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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지 밟았다고 시위대에 총... 그들은 지극히 '정상적' 미국인

사회적 가치보다 내 집 앞 잔디가 소중한 그들, 미국식 자유민주주의 제도의 한계

등록 2020.06.30 17:51수정 2020.06.3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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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백인 남녀가 주택가 집 앞에서 총을 든 채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를 겨누는 모습. ⓒ CNN갈무리


최근 미국의 백인 부부가 세인트루이스 시장의 관저를 향해 가던 시위대를 향해 정면으로 총을 겨눈 사진이 CNN을 포함한 전 세계 주요 매체의 톱뉴스로 보도됐다. 해당 보도에 따르면 이들은 맥클로스키 부부(Mark and Patricia McCloskey)로 저녁 식사를 즐기고 있던 중 시위대가 자신의 사유지를 침범한 것을 보고 그들을 몰아내기 위해 남편은 M16을 개량한 것으로 보이는 자동 소총을, 그리고 아내는 권총을 뽑아들었다. 이들은 마치 전쟁터에 나온 병사와 같은 호전적인 표정으로 시위대를 향해 총구를 겨누고 소리를 질렀다.

사실 약 500명에 이르는 이 시위대는 세인트루이스 시장인 크루선(Lyda Krewson)이 경찰개혁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이름과 주소를 공개한 것에 대해 항의하려고 그의 관저를 향해 행진하던 중이었다. 시장이 자신의 집으로 오는 주요 도로를 차단하자 시위대가 우회로를 택해 행진하던 중 맥클로스키의 궁전과도 같은 어마어마한 저택에 속한 사유지 도로를 지나가게 된 것. 크루선 시장은 바로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고 정보 공개를 삭제하며 사과했다.

한 방송사(KMOV)의 보도에 따르면 63세의 백인인 남편 마크 맥클로스키는 다음과 같이 불평을 늘어놨다. "약 100명의 폭도들이 포트랜드 플레이스(Portland Place)의 유서 깊은 철문들을 부수고 들어와 우리 가족이 마당에서 저녁을 먹고 있는 내 집을 향해 몰려들었다. 우리는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

그러나 현장에서 찍은 비디오를 아무리 보아도 시위대는 그의 집 앞 도로를 평화롭게 지나가고 있었고 그 어떤 생명의 위협을 가하는 모습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맥콜스키 부부는 왜 자동화기와 권총을 뽑아들어 시위대에게 정면으로 총구를 겨눈 것일까? 그 답은 간단하다.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미국 시민이기 때문이다.

지극히 '정상적' 미국인

자유민주주의는 근세까지 유럽을 지배했던 군주제에 반기를 든 계몽주의자들의 사상에 그 뿌리를 둔 것이다. 1689년 제정된 권리장전에서 왕이 아닌 국민의 권리와 자유를 명문화하여 왕조의 절대 권력을 제한하기 시작하면서 개인의 자유와 개인들을 대표하는 의회의 권리가 증진되는 발판이 마련됐다.

이후 미국 독립전쟁(1776)과 프랑스대혁명(1789)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사회적 대격변으로 유럽의 군주제는 막을 내리고 이른바 민주주의 정치체제와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두 바퀴로 하는 근대사회의 새 장을 열게 된다. 특히 '자유주의'(liberalism)라는 개념은 미국 독립전쟁과 프랑스대혁명으로 비로소 형성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이전에 활동한 철학자 로크(John Locke, 1632~1704)가 사회계약론을 바탕으로 자유주의 사상의 토대를 마련했다. 그가 모든 인간에게 타고난 것으로 주장한 생명권, 자유권, 재산권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자유민주주의의 기본권으로 존중되고 있다.

사실상 과거 군주제에서 오로지 통치자와 특권층이 배타적으로 누려온 그러한 권한이 근세 계몽주의자들에 의해 모든 인간의 근본 권리로 확대해석된 것이다. 아테네에서 시작된 여성·노예·외국인·20세 미만의 미성년을 제외한 아테네 시민들만을 대상으로 한 직접민주주의에서 먼 길을 거쳐 성립된 자유민주주의는 무엇보다도 신흥부르주아의 정치적 발언권과 경제적 사유재산의 배타적 소유권을 침해당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한' 기본권으로 존중한다.

변호사로 일하는 맥클로스키 부부도 이러한 기본권 가운데에도 특히 재산권을 매우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들은 르네상스풍의 저택을 30년 전에 구매해 10여 년에 걸친 복원 공사 끝에 '세인트루이스잡지'(St. Louis Magazine)에 소개될 만큼 으리으리한 '궁전'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매우 자랑스럽게 소개한 그 궁전 앞마당의 잔디밭을 지나는 '폭도들'을 용서할 수 없었던 것인가?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그러한 태도는 사실 중세에 정치적·경제적 권력을 독점하던 군주나 영주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자유민주주의가 극복한 줄 알았던 특정 계층만의 배타적 독점적 재산권은 시민들의 자유권 행사와 대립할 때 무기도 동원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부부가 보여주고 있다.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왜 총까지?

