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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발 집단감염 사태 이후... 이태원에 가봤습니다

상인들 방역에 힘쓰고 있지만 거리는 휑해... '감염 지역' 낙인에 고통 호소

등록 2020.06.28 10:19수정 2020.06.28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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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7일, 알고 지내던 성소수자 단체 활동가와의 개인적인 약속 때문에 몇 달 만에 이태원을 찾았다. 가장 마지막으로 이태원을 방문한 지난 3월에는 이태원 클럽거리 주변이 인산인해였다. 하지만 이른바 클럽발 집단감염 사태 이후 다시 찾은 이태원은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로 한산했다.

지난 5월 연휴 이태원의 한 클럽은 SNS를 통해 '지역사회 감염환자가 클럽 방문 후 확진 판정을 받은 사실을 관할 보건소로부터 통보를 받았다'고 글을 올렸다. 이를 기점으로 언론의 엄청난 '이태원 때리기'가 시작되었다. 지금은 그만 뒀지만, 나는 당시 한 방송사의 카메라 보조사원으로 근무 중이었다. 그때 이태원으로 현장취재를 나간 적이 있다.

기자들은 매일 같이 이태원 주변 클럽을 촬영하고 취재했다. 내가 근무하던 곳에서도 이태원 현장 취재를 잡아놓은 경우가 많았다. 어느날은 확진자 일정을 취재하기 위해 주변 업소들을 전부 돌아다니는 계획도 올라왔다.

같이 현장을 나갔던 한 동료는 성소수자 문화를 탐방이라도 하듯 여러가지 질문을 던졌다. 어떤 이는 내가 트랜스젠더인 걸 알고도, '이태원 주변을 자주 와 봤느냐'는 식으로 질문했다. "게이클럽 가면 정말 남자들끼리 성행위를 하느냐?", "성소수자 인권단체 회원이니 더 잘 알 거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SNS에서 당시 클럽 내부를 촬영한 영상이 유포되기도 했다. 클럽에 있던 사람들은 웃음거리로 전락했고, 언론사들은 이 영상을 자료화면으로 인용하기 바빴다. 그들에게 성소수자들은 기삿거리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한 언론사의 직원으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다시 찾은 이태원의 거리는
  

클럽거리 주변 도로. ⓒ 주영민


13일 이후 평일과 주말을 포함해 며칠간 이태원을 돌아다니며 몇몇 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과 종업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기사를 쓴다고 하니 거절하시는 분들도, 또 두려워하시는 분들도 많았다. 시민기자로 기사를 쓸 생각이었지만, 힘든 상황에서 언론을 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찾은 이태원은 주말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한산했다. 이태원역 주변 대로에 '클린 이태원'이라고 써진 플랜카드들이 눈에 띄었다. 상인회에서 부착한 것이라고 했다.

13일 토요일 저녁에 찾아갔던 한 라운지바는 오후 6시 오픈 시간부터 9시까지 우리 일행을 포함해 겨우 3팀 정도의 손님만 받았다. 사장님은 우리 일행에게 넌지시 이야기를 꺼내셨다. 그는 "(감염) 사태 이후 알바생 모두를 해고하고, 가게도 금~토요일만 운영한다"고 말했다. 또, 방문 손님 목록에 적힌 연락처로 일일히 전화를 걸기도 했다. 가게에는 사장님과 주방직원 2명만 근무하고 있었다.

이른바 '클럽 사태' 이후, 방문자 목록에 쓰인 이름과 전화번호의 일부가 가짜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러자 인근 통신사 기지국 정보를 확인해 방문자들을 추적했는데, 가게 사장님은 그 이후 이태원에서 방문자 전화번호 확인이 필수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태원 상인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고 싶어서 싶어서, 평일 오후에 이태원을 다시 방문했다. 클럽 거리로 가는 길목에서도 사람을 찾아보긴 힘들었다. 몇몇 주점과 가게들은 영업을 중지했으며, 폐업한 가게들도 자주 보였다. 이태원역 앞 스타벅스도 평일 오후 7시까지만 영업한다고 했다.  
 

