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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충성고객의 배신감... "믿었던 은행에 사기 당했다"

라임CI펀드 피해자들의 눈물... 신한은행 불완전판매 정황, 피해액만 2700억원

등록 2020.06.29 07:36수정 2020.06.30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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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와 지난 15일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인근 카페 2층에서 만난 60대 후반 김아무개씨가 지난해 7월 신한은행 PB(자산관리전문가)에게서 받은 이메일을 보여주고 있다. ⓒ 조선혜


"저는 원금을 날리면 큰일 난다고 계속해서 얘기했어요. 무조건 안전한 상품으로 해달라고 했죠. 그런데 하루는 신한은행 PB(자산관리전문가)가 이런 이메일을 보내준 거에요."

지난 15일 <오마이뉴스>와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인근 카페에서 만난 김아무개씨는 스마트폰을 꺼내 저장된 이메일을 보여줬다. 그러면서 "이건 은행이 사기 쳤다는 것을 알려주는 증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씨는 신한은행 PB의 권유로 라임CI(크레딧인슈어드)펀드에 30억원을 투자했다가 원금을 몽땅 날릴 상황에 처했다. 60대 후반인 김씨는 그 스트레스로 몸 오른쪽에 마비 증상이 오는 등 건강까지 급속도로 나빠졌다. 

실제 김씨가 지난해 7월 신한은행 PB로부터 받은 이메일에는 "원금+이자 100% 보험가입, 일반 매출채권에 보험사 보장(원금+이자보상)하는 조건"이라고 적혀 있었다. 김씨는 본인이 투자한 '라임CI 무역금융 1Y 전문투자형 사모신탁 1호~13호'에서 투자 손실이 나더라도 최소한 원금은 돌려받을 수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이같은 설명에도 김씨는 주저했다. 그러자 담당 PB는 특별한 혜택을 주겠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가입을 독촉했다. 김씨는 "(담당 PB가) 원래는 50억 원 이상을 가진 자산가만 가입할 수 있는 상품인데 제가 VVIP이기 때문에 30억 원으로도 가입 가능하도록 조정해주겠다고 말했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해당 상품의 최소가입금액은 3억 원이었다. 또 경우에 따라 1억 원만 가입한 투자자도 있었다. 

"CI펀드는 안전하니 걱정 말라더니..."


김씨는 올해 3월에서야 투자원금을 몽땅 날릴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1조6000억 원대 펀드 환매(계약해지) 중단을 불러온 이른바 '라임사태'가 터지면서다. 김씨는 "지난해 10월 라임 펀드의 환매가 중지됐지만 상황을 전혀 몰랐다"라며 "올해 1월 담당 PB에게 '라임이 뭐냐'고 물어봤는데 그때마다 PB는 제가 든 상품은 안전하니 걱정하지 말라고만 했다"고 전했다. 

라임자산운용에서 만든 라임CI펀드는 지난해 4월 22일부터 8월 26일까지 각각 1~13호로 쪼개져 신한은행 등에서 판매됐다. 해당 펀드를 통해 유치한 투자금의 약 51%는 'CI매출채권', 27%가량은 '라임플루토FI D-1호', 약 1.1%는 '라임플루토-TF 1호' 등에 투자됐다. 

그런데 라임플루토FI D-1호와 라임플루토TF 1호는 지난해 10월 환매중단으로 사회적 논란으로 떠올랐다. 라임자산운용에 따르면 이들 환매중단 펀드의 손실액은 최대 1조6335억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김씨가 라임CI펀드에 가입하면서 투자한 돈의 일부도 여기로 흘러들어갔지만 김씨와 같은 투자자들은 자신의 투자금이 CI매출채권 외 다른 위험성이 높은 펀드에 투자됐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김씨는 투자한 30억 원을 사실상 모두 잃게 되면서 자녀 결혼자금과 본인의 노후자금을 몽땅 날리게 됐다고 하소연했다. 

"애들 아빠가 6년 전 암으로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남편이 남긴 30억 원은 아이들을 위한 돈이었죠. 제가 오랫동안 빚쟁이로 살았거든요. 이 돈마저 날리면 저는 진짜 큰일 나는 상황이에요."

