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듣기

교리수업 마지막 장식한 노래 '백만 송이 장미'

[예비신자의 교리수업 이야기] 미워하는 마음 없어야 피는 꽃

등록 2020.06.16 14:46수정 2020.06.16 15:03
1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트로트 전성시대다. 한 종편 방송사가 선보인 트로트 경연대회가 싹이 됐다. 참, 저렇게 노래 잘하고 재주 많은 사람들이 어디들 숨어 있었을까,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순식간에 수많은 스타가 탄생했다. 시청률은 고공행진이었다. 그 뒤를 이어 유사한 프로그램이 쏟아져 나왔다. 케이블은 물론 공중파까지 악단마차(Band Wagon)의 뒤를 따라나섰다. 왜색이라고 천대받고, 꼰대 노래라고 무시당하던 트로트의 화려한 부활이었다.

그래서 지금 TV는 온통 트로트 천지다. 예능 프로그램만 아니다. CF까지 몽땅 접수했다. 이젠 애들이 더 좋아라 한다. 얼마 전만 해도 조금 별난 일부였는데, 이젠 초딩들이 떼창을 부를 정도다. 이에 뒤질세라 음악 좀 하신다는 분들, 대중문화 전문가를 자처하는 분들도 트로트의 재해석에 분주하다. 트로트의 원류라고 알려진 일본의 '엔카'가 실은 한국이 원조라는 일부의 학설에 무게가 잔뜩 실리기도 한다.

한 여성잡지는 이런 현상에 대해 설문조사를 해 봤다. 열 명 중 셋은 트로트를 '심금을 울리는 우리가요의 대표장르'라 했다. 놀라운 일이다. 새삼 트로트가 인기를 끄는 이유를 '송가인과 유재석' 같은 스타파워 때문이라는 대답도 많았지만(44.6%), '따라 부르기 쉽고 우리 정서에 잘 맞아서(25.0%)'나 '한과 설움이 담겨 있어서(19.6%)'라는 대답도 못지않았다. 결국 젊은이들도 우리민족 고유의 '한', '설움', 신명' 따위의 정서에 새삼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우먼센스> 2020. 3.10자).

나는 거기에 한 가지 더 얹고 싶다. 가사다. 트로트의 가사는 대개 직설적이다. 신파네, 촌스럽네 하는 일부의 악평도 있지만 일단 쉽다. 생각이 필요하지 않다. 들으면 금방 이해가 된다. 그런데 평소엔 잘 안 들린다. 노래를 들으면서도 뭔 말인가 싶을 때가 많다. 반주 소리가 커서도 그렇고 가수의 발음이 부정확해서도 그렇다. 특히 유난히 혀 꼬는 발음을 많이 하는 가수일수록 듣기가 알아먹기 어렵다. 비단 트로트만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런데 최근 트로트 열풍의 진원지가 된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그걸 확 바꿨다. 가사 전달에 세심한 신경을 썼다. 소절별로 자막 처리하는 건 기본이었다. 전 출연진이 발음 교정 훈련에 공 들인 듯했다. 모든 가수들이 모든 가사를 또박또박 발음했다. 마치 국어책을 읽는 듯했다. 시청자들은 그걸 보고 들으면서 전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 거다. 이게 저런 노래였어, 하는 그런 생생하고 생경한 느낌이었다.


그 중에서도 '보릿고개'는 가히 압권이다.

"아야 뛰지 마라, 배 꺼질라. 가슴 시린 보릿고개 길.
주린 배 잡고 물 한 바가지로 배 채우시던 초근목피 그 시절"


그 노래를 부른 가수는 이제 겨우 열셋이란다. 고 어리디 어린 아이가 '보릿고개'가 무엇이며 '초근목피'는 또 뭔지 알고나 불렀을까. 그건 그야말로 '멀고 먼 옛날', 그의 증조할아버지 뻘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가 진짜 아는지 모르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그는 그 가사 한 자 한 자를 정확히 발음했고 표정을 섞어 그 의미를 제대로 전달해 주었다. 그럼으로써 몇 세대를 뛰어넘는 공감을 자아냈다. 세대통합을 이룰 만큼 가사는 정말 중요한 거였다.

교리수업시간에 울려 퍼진 '백만 송이 장미'
 

장미는 오직 사랑으로만 피어난다. 조금이라도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꽃은 피지 않는다. ⓒ Pixabay

 
서론이 길었다. 정작 하고 싶은 건 '심수봉'이었는데 너무 에둘러 왔다. 하지만 그 역시 트로트 가수다. 가수도 그냥저냥 한 가수가 아니다. 그만의 일가를 이룬 독보적인 트로트 대가다. 스무 살 대학생 때 트로트로 가요제에 나와 상을 탔고, 이후 40여 년 한 길을 걸어온 분이다. 그가 불러 큰 인기를 끌었던 노래 얘기를 하려는 거다. 그러니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영 연관 없는 건 아니다.

