50여 명의 살아온 삶을 기록했다.

그의 기록은 '빨갱이 삼촌 잡으려 밤마다 보초 선 열세 살 조카',' 손주뻘에게 매타작... 집성촌에서 벌어진 광기 어린 소동', 인민군 피해 땅굴에 숨어 산 남자, 국군 총에 죽었다.',"내 남편 돌려줘" 경찰서에 항의했다고 '사형' 당한 여성','수천 구 시신 속에서 남편 찾던 여성, 그의 마지막 소원',  "넌 붉은 씨앗이로구나" 아이에게 평생 상처가 된 한마디', '몰살된 4형제... 왜 그랬는진 아무도 모른다'.' 만삭의 몸으로 하루 종일 시신을... 골령골에서 있었던 일','부여 백마강에서 떠내려간 22구의 시신을 아시나요?' 등의 제목으로 <오마이뉴스>에 연재됐다.

기사가 나올 때마다 독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피해자의 기억과 언어는 물론 감정까지 살려 전달했기 때문이다.
 

1950년 대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 기록 사진. 가운데 권총을 들고 있는 사람이 심용현 중위로 추정된다. (당시 미 극동군사령부 주한연락사무소 애버트 소령이 촬영) ⓒ 심규상

 
대전형무소 학살사건의 현장 지휘 책임자 심용현의 행적을 찾아 '골령골 학살 지휘 책임자'라고 단정 짓게 한 사람도 저자 박만순이다. 

심용현은 골령골 학살 현장에서 구덩이를 파는 일부터 총살과 암매장의 전 과정을 지휘했다. 그는 1950년 6월 28~30일까지 진행된 1400명에 대한 1차 학살과 7월 초에 진행된 1800명에 대한 2차 학살의 현장 지휘책임자다.


박만순은 심용현이 학살 당시 '대전 2사단 헌병대 중위'였음을 반증하는 자력표를 발굴해 그가 골령골 학살 현장 지휘책임자라는 그동안의 추정을 사실로 탈바꿈시켰다.

박 대표는 책을 출간한 동기에 이렇게 답했다.
"뒤틀어진 역사를 바로잡기 위해서다. 수천 명을 학살하는데 앞장선 이는 대학교 교정에 흉상이 버젓이 서 있고, 우익인사를 살려 주기 위해 노력한 신탄진 인민위원장과 '빨갱이(?)'를 살려주기 위해 서명운동을 벌인 대한청년단 간부들은 역사에 잊혔다. 이토록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는 것이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몫이 아닐까?"

대전산내사건희생자유족회 전숙자 회장은 "유가족을 두루 만나 응어리진 가슴속 한을 풀어 헤쳤다"며 "이 책이 과거 전투 승리와 영웅 중심의 전쟁 기억을 인권과 평화 중심으로 바꾸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반겼다.
 

<골령골의 기억전쟁>은 유족 등 100여 명의 개인과 여러 시민의 후원으로 가능했다. ⓒ 심규상

 
김동춘 성공회대 교수는 추천사를 통해 "학살당한 한 사람 한 사람의 비극적 삶과 남은 가족들의 처절한 고난, 가해자들이 누린 권력과 부에 대해 충격과 비애감을 느끼게 한다"며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을 뛰어넘는 훌륭한 역사 재구성 작업이며 기존 연구와 보고서에 책을 칠하고 생명력을 불어넣었다"고 평했다.

박 대표는 앞서 충북 전역을 돌며 2000여 곳 마을에서 6000여 명의 유가족을 만나 기록한 <기억전쟁>(2018년)을 펴내는 등 감춰진 지역사의 진실을 밝히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골령골의 기억전쟁>은 유족 등 100여 명의 개인과 여러 시민의 후원으로 가능했다. 출판 후원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박만순 #대전형무소 #전쟁 70년 #골령골의 기억전쟁 #민간인학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검찰 급했나...'휴대폰 통째 저장', 엉터리 보도자료 배포
  2. 2 재판부 질문에 당황한 군인...해병대 수사외압 사건의 퍼즐
  3. 3 [단독] 윤석열 장모 "100억 잔고증명 위조, 또 있다" 법정 증언
  4. 4 "명품백 가짜" "파 뿌리 875원" 이수정님 왜 이러세요
  5. 5 '휴대폰 통째 저장' 논란... 2시간도 못간 검찰 해명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