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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 소문난 거제 어촌마을 동굴, 이 장면 보려고

[사람 사는 거제도 점빵] 남부면 근포 동굴과 짬뽕집

등록 2020.06.23 09:27수정 2020.06.23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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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딱히 할 일이 정해져 있는 사람이 아니다. 아내의 수행을 돕는 정도가 전부이고 그 짓도 대기하는 시간이 많아서 항상 손이 비어 있다. 즉 백수(百手)다. '노니 이 잡고 노니 염불한다'고 짬짬이 거제 경기의 부활에 작은 힘이나마 보태기 위해서 거제도에서 영업하는 곳 중, 추천할 만한 곳을 찾아 소개하려고 한다.[기자말]
거제도에는 바다를 끼고 있는 다른 지역처럼 포(浦)자가 들어가는 지명이 많다. 가장 유명한 장승포와 옥포를 비롯하여 성포, 능포, 외포, 송진포, 석포, 덕포, 지세포, 도장포, 대포, 홍포, 탑포 등 대략 세어 봐도 스무여 곳이 된다.

그중 남부면, 즉 가장 남쪽에 자리 잡은 지역에 근포라는 작은 국가 어항이 있다. 주로 어선으로 자망어업이나 통발어업, 낚시어업, 연안복합어업 등 연안어업으로 생업을 이어가는 곳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요트계류장을 중심으로 한 근포마리나 사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 들어 외지인들의 발길이 점차 잦아지는 곳이기도 하다.


인생샷 촬영 핫플레이스 17선에 포함된 동굴
 

근포동굴안에서 본 바다와 하늘 풍경 인생샷을 찍는 최고의 각도. 기다리는 사람들은 옆으로 비껴서 주어야 한다. ⓒ 이승열

 
이 한적한 어촌마을의 동굴이 SNS상에서 소문이 나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북적거리기 시작한 것은 대략 작년 가을부터이다. 더구나 지난 5월 28일, 경남도가 발표한 '신혼부부, 젊은 연인들을 위한 도내 웨딩 및 인생샷 촬영 핫플레이스 17선'에 포함된 후에는 더 붐빈다.

마을의 오른쪽 편을 돌아가면 서쪽 해변에 동굴 5개가 위치 해 있다. 그중 3개는 쉽게 접근할 수 있고, 2개는 험한 해안언덕을 타고 넘어가야 하는 위치에 있다. 그래서 이곳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3개의 동굴만 보는 셈이다.

이 동굴은 석회동굴처럼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많은 사람과 도구를 동원하여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다. 서쪽 해안과 거의 수평으로 만들어져 있으므로 동굴 안에서 보면 바다와 석양이 한눈에 들어오는 장관을 만들어낸다.

그 자연적인 절경은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왔을 것인데, 도대체 누가 숨겨져 있던 이런 멋을 찾아내서 전국에 알리게 되었는지 신기할 정도이다. 바다와 동굴 벽을 배경으로 사람의 실루엣만으로 찍어도 멋있고 특히 석양 무렵이 인생샷을 만들 수 있는 최적의 순간이다.

동굴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히 아는 주민이 없다
 

동굴 앞의 해변 거제도의 남서쪽 해안이며 고운 모래로 된 아담한 해수욕장 느낌이 든다. ⓒ 이승열

  

근포동굴의 외부 정경 이런 동굴이 세 개가 나란히 있고 나머지 두 개는 접근하기 어려운 쪽에 있어서 관광객은 관람이 어렵다. ⓒ 이승열

 
마을 사람 중 이 동굴이 언제 만들어졌는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동네 어르신들은 "어릴 때는 생선 젓갈을 보관하기도 하고 동네에서 추렴하여 잔치를 벌이던 장소로도 사용한 곳이지만 갑자기 유명세를 타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다"라고 말한다.


이렇게 관심이 높아지다보니 동굴의 생성 시기에 대한 역사적인 고증이 필요해졌으나 어디에도 나타나 있지 않다. 이렇다 보니 동네식당에서 막걸리를 마시다가 구전을 바탕으로 서로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그 식당에서 해물 짬뽕을 먹다가 옆에서 들어 봤다. 어느 주민이 "1945년 해방되기 직전에 일본놈들이 주민을 동원해서 만든 포진지다"라고 하자, "그때가 아니라 청일전쟁 때 만든 거라니까"라고 한 어민이 고쳐 말했다.

