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나이 80살 어르신 38명이 글 익혀 펴낸 시집 화제

경상대 인문도시 하동사업단, 상남-횡보마을 주민 시집 <가로내띠기의 행복>

등록 2020.07.01 08:58수정 2020.07.01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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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하동군 횡천면 상남?횡보마을에 사는 어르신들이 펴낸 시집 <가로내띠기의 행복>. ⓒ 경상대학교

 
"남편이 독신이라 애기를 기다리다 / 첫아를 낳았을 때 우리 가정 / 웃음꽃이 활짝 폈지 / 시어머니께서 낮참 밤참 / 따끈하게 해다주면 신랑이 / '우리 각시는 배가 참 큰갑소' 하더라네 / 그때 어찌나 부끄럽던지."

"신랑이 멋져 보이기도 했어 / 첫날밤에 신방에서 저고리를 벗기는데 / 서로 부끄러워서 손도 안 잡고 잤어 / 입도 안 맞추고 / 그냥 남매처럼 잤어."


경남 하동에 사는 어르신 김행주씨가 쓴 "가장 행복했을 때", 박막말씨가 쓴 "첫날밤"이라는 시다.

하동군 횡천면 상남‧횡보마을에 사는 평균 나이 80살 어르신들의 인생을 담은 시집에 실려 있는 시다. 이 두 마을 어르신 38명이 101편의 시를 썼다. 처음엔 한글도 모르던 사람들이 한글을 배우고 익혔고 마침내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시를 쓴 것이다.

시집 제목은 <가로내띠기의 행복>(도서출판 북인)이다. 시집 제목에서 '가로내'는 하동 횡천강의 순우리말이다. 가로내를 중심으로 살아온 어르신들의 삶의 역사를 시집을 통해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시집이 나오게 된 사연은 흥미롭다.

경상대학교 인문도시 하동사업단(단장 강인숙 교수)은 하동군(군수 윤상기)과 함께 2017년부터 인문도시사업을 진행해 왔고, 이 사업은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지원하는 사업이다.

경상대 인문도시 하동사업단은 이 사업의 하나로 '실버 세대를 위한 꿈결 인문학 체험'을 진행해 왔다. 사업은 횡천면 상남마을과 횡보마을에 살고 있는 어르신들을 대상으로 시를 가르치는 것이었다.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이미 2010년부터 하동군에서 어르신을 대상으로, 한글을 쓰고 읽도록 가르치는 '문해교육'을 해온 덕분이다.

거기에다 인문도시 하동사업단을 이끄는 강인숙 단장을 비롯해 경상대 교수, 강사들의 노력이 보태졌다. 강인숙 단장은 하동문학관 최영욱 관장의 지지로 의미있는 시집 발간이 가능했다고 강조했다.

박덕선씨의 "어머니"는 아주 짧은 시인데도 순간적으로 울컥하게 한다.

"어머니 / 어머니 / 내 어머니 / 어머니 딸도 / 이제 이름 써요 / 박덕선."

어린 시절 딸이라고, 가난해서 배우지 못한 한이 시구 사이로 왈칵 쏟아져 나오는 듯하다.

글을 배우는 재미에 푹 빠진 어르신도 있다.

"일 공부 노코 / 글 공부하니 / 할딱 벗고 춤추듯 좋아졌네 / 배창수 거더쥐고 웃것네." 김분악 할머니가 쓴 "춤추며 시작"의 한 대목으로, 하동 고장말(사투리)이 정겹게 표현되어 있다.

"내 인생의 시작은 / 열둘 시댁 가족을 안고 살았다 / 구름 속에 달빛같이 흐렸다 / 흙과 땅을 다 섞어 강이 된 인생 / 그 강에 아들딸이 태어나고 자랐다 / 달빛 같은 내 인생 / 사십 명이 넘는 식구들 속에 / 보름달같이 환하다."

박권옥씨가 쓴 "내 인생 시작은"이란 시다. 짧은 시 한 편에 한 사람의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서사시처럼 펼쳐진다.

이 시집 출판을 기념하는 행사가 7월 4일 오전 10시 하동군 횡천면 상남마을회관에서 열린다.
#경상대학교 #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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