미시시피 강가에 자리 잡은 세인트루이스의 주민 30만 명 가운데 절반은 흑인이다. 정치적으로도 민주당이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지역이기도 하다. 또한 프랑스 이민자들이 세운 도시답게 보수적인 가톨릭교회의 중심지 역할도 하는 도시다. 이 도시 시민의 75%가 경건한 기독교 신자다. 그러면서도 미국 내에서 살인이 가장 빈번한 도시이기도 하다. 흑인들은 아프리카에서 왔고 백인들은 프랑스·독일·아일랜드에서 주로 왔다.

특히 백인들은 기득권층의 억압과 빈곤을 피해 신대륙으로 건너온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미국에 정착해 부를 축적한 일부 백인들이 유럽의 귀족들의 것을 닮은 '궁전'을 짓고 특히 유색인들이 많은 '평민들'과는 다른 세상에서 '귀족 놀음'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됐다.

유럽에서는 돈과 더불어 출신 가문이 중요했지만, 미국에서는 돈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는 무한한 기회의 나라였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는 내 돈 가지고 내 맘대로 하는데 누가 뭐라고 하면 무기도 얼마든지 '합법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기독교의 전통에서 사유재산은 매우 낯선 개념이었다. 그래서 중세의 기독교 교부들도 사유재산에 관한 고민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13세기에 들어서서 토마스 아퀴나스(Tommaso d'Aquino, 1225~1274)가 비로소 사유재산에 관한 이론적 정립을 시도하게 된다.

그러나 그 조차도 사유재산이 자연권에 속하지 않는다고 봤다. 그러다가 비로소 사유재산에 신성불가침의 권리가 부여된 것은 1789년 프랑스대혁명 때 선언된 인권과 시민권에 따른 것이다. 귀족의 학정에 반발하던 민중들은 자신의 재산을 그 누구도 건드리는 것을 원치 않았다. 1000년 넘게 군주들과 더불어 민중 위에 군림하던 가톨릭교회조차도 민중의 사유재산을 존중하는 문자 그대로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인식 전환을 레오13세 교황의 회칙 '새로운 사태'(Rerum Novarum, 1891)에서 선언하고 나섰다.

그러나 세상에는 프랑스대혁명을 발판으로 마련된 신성불가침한 사유재산권을 이어받은 미국의 자유민주주의적 재산권 개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유럽에서는 오히려 사회민주주의가 제도권 안에서 복지국가 실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북구유럽 국가들 대부분과 독일, 프랑스, 영국도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자유주의 정당과 더불어 국정을 이끌고 있다.

그 가운데 특히 독일에서는 사유재산권에 대하여 신성불가침한 권리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을 헌법에 명문화하기까지 했다. 독일 헌법 제14조 2항에는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사유재산에는 의무가 따른다. 그 재산의 사용은 공공의 복리에도 기여해야 한다.(Eigentum verpflichtet. Sein Gebrauch soll zugleich dem Wohle der Allgemeinheit dienen.)" 3항은 이렇다. "사유재산은 오로지 공공의 복리를 위해서만 수용(收用)될 수 있다.(Eine Enteignung ist nur zum Wohle der Allgemeinheit zulässig.)"

다시 말해서 사유재산이라도 사회 구성원의 공동의 가치를 위해서는 '희생'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동의 가치가 바로 공공복리이다. 이러한 사회민주주의의 정신이야 말로 오늘날 유럽의 복지국가의 이념적 토대가 된 것이다.

공동의 가치가 삭제된 사유재산권

미국도 20세기 초반까지 유럽의 영향으로 사회민주주의 운동이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매카시즘의 광풍을 몰고 온 반공주의의 영향으로 공산주의만이 아니라 사회민주주의도 탄압을 당해 거의 소멸됐다. 

다행히 빌 클린턴(William Jefferson Clinton, 1946~) 이후 미국의 민주당은 진보주의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특히 버니 샌더스(Bernard Sanders, 1941~)라는 사회민주주의자가 다시 미국에도 나타나게 됐다.

그럼에도 미국은 여전히 신자유주의적 경제제도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자유민주주의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신자유주의는 극단적인 빈부격차를 낳았고 이러한 빈부격차는 인종차별과 맞물리면서 사회적 갈등을 격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고삐 풀린 신자유주의를 낳은 자유민주주의의 폐해를 우리는 맥클로스키 부부가 휘두르는 총구를 통해 들여다 볼 수 있다. 시위대가 원하는 보편적 가치보다 내 땅의 잔디가 밟히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라고 여기는 백인들이 군림하는 나라가 인류의 미래에 바람직한 모범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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