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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범이란 얘기잖나" 안타까운 민경욱 '음모론'의 실체

[하성태의 사이드뷰] MBC < PD 수첩 > '전격 해부, 개표조작설' 편

20.06.17 18:21최종업데이트20.06.18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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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 PD수첩 > '전격 해부, 개표조작설' 편의 한 장면 ⓒ MBC

 
"아니, 그러면 미래통합당도 공범이란 얘기잖아요."

이준석 미래통합당 전 최고위원은 어이없어 했다. 16일 방송된 MBC < PD수첩 > '전격 해부, 개표조작설' 편에서였다. 4.15 총선 직후부터 '총선 조작설'을 주장 중인 민경욱 전 통합당 의원의 주장대로라면, 더불어민주당 당선자 9명과 함께 미래통합당 당선자 6명 역시 부정선거의 수혜자인 것 아니냐는 반문이었다.

"그 분의(월터 미베인 교수)의 통계 모델이라는 걸 보면, 분석한 결과를 보면 미래통합당에도 조작으로 당선된 사람이 있다는 거 아니에요? (...) 이분들이 지금 굳이 표현하자면, 그 음모론을 만들려면 시나리오가 하나 나와야 하거든요(...) 전혀 그게 맞지 않아요. 단편들 하나씩 들고 나와서 그냥 외치고 있는 상황이거든요."(이준석 전 최고위원)

글 초반부터 김을 뺀 건 다 이유가 있어서다. 선거 무효 소송까지 제기한 민 전 의원과 그의 선거조작 의혹에 공감하는 '블랙시위'자들의 주장을 하나하나 검증하느라고 노력을 기울인 < PD 수첩 > 제작진의 노고(?)는 치하할 만하다. 그러나 이 전 최고위원이 일축한 그대로 이날 방송에서 나열된 민 전 의원 측 주장을 따라 잡다보면, '시간 순삭'은커녕 '내 시간 돌려 달라'는 시청자들의 아우성이 고스란히 들리는 듯한 착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민 전 의원의 '부정선거', '총선조작' 주장에 한숨을 내쉰 전 직장동료는 또 있었다. 김세연 전 미래통합당 의원이다.

"나름 논리적인 근거를 제시하느라고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전문가들의 어떤 공감대나 합의, 또 국민 전체 시각으로 봤을 때 보편적인 인정을 받는다고 보긴 어려울 것 같고요. 그래서 빨리 이 논란이 좀 마무리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민경욱 전 의원이 요청한 < PD수첩 >의 검증
 

MBC < PD수첩 > '전격 해부, 개표조작설' 편의 한 장면 ⓒ MBC


"증명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얘기를 하셨는데, 증명은 언론이 하는 겁니다. < PD수첩 >이 증명해주시기 바랍니다." (민 전 의원)

마치 최근 '펀쿨섹좌'란 별명으로 한일 양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고이즈미 신지로 일본 환경상의 허탈 화법을 연상시킨다. 대체로 이런 식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전문가의 시선으로 조금만 깊숙이 들어가 논리를 검증하면, 허탈하기 그지없는 주장들이 난무한다. 하지만 이런 주장을 진지하게 이어가는 이유가 있을 터. 먼저 < PD수첩 >이 하나하나 검증한 내용은 이랬다.

우선, 사전투표 관련해서 민 전 의원은 사전투표에서 본인과 정일영, 이정미 등 세 후보의 관외 득표율 나누기 관내 득표율을 하면 0.39로 매우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이건 그냥 '우연의 일치'에 가깝다고 봤는지, 제작진은 더 이상 검증조차 하지 않았다. 맞다. 성립되는 인과관계가 전혀 없어 보인다.

<가로세로연구소>를 비롯한 극우 성향의 유튜버들은 서울, 인천, 경기도 사전투표에서 민주당과 통합당의 평균득표율이 63:36으로 비슷하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서울 소재 어느 물리학과 교수까지 이런 주장에 동참 중이다. 이에 대해 고려대학교 통계학과 박유성 교수는 이렇게 일축했다.

"세 지역이 비슷하게 평균적으로 (수치가) 나왔다는 거는 그러면 표심이 비슷하다는 거예요. (사전투표)추이에서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여당 측에 점점점점 늘어나요. 더불어민주당, 당으로 얘기를 하면 반대로 이쪽은 (미래통합당은 사전투표 추이가) 떨어져요. 하물며 어디까지 나타나냐면 대구 경북지역에도 그런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요. 그러면 사전투표는 설명이 된다는 겁니다."

