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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는 신뢰가 가장 중요... '만나야 통일이다' 실감"

[인터뷰] 김영만 전 6.15경남본부 상임대표

등록 2020.06.14 19:40수정 2020.06.14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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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만 전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경남본부 상임공동대표. ⓒ 윤성효

평양을 여섯 번, 금강산을 여섯 번, 개성을 일곱 번 다녀온 김영만(75) 전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경남본부 상임공동대표는 오랫동안 통일운동을 해오면서 제일 공감이 가는 구호가 "만나야 통일이다"고 했다.

그는 "자주 만나면 통일이 된다"며 "통일과 관련한 구호 중에 제일 공감이 가는 말이고, 누구한테나 공감을 얻는다. 실제로 맞는 말이다. 자주 만나야 된다"고 강조했다.

김영만 전 대표는 6.15공동선언 20주년을 앞둔 13일 <오마이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그동안 해온 통일운동을 설명하면서 바람도 제시했다. 6.15경남본부(상임공동대표 직무대행 황철하)는 15일 저녁 창원에서 열리는 기념식에서 김 전 대표한테 '감사패'를 수여한다.

2005년 창립된 6.15경남본부는 조영건 전 경남대 교수가 초대 상임공동대표를 맡았고, 2007년부터 김 전 대표가 맡아 13년 동안 이끌어 왔다.

1980년대 이후 평생 통일·민족·민중운동을 해온 김 전 대표한테 제일 기억에 남는 통일운동을 물었더니, ▲ 1994년 서울대에서 열린 8.15범민족대회와 2년 뒤인 ▲ 1996년 연세대에서 열린 8.15범민족대회, 그리고 ▲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때 벌인 아리랑응원단을 꼽았다.

- 1994년 범민족대회가 어떠했는지.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뒤였다. 범민족대회를 서울대에서 열려고 했는데 정부가 막았다. 서울대 운동장에서 대회를 시작하려는데 헬리콥터가 상공에서 최루탄 가루를 뿌렸다. 더 이상 기념식을 진행할 수가 없었다. 일부는 학교 뒷산으로 피신했고, 다른 일부는 경찰에 포위되기도 했다. 당시 최루탄 가루가 눈처럼 내려오는 상황이었다.

대회에서 가장 중요한 순서가 '결의문' 낭독이다. 많은 사람들이 피신하는 상황 속에서 행사를 진행할 수 없었고, 사회자가 '결의문 발표'를 하겠다고 했다. 그때 제가 결의문을 낭독했다. 경찰이 대회를 방해하더라도 민족대회가 성사되는 게 중요했기에, 제가 끝까지 결의문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이후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이 교육 시간에 틀어주는 동영상에서 그 장면이 담겨 있었다며 알려주었다. 당시 국방부가 '용공좌익들이 이런 식으로 한다'며 그 장면을 틀어주었던 것이다. 군대 다녀온 사람들이 최루탄 가루를 뒤집어쓰고도 결의문을 낭독하는 장면이 나오더라는 이여기를 해주었다."

- 2년 뒤 연세대에서 열린 범민족대회는 왜 기억이 남는지.
"그때 연세대에 많은 학생과 시민들이 모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연행되었고 다친 사람도 생겨났다. 물론 전경도 다쳤다. 연세대 대회 이후 '한총련'도 위축되었고, 통일운동도 위축되었으며, 통일운동의 노선이 갈라지기도 했다.

그날 저의 두 아들이 '통일선봉대'로 연세대 정문 쪽에 와 있었던 것이다. 당시 연세대 정문 앞은 완전 전쟁터였다. 그런 장소에 두 아들이 있었으니까 부모로서 걱정이 안될 수가 없었다. 제가 베트남 전쟁을 다녀왔는데, 그때 제 부모의 마음을 알겠더라."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때 '아리랑응원단' 단장 맡아

- 2002년 아시안게임에 북측 선수단이 왔을 때 벌인 '아리랑응원단' 단장을 맡았는데, 당시 활동을 기억하면.
"북측이 처음에는 온다 안 온다고 하다가 거의 막판에 오는 것으로 결정이 났다. 북측 선수단이 오면 응원을 어떻게 할 것인지 처음에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당시 우리나라는 시‧군마다 아시안게임 참가국 선수를 응원하는 '서포터즈'를 꾸렸다. 그것에 착안해서 북측 선수단 응원단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제가 '열린사회희망연대' 대표로 있으면서 북측 선수 응원단 구성이 필요하다는 내용의 성명을 냈는데, 놀랍게도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서울지역 언론사에서 묻는 전화가 왔고 구체적인 질문을 하기도 했다. 그래서 여러 단체들과 논의를 해서 '아리랑 응원단'을 구성하게 되었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고생했다."

