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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 짓기 싫어서 심었는데 6만명이나... 초초초 대박 이룬 사연

라벤더 농원과 금광굴로 사라질 뻔한 마을에서 찾아오는 명소 된 광양 사라실마을

등록 2020.06.28 19:28수정 2020.06.28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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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양 사라실마을에 활짝 핀 라벤더 꽃. 머지 않아 '사라질 마을'이라는 자조 섞인 푸념까지 들었던 마을이 보라색 라벤더 꽃으로 요즘 여행객들의 발길을 불러들이고 있다. ⓒ 이돈삼


장마가 서둘러 찾아왔다. 후텁지근하다. 올여름 날씨도 무더울 것이라는 예보다. 밝고 화사한 꽃을 그려본다. 보랏빛 라벤더 꽃이다. 라벤더는 허브의 왕으로 불린다.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향이 좋다. 스트레스를 없애주는 데 그만이다. 잠도 푹 자게 해준다. '정절'을 꽃말로 지니고 있다.

광양에 있는 사라실(紗羅室) 마을로 간다. 마을 뒷산 옥녀봉에 살던 옥녀가 베틀로 비단을 짤 때 작업실로 쓰던 곳이라고 이름 붙었다. '광양제철소'로 알려진 전라남도 광양의 광양읍 사곡리를 가리킨다.

사라실은 라벤더가 흐드러진 본정과 금광굴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는 점동, 예술인들이 모여 사는 억만 등 3개 마을로 이뤄져 있다. 광양와인동굴에서 가깝다. 광양읍에서 동광양·하동 방면으로 가는 도로의 오른편에 자리하고 있다.
  

점동저수지 둔치에서 내려다 본 사라실마을 풍경. 광양 사라실마을은 본정과 점동, 억만 등 3개 마을로 이뤄진 산골이다. ⓒ 이돈삼

사라실 마을에 활짝 핀 라벤더 꽃을 보러 온 여행객들.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여행객들의 발길이 조심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 이돈삼


라벤더 등 허브 꽃밭의 면적이 3만3000㎡ 남짓 된다. 여기에 라벤더가 흐드러져 보라색 비단처럼 펼쳐져 있다. 코로나19의 위협에도 싱그러운 꽃과 향을 찾아온 사람들의 발길이 조심스럽게 이어지고 있다.

라벤더 농원은 개인이 가꿨다. 이 마을에서 나고 자란 김동필(63)씨다. 30여 년 동안 마을 이장을 지냈다. 지금은 마을가꾸기 추진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씨의 말이다.

"2017년부터 심었어요. SNS를 통해 알려지면서 사람들이 찾기 시작하는데, 저도 놀랐습니다. 작년에 6만여 명이 찾아왔어요. 꽃이 절정을 이룬 휴일에는 최고 5000여 명이 찾아오고요."

라벤더 하나로 대박 난 마을
  

사라실 마을에 라벤더꽃을 심어 보라색 산골로 만든 김동필 마을가꾸기 추진위원장. 사라실 마을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다. ⓒ 이돈삼


올해는 코로나19 탓에 찾는 발길이 작년에 비할 바는 못 된다. 그래도 방문객이 끊이지 않는다. 광주와 부산에서 그리고 서울에서도 찾는다. 인적 드물던 산골마을이 활기를 띠는 것은 당연했다.

"농사짓기 싫어서 심었죠. 벼농사는 잘해야 본전이고, 생산비도 건지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고민을 많이 했죠. 그러던 차에 라벤더를 알게 됐어요. 순천정원박람회 직후입니다. 라벤더에 관심을 갖고, 관련 책을 찾아보고, 다른 지역의 농원도 들락거렸죠."
 

김씨가 라벤더를 심은 이유다.

그는 라벤더를 6차 산업화시켰다. 라벤더를 재배하며 상품으로 만들었다. 향을 추출해 에센스 오일을 만들고 있다. 향수, 화장품, 양초, 비누도 만들어 판다. 기대 이상으로 인기가 좋다. 꽃을 보러 온 사람들이 꽃밭을 둘러보고, 제품을 몇 개씩 사 간다.

라벤더 농원은 본정(本井)마을에 있다. 사라실에서 가장 먼저 터를 잡았다고 본(本), 옛날에 맑은 우물이 있었다고 정(井)이다. 마을을 지키고 있는 여러 그루의 당산나무가 이를 증거하고 있다. 200년 된 소나무가 있다. 400년, 300년 된 느티나무도 있다. 
 

광양 사라실마을에 있는 금광굴 전경. 70년대 말 폐광 이후 방치된 굴을 광양시가 단장해 개방하고 있다. ⓒ 이돈삼

사라실 마을에 있는 금광굴의 내부. 관광시설로 단장돼 있어 굴 안에까지 들어가 볼 수 있다. ⓒ 이돈삼


라벤더가 지금의 사라실을 만들었다면, 금광굴은 앞으로 마을을 이끌어갈 관광자원이다. 금광굴은 금을 채취했던 굴이다. 그것도 한두 군데가 아니다. 예닐곱 군데나 있다.

사라실은 예부터 광산으로 유명했다. 1906년에 광맥이 처음 발견돼 채굴을 시작했다. 일제강점 때엔 채굴권이 일본사람한테 넘어갔다. 일제는 중일전쟁을 계기로 채굴을 장려했다. 해방 이후엔 폐광되는 곡절을 겪었다.