4.15 총선 전체 개표가 조작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유튜버 '조슈아'는 온라인 해킹에 의한 조작과 야당표가 여당표로 '표 갈기' 혹은 '표 바꿔치기'됐다고 주장 중이다. 이에 대해 < PD수첩 >은 "득표율을 분석한 것 외에 그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라고 일축했다. 조슈아는 제작진이 해킹과 관련해 개표 전 데이터를 넣는 시점을 묻자 "그런 것들은 검찰 수사에서 밝혀내야 한다"는 다소 황당한 주장을 내놨다.

무슨 일인지, 민 전 의원의 주장에 동참한 미국인 교수도 있었다. E-포렌식이란 모형을 통해 이번 총선이 부정선거로 22곳에서 결과가 바뀌었다고 주장하는 월터 미베인 미 미시간대학교 정치학과 교수. 그가 주장한 22곳 중 7곳이 통합당이 당선된 지역이었다. 미베인 교수의 주장은 다소 황당하다. 프로그램은 매우 정확하다면서도 이런 여지를 남겼다.

"이 결과가 무슨 의미를 지니고 있냐에 대한 결론은 쉽게 내리기가 힘듭니다. 이 '부정선거 수치' 자체가 정확히 무엇을 나타내는지 불법행위 등을 보여주는 건지는 저희도 연구를 계속해봐야 합니다."

이에 대해 통계청장 출신인 통합당 유경준 의원은 미베인 교수의 연구 모형 자체가 한국선거제도의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계속 나열하기에도 숨찰 정도다. 민 전 의원이 주장한 경기도 구리시 선관위의 투표지 유출은 분실시점 자체가 투표가 끝난 뒤였다. 선관위도 검찰에 수사를 의뢰한 상태다.

또 민 전 의원은 투표지 분류기를 이용한 온라인 선거조작을 주장 중이다. 한데, 이러한 주장에 논리를 대고 있는 벤자민 윌커슨(한국인)씨의 이력은 < PD수첩 >의 확인 결과 수상하기 짝이 없었다. 미국 시민권자라거나 과거 미 IBM 재직 등 이력 전체가 그랬다. '평양(과학기술대학) 크리스천 학교의 교수였다'는 등 그의 언사 역시 횡설수설 그 자체였다.

민 전 의원이 'Follow the Party'란 구호를 외치며 해커의 해킹 지문(흔적)이라 주장한 대목 역시 실소를 자아낼 수밖에 없었다. 제작진의 취재 결과, 이를 주장한 이가 미국에서 회계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편의점을 운영 중이라는 일반인이었기 때문이다. 이를 검증한 통합당 하태경 의원 역시 민 전 의원의 주장은 "국제적인 망신"이라며 조목조목 검증한 바 있다.

4년 전 <더 플랜>의 경우
 

MBC < PD수첩 > '전격 해부, 개표조작설' 편의 한 장면 ⓒ MBC


원래 가짜뉴스가 그렇다. 검증하는 쪽이 훨씬 고역이고 성가신 법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 PD수첩 >에게 증명을 부탁한 민 전 의원은 매우 바빴다. 선거무효 소송을 준비 중이고, 그에 쓴다며 후원금도 모금 중이다. 중앙선관위 항의 방문도 다니고, 부정선거 관련 각종 토론회도 주최한다.

부정선거 의혹에 동참 중인 보수 유튜브 출연에도 부지런하다. 또 매일매일 페이스북에도 글을 올리고 있다. 그래서일까. 지난달 15일까지 법원에 총선 관련 증거보전을 신청한 후보는 총 24명이다. 민 전 의원을 포함해 모두 통합당 후보들이었다. 4.15 총선 관련 소송 역시 총 140건으로 20대 총선에 비해 10배가 늘었다.