그의 대표곡 중 '백만 송이 장미'라는 노래가 있다. 그가 부른 유일한 번안곡이다. 원래는 북유럽 라트바이 공화국의 역사적 고난을 그린 노래라 한다. 심수봉은 그것을 완전히 달리 해석했다. 심수봉 식 사랑의 세레나데로 바꾸어 놓았다. 태생은 그게 아니었지만 심수봉이 바꾸고 노래를 부르니 트로트처럼 들렸다. 그것도 참 애절하고 구슬픈. 배경을 모르고 듣는 이들은 깜빡 속을 만 했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없이
아낌없이 아낌없이 사랑을 주기만 할 때
백만송이 백만송이 백만송이 꽃은 피고
그립고 아름다운 내 별나라로 갈 수 있다네
- 백만 송이 장미 가사 일부


노래 속에서 심수봉은 어느 별나라에서 온 이방인이 된다. 그에게는 이곳 삭막한 지구를 '사랑'으로 가득 채우라는 범상치 않은 사명이 주어졌다. 그것을 완수했다는 징표는 백만 송이 장미였다.

그 많은 장미는 오직 사랑으로만 피어난다. 조금이라도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이 있으면 꽃은 피지 않는다. 지구인들이 설혹 자신을 박대하고 멸시해도 그들을 한없는 사랑으로 품어야 한다. 그래야 꽃은 피고 자신은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건 그러니까 아가페적 사랑이다. 미련스러울만치 무조건적이고 일방적인 사랑이다. 내어주기만 할 뿐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는 그런 사랑이다. 숭고하고 아름답지만 한없이 슬픈 비극의 사랑이다. 받는 사람은 행복하지만 주는 사람은 아프다. 그리 아파도 내색조차 하지 않는다. 모두가 그렇게 하겠다고 다짐하지만 아무나 그리 하지는 못한다. 흉내조차 어렵다. 인간을 넘어선 경지다. 하느님의 사랑이다.

그런 시적인 가사를 심수봉 특유의 애절한 음색으로 불렀다. 듣는 이들의 마음을 울린다. 많은 사람들이 그 노래를 듣고 손수건을 찾았을 터다. 새삼 그 노래를 우리에게 들려주신 분도 끝내는 그러셨다. 애써 숨기려 했지만 그 분의 목소리는 가녀리게 떨렸다. 함께 듣던 다른 분들도 그런 것 같았다. 하마터면 나도 그럴 뻔 했다. 용케 참았다. 분위기는 자못 숙연해졌다. 마지막 교리수업 시간에서였다.

'최후의 심판'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교재는 최후의 심판을 '인간이 저지른 모든 불의에 대하여 하느님의 정의가 승리한다는 것을 드러낼 것이며 하느님의 사랑이 죽음보다 강하다는 것을 드러낼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 대목에서 교리 선생님께선 '느닷없이' 이 노래를 들려주셨다. '말하자면 이런 사랑이지요'라는 소개 멘트와 함께였다. 교리 수업 중에 듣는 백만 송이 장미는 묘했다. 울림이 크고 깊었다. 가사가 날아와 가슴에 박혔다.

최후의 심판이라 하면 의당 불바다를 떠올리곤 했다. 분노한 하느님께서 교만하고 배은망덕한 인간을 시뻘건 불로 단죄하는 그런 장면 말이다. 그런데 같은 붉은 색이지만 하느님의 불은 그건 모든 걸 태워 없애는 게 아니었다.

세상을 향기로 덮고 보는 이들을 황홀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장미의 불꽃이었다. 하느님의 심판은 결국 사랑이었다. 우릴 멸하자는 게 아니라 '죽음보다 강한 사랑'으로 감화시켜 세상을 바꿔보자는 것이 하느님의 깊은 뜻이었던 거다.

심수봉은 원래 불교를 믿었지만 개신교로 개종했다고 한다. 기독교로 귀의 할 때 그 노래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런 정황으로 미루어 아마 심수봉은 그런 주님의 사랑을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그런 위대한 사랑을 향한 찬양의 심정을 담은 노래로 여겨졌다. 종교는 달랐지만 그 노래를 들려주신 우리 교리 선생님도 어쩌면 같은 마음이었을 터다. 하느님의 자녀로써 거듭 태어날 우리에게 그 크신 사랑을 본받고 실천하라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으셨던 듯했다.

6월 마지막 주일에 세례를 받게 됐다. 그야말로 '드디어'다. 숱한 우여와 곡절의 끝이다. 당연히 기쁘고 감격스러워야 하겠지만 그러지 못하겠다. 걱정이 더 앞선다. 그럴 자격이나 있는지, 하느님의 그 크신 사랑에 조금이라도 보답할 수는 있는지 해서다.

교리 선생님께서 심수봉의 노래를 들려주신 후엔 더 그렇다. 하지만 일부러 피하고 싶진 않다. 일단 받아들여야 할 터다. 그런 연후에 시도하고 노력해야 하는 게 맞다. 벅찬 가슴으로, 경건한 자세로 그 날을 맞을 일이다.
#트로트 #마지막 수업 #심수봉 #백만송이 장미 #하느님 사랑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천연영양제 벌꿀, 이렇게 먹으면 아무 소용 없어요
  2. 2 61세, 평생 일만 한 그가 퇴직 후 곧바로 가입한 곳
  3. 3 버스 앞자리 할머니가 뒤돌아 나에게 건넨 말
  4. 4 "김건희 여사 라인, '박영선·양정철' 검토"...특정 비서관은 누구?
  5. 5 죽어라 택시 운전해서 월 780만원... 엄청난 반전이 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