- 아리랑응원단 구성을 어떻게 했는지.
"당시 유치원과 경로당, 노동조합을 찾아다니며 함께 하자고 했는데, 한 군데도 거절당하지 않았다. 특히 연세 많은 분들이 기꺼이 나와서 함께 해주셨다. '아리랑응원'하는 노래도 부르고, 구호도 외치고, '한반도기'도 만들어서 나누어주었다. 그때 쓴 한반도기에 처음으로 독도가 표기 되었다. 이전 세계탁구대회 등에서 사용했던 한반도기에는 독도가 없었다. 독도가 들어간 한반도기는 그때가 처음일 것이다."

- 당시 아시안게임에 참가한 북측 선수의 첫 경기가 창원에서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홍콩과 여자축구경기가 창원공설운동장에서 열렸다. 우리는 한반도기를 흔들고 북측 응원단은 인공기를 흔들며 응원했다. 우리가 '파도타기'를 했는데 북측 응원단이 처음에는 반응이 없었고, 세 번째 하니까 눈치를 채고 함께 했다.

그때 우리는 '대형 한반도기'를 제작해서 미리 운동장 안에 넣어 놓았다. 그런데 '폭발물 검사팀'이 그것을 알고 빼앗았다. 운동장 입구에서 대형 한반도기를 돌려받기 위해 싸우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때 운동장에 대형 한반도기를 펼쳐 보이지 못했던 게 지금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아리랑응원단장 하면서 얼마나 힘이 들었는지 눈에 실핏줄이 터질 정도였다. 이후 남북경기 때마다 아리랑응원단이 나왔고, 그때 힘들고 어렵게 했지만 보람으로 여긴다. 아리랑응원에 힘입어서 그런지 그날 북측 여자축구팀이 홍콩을 2대 1로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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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만 전 6.15경남본부 대표. 그는 2003년 부산아시안게임 때 북측 선수를 응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아리랑응원단' 단장을 맡았다. ⓒ 윤성효

- 통일운동하면서 아쉬움은 더 많았을 것 같은데. 
"통일운동의 길은 험난하다. 통일운동은 잘 풀릴 것 같다가고 어려워질 때가 많았다. 지금도 그렇다. 남북이 최근접거리까지 왔다가도 한순간에 멀어지는 상황을 본다. 남북은 서로 신뢰관계가 이루어져야 한다. 분단 이후 문재인 정부 때 세 번의 정상회담을 했다. 분단 이후 최대로 가까워졌던 시기다. 그러다가도 멀어지고 있다. 그런 순간들이 계속 생각나면서 통일은 험난한 길이라는 걸 실감하고, 아쉬움이 많이 남는 순간들이 많다."

- 구체적으로 언제가 그랬는지.
"1994년 7월,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서거했다. 그 순간이 제일 아쉽다. 그때 정상회담이 됐다면 남북문제는 훨씬 더 빨리 진전되었을 것이다. 분단의 당사자인 김일성 주석이 살아서 남측과 정상회담을 한다는 의미도 있고,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 때 했던 멋진 말도 있었으니 기대가 컸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3년 2월 25일 취임사에서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수 없다. 어떤 이념이나 사상도 민족보다 더 큰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한다'고 했다. 굉장히 감동적인 취임사였다. 그러고 얼마 뒤 이인모 선생이 북으로 보내졌다. 그래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기대가 컸다. 성사가 되지 않았던 아쉬움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

- 그 뒤 '조문파동'이 일어났는데.
"김일성 주석이 갑자기 서거하고 난 뒤 조문파동이 왔다. 그리고 우리는 '공안정국'으로 돌아갔다. 남북문제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실감했다. 종이 한 장 차이로 남북문제가 극에서 극으로 달라지는 상황이 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철폐 해야하는데 기회를 놓쳐"

- 또 아쉬운 일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 당한 뒤 치러진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압승했다. 그때 바로 국가보안법 철폐 이야기가 나왔다. 그때 진보단체들은 서울로 올라가 국회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국가보안법 철폐를 외쳤다. 그런데 그때 좋은 기회를 놓쳤다. 열린우리당 내부에서 분열이 났던 게 하나의 원인이었다. 남쪽에서 통일운동하는 사람들한테는 그때 국가보안법 철폐를 못한 게 천추의 한이다. 16년이 지난 지금, 민주당이 국회에서 다수당이 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그때 트라우마 때문인지 국가보안법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있다. 제 21대 국회에서 국가보안법을 없애야 할 것이고, 이번 기회는 절대 놓치면 안된다."