김씨는 지난 50년간 거래해온 신한은행에 대한 배신감이 크다. 김씨는 "처음 개설했던 통장도 조흥은행(신한은행 전신) 것이었고 아이들도 초등학생 때 신한은행 통장을 만든 후 지금까지 거래해 왔다"라며 "온 가족이 신한은행의 충성고객이었는데 이런 은행에서 사기를 당해 너무 가슴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평소 정기예금만 들었는데... '공격투자형 투자자'로 분류
 

지난 12일 서울 모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난 50대 후반 이아무개(가명)씨가 지난해 4월 신한은행 PB(자산관리전문가)에게 받은 서류를 보여주고 있다. ⓒ 조선혜


50대 후반 이아무개씨도 지난해 4월 신한PWM(Private Wealth Management)센터를 방문했다가 PB의 권유로 라임CI펀드에 3억 원을 투자했다. 이씨는 위험회피 성향이 강해 이전까지는 정기예금만 들었다고 했다. 이씨는 "신한은행 PB에게 정말 안전한 상품 아니면 들지 않겠다고 계속해서 얘기했다"며 "담당 PB는 원금·이자 100% 신용보험에 가입돼 있는 상품이고, 이만큼 안전한 펀드가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씨는 최소 투자금액이 3억 원이라 부담스러웠지만 PB의 말을 믿고 펀드에 가입했다.

이 과정에서 제대로 된 투자자 성향 테스트도 없었다는 게 이씨의 주장이다. 사모펀드의 경우 높은 수준의 투자수익을 추구하고 손실 위험을 감수할 수 있는 '공격투자형' 투자자만 가입 가능하다. 하지만 이씨는 이같은 정보를 전달받지 못했다고 했다.

이씨는 "투자자 성향 테스트에 대해서는 설명 들은 게 없다"라며 "PB가 주는 서류에 형광펜 표시된 부분만 기계적으로 쓰고 나중에 '투자자 정보 확인서'를 받았는데 공격투자형으로 적혀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씨가 모두 잃게 될지도 모르는 3억 원은 은퇴한 남편의 노후자금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앞으로 국민연금 등으로 생활은 가능하겠지만 그동안 아끼느라 참아왔던 여행도 다니며 노후를 보내고 싶었는데 불가능하게 됐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씨는 "대한민국 최고 은행이라는 신한은행에서 이렇게 엉망으로 할 줄은 몰랐다"라며 "은행을 믿고 돈을 맡긴 것뿐인데, 너무나 허무하다"고 말했다. 

"은행에서 투기성 상품을 팔 줄 꿈에도 몰라"

정아무개씨도 지난해 8월 말 신한PWM센터에서 라임CI펀드에 4억 원을 투자했다. 정씨 역시 이 상품이 원금을 모두 잃을 수 있는 위험한 상품인지 알지 못했다.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정씨는 "당시 PB에게 이 돈은 직원들의 월급 명목으로 남겨준 회삿돈이라고 이야기했다, 1원이라도 손실이 난다면 제가 배임에 걸릴 수 있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라며 "그러자 PB는 '100% 안전하다'고 계속 강조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씨가 올해 4월 받아본 투자상품가입신청서와 투자자 정보분석 결과표에는 "상품의 위험성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고 공격투자형 투자자"라고 돼 있었다. 정씨는 담당 PB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왜 나를 이렇게 평가했느냐"고 따졌지만 답변을 듣지 못했다.  

"은행은 예금, 저축, 대출하는 곳이라고 생각했지 투기성 상품도 판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 했어요. 예금보다 이자가 좀 좋다고 하니 그런가 보다 했죠. 세상에 어떤 바보가 연 4% 수익을 얻으려고 원금 4억 원이 손실 날 수 있는 상품에 가입하겠어요? 정확히 알았다면 절대 가입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처럼 PB가 안전한 상품이라고 소개해 라임CI펀드에 가입했다고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는 피해자들은 50여 명에 이른다. '신한은행라임CI펀드피해자연대'(아래 피해자연대)에 따르면 피해 금액은 2700억 원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신한은행은 정말 몰랐나
 

<오마이뉴스>와 지난 15일 서울남부지방검찰청 인근 카페 2층에서 만난 60대 후반 김아무개씨가 라임자산운용을 통해 입수한 2019년 9월 기준 신탁재산 명세부를 보여주고 있다. ⓒ 조선혜


문제는 또 있다. 신한은행이 라임사태가 불거진 이후에도 라임CI펀드를 계속 판매했다는 점이다. 같은 상품을 팔았던 경남은행과 신한금융투자가 지난해 6월부터 라임CI펀드 판매를 중단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특히 신한은행은 라임사태 이후 라임스텔라펀드의 경우에는 판매를 중단하고 고객들에게 원금과 이자 5%까지 모두 지급했다.

