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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에서 손주며느리에게 이어진 순대국밥, 맛은 그대로다

[사람 사는 거제도 점빵3] 게제고현시장 순대국밥집

등록 2020.06.19 10:55수정 2020.06.19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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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딱히 할 일이 정해져 있는 사람이 아니다. 아내의 수행을 돕는 정도가 전부이고 그 짓도 대기하는 시간이 많아서 항상 손이 비어 있다. 즉 백수(百手)다. '노니 이 잡고 노니 염불한다'고 짬짬이 거제 경기의 부활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기 위해서 거제도에서 영업하는 곳 중, 추천할 만한 곳을 찾아 소개하려고 한다.[기자말]
"안 그래도 바빠 죽것는데 뭐 할라고 우리 순대국밥집을 쓴다고 그래싸소. 고마 지금 손님도 벅차요. 글고 순대국밥은 그냥 순대국밥인거지 무슨 비법이 따로 있것소."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망설였다. 이런 글을 쓴다고 하면 분명히 주인할머니는 이렇게 말을 할 것 같아서다. 그러나 거제의 흥망성쇠를 함께 한 이 국밥집의 맛은 거제인들에게는 향수로, 외지인들에게는 새로운 행복으로 자리잡을 수 있기에 그냥 쓰기로 했다.


거제시의 행정 구역명은 복잡해서 헷갈린다. 옛날, 초임발령을 받아 오던 햇병아리 공무원들은 거제군으로 가라는 발령장을 받기는 했는데, 그렇다면 거제면으로 가야 하는지 아니면 장승포로 가야 하는지, 고현은 뭐고 신현은 또 뭔지, 거기다 장승포는 알겠는데 성포는 또 뭔지 도통 햇갈리기만 했다.

거제군은 1989년에 장승포읍이 장승포시로 잠시 분리되었다가, 1995년에 도농복합도시인 거제시로 통합되어 자리잡았다. 참 복잡한 도시 연혁이다. 총각 시절부터 이 나이가 될 때까지 산 나도 헷갈리니 외지인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점빵 얘기를 꺼내기 전에 이 행정구역을 먼저 꺼내는 이유는 늙은이의 노파심이겠으나, 혹시 못 찾을까 봐 걱정돼서 하는 말이다.
 

내장국밥 푸짐한 국밥에 거제사람의 애환이 녹아 있다. ⓒ 이승열

 
고현 즉, 시청 소재지의 고현시장 깊숙한 곳에 '충남식당'이라는 아주 오래된 순대국밥집이 있다. 총각 때부터 다녔으니 거의 40년은 된 듯하나 정확한 개업 연도와 충남이 고향인 분이 처음 시작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들은 바가 없다. 물론 순대의 구입처나 조리법 등도 아는 바가 없고 단지 맛만 기억한다.

시시콜콜이 그런 걸 물어볼 정도로 식당이 한가하지 않다. 그냥 한 그릇 먹고 나오기 바쁘다. 밥 때에는 줄을 서기도 한다. 기억이 정확한 지는 자신없지만, 총각 시절에는 2000원인가 1500원인가 했는데, 배가 덜 차서 좀 더 달라고 하면 할머니는 한 그릇만큼이나 덤뿍 더 담아 줬다.

국밥집과 5km 떨어진 면소재지의 중학교에서 근무하던 초임 시절에는 동료 교사들과 읍내 목욕탕과 순대국밥집을 도는 나들이를 자주 했다. 갈 때마다 덤으로 더 얻어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후, 한적한 어촌이었던 거제도가 세계적인 조선도시로 성장하는 동안에도 순대국밥집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지금은 그 시절의 젊은이들이 노년이 되었지만 자식들이 대를 이어 국밥을 먹으려 온다.


할머니에서 며느리에게로... 맛은 변하지 않았다
 

국밥집 골목 미로같은 시장 골목 안에 위치한 국밥집은 40년 간 그대로이다. 밥 때에는 이 통로에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한다. ⓒ 이승열

 
어느 때인가 다시 들렀더니 큰며느리가 할머니 역할을 대신하고 있었다. 지금은 또 며느리의 며느리가 일을 돕고 있다. 언젠가는 또 가업이 승계가 될 것이나 맛은 할머니 맛이나 며느리 맛이나 똑같다.

지금은 특이하게 애기국밥이라는 메뉴가 있다. 뭔지 신기해서 시켜보려고 했더니 5세 이하만 가능하다고 했다. 왠지 할머니가 손주에게 내미는 구수하고 순하며 맑은 장맛이 나는, 할머니의 손주사랑이 듬뿍 녹아있는 맛일 것 같다. 담에 손주가 오면 같이 가 봐야겠다.

주 메뉴는 순대국밥과 내장국밥인데 육수와 양념 등 베이직은 같고 건더기에 따라 구별된다. 그 집 국밥에는 돼지냄새가 나지 않고 졸깃졸깃한 내장과 순대가 구수하다. 처음 데리고 간 지인들도 다들 마니아가 될 정도이니 맛은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표현력이 부족해서 국밥에게 미안할 정도다.

깍두기와 곁들여 한그릇을 먹어 치우는데 보통 5분 걸린다. 코로나 창궐 전에도 그 집에서는 손님들이 한가롭게 잡담을 하며 국밥을 먹는 광경을 별로 본 적이 없다. 왠지 빨리 자리를 내줘야 사람 구실을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이 있지 않는가. 바로 전쟁터같은 그런 집이다.

현직 시절에도 친한 주무관과 단 둘이서 자주 갔는데, 그는 나와 밥 먹는 속도를 맞추기 위해 애를 썼다. 밥 먹을 때는 아내도 배려하지 못하는 내가 어찌 직원의 속도까지 배려할 수 있었겠는가. 지금 생각하니 미안하긴 하다. 그러나 변명같지만 그 곳에는 다들 그렇게 먹고 나간다.

거제 사람이 꼭 데려가고 싶은 곳
 

거제고현시장 최근에 아케이드 공사를 한 고현시장은 제법 정비가 잘 되어 있다. ⓒ 이승열

 
거제를 찾은 지인에게 혹시 거제 사람이 당신을 이 식당으로 안내한다면 최고의 예우로 생각하라. 나는 그 집 주인과는 개별적인 인연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주인에게 손님 한 사람으로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단지 나는 그 집 순대국밥만을 이야기하는 것이니 혹시 그 집에 들르거든 딴소리하지 말고 주는 대로 먹고 나오면 된다. 지금도 나는 시장 안의 미로길에서 이 국밥집으로 가는 골목 지름길을 못 찾아서 두리번거린다.

어떤 때는 상인에게 묻기까지 한다. 초행길인 사람은 시장 안에 들어가서 꼭 물어보고 찾아가길 권한다. 나는 이 글에서 찾아 가는 길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못한다. 단지 순대국밥 맛만 말한다. 늙은 길치의 한계다.
덧붙이는 글 밴드와 페이스북에 소개한 글을 일부 수정했습니다.
#순대국밥 #충남식당 #이승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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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월에 퇴직한 후 백수이나, 아내의 무급보좌관역을 자청하여 껌딱지처럼 붙어 다님. 가끔 밴드나 페이스북에 일상적인 글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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