그러자 먼저 말했던 어민은 " 아버지가 직접 봤다"라고 했고 뒤에 말한 어민은 "동네의 90살 드신 최고 어른이 말하길 자신의 생애에서는 그 동굴을 판 적이 없다고 했으니 청일전쟁 때가 맞다"라고 소리를 높였다.

우리 아버지 말이 맞니 최고령 어르신 말이 맞니 하며 한바탕 언쟁을 벌이다가 술잔이 몇 번 오간 후에야 겨우 잠잠해졌다. 여러 정황을 보니 일제강점기 때 군수 식량 저장 장소로 사용하기 위해 만든 동굴로 보인다. 지심도의 일본군 포진지와 비교해봐도 알 수 있다.

포를 거치할 시멘트 구조물이나 기타 인공 시설이 없는 것으로 봐서 보관용 동굴일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해안과 불과 10여 미터 밖에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물품 운반에도 적합한 지형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평일에도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찾아오는데 주변에 아무런 근린 시설이나 휴식 시설이 없기 때문에 순전히 사진을 찍기 위해 오는 것이다. 세 개의 동굴 중에 가운데 있는 동굴이 가장 인기가 높다. 안에서 바깥쪽을 보고 찍으면 바다와 하늘 배경이 어우러져 멋진 사진이 나온다.

따라서 이 샷을 위해서는 다른 일행은 옆으로 비켜서서 한쪽 편에서 기다려줘야 하므로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어떤 때는 긴 줄이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다들 불평 한 마디 없이 기다려 준다. '빨리빨리 문화'의 수준을 넘어 이젠 문화 선진국의 품격도 느낄 수 있다.

마을 발전협의회에서는 동굴 근처에 화장실과 벤치 등 편의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행정기관에 요청해 뒀다고 하는데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다들 마음이 바쁘다.

횟집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중국집
 

선장이 운영하는 짬뽕집 선장이 잡아 온 해물로 만든 짬뽕은 해물탕만큼이나 푸짐하다. ⓒ 이승열

 
동굴에서 근포마을까지는 도보로 10분 정도 걸리는데, 마을의 선착장 앞에는 생뚱맞게 '엄선장 짬뽕집'이라는 중화요리점이 있다. 선장이 직접 잡아 온 해산물이니 당연히 횟집이 있어야 할 것 같지만, 그곳에서 짬뽕 한 그릇을 먹고 나면 이해가 된다.

해물을 고아 만든 육수 위에 막 잡은 낙지와 문어, 홍합, 게 등이 수북하게 얹혀 나오는 게 마치 해물탕처럼 푸짐하다. 주민들의 외식 장소로도 인기가 높지만 최근에는 동굴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다고 엄선장은 말했다. 근포항의 바다 내음과 각종 해물, 그리고 쫄깃한 면발은 의외로 잘 어울린다.

어찌보면 일제강점기의 아픔이 서려 있는 다크투어 여행지일 수도 있다. 슬픔은 슬픔대로 부끄러움은 또 그것대로 간직하고 지켜나갈 역사적 가치가 있는 것이니 이 마을에서 지나치게 엄숙할 필요는 없다. 단지 선조들의 희생과 수고로움을 한번쯤 생각하는 것 정도는 필요할 것 같다.

동굴로 가는 길과 엄선장 짬뽕집으로 가는 길은 동선이 달라 마음 먹고 방파제 쪽으로 가야 만날 수가 있다. 제법 거제도의 오지에 속하는 근포마을. 간 김에 두 군데 모두 들러보고 오는 게 어떨까 싶다.
#근포동굴 #이승열 #엄선장짬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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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월에 퇴직한 후 백수이나, 아내의 무급보좌관역을 자청하여 껌딱지처럼 붙어 다님. 가끔 밴드나 페이스북에 일상적인 글을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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