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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 비정규직 논란, 묵살된 고교생의 소수 의견

[아이들은 나의 스승 194] IMF를 지나 비정규직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슬픈 자화상

등록 2020.06.29 13:31수정 2020.06.29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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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용 인원 감소 항의' 전국교대생 총궐기대회 초등교사 임용 예정 인원 감소에 교대생들이 반발하는 가운데, 2017년 8월 11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OECD평균 수준 학급당 학생 수 감축’ ‘1수업 2교사제 졸속 도입 등 단기적 대책 철회’ 등을 요구하는 전국교육대학생 총궐기대회가 열렸다. ⓒ 권우성

 
데자 뷰.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논란'을 접한 동료 교사들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3년 전 기간제 교원의 정규직 전환 문제가 이슈가 되었을 때도 정규 교원과 임용시험을 준비하는 사범대와 교육대 학생들을 비롯한 청년 세대의 반발이 엄청났다. 당시 부정적 여론 탓에 비정규직 교사의 정규직 전환은 결국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관련기사: 기간제교사 문제는 정교사와의 전쟁? '틀렸다' http://omn.kr/nw9c)

정규직 전환에 대한 찬반 주장의 논거 또한 조금도 다르지 않다. 정규직 채용이라고 명시된 시험을 통해 선발되어야만 공정하다는 것이다. 애초 비정규직은 정규직이 아니라는 점을 알고 채용되었기 때문에, 일괄적인 정규직 전환은 불공정한 특혜라는 주장이다.

기간제 교원이 일정 기간 동안 근무하면서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로부터 수업 역량을 인정받아 정규 교원으로 채용되는 길이 아예 막혀버린 셈이다. 무조건 임용시험을 치러 합격해야만 정규 교원이 될 수 있다. 알다시피, 임용시험 성적과 교사의 자질은 비례하지 않는다.

교직 생활 20여 년 동안 자질과 역량이 출중한 기간제 교원들을 여럿 떠나보내야만 했다. 출산 휴가나 병가를 대체하는 경우라면 모를까, 티오가 있어 열심히 근무하다 임용시험에서 아깝게 밀려난 분들이 적지 않다. 당시 동료 교사들은 학교의 커다란 손실이라며 아쉬워했다.

그게 어디 학교와 교사만의 문제일까.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한 사람의 자질과 역량을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선별해낸다는 건 넌센스다. 계량화된 수치로 평가될 수 있고, 또 필요한 능력이라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인간보다 인공지능(AI)에 맡기는 게 훨씬 더 효율적일 것이다.

"불과 20여 년 만에 우리나라는 완전히 딴 세상이 돼버렸다."

2년 전 퇴직한 한 선배 교사는 이번 논란에 대한 소회를 이렇게 피력했다. 정규직이 신분이 돼버린 우리 사회의 취업난과 경제적 양극화는 정작 코로나보다 더 큰 위험 요소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우리 역사의 변곡점을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IMF'라고 말했다.

IMF 이후 모두가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의 가치관을 내면화하면서, 사람들의 정서가 피폐해지고 공감 능력을 잃어버렸다고 단언했다. 청년 대학생들조차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못 참는' 사회라며 혀를 끌끌 찼다. 대한민국이 신자유주의의 직격탄을 맞고 쓰러졌다며 분노했다.

그는 이번 논란은 자신과 가족 외에는 아무도 믿지 않는 불신 사회의 징후적 사건이라고 말했다. 가짜 뉴스에 휘둘린 채 맹목적인 분노만 쏟아내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불신을 조장하는 언론을 질타했다. 해결책은 학교 교육일 수밖에 없다는 게 결론이었다.

젊은 교원에게 노조는 이익집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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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자리 많이 만들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5월 12일 인천공항공사에서 열린 `찾아가는 대통령.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시대를 열겠습니다!' 행사에서 좋은 일자리 만들기 등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 연합뉴스


동료 교사들 중에선 대체로 젊을수록 정규직 전환 결정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컸다. 다만, 찬반 주장에 대한 논리보다도 입장을 밝힌 단체의 면면에 더 주목했다. 그들은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정규직 노조가 앞장서서 정규직 전환에 반대하고 있다는 사실에 크게 놀라워했다.

정규직 노조의 반대는 자신들의 몫이 줄어드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총액 임금제' 아래에서 정규직 수의 증가는 기존 혜택의 축소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물론 손사래를 치지만, 그들이 반대 여론에 숟가락을 얹는 이유가 사람들은 이것이라고 여긴다.

"사회적 약자와의 연대는 노조의 강령 중에 첫손에 꼽는 가치 아닌가요? 주판알 튕기며 이해관계 따지는 거는 노조도 별반 다를 바 없는 것 같아요. 강령조차 지키지 않을 거라면, 노조 앞에 수식어처럼 붙이는 '민주'라는 단어를 당장 떼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 젊은 동료 교사는 노조에 대한 반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며 이렇게 반문했다. 과거와는 달리 젊은 교사들이 전교조 가입을 주저하는 것도 노조에 대한 완고한 부정적 인식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말마따나, 전교조 조합원의 평균 연령이 어느덧 쉰 살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들에게 노조란 특별할 것 하나 없는 이익집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번에 다시 한번 노조가 비정규직의 손을 뿌리치는 모양새가 되면서 그러한 인식이 더욱 굳어질 듯하다. 그들에게 '노조는 민주화운동의 끌차였다'는 자부심은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가 됐다.