펀드를 판매한 신한은행은 피해자들에게 '라임CI펀드에 들어온 돈이 문제가 된 라임플루토FI D-1호와 라임플루토TF 1호로 편입된 사실을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신한은행이 조금만 노력을 기울였더라면 투자 내역을 알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피해자들이 라임자산운용을 통해 입수한 2019년 9월 기준 신탁재산 명세부에는 투자 내역이 명시돼 있었기 때문이다. 피해자 김씨는 "신탁재산 명세부는 일반인도 언제든지 뗄 수 있는 서류"라며 "은행이 노력을 기울였다면 고객에게 부탁해 투자상황을 파악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피해자들은 신한은행 등이 문제를 알고도 플루토 펀드 등의 부실을 만회하기 위해 사모펀드에 대해 잘 모르는 투자자들에게 라임CI펀드를 기획·판매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모든 라임CI펀드 판매에 문제가 있었지만, 특히 라임스텔라펀드 판매가 중단된 2019년 7월 이후 판매된 건에 대해서는 명확히 사기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또 "신한금융투자 임원이 라임자산운용의 무역금융펀드에서 투자한 미국 헤지펀드에서 손실이 났다는 사실을 안 시기가 2018년 11월"이라며  "신한은행의 WM(자산관리)그룹장이 신한금융투자의 임원을 겸직하고 있기 때문에 신한은행도 라임펀드의 부실을 알고 있었다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신한금융투자와 신한은행이 문제를 인지하고 적극적으로 관련 펀드의 판매를 중단했다면 라임CI펀드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금융정의연대는 신한은행이 투자자들을 기망해 투자를 유치한 것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가법) 위반(사기), 자본시장법 위반(사기적 부정거래)에 해당한다며 피해자들의 1·2차 고소 진행을 도왔다.

김 대표는 "신한은행 등의 행위가 특경가법 사기에 해당하는지 조사를 요청하는 내용으로 지난 3월 1차 고소를 진행했지만 지금까지도 검찰은 고소인 조사조차 하지 않고 있다"며 "이에 따라 피해자 23명의 피해사례를 추가해 2차 고소에 나서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봉수 성신여대 법학과 교수는 "은행이 상품 판매의 사기성을 알면서도 펀드 기획사와 공모해 판매했는지 여부가 핵심"이라며 "신한은행과 신한금융투자 겸직 임원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펀드 판매를 중단하지 않았다는 점이 규명된다면 특경가법 사기로 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원금 50% 선지급하기로 했지만...
 

8일 신한은행라임CI펀드피해고객연대과 금융정의연대는 신한라임CI(크레딧 인슈어드: Credit Insured)펀드 피해에 대해 은행이 전액 배상에 나서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 신한은행라임CI펀드피해고객연대


신한은행 쪽은 현재 투자금 회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원론적인 반응만 보이고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최근 라임CI펀드 고객에게 원금 50%를 선지급하기로 했다"며 "고객의 자산을 안전하게 돌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신한은행은 지난 5일 피해 구제를 위해 라임CI펀드 투자자들의 가입금액의 50%를 먼저 지급하기로 했다. 또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에서 보상안이 정해지면 그에 따라 보상액수를 사후 정산할 방침이다.  

하지만 피해자들은 신한은행이 책임을 인정하고 제대로 된 피해 복구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피해자연대는 "피해 배상의 첫 걸음이 시작돼 일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서도 "여전히 책임을 회피하며 피해자들에게 선심 쓰듯 배상금을 지급하는 신한은행의 처사는 용납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 "실질적으로 신한은행이 책임에 따른 배상 또는 보상조치를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피해 금액에 대한 전액 배상뿐만 아니라 정신적 피해배상도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한은행 #신한금융지주 #라임펀드 #라임 #CI펀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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