금광굴은 1958년부터 다시 활기를 띠었다. 이 마을 출신 하태호씨에 의해서다. 갱내를 복구하고, 다시 채굴을 시작했다. 많은 양의 금과 은, 동을 생산했다.

금광 덕에 산골마을에 돈이 넘쳐났다. 산골에 광산사무소가 세워지고, 광부들이 살 사택이 들어섰다. 산골인데도 전기가 일찍 들어왔다. 밤낮으로 술집에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병원도 생겼다. 천막극장도 수시로 들어왔다.

당시 마을주민이 500여 명, 광부는 그보다도 몇 배 많은 2000여 명이 넘었다. 채굴 작업은 3교대로 진행됐다.
  

사라실 마을의 금광굴에 대한 경험담을 들려주는 하평호 씨. 그의 뒤로 보이는 건물은 당시 광부들이 옷을 갈아입던 곳이라고 했다. ⓒ 이돈삼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는 금 섞인 잡석(사금)이 마을까지 흘러 다녔어. 아이들은 그걸 줍느라고, 학교에도 안 갔지. 돈이 중요한 때 아니오? 공부는 뒷전이었지. 광부들도 일하고 나올 때 금덩이를 몰래 입안에 삼키고 나오는 게 일상이었으니까."

70년대 후반까지 사라실에서 금광굴을 직접 경영했다는 하평호씨의 말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노다지'라는 말이 나온 이유이기도 하다. 노다지는 광물이 많이 묻혀 있는 광맥을 가리킨다. 노다지의 어원과 관련한 재밌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노 터치(No touch)'가 어원이라는 얘기다.

고종 때다. 우리나라에 진출한 미국이 평안남도 운산의 금광에서 채굴을 시작했다. 견물생심이라고, 당시 금광에서 일하는 인부들이 금광석에 욕심을 많이 냈다. 그때 미국사람들이 인부들을 향해 '만지지 말라'며 'No touch!'라고 했던 것이 '노다지'로 변했다는 얘기다. 사실 여부를 떠나서 노다지를 떠올리면 노 터치가 연상되는 이유다.

시원한 금강굴부터 예술촌까지
  

광양 금광굴의 내부. 관광객들이 직접 들어가 볼 수 있도록 광양시가 말끔히 단장했다. ⓒ 이돈삼

광양 사라실 마을 풍경. 산골짜기 밭에 고추와 키위가 많이 심어져 있다. 비가 잠시 갠 지난 6월 13일이다. ⓒ 이돈삼


금광굴에는 아무라도 들어갈 수 있다. 70년대 말에 폐광돼 방치되던 굴을 광양시가 단장해 일반에 개방하고 있다. 땅속을 수백 미터 파고 들어간 굴이다. 그 가운데 100여 미터를 단장해 놓았다. 굴의 크기도 성인 5∼6명이 나란히 허리를 펴고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넓다. 더 깊은 곳은 눈으로만 볼 수 있도록 해놓았다.

굴의 내부도 시원하다. 굴 밖에는 또 금을 캘 때 쓰던 장비를 볼 수 있는 황금공원이 만들어져 있다. 점동(店洞)마을에 있다. '점골'로도 불리는 점동은 예부터 철이 많이 나는 곳이었다. 솥 등을 굽는 쇠점(鐵店)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쇠에서 금까지 두루 난 마을이다.
  

폐교를 고쳐서 입주한 사라실예술촌. 예술인들의 작업공간이면서 일반인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 이돈삼

억만마을의 담장에 그려진 벽화. 사라실예술촌에 입주한 예술인들이 재능기부로 그렸다. ⓒ 이돈삼


억만마을에는 예술인들의 작업 공간인 사라실예술촌이 있다. 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예술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마을 담장에 그려진 벽화도 이들의 재능 기부로 탄생했다. 산골에서 볼거리를 제공한다. 예술인들의 전시공간이면서 여행객들의 쉼터가 되는 사라실 갤러리카페도 있다. 방치됐던 옛 창고를 고쳐서 만들었다.

예술촌을 보듬고 있는 마로산에 마로산성(馬老山城)도 있다. 산성이 산의 정상부와 능선을 따라 테를 두르듯 둘러싸고 있다. 둘레 550미터, 남북으로 길쭉한 사각형을 이루고 있다. 머리띠 모양을 한 테뫼식 석성이다.

한때는 '사라질' 마을로 통했지만
  

광양 머리띠를 두른 듯 산정의 능선을 따라 쌓인 마로산성. 남북으로 길쭉한 사각형을 이루고 있다. ⓒ 이돈삼


성내 면적만 1만9000㎡에 이른다. 백제 때 만들어져 통일신라 때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임진왜란 때엔 관군과 의병이 성을 보수해 광양만전투 때 활용했다고도 전해진다. 사적 제492호로 지정돼 있다.

사라실 마을은 한때 '사라질 마을'로 통했다. 주민들의 자조 섞인 푸념이었다. 지금은 지역주민과 예술인들이 팔을 걷고, 광양시가 힘을 보태면서 비단처럼 빛나고 있다. 그 가운데에 라벤더 꽃과 금광굴이 있다.
  

점동저수지의 반영. 사라실마을의 맨 위쪽에 자리하고 있는 농업용 저수지다. ⓒ 이돈삼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전남일보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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