"21대 국회의원 선거 관련 소송이 140건인데 대부분 투표용지나 해킹, 또는 사전투표와 관련된 개표 조작설이 핵심내용입니다. 4년 전 20대 총선 때 있었던 13건의 소송에 비하면 무려 10배 이상 많아졌습니다. 검증되지 않은 개표조작설이 선거 불신을 키우고 막대한 재검표 비용도 치르게 하는 셈입니다." (MBC 한학수 PD)

물론 이러한 부정선거 주장이 처음은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이가 2012년 대선의 개표 결과에 의혹을 제기한 다큐멘터리 영화 <더 플랜>(2017년)을 만든 방송인 김어준씨였다. 김씨는 < PD수첩 >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때는 합리적인 의혹 제기였어요. 지금은 조건이 바뀐 게 많이 있어요. 저는 그 과정과 시스템을 이해하고 문제제기를 한 거고 꼭 그런 문제제기를 동의하지 않겠지만 지금 민경욱 전 의원이 얘기하는 거는 자기들이 이해를 못한 상태에서 하는 문제제기예요."

하지만 이날 < PD수첩 >은 방송 후반 15분여를 김씨가 제작비를 모으고 기획을 도맡다시피 한 것으로 알려진 <더 플랜> 속 부정선거 의혹들을 검증하는 데 할애했다. 역시나 투표지 분류기를 해킹, 개표를 조작했다는 주장도 엇비슷했다. 하지만 <더 플랜> 역시 이에 대한 물리적인, 과학적인 근거를 제시하진 못했다.
 

MBC < PD수첩 > '전격 해부, 개표조작설' 편의 한 장면 ⓒ MBC

 
이른바 <더 플랜>의 영화적 핵심인 'K값 1.5' 역시 영화 개봉 3개월 후 검증 보도를 했던 <뉴스타파> 최기훈 기자, 고려대 통계학과 박유성 교수 등이 반박에 나섰다. 영화에 출연해 "(K값이)확률로 치면 이런 사건이 우연히 일어났을 확률이 번개 두 번 연속해서 맞는 그런 확률"이라 주장했던 아이오와주립대학교 통계학과 김재광 교수조차도 "신중하지 못했다"라며 "스스로 떳떳한 일은 아니었죠"라고 말하기도 했다.

달라질 건 없었다. 이미 4년 전, 영화 개봉 직후 <더 플랜> 속 의혹들에 대해선 소셜 미디어와 인터넷 커뮤니티 상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진 바 있다. K값이나 온라인 해킹 역시 전문가들로부터 뭇매를 맞거나 논리적으로 부정당하기도 했다.

상반된 진영이나 지지자들의 온도 차, 유튜브란 플랫폼의 부각 등등. 4년이 흐른 지금, 같아 보이지만 다른 부정선거 음모론에 진짜 차이는 이준석 전 최고위원의 말마따나 일관된 서사의 존재 여부다. 그때나 지금이나 선관위가 검증에 나선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더 플랜>이 2012년 대선 개표조작이란 서사를 심지어 다큐멘터리 영화로 '완성', 부정선거 의혹을 환기시키고 개표의 공정성과 투명성, 그리고 선관위의 중요성을 환기시킨 반면, 민 전 의원과 그의 주장에 동참 중인 유튜버들은 파편화된 주장을 그저 돈벌이나 자기 이름값을 높이는 것에 활용하는 데 그치고 있다. 블랙시위와 같이 소음을 일으키고, 통합당 의원 24명의 총선 관련 증거보전 신청의 이론적 토대로 기능하면서.

부정선거 의혹이나 개표부정 음모론은 우리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우리 역시 군사독재 시절은 물론이요, 절차적 민주주의를 완성한 이후에도 음으로 양으로 횡행했던 각종 부정선거의 찬란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정부가, 관이 여당을 끌어주고 밀어주는 '관건선거'의 역사를 선관위가 제대로 반성한 적이 있었던가. 2010년대까지 부정선거 의혹이 제기된 바탕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민 전 의원의 대활약은 안쓰럽기(?) 그지없어 보인다. 대다수 국민들은 이미 4년 전 <더 플랜> 논란과 검증을 통해 일반적인 부정투표 의혹의 진위를 학습한 상태다. 서사도 없이, 근거는 더 허섭한 음모론을 연일 제기 중인 민 전 의원의 주장은 과연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까. 그리고, 민 전 의원의 음모론에 숟가락을 얹은 이들이나 증거보전 신청을 한 통합당 이들은 < PD수첩 >을 어떻게 봤을까. 
PD수첩 민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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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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