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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펜운동#로또취업반대, 누가 키우나

을과 병끼리 싸우게 하는 언론... 자신들 입맛대로 아이템 선택, 불안감 확산시켜

등록 2020.06.25 20:35수정 2020.06.26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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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조선일보 B02에 실린 <노력했던 내가 호구... 2030 '부러진 펜' 운동 확산> ⓒ 조선일보


인천국제공항공사(공항공사)가 지난 22일 비정규직이었던 1900여 명의 보안 검색요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하자 사회적 파장이 커지고 있다. 특히 취업 준비생들이 모이는 커뮤니티에서는 '공정하지 못하다'거나 정규직 일자리가 줄어들 것을 걱정하며 '역차별'이라며 반발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특히 다수의 언론들은 '2030의 분노'라는 관점에서 이번 사태를 다루고 있다. 23만명(25일 오후 5시 기준)이 참여한 '공기업 비정규직의 정규화 그만해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와대 청원과, 취업준비생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부러진 펜 운동'이 언론에 주요하게 오르내리고 있다.

특히 '부러진 펜 운동'은 공항공사 정규직 전환에 대응하는 청년들의 집단 움직임으로 부각되고 있다. 25일자 <조선일보>는 한 면 대부분을  할애해 <노력했던 내가 호구... 2030 '부러진 펜' 운동 확산>이라는 기사를 실었고, 24일 세계일보도 <'인국공 사태'에 고개 든 '부러진펜운동'…"이젠 노력해도 소용없어">라는 기사를 통해 부러진 펜 운동의 의미를 설명했다.

부러진 펜 운동은 '펜이 부러진 사진'을 SNS(사회관계망서비스)에 올리고 #부러진펜운동 #로또취업반대 등의 태그를 달아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에 항의하는 캠페인이다.

어떻게 시작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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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펜 운동에 쓰이는 사진 ⓒ 커뮤니티 캡처


지난 24일 새벽, 자신을 취준생이라고 밝힌 익명의 한 청년이 네이버카페인 공준모(공공기관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모임)와 독취사(독하게 취업하는 사람들) 등에 '부러진 펜 운동-인국공 역차별에 관해서'라는 글을 올린 것이 발단이 됐다. 그는 "취준생 입장에서 그냥 넘어갈 수 없다"라며 "비정규직 인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피해가 다른 (기업을 준비하는) 취준생에게도 간다. 인국공 to는 자연스럽게 줄어들 것이며 기존에 인국공을 준비하던 인원들이 다른 공기업에 지원하게 된다"며 운동을 제안했다. 공준모는 회원 55만 명, 독취사는 회원 285만 명의 대형 카페다.

그의 제안은 관심을 집중시켰고, 24일 낮 12시 경까지 인스타그램에는 #부러진펜운동이라고 해시태그를 단 약 50여개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제안자는 독취사에 다시 한 번 글을 올려서(현재 삭제), 참가자들에게 감사를 표시하며 운동을 독려했다.

2시간쯤 후인 오후 2시 경 <아시아경제>가 부러진 펜 운동과 관련해 첫 보도를 했다. <[단독]"부러진 펜 운동 시작하자" '인국공' 사태 2030 집단 움직임으로>라는 기사는 부러진 펜 운동을 "'인국공 논란'에서의 첫 집단 항의"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상당수의 주요 매체들이 부러진 펜 운동을 조명하며, 청년들이 공항공사 정규직 전환을 '역차별'로 규정하며 항의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해시태그 운동에는 210여 명 참여

그렇다면 현재 부러진 펜 운동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일반적으로 해시태그 운동은 인스타그램과 트위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인스타그램에선 '#부러진펜운동'이라는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이 215개(25일 오후 5시 기준) 검색됐다. 청와대 청원 숫자에 비해서는 현저히 적지만, 글이 계속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트위터에서 '#부러진펜운동'을 검색하면 검색되는 게시물은 5개에 불과하다. 심지어 그중 1개는 부러진 펜 운동을 비판하는 내용이다. '#'를 빼고 '부러진 펜 운동'으로 검색해보면 단순 기사 공유를 제외하곤, 약 90개의 트윗이 검색된다. 이중 대다수는 부러진 펜 운동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왜 사회가 펜만 잡고 있어야 하는지 고민해야" "2030을 한 번에 묶지 말아달라"등의 내용이었다.

<조선일보>와 <아시아경제>는 '트위터 등 SNS에서' 집단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적었으나, 실제로 인스타그램을 제외한 SNS에서는 별다른 반향이 없었다. 심지어 '공준모'와 '독취사'에서도 정규직 전환 반대 목소리는 높지만, 부러진 펜 운동에 대해선 거의 언급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젊은 남성들이 주로 가는 커뮤니티, 블로그 등에는 '부러진 펜 운동'을 다룬 기사들이 종종 공유되고 있을 뿐 특별한 움직임은 찾아볼 순 없었다.

을과 병끼리 싸우게 만드는 언론

애초에 부러진 펜 운동의 주장이 취업준비생들의 우려와 오해에서 비롯됐다는 점에서, 이를 언론이 검증 없이 보도하는 것이 사회적 갈등만 키운다는 비판이 나온다.

부러진 펜 운동은 보안 검색요원의 정규직 전환으로 공항공사의 신규 채용 인원 수가 줄어드는 것을 가정했지만, 정부와 공사 측은 '취업준비생 일자리'와는 무관하다고 밝혔다. 또한 공공기관에는 '총액인건비'가 적용되지만,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된 보안검색 요원의 경우 정규직이 되더라도 임금 등의 처우가 현재와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때문에 총액인건비에 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언경 민언련 공동대표는 "일부의 '역차별' 주장을 언론이 크게 확대해서, 우리 사회의 차별을 해소하려는 국가의 노동 정책을 다시 과거로 회귀시키려는 것은 옳지 않다"라며 "해시태그 운동은 우리 사회에서 굉장히 많이 일어난다. 이번에는 언론이 의도적으로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아이템을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창현 국민대 언론정보학부 교수는 "언론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취업준비생들의) 기회를 박탈할 것이라는, 불안감을 야기시키는 방식의 보도를 하고 있다"며 "마치 노노 갈등을 부추기는 행태와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교수는 "언론이 과도한 선정주의에 빠져 있다"며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이 옳으냐 옳지 않느냐의 프레임을 깨고, 비정규직의 환경 개선을 통해 노동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를 고려해야 하지 않느냐"고 강조했다.

한편에선 청년의 대표성 문제도 제기됐다. 청년 노동자 단체 '청년 전태일' 대표 김종민씨는 "지금 언론에 나오는 목소리가 전체 청년의 목소리는 아니다. 공공기관 시험을 준비할 수 있는 청년의 수가 그리 많지 않다"면서 "언론이 을과 병끼리 싸우게 만드는 듯 하다"고 밝혔다.

김씨는 "우리 한국 사회에서는 기자 친구들을 갖고 있지 못한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라며 "소외되어 있고 최저임금 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기사에 없다. 이런 사람들은 공공기관 정규직이 되면 안 되나"라고 씁쓸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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