- 2019년 4월 평양마라톤대회에 남측에서 참석하려고 준비를 하다 무산되고 말았는데.
"6.15경남본부는 6.15공동선언 이후 '창원통일마라톤대회'를 열어오고 있다. '달리고 싶다 백두산까지'를 내건 대회로, 올해가 20회째다. 전국 마라톤대회 가운데 '통일'을 내건 유일한 대회다. 창원대회가 열리면 거의 해마다 6.15북측-해외측위원회에서 '축전'도 보내왔다.

지난해 2월 금강산에서 남-북-해외 인사들이 모여 행사를 했고, 그 자리에 지자체장으로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허성무 창원시장이 함께 참석했다. 여러 지자체가 북측과 교류를 희망했지만 되지 않았고, 유일하게 창원통일마라톤대회팀이 지난해 4월 평양마라톤대회에 참가하는 약속을 담은 '의향서'를 주고받았다.

그 뒤 돌아와서 창원시 등과 협의하면서 준비를 했다. 그런데 베트남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성과 없이 결렬되었다. 그러고 나서 평양마라톤대회 참가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그때 북미회담이 잘 되어 평양마라톤대회에 남측에서 참가를 했더라면, 그것이 물꼬가 되어 이후에는 대규모 참가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 그렇게 하지 못해 못내 아쉽다."

- 그동안 평양도 여러 번 다녀왔을 것 같은데.
"평양 6번, 금강산 6변, 개성 7번을 다녀왔다. 갈 때마다 북녘 사람들을 만나면 곧 통일이 될 거 같은 기분이었다. 어떤 의심도 안 되고 곧 된다는 생각을 늘 했다. 그만큼 우리는 하나라는 걸 늘, 그야말로 실감했다.

통일운동의 구호 중에 제일 공감이 되는 게 '만나야 통일이다'다. 자주 만나면 통일이 되게 되어 있다. 이 구호가 가장, 누구한테든 공감이 가는 것이다. 실제로도 맞는 말이다. 자주 만나야 된다. 평화건 통일이건 만나야 한다."

- 요즘 탈북자단체들이 대북전단 살포 때문에 시끄러운데.
"미국의 공작에 놀아나는 탈북자들이다. 탈북자단체들은 반인륜적 행위까지 하려 한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이런 집단을 왜 강력하게 저지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탈북자단체는 미국 정보기관(단체)의 조종을 받는다. 남쪽, 특히 접경지역 인근 주민들의 안전을 위해서도 대북전단 살포를 막아야 한다.

그런데 21대 국회를 시작할 무렵에 하필 탈북자단체들이 대북전단 살포로 시끄럽게 하는지 모르겠다. 하필 왜 이 시기에 하는 것이냐. 타이밍이 왜 지금이냐. 국회 원구성이 되고 나면 남북문제를 법제화할 경우를 대비해서, 그런 것을 막으려는 의도에서 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굉장히 거대한 조직이 치밀하게 계획을 세운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은.
"판문점선언과 평양선언을 했던 문재인 대통령이 아직도 미국 눈치를 좀 보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금 정부는 남북문제에 있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좀 답답하다. 우리가 유엔 제재와 관계없이 철도와 금강산, 개성공단 문제를 좀 과감하게 밀고 나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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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만 전 6.15경남본부 대표. 그는 2007년 창원에서 열린 ‘남북노동자통일대회’ 때 북측 대표단이 국립3.15민주묘지를 참배하자 김주열 열사 묘소(가묘)에서 안내를 하기도 했다. ⓒ 윤성효

김영만 전 대표는 남북관계에서 "한 번 잃은 신뢰를 회복하는 게 정말 힘들다"며 "신뢰를 다시 회복할 수 있도록 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1967년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 "베트남 전쟁 경험을 떠올리는 게 제일 힘들다"고 하는 그는 1980년대 재야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는 열린사회희망연대 대표, 코리아평화연대 대표,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회장 등을 지냈다.

'친일청산시민행동연대'이 만들어진 뒤인, 2003년 5월 그는 옛 마산시가 친일음악가 조두남의 이름을 딴 기념관(현 마산음악관)을 지어 개관식을 할 때 저지운동을 벌여 구속되기도 했다. 이 일로 그는 2005년 '임종국상'을 받기도 했다. 또 그가 작사‧작곡한 민중가요 <동지여 내가 있다>는 시위 현장에서 널리 불리기도 했다.

김영만 전 대표는 2007년 4월 창원에서 열린 '남북노동자통일대회'에서 원형국 당시 조선직업총동맹 부위원장 등 북측 대표단이 국립3‧15민주묘지를 참배했을 때 김주열 열사 묘소(가묘)에서 안내를 하기도 했다. 김영만 전 대표는 김주열 열사와 옛 마산상고(용마고) 입학 동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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