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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환경부 인사의 '기다림의 미학' 발언이 불편한 이유

등록 2020.06.16 11:18수정 2020.06.16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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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 개방 후 빠르게 재자연화를 보이고 있는 세종보 ⓒ 대전충남녹색연합

 지난 9일 환경단체와 국가물관리위원회의 간담회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환경단체는 더디기만 한 4대강 자연성 회복 관련해 크게 우려했다. '4대강 재자연화'를 공약으로 제시한 현 정부 4년 차이지만, 체감 가능한 결과는 없기 때문이다. 이날 국가물관리위원회 박아무개 지원단장은 "기다림의 미학"을 언급했다고 한다. 박 단장은 환경부 소속이다.

고귀한 생명도 잉태부터 출산까지 인고의 기다림이 있다. '우물에서 숭늉을 찾을 수 없'듯이, 기다림은 질적 전환을 위한 필연일 것이다. 정책 결정도 수많은 이질성의 화학적 조합 과정이다. 그래서 '미학'이라고 칭했을지 모른다.

'기다림'이 '미학'이 되려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2018년 감사원은 4대강사업의 비용편익(B/C)을 0.21로 분석했다. 1000원 넣으면 790원 까먹는 사업으로서, 4대강사업 구조물 등을 그대로 유지할수록 손해만 본다는 말이다. 서둘러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익이 될 수 있다.

만약 우리 강과 그 강에 기대어 사는 뭇 생명들이 '표'를 가졌다면 난리가 났을 것이다. 4대강사업은 비상식, 비민주주의의 결정판이었다. 비정상의 최대 피해자가 4대강과 그 강에 기대어 사는 생명들이었다. 불행히도 2009년 첫 착공 이후 현재까지 4대강사업 후유증에 따른 고통은 잦아들지 않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고통 앞에 중립 없다"라는 말은 단지 종교적 언어만은 아니다.

환경부는 4대강 자연성 회복을 총괄하는 부처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정상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명박 시대 환경부는 '보가 만들어진다고 수질이 나빠지는 건 아니다'라는 환경부 홍보 카피를 만들어 '국토부 2중대'로서 4대강사업 강행에 앞장섰다. '용서는 해도 잊지 않겠다'라는 말은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를 전제한다.

어찌 보면 이명박근혜 시절 환경부 공직자들도 피해자였다. 정보기관 감시의 칼날은 '4대강 반대 진영'만을 겨냥하지 않았다. 나치 전범 아이히만은 '시켜서 한 죄'를 강변했지만, 그렇다고 가해에 대한 기억과 그 피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2018년 JTBC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에서 "가해자의 고통과 피해자의 고통을 같은 저울로 잴 수 없습니다. 가해자의 고통은 스스로 져야 할 책임의 무게로 인해 상쇄됩니다."라는 말이 나온다. 환경부가 져야할 책임의 무게도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환경부 인사가 '기다림의 미학'이라 말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불편하다. 끔찍한 고통 속에서 대책없이 '기다려라', '기다려라'를 반복하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중앙일보>권석천이 <정의를 부탁해>에서 인용한 "지체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는 것 역시 환경부가 꼭 새겨들어야 말이 아닐까 싶다.

왜냐하면 "숨을 쉴 수가 없다(I can't breathe)"는 미국만이 아니라, '지금' 현재 '우리 강'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말이다.
 
#4대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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