자기 몫을 움켜쥔 채 나눌 줄 모르는 이들이 무슨 민주 타령이냐는 일침에 모두가 맞장구를 쳤다. 노조에 요구되는 도덕성과 연대 의식이 불안에 포획되어 껍데기만 남았다는 분석이 뒤따른다. 노조조차 불안한 미래를 각자도생의 방식으로 극복하려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정규직 신분증'이 답인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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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26일 오후 서울 동작구 노량진의 한 경찰공무원 입시학원에서 많은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올해 안에 국민의 안전과 치안, 복지를 위해 서비스하는 공무원 일자리를 추가 충원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 연합뉴스

  
그렇다면, 아이들의 생각은 어떨까. 지난 금요일 오후, 시사에 관심이 많은 네 명의 아이들과 이번 논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전후 맥락을 다룬 신문 기사를 출력해 건네 읽힌 다음 자신의 견해를 말하도록 했다. 기사는 보수 신문과 진보 신문에서 각각 하나씩 가지고 왔다.

굳이 보수와 진보 한쪽에 치우치지 않도록 구색 맞출 필요조차 없었다. 아이들은 채 다 읽기도 전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불공정하다고 발끈했다. 비정규직 채용이 보편화한 현실은 개혁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정규직으로 '승진'시키는 건 정의롭지 못하다고 했다.

그들이 말하는 대안은 역시 '시험을 치르게 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야 공정성을 의심받지 않고, 합격자 스스로도 떳떳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현재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이들에게 합리적인 수준의 가산점을 주면 어떠냐는 한 아이의 의견은 나머지 셋에 의해 이내 묵살되었다.

정규직 전환 대신 획기적인 비정규직 처우 개선 방안도 수긍하기 어렵다고 했다. 어쨌든 정규직이 자신의 몫을 스스로 나누지 않는 한 하나마나한 이야기라는 거다. 정규직의 기득권을 인정하면서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오로지 시험을 통한 '정규직 신분증' 취득뿐이라고 강조했다.

비정규직으로 근무하면서 쌓인 역량을 평가하고 반영하는 차원에서 정규직 전환은 의미가 있다는 반론 역시 아이들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역량을 평가하는 주체가 누구이며, 기준이 무엇인지 당최 믿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부모 찬스'의 우려가 크다고 입을 모았다.

한 아이는 이번 논란을 대학 입시의 학종에 비유하기도 했다. 끊임없이 공정성을 의심받는 학종처럼,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도 같은 맥락이라는 거다. 그들의 역량이 아무리 출중해도, 취업이 '하늘의 별 따기'인 현실에서 시험을 거치지 않는 역량은 신뢰받긴 힘들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계량화된 성적이 산출되는 시험만이 공정하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다. 심지어 컴퓨터가 채점하는 선다형 시험이 담당 교사가 채점하는 서술형 시험보다 더 공정하다고 생각한다. 성적표에 점수나 등급 표기가 아닌, 성적에 대한 교사의 서술이나 평어는 못 미더워 한다.

'도둑놈 심보' '로또 취업'... 아이들을 탓할 수 없었다
 

초등학생들이 꿈을 스스럼없이 '건물주'라고 적는 세상이 됐다. 철이 들어 중학생 정도 되면 가정 형편과 자신의 성적을 고려해 구체적인 직업명을 적는다. 고등학생들의 꿈은 현실을 직시해 다시 단순해지기 시작한다. 장래 희망이랍시고 '정규직'이라 적는 아이들이 드물지 않다.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비정규직이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1997년 IMF를 몸소 겪은 기성세대에게는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오다'의 줄인말)였지만, 2000년 이후에 태어난 지금의 아이들에게는 조금도 어색하지 않은 용어다. 그들은 노동 시장이 원래부터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그들의 눈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도둑놈 심보'로 비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근 20년 동안 무한경쟁과 각자도생을 내면화해온 아이들을 탓할 순 없다. 기성세대가 불안이라는 망령에 사로잡혀 아이들이 다른 삶을 꿈꾸지 못하도록 막아왔기 때문이다.

꿈이 정규직이라는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한 후 첫 직장은 비정규직일 가능성이 크다. 어차피 대학을 졸업해봐야 비정규직을 전전해야 하는 마당에, 대학 입시 대신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럴진대, 그들에게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은 '로또'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30년 전 고등학교 학창 시절,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외치며 학력보다 실력으로 평가받는 시대가 머지않아 올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한 세대가 지난 지금, 아이들은 실력은 증명할 수 없고, 오로지 학력만이 믿을 수 있다고 말한다. 불신이 팽배한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정규직이 되기 위해 아귀다툼을 할지언정, 정규직이 신분이 돼버린 사회를 아이들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다. 그들에게 나눔과 연대의 가치는 현실에서는 경험할 수 없는 교과서 속 용어다. 이 뒤틀린 세상을 어떻게 하면 바룰 수 있을까. '인천국제공항 정규직 전환 논란'으로 인한 갈등의 골이 점점 더 깊어지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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