집합금지명령서가 붙은 클럽 문에 붙은 메모들 ⓒ 주영민


성소수자 친화적인 펍을 운영하시는 사장님은 클럽 앞에서 예배를 하고 기타를 치며 찬송가를 부르던 사람들이 있었다고 말했다. 집단 감염 사태 이후 교회나 반 성소수자 단체 사람들이 자주 나타나서 클럽 주변에 계란을 던지거나, 낙서를 해놓고 도망가는 일도 많았다고 한다. 이태원에서 성소수자는 그저 한 명의 이웃, 동료였는데, 지금은 지역을 어렵게 만든 가해자로 낙인찍힐까 봐 안타깝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클럽 주변 골목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거의 대부분의 업소들이 문을 닫았다. 클럽 주변에서 바를 운영하시는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미 몇몇 언론에서 찾아와서 취재와 설문조사를 진행했다면서, 흔쾌히 취재에 응해 주셨다.

"언제 다시 문을 열 수 있을지..."
 

클럽주변 골목 가로등 불빛만 켜져있다. ⓒ 주영민


그는 불꺼진 언덕 주변을 보시면서 "이 주변 클럽이나 관련 업소들은 언제 문을 다시 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미 업소명이나 업소 위치, 클럽의 성향이 전부 밝혀진 상황이니, 코로나가 끝나도 '주홍글씨'처럼 낙인이 찍힐 것 같다는 의견이었다.

주말에도 손님을 보는 게 힘들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생계를 위해 문은 열어야 하는데 손님은 없단다. 그렇다고 정부에서 마련한 자영업자 지원을 받더라도 계속 이런 상황이 지속된다면 앞으로 영업을 이어나가는 게 어렵다는 얘기다. 그는 그야말로 '생존'을 고민하고 있었다.

집단 감염이 발생했던 4월 말~5월 초 연휴 때 상황에 관해서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클럽 주변 업소들 대부분이 5월 이전까지 몇 주~몇 개월간 영업을 쉬고 있다가, 다시 영업을 재개한 이후 바로 집단 감염 사태가 일어났다는 것. 그는 이런 전후 사정을 설명하며 복잡한 마음을 내비쳤다.

사장님의 가게도 몇 달간 영업을 쉬셨다고 한다. 최근 들어 다시 문을 열지만, 평일에는 잠깐 운영을 하다가 손님이 없어서 일찍 문닫고 돌아가는 게 일상이 된 지 오래란다. 주말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아직도 상인들은 감염 사태 이전에 비해 매출이 80~90%나 줄었다고 말하곤 한다. 코로나19로 이태원 주변 상인들도 피해를 입고 있다.

상인회를 중심으로 정부와 서울시 측에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크다고 하셨다. 용산구의회에서도 이태원과 관련한 논의가 이루어지는 중이다. 22일 용산구의회 본회의에서는 '이태원 상권 경제 재난 대책 마련 촉구 결의안'이 발표됐다.

이태원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수많은 생각이 들었다. 바이러스는 사람을 가리지 않는다. 다만, 감염 이후에 겪는 일은 사람마다 다르다.

감염 사태 이후 언론과 일부 커뮤니티에서는 성소수자 관련 커뮤니티나 단체 혹은 개인에게 공격을 가했다. 한 언론의 경우, 내부에서 자사가 혐오 보도에 앞장서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기도 했다. 그만큼 문제가 심각했다.

때문에 성소수자 단체들은 정부와 지역기관에 성소수자들의 상황을 알리고, 함께 대책을 마련하기도 했다. 전 세계적 재난 상황 속에서 혐오와 차별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린 것이다.

박능후 장관은 지난 15일 브리핑에서 이태원 클럽에서 근무하던 직원들 중에선 확진자가 없다고 발표했다. 모두가 마스크를 착용하고 근무했던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태원 상인과 주민들은 때 이른 폭염 속에 방역복을 입고 '클린 이태원', '다시 찾는 이태원'을 외치며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들의 생계를 위한 대책도 필요해 보인다.
#이태원 #코로나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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